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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도시, 정이현

그는 늘 ‘도시’ 곁에 있었다. 이 도시라는 습성이 결코 ‘달콤한 나의 도시’가 될 수 없음을 알아버렸을 때도, 혼자 밥을 먹고 좁은 골목을 걷는 우리가 ‘말하자면 좋은 사람’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9년 만의 새 소설집. 정이현의 책장을 지금, 펼쳐 든 이유다.

2016.11.09

 

그가 탈고를 마쳤다는 소식이 SNS를 통해 전해졌고,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마음을 요동케 한 것은 인상적인 한 줄의 소설 제목 때문이었다. <상냥한 폭력의 시대>. ‘상냥’과 ‘폭력’. 한 문장 안에서는 평생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단어들이 아닌가. 우리 안의 도시를 ‘써 내려가는’ 소설가 정이현의 안목다웠다. “원래 제목은 ‘우리 안의 천사’로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더라고요(웃음). 아! ‘단단하고 부서지기 쉬운’. 이런 제목도 물망에 올랐고요.” 소설을 읽은 남편의 한마디도 더해졌다. “상냥하게 목조르기 아냐?” 예의 바른과 상냥한, 사이의 치열한 갈등 뒤로 <상냥한 폭력의 시대>가 막 출간됐다.

 

이 책은 소설 7편을 묶은 것으로, 소설집으로 치면 9년 만이다. 상냥한 폭력. 이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왜 나란히 배열될 수밖에 없었는지, 책장을 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긍하게 된다. 몇 년간 함께 산 연인 ‘미스조’를 동네 밖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단 한 번도 소개한 적이 없는 아버지, 고등학생 딸이 낳은 아이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설레듯 가슴이 뛰는 엄마, 친구가 아닌 ‘현실을 잊을 수 있을’ 만큼의 ‘만만한’ 사람이 필요했던 속물형 주부까지.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상냥하지만 보다 지능적으로 은밀하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더욱 섬뜩한 것은 이들 모두 어디선가 보았음 직한 모습들이라는 것이다. 

 

“<서랍 속의 집>은 제 친구가 겪은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얻었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르는 전세금에 지친 부부는 고민 끝에 대출을 받아 집을 사기로 결정한다. ‘잘 살자’는 희망을 품고 들어선 이사 전날. 새집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맞닥뜨리게 된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현실은 또 있다. ‘그럭저럭’ 살아가는 40대 남자에게 어느 날 페이스북을 통해 메시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그 여자의 이름은 ‘미스조’. 다름 아닌 죽은 아버지의 옛 여자(하물며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온 미스조의 갑작스러운 부음과 함께 남겨진 유산. 그는 유산으로 최대 255년, 지구 상에서 가장 오래 산다는 알다브라코끼리거북을 떠안게 된다. “아이들과 거북이 카페를 갔다가 알다브라코끼리거북을 보게 됐어요. 아이들은 거북이를 보고 너무 사고 싶어 했지만, 우리보다 오래 산다며 말렸어요. 그런데 그 거북이가 집에서 다니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마음이 평온하고 정말 집에 가고 싶을 것 같아요. 온갖 시름을 다 잊을 것 같은 거죠.” 느릿, 느릿, 자기 속도로 방 안을 탐험하고 돌아다니는 거북과 친구 하나 없는 40대 남자의 묘한 동거는 그렇게 시작된다.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지 종잡을 수 없는 혼돈스러운 모습?
이런 것들이 도시의 삶인 것 같아요.
일종의 계약 관계처럼 편하려고 택시를 탔으면

당연히 택시비를 지불해야 하는 삶.
거저는 없는 삶.” 

 

 

 

모멸을 종용하는 사회 

 

“심지어 내가 폭력을 당한 건지, 아닌지 헷갈릴 때도 많아요. 그게 바로 상냥한 폭력의 단면이기도 하죠.” 상냥함의 탈을 쓴 현대인의 또 다른 철칙 하나. 상냥하면서도 없어 보이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 이는 분명 잘난 척과는 의미가 다르다. “내가 없어 보이는, 못 가진 사람으로 보이면 바로 도태되고 말죠. SNS에 담긴 심리도 이와 비슷해요. ‘나 그거 알아, 먹어봤어,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어.’ 그래야 내가 도태되지 않고 안전해 보이는 거죠.” 사람들은 자신이 안전한 원 안에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천사의 가면을 쓴 채 폭력을 가한다. 그것은 마치 ‘우리 안의 사자’를 떠올리게 한다. 천사의 가면을 쓴 우리 안의 사자.    

 

“한데 어떤 현대인도 일방적인 희생자, 가해자라고 할 수 없어요. 예를 들어 바쁜 와중에 ‘땅 사라는’ 텔레마케터의 전화를 받으면 저 같은 경우 ‘죄송합니다’하고 끊거든요. 그런데 이 경우 과연 누가 피해자고 가해자일까요. 반대로 그분들 역시 언어 폭력을 당하기도 하죠.” 그는 현대사회의 이 같은 폭력성을 수건 돌리기에 비유했다. 마치 폭탄을 든 듯 누군가에게 계속 전달되다가 어딘가에서 빵 터지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가장 낮고 약한 곳에서 터지기 쉽죠.” 아동이나 동물 학대가 늘어나는 이유 역시 비슷한 맥락이라고 그는 말한다.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지 종잡을 수 없는 혼돈스러운 모습? 이런 것들이 도시의 삶인 것 같아요.” 일종의 계약 관계처럼 편하려고 택시를 탔으면 당연히 택시비를 지불해야 하는 삶. 무언가를 사면 한 달 후에 카드값을 지불해야 하는 삶, 거저는 없는 삶. “나는 거저가 없이 사는데, 쟤는 거저가 있으면 너무 화가 나는 거죠. 자신을 흙수저라 자조하며, 금수저의 삶에서 모멸감을 느끼는 은수저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 나는 안 될 것 같은 느낌, 그 속에서 모멸감을 느끼는 거죠.” 마치 분화구처럼, 2010년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는 많은 감정의 변화를 겪고 있다. 모멸감, 미워하는 마음을 티 내지 않고, 내가 미움을 받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지금, 우리는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살고 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책 중에 김찬호 선생의 <모멸감>이 있어요. ‘현대사회는 모멸감으로 이루어진 탑을 쌓는 시대다’라는 그분의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한데 모욕과 모멸감의 차이는 뭘까. “만약 회사에 짧은 치마를 입고 갔다고 치죠. 상사가 ‘그렇게 입지 마!’ 하면 모욕인데, 그게 아니라 ‘요즘 젊은 아가씨들은 누굴 보라는 건지 왜 그렇게 짧은 걸 입고 다니는지 모르겠어!’라고 얘기하는 거죠. 분명 나 들으라고 하는 것 같은데, 요즘 애들로 에두르니 화를 낼 대상마저 모호해져버리죠.” 직접적으로 칼을 휘둘러 모욕을 주는 대신, 지능적이고 교묘하게 모멸감을 주는 사회. “그걸 모두 어디에서 배웠겠어요. 나도 누군가에게 당했으니 하는 거죠. 모멸감을 주는 사람들의 스킬도 점점 느는 것 같아요.” 당하는 자신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고도로 상냥한 폭력 앞에, 우리 모두는 맨살을 드러낸 채 오늘도 도시를 걷고 있다.

    
“약자라는 게 꼭 경제적 약자, 사회적 약자 같은 게 아니라 그 순간 내가 거기에서 약자가 될 수 있는 거죠.” 가령 공공장소에서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순간 약자가 될 수도 있고, 애를 안 낳겠다고 하는 순간 이기적인 사람으로 전락될 수도 있는. “저는 그렇게 살지 못하지만 어떤 방식의 저항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게 적극적으로 길에 나가라는 뜻은 아니에요. 이미 우리 사회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 같은데, 저출산 역시 저항이라 할 수 있어요. 결혼하지 않는 방식, 즐겁게 혼밥을 먹는 것. 그게 바로 개인적인 방식의 저항이 아닐까요?” 고양이와 결혼하든, 강아지 100마리를 입양하든, 타인의 사생활에 신경 쓰지 않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그는 말한다. “세상이 좀 더 개인주의적이 되면 좋겠어요. 물론 타인의 삶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죠. 그런데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개인주의자면서, 또 다른 누군가의 삶에는 간섭하려고 하죠. 타인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오지랖 없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상냥함의 탈을 쓰고 모멸을 종용하는 사회. 그 예의 바른 사회의 위선 앞에, 정이현은 넌지시 화두 하나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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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설미현 Photo 박우진 출처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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