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XF와 인피니티 Q70은 서로 라이벌 관계지만 궁극적인 경쟁상대는 메르세데스 벤츠 E 클래스와 BMW 5시리즈다. 벤츠와 BMW 대신 이 차들을 타야 할 이유를 알고 싶었다. 벤츠를 타면 자동차로 이루고 싶은 것을 다 이뤘다는 성취감이 있다. BMW를 타면 최상의 다이내믹스를 추구한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하지만 E 클래스는 ‘강남 쏘나타’라 불릴 만큼 너무 흔한 차가 됐다. 심지어 독일에서는 택시로 쓰인다. 5시리즈 역시 E 클래스만큼 흔한 데다 모델 체인지도 머지않았다. 재규어와 인피니티를 살펴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규어와 인피니티는 저마다 뿌리 깊은 전통을 지녔다. 시승차가 XF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1960년대 초반의 재규어 중형 스포츠 세단 Mk. II였다. 재규어의 전성기는 XK120과 E타입, XJ 시리즈 등을 내놓으며 모터스포츠에서 활약했던 1950~60년대라고 할 만하다. 1972년에 창립자 윌리엄 라이언스 경이 은퇴한 후부터 재규어는 Mk. II를 이을 만한 중형 세단을 내놓지 못했다. 물론 1999년 데뷔한 S타입이 있었지만 곧 잊혔다. 그러니까 XF의 연결고리는 S 타입이 아니라 Mk. II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9년 데뷔한 재규어 Mk. II 세단은 당시로는 무시무시한 220마력에 시속 200킬로미터를 넘게 달려 경찰과 도둑이 모두 사랑한 차였다. 클래식한 보디에 우아한 디자인은 세기의 명차에 오를 만큼 인기가 좋았다. BMW가 ‘스포츠 세단’으로 명성을 얻기 한참 전 일이다. XF는 1960년대의 스포츠 세단 Mk. II를 마음에 품었다.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모델로 만들어졌다. 다른 어느 메이커보다 재규어는 스포츠카 이미지가 강하고, 재규어 세단은 스포츠 세단의 원조다. 

 

인피니티 Q70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건 1970~80년대의 닛산 세드릭 같은 고급 세단이다. 우리나라에서 수입차가 귀하던 시절, 가끔 볼 수 있었던 토요타 크라운이나 닛산 세드릭은 나 같은 범인(凡人)은 접근할 수도 없는 최고급 차였다. 오늘 덤덤하게 만나는 Q70에서 과거 재벌급 회장님만 탈 수 있던 차를 떠올린다. 그런 생각이 든 건 Q70이 대형차 같았기 때문이다. 중형 수입차 값으로 만나는 Q70은 실제로 인피니티의 최고급 모델이다. 조금은 고전적인 대시보드 모양이 과거의 고급차를 떠올린다. 뒷자리를 배려한 콘셉트도 고전적이다. 중형차 값으로 대형차를 타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1 여전히 우아한 실내신형 XF는 구형과 마찬가지로 시동을 켜면 송풍구 덮개가 스르륵 열린다. 메리디안 오디오도 그대로다.  2 뭐가 달라졌나요? 기어를 변속하는 둥근 드라이브 셀렉터와 터레인 리스폰스 버튼도 여전하다.

 

디자인

올해 초 새롭게 국내에 출시된 신형 XF는 2007년에 데뷔한 구형의 이미지를 그대로 이어간다. 그러면서 재규어의 색깔을 단단하게 다졌다. 앞 오버행이 줄면서 전체적인 밸런스는 더욱 좋아졌다. 쿠페 스타일로 늘씬한 보디 덕에 공기저항계수가 0.26에 불과하다. 차체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 구형보다 무게가 190킬로그램 줄었다. 어른 서너 명에 해당하는 무게다. 대신 도어와 트렁크 뚜껑 등은 철판으로 만들었는데 무게 밸런스와 충돌안전성을 위해서다. 

 

요즘 디자인 흐름은 차를 보는 순간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브랜드마다 차들이 크기만 다를 뿐 똑같은 디자인을 추구한다. XF는 보기 좋은 프런트 그릴 모양에 날카로운 헤드램프가 분명한 개성을 만든다. 이언 칼럼의 디자인에서 항상 마음에 걸렸던 헤드램프 디자인은 이제야 비로소 안정을 찾은 것 같다. 날이 갈수록 가늘어지는 테일램프 역시 재규어만의 개성이 되어간다. F타입에서 멋져 보인 테일램프 디자인이 모든 재규어 모델로 퍼져가는 듯하다. 늘씬한 XF를 보면서 ‘아름다운 고성능, 우아한 다이내믹’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지금의 Q70은 2010년형 4세대 M 시리즈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다. 조금은 보수적이고, 투박한 Q70은 미국 시장을 의식한 듯하다. Q70은 XF와 다르게 키가 크고, 곡선을 테마로 했다. 볼륨 넘치는 몸매를 지녔는데도 공기저항계수가 0.27로 재규어와 같은 수준이라는 게 놀랍다. 울룩불룩 넘실대는 몸매는 요즘 인피니티가 추구하는 것인데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다가온다. XF는 중형차가 분명한데 Q70은 커다란 덩치가 최상급 모델을 타는 기분을 준다. 럭셔리와 퍼포먼스의 조화를 강조한다.

 

 

 

JAGUAR XF 20D PORTFOLIO 

기본 가격 7180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RWD, 5인승, 4도어 세단 엔진 4기통 2.0ℓ DOHC 터보 디젤, 180마력, 43.9kg·m 변속기 8단 자동 공차중량 1830kg 휠베이스 2960mm 길이×너비×높이 4954×1880×1457mm 0→시속 100km 가속시간 8.1초 복합연비 14.2km/ℓ

CO₂ 배출량 133g/km

 

 

인테리어

XF에 타면서 A 필러에 머리를 부딪혔다. 그래, 쿠페 같은 스타일을 즐기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대시보드 디자인은 XE나 F 페이스 등과 비슷하다. 고급 브랜드를 지향하는 재규어 역시 같은 디자인을 여러 차에 적용하는데 실내라고 예외가 아니다. XF는 대시보드 윗부분이 반원을 그린다. 재규어에 독일 3사의 차들과 같은 고급스러움이 자리 잡았다. 실내 마무리도 뛰어나다. 내가 아는 영국차 같지가 않다. 시동을 걸자 둥근 드라이브 셀렉터가 솟아오르고, 에어컨과 히터가 나오는 구멍이 기지개를 켠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개성이다. 계기반 그래픽은 네 가지로 바뀌는데 스포츠 모드에서는 또 붉은색으로 달라진다. 계기반을 내비게이션 화면으로 바꿀 수도 있다. 인테리어 디자인에 재규어만의 개성이 뚜렷하다. 기술적으로도 시대의 흐름을 같이한다.

 

Q70에 앉자마자 보이는 건 클래식카 같은 보닛의 형상이다. 넘실대는 곡선의 아름다움이 1950년대 페라리 같다. 더 이상 Q70 디자인에 푸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실내 디자인 테마는 ‘더블 웨이브’라고 했던가…. 한껏 멋을 낸 차는 저만의 개성이 넘친다. 네모난 아날로그  시계 아래로 계단식 턱이 있는 대시보드 디자인은 인피니티의 오래된 모습이다. 고급스러운 실내에는 다이얼과 버튼이 빼곡해 각각의 기능을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린다. 내비게이션은 눈에 익은 ‘아틀란’이라 다행히 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넉넉한 크기의 시트는 두께도 두툼하다. 시승차는 리어시트 패키지를 적용해 뒷자리에 온갖 장비를 달았다. 뒷자리는 앉는 자세가 앞자리보다 상당히 높아 시야도 탁 트인다. 키가 큰 덕에 타고 내리기도 편하다. XF는 시트가 낮고 시야가 가로막혀 있어 뒷자리 승객을 배려하지 않는다. 모름지기 스포츠 세단은 그래야 한다. 두 손을 움켜쥐고 본격적인 스포츠 드라이빙에 전념해야 한다.

 

 

최고급 세단을 타는 기분

Q70은 실내가 넉넉하고 옵션이 풍성해 최고급 세단을 타는 기분을 준다. 3.7리터 엔진도 풍요롭다.

 

고전적인 실내 Q70의 실내는 XF에 비하면 보수적인 느낌이다. 그래도 한결 넉넉하고 여유롭다.

 

주행성능

XF의 2.0리터 인제니움 엔진은 최신 디젤 엔진으로 찬사를 받았다.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시간 8.1초, 최고속도 시속 229킬로미터라는 성능은 고급차로 몰기에 충분하다. 차는 미끄러지듯 매끄럽게 가속한다. 조용한 차는 디젤의 거친 맛을 모른다. 운전자 앞으로 보이는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시선을 집중시켰다. 시프트 레버를 까딱이며 자동 8단을 더하고 줄여나가는 재미가 좋다. 1750rpm부터 뿜어 나오는 43.9kg·m에 이르는 토크가 뿌듯하다. 적당한 무게의 차를 깔끔하게 밀어댄다. 달리는 품새가 스포티하다. 2.0리터 디젤 엔진의 박력을 스포츠카와 비교할 순 없지만 생각 외로 힘차다는 느낌이다. 리터당 14.2킬로미터에 이르는 연비도 만족스럽다. 보다 강한 힘을 원한다면 선택의 폭은 다양하다. 3.0리터 디젤 엔진은 토크가 좋고, 380마력의 V6 슈퍼차저 엔진은 화끈하다.  

 

단단한 차체는 앞뒤 무게를 거의 50대 50으로 배분해 섀시 밸런스가 뛰어나다. 보디 컨트롤이 뛰어나 작고 가볍게 느껴진다. 나지막한 차체가 착 가라앉아 부드럽게 달리면서 도로의 요철을 걷어낸다. 접지력이 뛰어난 차는 코너에서 자신감을 부른다. 무게중심을 바닥에 깔아 옆으로 이리저리 밀어붙여도 안정감이 느껴진다. 이런 게 바로 스포츠 세단의 덕목이다. 차가 익숙해질수록 적극적인 자세로 횡가속을 즐긴다. 예리한 스티어링과 감각적인 밸런스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운전 재미가 쏠쏠하다. 

 

Q70은 순식간에 시속 200킬로미터에 이르고, 활기찬 엔진 소리가 재미를 더한다. 333마력의 휘발유 엔진을 얹은 차는 재미가 이루 말할 수 없다. 370Z에도 얹힌 V6 엔진은 회전수를 높여 달릴 때 더욱 재미가 좋다. 고회전을 중시하는 쇼트 스트로크 엔진은 7000rpm까지 치솟는다. 연비를 희생하는 만큼 희열은 커진다. 7단 자동변속기는 파워 전달에 무난하다. Q70은 덩치가 크지만 무게는 XF와 비슷하다. 럭셔리 퍼포먼스 세단을 느끼는 순간이다. 편안함 속에 숨겨진 고성능은 언제든 원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다. 

 

부드럽고 푸근한 미국식 승차감은  고급스러운 감각으로 다가온다. 이게 바로 다른 차와 구분되는 Q70의 매력이다. 물컹한 서스펜션 때문에 땅바닥에 들러붙는 맛은 XF보다 못하지만 충분히 안정감을 찾을 수 있다. 타이어는 언제나 노면을 꼭 붙들어 기대 이상으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네바퀴굴림 시스템이 안정감을 더하는 느낌이다. Q70의 네바퀴굴림 시스템인 아테사 ET-S는 닛산 스카이라인 GT-R에서 비롯했다. Q70은 이렇게 역동적인 프리미엄 브랜드로 도약하고자 한다. 

 

 

에필로그

재규어는 흔한 차가 아니다. 멋진 스타일은 벤츠와 BMW보다 나은 것 같다. 그리고 재규어를 탄다는 건 “난 이미 벤츠와 BMW를 졸업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Q70은 스포츠카 엔진에 눈길이 간다. 묵직한 승차감이 모든 것을 말한다. 중형 수입차 값으로 대형차를 타는 기분도 낼 수 있다. 자동차 마니아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차를 좋아한다.

재규어와 인피니티를 번갈아 시승하면서 렌터카 업계 2위 업체인 에이비스의 슬로건이 생각났다. “WE TRY HARDER!” 최고가 되기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결의다. 노력하는 2등은 아름답다. 세상에 사랑스럽지 않은 차는 없다.  

 

글_박규철(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