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 갤러리 경기도 가평에 있는 카페로 자동차 마니아들이 많이 찾는다. 카페까지 가는 호명산 길이 드라이브 코스로 좋으며, 무엇보다 새벽 드라이빙을 가면 맛있는 라면과 밥을 아침 식사로 먹을 수 있다.

 

달리는 자들에겐 거점이 필요하다. 모여서 출발할 수 있는 시작점과 멈춰서 쉴 수 있는 반환점. 1950년대 영국 모터사이클 라이더에겐 카페였다. 지금도 영업 중인 런던의 ‘에이스 카페’는 과거 라이더의 아지트이자 짧은 레이스의 거점이었다. 라이더들은 카페에 모여 음악이 한 곡 끝나기 전에 반환점을 돌아오는 레이스를 펼치기도 했고, 카페 앞에 한껏 꾸민 모터사이클을 자랑하기도 했다. 이들은 뽐내기 위해 혹은 레이스에서 이기기 위해 트라이엄프나 노턴 등의 모터사이클을 튜닝하고 서로의 부품을 공유해 새로운 바이크를 만들었다. 이러한 바이크는 검은 재킷과 고글, 실크 스카프 등의 패션과 결합해 ‘카페 레이서’라는 하나의 장르로 굳어졌다. 카페 레이서는 이후 많은 모터사이클 브랜드에 녹아들면서 레트로 스타일의 바이크로 재해석됐고 고유의 튜닝 문화로 자리 잡았다.

 

자동차에도 제품 장르까진 아니어도 이러한 ‘거점 문화’가 있다. 순수하게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나누고 드라이빙을 즐긴다. 자동차 역사가 비교적 짧은 한국은 1990년대 초를 시작으로 이런 문화가 활성화됐다. 그 전에는 자동차가 귀해 차로 뭔가를 즐긴다는 생각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있더라도 동네 카센터에서 삼삼오오 모여 이것저것 만져보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1990년대 초 차가 좀 더 대중화되고 PC통신 시대가 열리면서 ‘자동차 마니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386 펜티엄 컴퓨터로 녹색 글씨가 뜨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MNP 압축모뎀을 통해 PC통신을 하던 시절, 이용자의 관심 분야별로 게시판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자동차가 빠질 리가 있겠는가? 게시판은 곧 PC통신 동호회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모임이 하이텔의 ‘달구지’였다.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대도시별로 지회가 생겨나면서 모임 규모는 커졌다. 이 모임에선 반드시 차를 갖고 있지 않아도 됐다. 그저 차가 좋으면 됐다. 이들의 헤드쿼터는 서울 올림픽대로 변에 있는 청담 도로공원으로 공원 안에 한강 개발기념탑이 있어 ‘탑’으로 부르곤 했다. 이 밖에도 천리안의 ‘차사랑’, 유니텔의 ‘유니카’ 등이 있었다. 이들은 서울 남산 식물원과 국립극장 주차장을 애용했다. 금요일과 토요일 밤이면 따로 약속하지 않아도 모두 ‘그곳’으로 모였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특별한 목적 없이 오가며 들르곤 했다. 지금의 우리가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소셜 미디어를 하는 것처럼.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동희는 남산에서 PC통신 동호회 사람들과 모였던 1990년대를 자신의 전성기로 꼽았다. 이들은 금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모여 수다를 떨다가 자정을 기점으로 차를 타고 서울을 빠져나갔다. 특정한 목적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운전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지금처럼 서울 근교에 고속화도로가 있던 시절이 아니어서 주로 고속도로를 이용했다. 경부·중부·영동 고속도로를 순환하며 달리기도 했고, 동호회 지역장에게 전화를 걸어 ‘번개 모임’을 갖기도 했다. “그땐 어디에 길이 새로 났다고 하면 무조건 달려갔지요. 서해안고속도로가 막 개통됐을 때는 티뷰론 6대가 같이 달렸습니다. 서해대교가 생기기 전이라 화성 인터체인지에서 나와서 각자 차의 보닛을 열고 누구 매니폴드가 더 빨간지 비교하고 놀았어요.”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들은 그때처럼 열정을 불태우며 밤새워 놀진 못하지만 아직도 서로 만나며 가깝게 지내고 있다.

 

 

BMW R 나인T와 닛산 370Z에선 과거 ‘카페 레이서’의 감성이 물씬 묻어난다.

 

현재 쉐보레 시화대리점 박원기 부장 역시 달구지 시절을 회상하며 말했다. “누군가 튜닝을 했거나 차를 사면 청담 도로공원에 다 같이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차 이야기만으로 밤을 새워도 모자랐어요. 수다 아니면 달리는 거였습니다. ‘새탈(새벽 탈출)’, ‘야탈(야간 탈출)’이라고 해서 소모임도 있었어요.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시간에 드라이빙을 하는 거죠. 거점은 따로 없었습니다. 그날 기분에 따라 경기도와 강원도는 물론이고 부산까지도 갔다 왔습니다. 딴 거 없습니다. 가서 커피 한잔 마시고 오는 거죠.” 그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었다. “어느 날은 어머니 심부름으로 슈퍼에 주스를 사러 갔다 나오는 길에 혹시나 하고 ‘탑’에 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모여 있더군요. 차 이야기를 나누다 얼떨결에 강릉까지 가서 주스를 사 왔던 적도 있습니다.”

 

당시 인기가 있던 차종은 현대 엑셀과 엘란트라, 기아 프라이드와 콩코드 등이었다. 그리고 국산 최초의 쿠페 모델 현대차 스쿠프가 등장했다. 스쿠프를 시작으로 자동차 커뮤니티는 단일·다변화됐다. 차가 대중화되면서 다양한 모델이 등장했고 차종별로 모이기 시작했다.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세분화되면서 새로운 동질감이 형성됐다. 특히 스쿠프처럼 많이 생산하지 않는 차는 부품을 구하기가 어려워 SCF(스포츠 쿠페 패밀리)와 같은 별도의 동호회가 생겨나기도 했다. 이어서 쏘나타, 티뷰론의 모임도 생겨났다. 그리고 인천 ‘미추홀’, 대구 ‘달구벌’, 부산 ‘부갈’ 등 광역시를 중심으로 지역별 소모임도 등장했다.

 

 

 

청담 도로공원 매주 금요일 밤이면 약속이나 한 듯 자동차 마니아들이 모였다. 하지만 더는 여기에서 모이지 않는다.

 

동시에 PC통신 시대가 저물자 회원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이제 ‘탑’에선 더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포털 사이트의 커뮤니티인 ‘카페’가 채우기 시작했다. 이들의 초기 거점이 됐던 게시판 형태의 온라인 플랫폼은 웹으로 바뀌었고 커뮤니티의 성격도 변질됐다. 특정 커뮤니티가 지닌 집단 지성은 ‘검색’을 통해 포털 사이트의 중요한 수익원이 됐다. 인기가 좋은 카페에서는 완장을 찬 운영진이 생겨났고 웹페이지의 대문은 협력업체들의 배너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모여서 노는 것보다 정보 공유와 공동 구매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

 

그래도 온라인은 여전히 자동차 마니아들의 거점이다. 포털 사이트의 카페보다 개인 소셜 미디어나 메신저를 통해 소통하고 오프라인에서 모임을 한다. 운전의 즐거움에 중독(?)된 포르쉐 코리아 김승철 차장은 소셜 미디어에서 사람들을 모아 주말마다 평화의 댐이나 중미산으로 드라이브를 떠난다. 가평 휴게소는 이들이 모이는 대표적인 ‘카페’다. 모임엔 주로 야무지고 달리기 좋은 차들이 나온다. 미니 쿠퍼, 토요타 86, 폭스바겐 골프, 제네시스 쿠페, 닛산 370Z 등. 모이는 방식과 규모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지만 자동차에 중독된 이들은 변함없이 차에 대해 수다를 떨기 좋아하고 어디론가 같이 달리며 운전의 즐거움을 나눈다.

 

류청희 자동차 평론가는 국내의 이러한 문화를 반기면서 한 가지를 당부했다. “요즘 일부 자동차 동호회 문화를 보면 차를 장난감의 측면에서만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차를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본질적인 것부터 접근하면 좋겠어요. 올바른 지식으로 깊이 있게 차를 이해한다면 지금의 문화가 더 탄탄해질 거라 생각합니다.” 아멘. 

 

 

강력한 스트리트 레이서

닛산 370Z 자동차 중에서 ‘카페 레이서’의 주행 느낌과 비슷한 차를 찾자면 닛산 370Z를 꼽을 수 있다. 페어레이디 300Z, 더 앞서 나아가 닷선 240Z의 후신인 이 차는 출력이 높은 편한 승용차를 한 단계 낮춰놓은 듯한 느낌이다. 요즘처럼 정교한 차들의 이전 세대 같은 느낌이랄까? GT-R이 정통 레이스를 위한 슈퍼카라면 370Z는 거리의 ‘하시리야’들이 산의 굽은 길을 달릴 때 어울린다.

요즘같이 터보 엔진이 대세인 때 V6 자연흡기 엔진에서 옛 정취가 물씬 풍긴다. 

긴 보닛과 낮은 높이, 개구리가 웅크린 듯한 힘 있는 자세는 오리지널 스포츠카의 기본에 충실한 느낌을 준다. 실내는 달리기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로 구성돼 있다. 디스플레이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센터페시아 상단엔 수납공간이 있고, 오디오와 주행 정보를 보여주는 작은 창도 단순하다. 달리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신경을 쓰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최고출력 333마력의 힘을 쏟아내는 3.7리터 V6 VQ 엔진은 차를 거침없이 몰아붙인다. 핸들링도 정확해 운전자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확히 읽어 몸을 놀린다. 앞·뒤 서스펜션은 스트럿 바로 단단히 조였다. 보스 사운드 시스템이 엔진음과 배기음의 하모니를 실내로 불어넣어 아드레날린을 촉진한다. 이 정도면 카페에 앉아 있다가 어느 누구와 레이스가 붙어도 자신 있겠다.

 

 

고급진 카페 레이서

BMW R nine T 사실 이 모터사이클은 진짜 카페 레이서는 아니다. 카페 레이서 장르의 바이크는 흔히 접할 수 있는 기본형 네이키드 혹은 로드스터를 짧은 레이스를 위해 커스터마이징한 모델이다. 배기량도 높지 않고, 이리저리 만진 탓에 개성이 돋보인다. R 나인T는 BMW 모토라드의 90주년이라는 헤리티지를 대변하는 모델이다. 공유랭 박서 엔진을 단 R 1200 R을 기반으로 ‘카페 레이서’ 콘셉트를 감성적으로 엮어냈다. 다시 말해 카페 레이서 콘셉트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고급스럽게 적용했다. 

R 나인T는 레트로 감성을 돋우기 위해 클래식한 디자인과 배기음에 초점을 맞췄다. 시동을 걸 때 나는 ‘빵’ 하고 터지는 소리에 시선을 빼앗기고, 달릴 때 나는 ‘두두두두’ 소리에 혼을 빼앗긴다. 파워트레인은 R 1200 R의 것을 공유하지만 앞 서스펜션은 스포츠 바이크 S 1000 RR의 도립식 텔레스코픽 포크를 가져왔다. 박서 엔진이 뿜어내는 풍부한 출력, 스포티한 핸들링, 박력 넘치는 사운드를 기본으로 물고 태어났다. 카페 레이서라고 하기엔 고급스럽고 과분하지만 감성은 충분하다. 커스터마이징 콘셉트를 살려 4개의 모듈로 설계된 프레임은 언제든 분해와 조립이 가능하다. 뒷좌석 프레임을 달고 떼는 것만으로도 1인승 혹은 2인승으로 즐길 수 있고, ABS와 ECU 이외엔 특별한 전자장비가 없어 커스터마이징 폭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