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SCHE 718 BOXSTER

박스터와 같은 로드스터에게 출력이 더 높은 다운사이징 엔진이 정말로 필요했을까? 쿠페형 스포츠카인 카이앤이 더 높은 출력을 필요로 하는 건 이해가 된다. 911이 더 길어진 휠베이스로 GT의 세계로 갔으니 카이맨이 그동안 드러내지 못했던 잠재력을 터트리고 포르쉐 스포츠카의 대표가 되려면 더 높은 출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로드스터는 가볍고 무게중심이 낮아서 조종성이 경쾌하다. 반면 지붕이 열린 구조 때문에 차체 강성이 떨어져 한계까지 타이어를 땅에 눌러 붙이면서 접지력을 100퍼센트 사용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런 경량 로드스터에게는 출력이 약이 될 수도 반대로, 독이 될 수 도 있다. 높아진 토크는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더 많은 무게를 뒷바퀴에 실어 차체 뒤쪽 접지력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는 반면, 가속페달을 거칠게 다루었다가는 앞바퀴 무게가 너무빠져서 코너에서 언더스티어를 일으키거나 반대로 아예 뒷바퀴가 헛돌고 스핀해버리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즉 더 주어진 출력은 드라이버에게 더 큰 책임이 된다.

 

출력을 신중하게 사용하려면 출력이 발휘되는 방식을 알아야 한다. 바로 이 부분이 자연흡기 엔진과 다른 터보 엔진의 약점이기 때문이다. 718 박스터의 수평대향 4기통 터보는 오늘 모인 ‘약 먹은 엔진’들 가운데 가장 단순하다. 다른 친구들은 터보라는 약을 먹고 힘이 좋아진 대가로 얻은 터보래그라는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서 트윈 스크롤 터보나 전기모터등의 치료제를 먹었다. 하지만 718 박스터는 그런 치료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왜일까?

 

첫째, 이 엔진은 911 카레라의 3.0 터보 엔진에서 정확하게 실린더 두 개만 떼어낸 검증된 엔진이라 7500rpm까지 속 시원하게 돌아간다. 게다가 작은 터보가 재빠르게 회전수를 높이며 20psi(약 1.38바) 이상의 높은 과급압으로 적은 양의 흡기를 쏘아대니 터보래그를 느낄 새가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718은 스포츠 모델이다. 저회전으로 다니는 것은 가당치 않다. 1950rpm부터 최대토크이니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는 동안에는 터보를 신경 쓸필요도 없다. 오히려 가속페달을 섬세하게 다루는 것이 문제일 뿐.

 

하지만 포르쉐는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718 박스터의 2.0리터 터보 엔진도 터보래그를 그냥 방치하지는 않았다. 특히 코너링직전의 제동처럼 가속페달을 놓았다가 다시 밟을 때 터보 부스트가 회복되는 시간이 필요한 지체 현상을 없애고자 했다. 그런데 별도의 장치가 추가되는 것도 없다. 어차피 요즘 엔진들은 스로틀 밸브를 ECU가 제어한다는 점을 이용한 것. 드라이버가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도 스로틀 밸브는 그냥 열려 있고 대신 연료 분사가 중단돼 출력을 줄인다. 즉 터보가 압축한 흡기는 연료가 섞이지 않은 채로 실린더로 흡입돼 출력이 나오지 않는 사이클을 거쳐 배기시스템으로 나가면서 터보를 계속 돌린다. 따라서 터빈의 회전수는 거의 떨어지지 않고, 드라이버가 가속페달을 다시 밟으면 연료 분사가 재개되면서 원하는 출력이 즉시 발휘된다. 마치 자연흡기 엔진 같은 응답성을 추가 부품 없이 실현한 아이디어가 빛난다. 이걸 포르쉐는 ‘다이내믹 부스트’라 부른다.

 

이론은 여기까지. 이제 약인지 독인지 직접 알아볼 결정적 순간이다. 브레이킹을 마치고 코너에 들어선다. 10퍼센트 빨라진 조향장치 때문에 처음에는 앞바퀴를 지나치게 많이 돌리고 언더스티어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금세 적응. 서서히 가속페달을 밟는다. 늘어난 중저속 토크로 뒷바퀴로 무게가 확실하게 이동하며 트랙션이 걸린다. 무게가 빠진 앞바퀴의 접지력이 약해지는 느낌도 없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뒷바퀴에 파워를 실어갈 때다. 이전의 박스터는 접지력 한계에서 엔진 출력을 최대한 사용하면 뒷바퀴가 접지력을 조금씩 잃으며 “워워. 난 로드스터야. 너무 몰아붙이지는 마”라고 했었다.

 

그런데 718 박스터는 출력을 아무리 퍼부어도 뒷바퀴가 꿈쩍하지 않는다. 제대로 섬세하게 트랙션을 걸고 출력을 더해간다면 어떤 위협도 없다. 이제는 로드스터의 열린 차체구조로도 이겨낼 만큼 차체 강성이 보강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난 아직 스포츠 플러스 모드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서스펜션은 노멀 상태라는 뜻. 나중에 겪어보고 알았지만 나 정도의 아마추어에겐 노멀 모드가 덜 예민하고 다루기 쉬웠다. 그런데도 접지력은 이미 충분하다. 그러니까 스포츠 플러스는 노면이 평탄하고 수준 높은 드라이버들이 랩타임을 겨루는 트랙에서 만끽하라는 뜻이다. 이게무슨 뜻일까? 718 박스터는 진짜 스포츠카가 됐다는 말이다. 이제는 경쾌한 맛으로 타는 경량 로드스터가 아니다. 한계를 다루며 랩타임을 겨루는 스포츠의 세계로 들어왔다.

 

하나 더. 2.0리터 수평대향 4기통 엔진의 사운드는 이전과는 다르지만 상당히 괜찮았다. 공회전에서는 4기통으로 넓어진 폭발 간격으로 ‘둥둥’ 하는 고동감이 생겼고, 7500rpm까지 맹렬하게 돌아갈 때는 저배기량 엔진 특유의 앙칼짐이 좋았다. 성난 고양이 같다. 글/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