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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이의 반란, 김용익

세계 미술 시장에서 단색화가 인기를 끌면서 한국 미술계에는 숙제가 하나 주어졌다. 그렇다면, 우리 단색화를 잇는 그 이후의 작가는 누구인가. 아직 대중에게는 낯선 이름, 김용익.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늘 주류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비주류의 그가 다시금 주목받는 이유.

2016.12.15

단색화의 세계적인 인기와 함께 한국 미술계는 그 ‘넥스트’를 찾기 바빠졌다. 김용익, 그는 올해 벌써 두번째 대규모 개인전을 연다.

 

경기도 양평에 자리한 그의 집 겸 작업실. 한때 생태와 환경에 관심을 갖고 생태 미술에도 몸담았다는 그의 이력을 듣지 못했다면 더욱 낯설었을 풍경이다. 김용익 작가의 집은 옛날 할머니의 집을 떠올리게 한다. 한편으로는 시골 찻집 같기도 한 묘한 풍경. ‘대지도 인간의 몸처럼 문명의 병이 든 지 오래다. (…) 개발은 죄악이다. 모더니즘적 삶은 곧 죄악이다. 나는 더렵혀지고 병든 대지의 아시혈에 침을 꽂는다. 여기에 천둥, 번개가 내려치면 쑥 대신 가져다놓는 내 작품집을 태워 대지에 뜸을 뜨게 된다.’ 그의 집 창문에 써 내려간 비장한 문장들. 그것을 보고 있자니 그가 왜 이토록 소박한 집을 지었는지 이해된다. “17년 전 이곳에 왔죠. 제가 직접 지었는데, 그 당시 목수가 다 노인이었어요. 이 집에 쓴 모든 것이 규격품이 아니에요. 창문과 출입문 등을 다 만들었죠.” 노목수들이 지은 집, 그 때문인지 딱 떨어지는 직선보다는 둥그런 선을 닮은 듯하다. 원래 이곳은 논이 있던 자리. 연고도 없는 이곳으로 무작정 내려온 것은 건강 때문이었는데, 양평을 미술인의 도시로 특화하려는 정부의 노력도 더해졌다. 터를 볼 것도 없이 당장 집을 짓고 몇 년 뒤 그 옆으로 작업실을 지었다. 또 그다음 해에는 거실 뒤로 서재 하나를 더했다. 하나하나 더하다 보니, 자신만의 색을 입은 집이 완성됐다. 주변의 화려한 전원주택 사이로, 시골집 같은 그의 터전은 외려 낯설게 다가온다. 항아리를 좋아하는 아내 덕에 집 안 곳곳에는 장독대가 즐비하다. 그런데 하나같이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저건 일부러 깨진 걸 산 거예요. 그 옆의 것도 찌그러진 건데, 그래서 더 멋이 있죠.” 온전한 항아리라야 주변 산에서 캔 약초를 몇 년째 발효해둔 항아리뿐. 그는 담근 국화차와 직접 캔 쑥으로 만든 쑥개떡을 내놓는다.

 

1 Thinner...and thinner…#16-83, 2016 2 Thinner...and thinner…#16-85, 2016, Mixed Media on Canvas, 91x117cm, Photo by Keith Park,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예술이라는 거짓말의 여운 속에서

김용익 하면 일명 ‘땡땡이’ 그림이 떠오른다. 캔버스 위에 규칙적인 듯 아닌 듯 나열된 그만의 땡땡이. “처음에는 나무판에 페인팅한 뒤 구멍을 뚫는 것에서 시작됐어요.” 그는 작품 훼손을 목적으로 드릴에 서클 커터 날을 달아 구멍을 냈고, 그것이 땡땡이 연작의 시초다. 사실 그의 땡땡이에는 기묘한 연막이 숨어 있다. 땡땡이 그림의 원 제목은 ‘가까이... 더 가까이...’. 작품 제목처럼 가까이 들여다보면 땡땡이 옆으로 작은 글씨가, 얼룩이, 때로는 연필로 그린 스케치 선이 보이기도 한다. “선을 일부러 지우지 않고 살려뒀어요.” 그의 ‘가까이’ 연작은 멀리서 보면 정밀하고 완결된 모더니즘 회화처럼 보인다. “모더니즘적 화면에서는 해서는 안 될 흠집을 낸 거죠. 멸균된 영역에 뭔가를 범한 것 같은 흠집을. 또 모더니즘적 시각에서 보면 작품을 볼 때도 적절한 거리가 필요한데, ‘가까이’ 연작은 적정 거리를 파괴함으로써 모더니즘에 대한 전복을 시도한 것입니다.” 사실 그는 1970년대 한국 모더니즘, 소위 단색화로 불리는 주류의 막내로 통했다. 미술 밖의 세상과는 동떨어진 한국 모더니즘에 환멸을 느끼고, 1981년 돌연 그것과의 단절을 선언하기 전까지 말이다. 그는 당시 주류인 모더니즘 사조와 담을 쌓은 것도 모자라 보란 듯이 흠집을 내는 자신만의 작업으로 비주류와 마이너리티의 외로운 길을 택했다. 15년은 족히 방치된 흙 묻은 그림을 제목까지 떡 붙여 전시장에 건 ‘흙 묻은 그림’을 비롯해 과거의 작품 위에 검은색 물감으로 덧칠하거나 캔버스 뒷면에 알 수 없는 메모를 시도한 ‘절망의 완수’ 등 그의 작업은 늘 모더니즘 미술을 향한 조용한 펀치를 품고 있었다. “그간 제 작업은 너무 심각했어요. 이번 신작은 좀 더 밝고 홀가분한 것들이에요.” 미술의 사회적 효용성은 무엇인가. 미술과 정치는 어떤 관계인가(여기에서 미술은 1970년대 모더니즘 미술을, 정치는 80년대 민중미술을 의미한다). 그는 스스로를 모더니즘 미술에 짓눌려 있었노라고 고백한다. 그는 지난 세월과 화해하듯 얼마전 일민미술관에서 화업 40년을 되돌아보는 회고전을 열었다.

 

“20년간 쌓아둔 작품을 끌어냈죠. 3분의 2 이상이 발표하지 않고 쟁여둔 것들이에요. 그냥 쌓여 있다 보니 곰팡이도 슬고 흠집도 나고. 그런데 이걸 가장 모더니즘적 공간인 화이트큐브에 넣으니 숭고함마저 느껴지더라고요. 세월의 켜, 두께가 느껴지는 거지. 그때 생각이 들었죠. ‘지금 작품을 20년 후에 꺼내면 어떤 모습일까?’ ” ‘20년이 지난 후’ 시리즈를 비롯해 그간의 고통과 무거운 생각에서 벗어난 ‘얇게, 더 얇게’ 시리즈 등 개인전을 앞둔 그의 작업실에는 신작이 넘쳐난다. “제 작품은 얼핏 가볍죠. 그런데 전체적으로 보면 공허해요. 허망하고.” 그의 공허는 ‘유토피아’ 연작을 통해 더 짙어진다. “유토피아, 말 그대로 이상향이죠. 그런데 그 말 속에는 ‘없는 곳’이라는 뜻도 숨어 있습니다.” 유토피아는 꿈의 이상향이지만, 또한 없는 장소라는 모순을 품고 있다. “제 어릴 적 꿈 중 하나는농부였고, 또 하나의 꿈이 있었죠. 중·고등학생 시절 영화 <남태평양>을 봤는데 DVD를 소장할 정도로 충격이었어요.” 1960년대 우리나라는 가난한 나라였다. 그 시절 눈에 비친 남태평양은 꿈 같은 곳이었다. “지금 보면 허무맹랑한 영화인데 그 풍경이 꿈처럼 각인됐고, 한편으로는 상흔처럼 남았죠.” 그의 ‘유토피아’ 시리즈는 남태평양의 섬, 야자수, 푸른 하늘, 에메랄드, 그린에서 착안한 것이다. 화려한 색채와 추상의 이미지로 점철된 그의 ‘유토피아’. 한데 그 화면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공허함이 목격된다. 유토피아에 담긴 알 수 없는 공허. “예술 작품은 고귀한 가치를 품고 있지만, 다른 맥락에서는 쓰레기일 수 있어요. 요셉 보이스가 깡통에 기름을 담았다 치죠. 그가 했기에 예술이지만 살짝 옆으로 나가면 쓰레기예요. 이 컵보다 쓸모없을 수도 있어요.” 그가 좋아하는 김수용 시인의 시 제목이기도 한 신작 ‘거짓말의 여운 속에서’는 예술이 거짓일 수도 참일 수도 있다는 모순에서 출발한다. 그 거짓말이나 모순 때문에 어쩌면 더 애틋할 수밖에 없다고. 절망과 희망, 고통과 쾌락, 우리 모두는 모순을 품은 채 살아간다. 그는 그저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그 모순을 화폭 위에 끊임없이 꺼내 보일 뿐.


“단색화의 상업적 성공은 한국에 이런 게 있다는 기준이 돼줬죠. 40대 예술가와 단색화 작가 사이에 제가 징검다리처럼 있는 거죠.” 최근 불어닥친 단색화의 세계적 인기. 그렇다면 그 후의 흐름은 무엇일까? 1970년대 단색화와 80년대 민중미술의 간극 사이에 김용익, 그가 있었다. 모더니즘이라는 주류에도 몸담았지만 한편으로는 미술의 바깥세상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던 그. 한국 미술사의 소리 없는 격변 속에서 고뇌한 한 예술가가 있었고, 화이트큐브 앞에 비주류의 가면을 벗고 당당히 섰다. 12월 30일까지, 2016년 국제갤러리의 마지막을 장식할 김용익의 개인전을 지금 주목할 이유다.

 

1 1970년대, 한국 미술계의 주류인 모더니즘에 반기를 든 김용익 작가. 3 생태와 환경에 관심을 가진 그의 이력을 닮은 듯, 지극히도 소박한 그의 양평집 풍경이다. 2 거실 뒤편에 마련된 소박한 서재. 4 집 옆으로는 역시나 작고 소박한 작업실이 자리한다. 1층은 그의 작업실, 2층은 서예를 하는 아내의 작업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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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양평,작은 집,김용익 작가,땡땡이,국제갤러리,김용익 개인전,작품

CREDIT Editor 설미현 Photo 진택수 출처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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