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이렇게 재미있는 차를 만들었으면서 지금은 왜 재미없는 차만 만드는 건데?’ 지난 6월, 스웨덴 토슬란다 볼보 데모센터에서 볼보의 전설적인 모델 P1800을 운전하면서 든 생각이었다. P1800은 내가 운전대를 처음 잡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탔던 차들 중에서 가장 재미난 차였다. 이렇게 모든 감각이 생생하고 또렷하게 운전자에게 전달되는 차는 극히 드물었다. 그러면서 빠르고 신나게 달린다. 그것도 1961년에 생산된 차가 말이다.

 

1.8리터 직렬 4기통(100마력) 엔진은 파워풀하지 않지만 출력을 또렷하게 뽑아낸다. 더불어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볼보 P1800은 스웨덴에서 기획하고 이탈리아에서 디자인한 후 벨기에에서 발표하고 영국에서 생산했다. DRIVEN 4단 수동기어는 약간 뻑뻑하게 움직이는데 ‘철커덕’ 소리를 내며 기어가 물리는 느낌이 아주 좋다. 얇고 지름이 큰 나무 운전대는 노면과 완벽하게 연결된 느낌이었다. 노면의 정보는 물론이거니와 엔진 회전과 타이어 그립, 횡중력 등 모든 정보가 운전대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볼보 관계자는 “시속 60킬로미터 정도가 가장 안정적인 속도”라고 했다. 하지만 달리는 재미에 심취해 시속 90킬로미터를 넘기기 일쑤였다. 브레이크 성능이 떨어져 코너 훨씬 전에 밟아야 하는 것도 즐겁다. 그런데 코너에서 속도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면 뒷바퀴가 밖으로 슬금슬금 빠진다.

 

 

볼보 P1800은 스웨덴에서 기획하고 이탈리아에서 디자인한 후 벨기에에서 발표하고 영국에서 생산했다

 

 

 

뒤가 휙 도는 게 아니라 폭이 얇은 타이어가 그립력을 잃으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이때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으면 조향이 되지 않는다. ABS도 없고 뒷바퀴 그립이 더 떨어지기 때문이다. 대신 살짝 카운터스티어를 해주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차 앞부분이 주행 방향으로 돌아온다. 재미를 위해 뒤를 던지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드리프트를 하는 셈이다. 이 같은 움직임이 가능한 첫 번째 이유는 이 차가 뒷바퀴를 굴리기 때문. 두 번째는 주행에 간섭하는 전자장비가 전혀 없다. 요즘은 똑똑한 컴퓨터가 차체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원천봉쇄한다. 내가 운전하는지 차가 운전하는지 모를 정도다. 또한 각종 모터와 컴퓨터가 운전자에게 전달되는 모든 정보를 차단하거나 걸러낸다. P1800엔 지금의 자동차들이 지닌 수많은 센서와 모터, 컴퓨터 등이 전혀 없다. 이런 기능은 모두 운전자 몫이다.

 

차가 주는 수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해석해 적절하게 대응하는 모든 과정을 운전자가 해야 한다. 그래서 운전에 더 집중하게 된다. 집중해야 더 많은 정보를 얻고 그만큼 더 빠르고 정확하게 달릴 수 있으니까. 컴퓨터가 브레이크를 밟고 모터가 운전대를 돌리는 등 주행에 간섭하는 게 전혀 없으니 운전이 훨씬 생생하고 또렷하다.

 

지금의 볼보는 엄청난 전자장비를 싣고 있다. XC90은 알아서 운전까지 해주니 ‘바퀴 달린 컴퓨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운전자에게 전달되는 정보의 양은 극히 한정적이다. 정보가 없으니 대응이나 반응의 폭도 준다. 대응하지 않더라도 차가 알아서 해준다. 당연히 운전 재미가 떨어진다. 볼보뿐만 아니라 요즘 차 모두가 그렇다.

 

스웨덴까지 날아가 P1800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예전에 볼보가 얼마나 재미있는 차를 만들었는지 알게 됐고, 전자장비가 전혀 없는 차의 움직임이 어떤지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이런 차를 다시는 만날 수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