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차를 처음 산 2003년에만 해도 ‘새 차 길들이기 바이블’이 있었다. 사람들은 새 차를 사면 모두 이 바이블대로 길들이기를 했다. 내용은 대강 이랬다. ‘주행거리가 1000킬로미터가 되면 엔진오일을 교환한다. 주행거리가 5000킬로미터가 될 때까진 엔진회전수를 3000rpm 이상 넘기지 않는다. 시동을 걸고 바로 출발하지 않는다. 반드시 1~3분 동안 공회전한 후 출발한다.’ 차 좀 아낀다는 남자들은 여기에서 더나아가 제한속도를 정해 길들이기를 했다. 예를 들면 ‘주행거리 1000킬로미터까지는 시속100킬로미터 이하로만 달려야 한다’는 식이다. 그래서 당시 자동차 동호회 인터넷 게시판에는 ‘드디어 길들이기 봉인이 풀려 시속 100킬로미터를 넘을 수 있게 됐다’는 글도 자주 올라왔다. 그 글 아래 수십 개의 축하 댓글이 달린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요즘은 어떨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3년이 지났으니 자동차 환경도 그만큼 달라지지 않았을까? 사실 요즘차는 워낙 좋아져서 길들이기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많다. 예전엔 길들이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사람이 많았다면 요즘은 길들이기가 꼭 필요한지를 묻는 사람이많다. 그렇다면 정말 새 차 길들이기가 필요할까? 시승차로 온 신형 MKX의 글러브박스를 뒤지자 사용설명서가 나왔다. 그리고 263쪽에 길들이기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주행거리가 1600킬로미터에 이를 때까지 과속을 삼가고, 속도를 자주 바꾸며 기어를 일찍 상향 변속하십시오. 엔진 속도를 과도하게 높이지 마십시오.’ 이전에 알던 내용보다 짧고 간단하다. 이번엔 2015년형 폭스바겐 골프의 사용설명서를 뒤졌다. 그런데 골프 매뉴얼에는 길들이기에 관한 내용이 아예 실려 있지 않았다.

 

“길들이기를 하지 않아서 차의 성능이 나빠졌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용설명서에 길들이기 내용을 넣지 않았습니다. 폭스바겐뿐 아니라 몇몇 브랜드는 사용설명서에 길들이기 내용을 싣지 않고 있습니다. 새 차 길들이기의 효과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죠.” 폭스바겐 담당자의 답변이다. 그는 길들이기를 권장할 순 있지만 하느냐, 마느냐는 운전자의 몫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길들이기를 하지 않은차와 한 차의 성능 데이터를 비교해 보여준 적은 없다. 그렇다면 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설명서에 길들이기에 관한 내용이 나와 있다면 그대로 하면 된다. 레이싱 슈즈를 신을 필요는 없다.

 

 

 

한다

기계에는 오차를 허용하는 범위의 공차가 있다. 모든 부품이 완벽할 순 없기 때문에 0.1밀리미터 이하라도 오차가 생길 수 있다. 자동차는 이런 부품이 수천, 수만 개 모여 만들어진다. 그런데 0.1밀리미터라도 튀어나온 부품이 서로 맞물리면 공차가 커지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좋지 않은 방식으로 기계를 길들이면 성능도 떨어질 수 있다. 부품이 매끈하고 유기적으로 맞물리도록 하려면 길들이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요즘은 옛날의 길들이기 방식을 따라 할 필요는 없다. 10여 년 전만 해도 새 차에 기본으로 들어 있는 엔진오일에는 연마제가 포함돼 있었다. 엔진 부품을 매끈하게 하기 위해서다. 차를 사고 1000킬로미터를 달리면 엔진오일을 교환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불순물을 걸러내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요즘은 주행거리 3000~5000킬로미터에서 엔진오일을 교환해도 괜찮다.

 

내가 권장하는 새 차 길들이기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부드럽게, 골고루 그리고 차분하게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은 부드럽게 밟고, 엔진회전수를 폭넓게 사용하며, 길들이기가 끝난 후에도 서서히 속도를 높여야 한다. 또 하나 원칙이 있다면 레드존의 3분의 2만 쓴다는 거다. 만약 레드존이 6000rpm인 엔진이라면 처음 1000킬로미터까지는 4000rpm 을 넘지 않게 달리고, 그다음부터 주행거리가 100킬로미터씩 늘 때마다 500rpm씩 올린다. 그러면 주행거리가 1500킬로미터가 될 때 자연스럽게 6000rpm을 넘을 수 있다. 길들이기를 할 땐 사람을 많이 태우거나 가속페달을 급하게 밟는 등 차에 무리가 되는 일도 피하는 게좋다.
나윤석

 

3년 전 레이를 샀을 때 매뉴얼을 들춰봤더니 길들이기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처음 1000킬로미터까지는 과속과 급가속, 급제동 등을 삼가라는 내용이었다. 안 해도 되는데 굳이 사진까지 곁들이며 그런 내용을 실은 이유는 없을 것 같아 매뉴얼대로 길들이기를 했다. 아니, 매뉴얼보다 조금 ‘빡세게’ 길들이기를 했다. 매뉴얼에는 1000킬로미터까지 4000rpm을 넘기지 말라고 했지만 레이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 3000rpm을 넘지 않도록 애썼다. 레이는 변속기가 CVT라 3000rpm을 넘지 않게 달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1000킬로미터도 아니고 5000킬로미터까지 3000rpm을 넘지 않았다. 다 하고 나니 뿌듯했다. 엔진이 잘 길들여졌을 거라는 안심도 됐다. 만약 길들이기를 하지 않았는데 차에 이상이 생겼으면 길들이기를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 같아 찜찜했을 거다. 엔진오일은 3000킬로미터에서 한 번 갈고, 다음엔 5000킬로미터를 달리고 갈았다. 메이커에서 권장하는 주기보다 빨리 간 셈이다. 아무래도 예전에 들었던 새 차 길들이기에 관한 내용을 알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고정식

 

 

안 한다

사실 안 했다기보다 못했다는 쪽이 맞다. 처음엔 나도 하려고 했다. 그래서 매뉴얼을 뒤졌다. 그런데 매뉴얼에 길들이기에 관한 내용이 나와 있지 않았다. 그래서 차를 가장 잘 아는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는 주행거리 1000킬로미터까지는 4000rpm을 넘지 않게 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근데 요즘 차들은 옛날 같지 않아서 길들이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더라고.” 친구의 그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다. 일주일쯤 길들이기를 했을까? 야근 후 새벽에 집으로 가는데 뻥 뚫린 자동차 전용도로에 차가 한 대도 없었다. 그런 길에서 4000rpm을 넘지 않고 달리는 건 핫팬츠를 입은 늘씬한 여자가 지나가는데 돌아보지 말라는 것과 같다. 난 결국 일주일 만에 길들이기를 포기했다. 그다음부턴 길들이기 따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마음껏 달렸다. 지금 주행거리가 1만4000킬로미터인데 아직까지 이상한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잘 달려주는 걸 보면 괜찮은 것 아닐까? 조두현

 

새 차 길들이기에 대한 좀 더 정확한 답을 듣고 싶어 르노삼성의 신차 개발 팀에서 근무하는 김영관 수석 연구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즘은 새 차 길들이기란 말도 잘 하지 않습니다. 기계의 가공 정도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져서 엔지니어들은 예전처럼 주행거리와 엔진 회전수를 따져가며 길들이기를 할 필요가 없다고들 말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마구 몰아대라는 뜻은 아닙니다. 주행거리 1000킬로미터까지는 과격하게 운전하지 않는 것을 권합니다. ‘열 변형’이 올 수 있어서죠. 새 차에 처음 시동을 걸면 엔진과 각종 부품이 열을 받게 됩니다. 이런 부품은 금속뿐 아니라 플라스틱, 고무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졌죠. 그런데 이 소재들이 열에 반응하는 정도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열에 의해 조금이라도 변형이 생길 수 있는 거죠. 갑자기 높은 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과속이나 급제동 등을 삼가는게 좋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엔지니어들이 예상하는 거지 꼭 그렇게 된다는 건 아닙니다. ‘길들이기를 하지 않았더니 이렇게 됐더라’는 정확한 데이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길들이기를 한다고 손해 볼 건 없잖아요. 작은 것들이 쌓이다 보면 성능에 영향을 줄 수도 있고요.”

 

그의 말을 듣고 나니 마음속에 결론이 내려졌다. 만약 1~2년에 한 번씩 차를 바꿀 생각이 아니라면 새 차 길들이기는 하는 게 좋다. 단, 예전처럼 RPM 게이지를 째려보며 온 신경을 오른발에 집중하면서 타이트하게 할 필요는 없다. 주행거리 1000킬로미터가 될 때까지 급하게 속도를 올리거나 브레이크를 밟거나, RPM 게이지가 레드존을 때릴 때까지 내달리지만 않으면 된다. 참~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