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관한 끝없는 담론을 펼치는 천대광.

양평 하고도 강하면. 자연보존권역으로 개발과는 일찌감치 거리를 둔 그곳에 두 작가가 둥지를 틀었다. 설치미술가 천대광과 화가 이소연이다. 둘은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인연을 맺은 가장 친밀하고 사적인 예술적 동반자다. 예술가의 애견답게 이름부터 ‘빈센트’인 강아지 한 마리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맞는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어느덧 5년. “처음엔 논현동에 터를 잡았는데 답답할뿐더러 도시로서의 매력도 없었어요.” 경제성은 물론 지척이 자연인 이곳 양평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들의 아틀리에는 얼핏 봐선 시골의 평범한 전원주택 같다. 2층 메인 건물엔 이소연의 작업실과 그들의 살림집이 자리한다. 그 지척에 천대광의 작업실이 창고처럼 우뚝 서 있다.  

1 그 왕은 노 화가의 손에 이끌려 그가 그린 숲속으로 사라진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2006 2 견인도시 프로젝트, 2016 3 베르크카멘 시의 하늘, 2007, 독일 4 작업실에서도 그 흔적이 엿보인다

천대광, 그의 작업실은 외형만 보아서는 여느 시골집의 회색 콘크리트 창고 같다. 하나 문을 연 순간 대반전이 펼쳐진다. 외벽의 회색 콘크리트와 상반되는, 사면이 나무로 둘러싸인 따뜻하고 웅장한 작업실 광경이라니. “나무 중에서 가장 싼 걸로 지었어요. 심플한 네모 형태에 천고만큼은 높게 만들었죠.” 창틈으로 들어오는 풍성한 가을빛 덕분인지 작업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조각 작품 같은 오라를 풍긴다. 작업실 곳곳에서 설치와 건축, 조각의 영역을 넘나드는 그의 흔적이 어렴풋이 목도된다.

“이 작품은 2006년 졸업 작품이에요. 가로 10m, 세로 16m의 전시 공간에 높이 6m로 만든 설치 작품이죠. 제목은 ‘그 왕은 노 화가의 손에 이끌려 그가 그린 숲속으로 사라진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로, 설화를 바탕으로 했어요.” 그는 아주 먼 옛날이야기 하나를 풀어놓는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임금이 불의의 사고로 왕자와 왕비를 잃고 깊은 슬픔에 빠져 지내다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그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어졌다. 자신이 겪은 비극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왕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는 이에겐 큰 상을 내리겠다고 약속한다. 어느 날 노 화가가 찾아와 그림을 그릴 작은 방 하나를 줄 것을 제안한다. 그 대신, 그림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방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 2년 후, 마침내 방문이 열렸고, 그 속엔 다름 아닌 숲이 펼쳐져 있었다. 왕과 화가는 그 숲으로 들어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구조물 내부에 미로처럼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조그마한 빈 공간이 나와요. 일종의 명상 공간이지요.” 그는 거대한 전시 공간 안에 자신만의 언어로 도심 속 숲속의 방을 펼쳐놓았다. 베르크카멘 시민의 숲에 PVC를 이용해 44㎡ 규모의  한국의 산을 형상화한 설치 작품 ‘베르크카멘 시의 하늘’, 이상적인 도시에 관한 상상력에서 비롯한 ‘견인도시 프로젝트’, 얼마 전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선보인 ‘공허한 빛의 파장’ 등. 그는 우리가 발 디디는 공간, 도시에 관한 끝없는 담론과 상상을 우직하게 펼쳐 보인다. “‘견인도시 프로젝트-양평’은 양평이라는 도시를 재건축하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사회학적인 질문, 인간의 삶, 도시 건축, 환경을 대하는 법 등 도시 전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울러 끈질기게 묻는 거죠, 지금 우리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를.” 도시 안의 숲이 아닌 숲 안의 도시. 도시에 관해 그가 내미는 집요한 사유와 담론은 단순히 아름다움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새로운 도시 담론 속에서 잠시 안도의 숨을 쉴 수 있는 이유다.   
 

애견 빈센트와 함께한 이소연

이소연, 온통 하얀 그의 작업실 안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는 자화상 연작이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옆으로 쭉 찢어진 눈과 툭 튀어나온 광대, 누가 봐도 동양인임을 알 수 있는 소녀의 자화상. 이소연과 맞닥뜨린 지 1초도 지나지 않아 그와 닮았다는 생각에 수긍하게 된다. “보통 자화상은 자기 성찰, 인물에 초점을 두는데 제 자화상은 그림 안에서의 역할, 배경, 소품으로 보일 뿐이죠.” 자화상은 사실 작가들의 단골 소재다. 그들의 자화상은 대체로 눈빛, 얼굴의 심리적 그림자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이소연은 최대한 표정 없는 자화상을 그린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 그 표정은 각기 다르게 해석된다. 그의 그림에선 오히려 인물을 둘러싼 배경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베를린 대성당으로 익숙한 베를리너 돔 앞에 흑백의 옷을 입고 선 소녀, 수족관 앞에서 파란 돌고래 풍선을 들고 선 소녀, 연못을 지척에 두고 항아리 안에 갇힌 금붕어를 든 소녀. 물론 그 소녀가 연못에서 금붕어를 잡은 것인지, 금붕어를 연못에 놓아주기 위한 것인지는 도통 알 수 없다. “배경 속 장소는 제가 직접 가서 찍기도 하고, 여행 중에 우연히 간 곳도 있어요. 오키나와 아쿠아리움은 직접 가서 촬영을 했는데, 그림 속 그것은 바다인지, 수족관인지 알 수가 없죠.” 실존하는 장소가 모티프지만 그의 손을 거치면서 실제가 아닌 미지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표정 없는, 신비한 소녀의 마법과 함께.

“빨간 장이 그려진 저 작품은 독일 유학 당시 벼룩시장에서 수집한 그릇을 모티프로 작업한 거예요.” 독일에서 멀리 이곳 양평까지 날아온 빨간 장이 작업실 한쪽에 놓여 있다. 금붕어, 연꽃, 빨간 장, 수족관 모두 실제 사진에 기초한, 사실적인 오브제지만 그의 화폭에선 웬일인지 낯선 풍경으로 다가온다. 현실도 비현실도 아닌 미지의 공간. 작가의 페르소나인 소녀는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이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행복하면서도 살짝 흥분되고, 종종 불안감을 동반하죠. 그간의 시리즈가 오브제에 집중했다면 새로운 작업에서는 풍경이 자연스럽게 등장할 것 같아요.” 요즘 특히 밤이 그려내는 풍경에 매혹되었다는 이소연. 그의 새로운 풍경 속에서는 깊고 농밀한 밤(심연)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1 수족관, Oil on Canvas, 2008 2 갤러리를 닮은 이소연의 작업실. 3 독일 벼룩시장에서 수집한 오브제로 그의 그림 속에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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