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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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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도전

자동차 회사들은 왜 모터스포츠에 도전할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단순히 꿈을 좇기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거다

2016.10.25

우승을 향해서라면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는 내구성과 성능을 입증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다. 토요타는 1975년부터 르망의 문을 두드렸다. 시그마 오토모티브에 엔진을 공급했는데 그 엔진을 얹은 시그마 MC-75가 르망에 출전했다. 토요타가 본격적으로 르망에 출전한 건 1985년이다. 일본의 전설적인 드라이버 사토루 나카지마가 토요타 톰스 85C-L을 몰고 르망 내구레이스에 출전해 12위를 차지했다. 토요타가 르망에 출전한 목표는 오직 하나 우승이었다. 하지만 기존의 레이싱카와 머신으로는 우승이 아니라 포디엄에 오르는 것조차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들은 새로운 머신 개발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1991년 그룹 C에 해당하는 프로토타입 레이싱머신 TS010을 개발했다. 3.5리터 V10 엔진을 얹은 TS010은 이듬해 열린 1992년 르망 내구레이스에서 2위를 차지하며 성능을 입증했다. 1994년에는 92C-V를 개조한 94C-V로 르망에 출전해 또다시 2위를 차지했다. 르망은 토요타에게 좀처럼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결국 1999년 GT 원 경주차로 다시 2위에 오른 뒤 르망에서 발을 뺐다.


하지만 르망을 향한 집념은 토요타를 다시 라 사르트 서킷으로 불러들였다. 토요타는 2012년 하이브리드 엔진을 얹은 새로운 머신 TS030으로 르망에 복귀했다. 같은 해 아우디는 디젤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얹은 R18 e트론 콰트로를 르망에 투입했다. 하이브리드의 대결로도 주목을 끈 2012 르망 레이스는 아우디의 완승으로 끝이 났다. 아우디는 석 대 모두 포디엄에 올랐지만 토요타는 사고와 머신 트러블로 리타이어하며 경주를 마쳐야 했다. 새로운 각오와 머신으로 르망에 복귀했지만 여전히 우승은 쉽지 않았다. 2013년에는 2위와 4위로 레이스를 마감했고, 2014년에는 성능을 개선한 TS040을 투입했지만 결과는 3위였다. 그리고 2015년에는 포디엄에도 오르지 못했다.


올해 토요타의 각오는 남달랐다. 드라이버를 비롯해 모든 팀원이 반드시 르망에서 우승컵을 거머쥐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실제로 우승컵은 거의 코앞까지 왔다. 경기 종료 5분 전까지 토요타의 우승은 99퍼센트 확실했다. 그런데 이변이 생겼다. 갑자기 머신이 멈춰 선 거다. 토요타는 올해도 고배를 마셔야 했다. 하지만 이들의 도전을 누구도 비웃지 않았다. 오히려 머신이 멈추기 전까지 보여준 활약상이 고스란히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우승한 포르쉐보다 토요타가 더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 정도면 르망을 다시 찾은 값은 한 거다. 토요타의 도전은 우승컵을 거머쥘 때까지 멈추지 않을 듯하다.

 

 

 

WRC를 접수하겠소
현대차가 WRC에 다시 도전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비웃었다. 이들 대부분은 현대가 처음 WRC에 도전했던 1998~2003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일본 브랜드가 연일 승전보를 울리는 동안 현대 로고를 단 베르나 랠리카는 하위권을 전전했다. 6년 동안 최고 기록은 2002년에 세운 종합 4위가 전부였다. 세계 랠리 챔피언에 네 번이나 오른 WRC의 전설 유하 간쿠넨이 운전대를 잡았는데도 말이다. 역시 드라이버가 아니라 차가 문제였다며 현대차를 비아냥대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팀과의 불화로 유하 간쿠넨이 떠나고 막대한 돈을 들이는데도 성적은 계속 바닥을 맴돌자 현대차는 WRC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의 첫 번째 도전엔 상처만 남았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3년 현대차가 WRC에 다시 출전하겠다고 발표했다. ‘2012 파리모터쇼’에서 공개한 i20 WRC를 다듬고, 세계 유수의 인재들로 팀을 꾸려 새로운 각오로 WRC에 재도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현대는 진지했다. 레이싱 팀을 이끌 총 책임자로 WRC에서 잔뼈가 굵은 미셸 난단을 임명하고, 메인 드라이버로 티에리 누빌과 다니엘 소르도, 유호 핸니넨과 크리스 앳킨슨을 영입했다. WRC를 위한 랠리카 개발과 팀의 운영을 담당할 유럽 법인 현대 모터스포츠도 설립했다. 팀 이름은 현대-셸 월드 랠리 팀이었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정말 많이 노력했습니다. 1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WRC 규정에 맞는 랠리카를 개발하기 위해 수많은 테스트를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2014년 목표는 우승이 아닙니다. 각 랠리에 참가한 두 대의 차가 무사히 경기를 마치는 게 올해의 목표입니다. 그렇게 경험을 쌓다 보면 우승도 가까워지겠죠.” 미셸 난단의 말이다. 하지만 2014년 시즌 초반은 그의 바람처럼 되지 못했다. i20 랠리카는 리타이어를 거듭하며 완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고 그때마다 ‘그러면 그렇지’라는 비웃음을 샀다. 하지만 현대차의 성장 속도는 무서웠다. 그리고 2014년 8월 독일에서 열린 대회에서 프런트 그릴에 ‘i20’을 큼직하게 써넣은 티에리 누빌의 랠리카가 가장 먼저 결승선을 끊었다. 현대차의 첫 WRC 우승이었다. WRC에 다시 도전한 현대는 이전의 현대가 아니었다. 지난해에는 종합순위 3위를 기록하며 현대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i20 WRC는 단순한 랠리카가 아니다. 현대의 홍보대사다.

 

 

WTCC는 쉽지 않아
유럽 투어링카 챔피언십에서 30여 년 동안 실력을 갈고닦은 볼보는 유럽을 넘어 세계로 시야를 넓히기로 했다. 넓은 무대에서 뛰어야 더 많은 사람이 주목할 테고, 더 많은 사람에게 볼보의 존재를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볼보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세계 투어링카 챔피언십(WTCC)에 나가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전까진 1년씩 계약해 짬짬이 출전했지만 올해부턴 다년간 계약해 모든 경기를 지속적으로 소화하겠다는 계획이다. “WTCC 풀타임 출전을 결정한 건 모터스포츠에서 갈고닦은 기술을 볼보가 만드는 차에 적용할 수 있을 거란 판단에서입니다. WTCC가 볼보의 새로운 기술을 테스트하는 장이 되는 셈이죠.” 폴스타 브랜드 총괄 닐스 뮐러의 말이다. 폴스타는 볼보의 퍼포먼스를 담당하는 부서다. 1996년 볼보의 모터스포츠 팀을 이끌던 스웨덴 태생 레이서 얀 닐손이 설립했는데 지난해 볼보가 지분을 모두 사들이면서 볼보 산하에 속하게 됐다. 


볼보는 올해 초 WTCC에 출전할 새로운 경주카를 공개했다. S60 폴스타 TC1이다. 겉모습은 S60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최고출력 400마력을 내는 화끈한 심장을 품었다.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을 곳곳에 적용해 공차중량이 1100킬로그램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WTCC 경기가 반 이상 치러졌지만 볼보의 폴스타 사이언 레이싱 팀은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10위권에 오른 선수도 한 명도 없다. 세계무대는 역시 만만한 게 아니다. 하지만 볼보는 포기할 마음이 없다. 폴스타라는 이름을 알리려면 시작에 불과하다. 참고로 볼보는 지금  판매하는 모든 차에 폴스타 버전를 더할 계획이다. 

 

 

F1이 뭐기에?
혼다가 F1에 처음 도전한 건 1964년이다. 그보다 1년 전인 1963년 프로토타입 F1 머신 RA270을 개발한 혼다는 각종 테스트를 거쳐 1964년 8월 RA271로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열린 F1 경주에 참가했다. 성적은 13위로 초라했지만 자동차를 만든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회사의 성적치곤 대단했다. 이후 혼다는 F1에서 매우 인상적인 실력을 보여줬다. 이듬해인 1965년 10월 멕시코 그랑프리에서 RA272로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1967년 9월에는 RA300으로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우승했다. 혼다의 두 번째 F1 우승이었다. 하지만 F1에 계속 출전하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혼다는 소형 승용차 개발에 힘을 쏟기 위해 1969년 F1을 떠났다. 


혼다가 다시 F1 무대를 밟은 건 1983년이다. 하지만 이전처럼 직접 모든 걸 만드는 건 아니었다. 1984년 윌리엄스 팀과 엔진 공급 계약을 맺은 혼다는 기존의 F1 머신에 자신의 엔진을 얹는 방식으로 F1에 참가했다. 윌리엄스 혼다 팀은 1985년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포디엄에 올랐고, 디트로이트 그랑프리에서는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986년에는 컨스트럭터 부문에서 챔피언에 올랐다. 1980년대 혼다의 F1 성적은 화려했다. 특히 1988년에는 맥라렌과 손을 잡고 16번의 경기 가운데 15번이나 우승했다. 하지만 이듬해 F1에서 터보 엔진을 금지하는 규정이 추가되면서 회사 내부에서 F1 철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1992년 F1 무대를 떠나게 됐다.


이것으로 혼다의 F1 역사는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혼다는 2000년에 다시 F1에 복귀했다. F1에 참가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BAR 팀에 엔진을 공급하고 차체를 공동 개발하기로 한 거다. 그리고 4년 뒤인 2004년 바 혼다 팀의 젠슨 버튼은 열 번이나 포디엄에 오르면서  드라이버 랭킹 3위를 차지했다. 2006년 혼다는 BAR 팀을 인수해 혼다 레이싱 F1 팀으로 2008년까지 출전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9년에는 브론(Brawn) GP에 팀 운영권을 넘긴 데 이어  2010년 이 팀을 인수한 벤츠가 메르세데스 GP로 출전하면서 혼다의 이름은 F1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혼다의 F1을 향한 집념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들은 다시 맥라렌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맥라렌 혼다 팀이라는 이름으로 2015년부터 F1에 출전하고 있다. 드라이버는 르노와 페라리를 거친 페르난도 알론소와 바 혼다 팀에서 호흡을 맞춘 젠슨 버튼이다. 드라이버 라인업만 보면 기대를 걸 만하다. 하지만 이들의 성적은 매우 부진하다. 알론소는 “팀의 상위권 도약은 시간문제”라고 말했지만 출전 첫해부터 지금껏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혼다의 창업자 소이치로는 처음 F1에 출전한 이유를 “세계 최고 수준의 경주에 참가해 그 기술을 연마하고 그렇게 연마한 기술로 바이크와 차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혼다가 네 번이나 F1에 도전한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차와 엔진이 우수하다는 걸 세계만방에 알려 궁극적으로는 판매를 높이겠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그러려면 우선 좋은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F1은 그렇게 만만한 무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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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F1,맥라렌,혼다,유럽 투어링카,WTCC,WRC

CREDIT Editor 서인수 Photo PR 출처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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