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Style

  • 기사
  • 이미지

어느 날의 태풍

“현재의 나를 가장 많이 반영한 작품! 당분간 가족 드라마는 찍지 않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마지막 가족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다.

2016.08.16

 

우리나라와 일본에 태풍이 영향을 미치는 시기는 7월~10월. 특히 한여름인 7~8월이 태풍의 철이다. 태풍이 지나가면 더위가 물러가고 새로운 계절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사람의 인생이라면 어디쯤을 태풍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역시 젊은 시절이 아닐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속 태풍의 의미도 비슷하다. 작가의 꿈을 품고 살지만 현실은 가난한 사설탐정일 뿐인 료타(아베 히로시 분)는 이제 청년을 지나 중년의 단계로 접어드는 나이다. 태풍 같았던 청춘의 시절은 지나갔으나 남은 것은 비루한 현실이다. 가족과도 헤어졌고 아들은 아내 손에 자라고 있지만 꿈이 이루어질 날은 멀기만 하다. 그런 그가 태풍에 묶여 가족과 함께 보내게 된 하룻밤이 <태풍이 지나가고>의 배경이다. 료타와 가족은 어떤 밤을 보낼까. 얼핏 평범한 가족 화해 드라마가 될 법한 이야기에 신뢰를 더하는 건 역시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이름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여섯 번째로 초청된 칸 영화제에서 <태풍이 지나가고>를 마지막으로 당분간 가족 영화를 연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태풍이 지나가고>에서는 <아무도 모른다>로부터 시작해 <걸어도 걸어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작년의 <바닷마을 다이어리>까지 이어져온 고레에다표 가족 영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 인디 음악을 “더 열심히 하라는 음악”으로 명쾌하게 정의하던 아이들과 닮은 소년이 있고, 뒤바뀐 아이들 사이에서 고민하던 아빠는 조금 철이 덜 든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아들과 손자를 둔 할머니가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일본이 사랑하는 대배우 키키 키린의 얼굴이다. “모두의 기억 속에 있는 어머니의 모습”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자신의 에세이집 <걷는 듯 천천히>에서 키키 키린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걸어도 걸어도>에서도 아베 히로시의 어머니 역할을 했던 이 노배우는 이번에도 그의 어머니가 되어 무능하고 철이 덜 든 아들이 가족에게서까지 멀어져 헤매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 이런 말을 건넨다. “행복이란 건 무언가 포기하지 않으면 손에 받을 수 없는 거란다.” 하지만 손에 쥐고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게 꿈, 그것도 어린 시절부터 간절하게 품어온 ‘되고 싶었던 나’라면 과연 포기할 수 있을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잔잔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가족의 일상 아래 진지한 질문을 숨겨놓는다. 어른, 그것도 청년 시절을 보내고 난 중년의 성장은 가능할까? 아들은 아빠에게 묻는다.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된 거야?” 아빠는 대답한다. “아빠는 아직 되지 못했어.” 어른의 상당수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또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되지 못한다. 그건 비단 어떤 직업을 갖고 또 갖지 못하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료타처럼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것인지 알 수 없는 인생은 풀 길이 없고, 아이가 바라보는 세계는 꿈과 사랑이 가득하지 않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태풍은 지나가고>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자신의 ‘현재’를 가장 많이 반영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다시 그의 에세이집의 일부를 빌려오자면, 그는 2011년 3월 11일 일본 대지진 이후 “좀 더 파문을 응시하고 싶다”고 썼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그 결과물일 것이다. 일상에서의 태풍, 그리고 태풍과 같은 어느 날, 어느 한 시절이 지나간 뒤에도 또 일상을 살아내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특히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지 못했어도 하루 치의 몫을 다하며 태풍 뒤의 파문을 견디는 이야기를 마주하고 싶은 사람에게 필요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역시, 그런 사람이니까.

 

이 글을 쓴 윤이나는 영화 칼럼니스트이자 <미쓰윤의 알바일지>의 저자이다.

 

What do you think?
좋아요

TAGS neighbor,네이버,영화,고레에다 히로카즈,감독,태풍이 지나가고,가족드라마

CREDIT Editor 설미현 Photo PR 출처 THE NEIGHBOR

Film

film 더보기
SUBSCRIBE
  • 메인페이지
  • PlayBoy Korea
  • MOTOR TREND
  • neighbor
  • 東方流行 China

RSS KAYA SCHOOL OF MAGAZINE

Copyright Kayamedia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