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글러는 노란색이 가장 잘 어울려.” 어릴 적 갖고 놀던 장난감 때문이었을까? 아내 말에 수긍할 수 있었다. 지프 랭글러는 차의 성격이 원색을 잘 받아주는 것 같다. 오렌지 컬러도 좋고 황토색도 좋았지만 노란색이 그중 나았다. 노란색 차를 타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세상 모든 시선이 내게로 쏟아지는 것 같다. 눈에 띄는 자동차로는 튀는 행동을 못한다. 교통법규 준수에 앞장서야 한다. 운전할 때 지극히 착한 사람이 돼야 한다. 노란색 차를 타다 보면 유치원 버스와 노란색 학원차가 반갑다. 약간은 민망한 노랑 차에서 동지를 구하는 것 같다. 노란색 지프차에 아이들은 손을 흔들며 좋아한다. 반면 노란색 차는 집안 어른들에게 조금 민망해서 엄숙한 자리에 갈 때는 멀리 세워두게 된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쉽게 찾는 것도 큰 장점이다.

원색의 자동차는 어슴푸레한 도시에 색을 더한다. 도시를 밝고 아름답게 한다. 유럽을 가면 오래된 건물 앞에 세워진 빨갛고 노란 차들이 앙증맞아 돋보였다. 세월은 유구한데 자동차는 한때의 허상인 거다. 그래, 도시를 밝게 하는 데 힘을 보탠다면 내 차가 튀어도 좋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노란색에 신경 쓰는 정도는 줄어들었다. 노랑 차를 처음 탈 때는 모든 사람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손을 흔들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마도 내 신경이 무뎌진 것일 게다. 노란색 선택은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많은 차를 가져봤지만 노랑은 가장 용감한 색이었다. 항상 무채색만 고르던 내 선택은 그저 평범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생각을 오래하고 은색 차를 고른 다음 검은색 범퍼와 사이드 가니시로 투톤 컬러의 효과를 내기도 했다. 먼저 모델을 고른 다음에 색깔은 재고 중에서 인도가 빠른 차를 고르기도 했다. 색은 가장 중요한 선택의 하나지만 가장 사소한 문제이기도 했다.

노란색 차를 타면서 내 차를 뽐낸다는 생각은 없었다. 색깔은 미술 선생인 아내의 선택이었고, 랭글러의 성격에 맞는 색이었을 뿐이다. 한편으로 나의 화려함이 도시의 발랄함에 도움 된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은색과 검은색으로 품위를 찾는 대신 내가 광대가 되어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고 싶었다. 무채색으로 회색빛 도시에 묻히려는 생각은 때로 음흉하고 비겁하지 않은가. 검은 틴팅 뒤로 숨으려는 태도와 비슷하다. 과거에는 화려한 색의 차를 보면 오너가 ‘돌+아이’가 아닌가 싶은 적도 있었지만 내가 탄 노랑 차는 세상을 밝게 한다고 믿는다.

새 차로 무엇을 살까 생각할 때마다 해당되는 차의 색이 한정돼 당혹스러웠다. 요즘은 카니발이 어떤가 살피다보니 고를 만한 색이 없었다. 자가용 이미지가 강한 검은색은 쉽게 더러움을 타고 무난한 흰색은 넓은 면적 때문에 생채기가 눈에 많이 띄었다. 현대 그랜드 스타렉스는 상용차 취급을 해서인지 색의 선택이 더욱 제한적이다. 포터와 봉고 트럭의 경우는 컬러 선택이 거의 강제적이다. 반면 유채색은 평범한 차를 나만의 특별한 차로 만든다. 원색은 자동차에 개성과 가치를 더하고 심심한 차를 재미난 차로 바꿀 수 있다. 코란도 스포츠는 붉은색 차가 멋지다. 트럭이라는 이미지에 레저 기분을 더하면서 세련미를 한껏 풍긴다. 오렌지 컬러의 벨로스터는 색깔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람보르기니의 화려한 컬러 선택은 차의 중요한 개성이 됐다.

노란색 랭글러가 더욱 좋은 것은 검은색 지붕과 플라스틱 펜더가 주는 투톤 페인트 효과 때문이다. 랭글러는 페이스리프트하면서 검은색 플라스틱 펜더가 보디 컬러와 같은 색으로 바뀌었지만 내 차가 오히려 나아 보였다. 최근 신형은 다시 검은색 펜더로 돌아온 모델도 생겼다. 차체가 높고 플라스틱으로 차를 둘러친 덕에 좁은 주차장에서 ‘문콕’ 걱정도 없다. 옆에 세운 승용차가 문을 세게 열어도 랭글러는 발판에 부딪힐 뿐이다. 지프는 언젠가 한번 가져보고 싶은 차였다. 어릴 적부터의 막연한 꿈이었다. 6·25전쟁 후 거리에서 많은 지프를 보고 자란 세대의 유별난 꿈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에 운전이 조금 힘들어도 개성 넘치는 차에 만족이 매우 크다. 가져보고 싶었던 차가 노란색이라 더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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