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Style

  • 기사
  • 이미지

바라캇 서울

베벌리힐스, 할리우드, 런던에 이은 한국행. 바라캇 갤러리가 서울 삼청동에 10월 공식 개관을 앞두고 있다. 지금껏 국내에서는 볼 수 없던 낯선 체험, 이제 막 항구에 당도한 그들의 기상천외한 컬렉션을 미리 둘러봤다.

2016.08.09

 

삼청동길 초입. 더운 여름날 뜨거운 심장을 잠시 휴가 보내지 않았다면, 이 묘한 풍경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터다. 아직 간판도 채 달리지 않은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건 알록달록 세상의 모든 색을 죄다 입은 듯한 자동차다. 더군다나 그것의 정체는 벤틀리. 가장 비싼 차의 대명사인 벤틀리에 보란 듯이 액션 페인팅을 펼친, 강심장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고개를 채 돌리기도 전에 등장하는 조각 정원은 또 어떤가. 아름다운 로마의 신들과 여름빛을 한껏 흡수한 초록 나무의 조합. 고민할 틈도 없이 로마 신들의 정원이 스쳐 지나갔다. 공식 오픈도 전에 휴대폰 카메라부터 꺼내든 행인들의 심정이 십분 이해됐다. 이곳의 정체는 바라캇 서울. ‘삼청동에 또 하나의 갤러리가 들어섰구나’라고 가볍게 지나치기엔 바라캇 서울은 그 외관만큼 심상치 않은 오라를 풍긴다.   

 

 

 

1 파에즈 바라캇의 손에 의해 현대미술로 재탄생한 19세기 비너스상. 2 갤러리 1층에선 파에즈 바라캇의 현대적인 페인팅과 비너스상의 기묘한 조화를 목격할 수 있다. 3 벤틀리의 아르나지 (Arnage) 리무진을 현대미술로 재탄생시킨 파에즈. 4 사계절을 표현한 19세기의 여신상.

 

“베벌리힐스, 할리우드, 런던에 이어 이곳 서울에 오는 10월 문을 엽니다.” 얼마 전 문을 닫은 아부다비까지를 굳이 포함시키지 않더라도 바라캇 갤러리의 입지는 이미 세계 미술 시장에선 굳건하다. 130년의 역사로도 모자라, 컬렉션 수만도 4만여 점에 달한다. 그뿐인가. 4대째 바라캇 갤러리를 책임지고 있는 파에즈 바라캇(Fayez Barakat)은 2004년 매거진 <리더스>가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컬렉터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한국을 택한 이유는 뭘까. “날씨, 음식, 아름다운 사람⋯(웃음).” 60대의 연륜 넘치는 그는 기분 좋은 위트로 대화를 이어갔다. 사실 그는 내한하기 전, 이미 홍콩을 염두에 뒀고, 몇 군데 자리까지 물색해둔 터였다. “우연히 한국에 2~3일 짧은 일정의 휴가를 왔다가 이곳을 보게 됐어요. 너무 마음에 들어 당장 알아봤더니, 마침 운 좋게도 비어 있더라고요.” 더군다나 그가 한국을 찾은 때는 경복궁에 벚꽃이 흩날리던 가장 아름다운 봄이었으니. ‘내 유물을 여기에 가져다 놓으면 좋겠다.’ 그 순간, 그의 뇌와 심장을 강력하게 사로잡고 떠나지 않은 문장이다. 그는 고민할 것도 없이 계약서를 썼고 사인까지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한국의 요즘 콘텐츠도 그렇고, 문화, 음식, 패션, 아티스트 등에서 힘찬 에너지를 내뿜는 한국에 흠뻑 매료됐죠.” 아시아 미술의 중심을 홍콩으로 여긴 그의 굳건한 마음을 움직인 건 한국이 선물한 다양한 매력 때문이었다고.

 

“한국 내 박물관을 둘러보던 중 거의 모든 작품이 한국 고미술, 아시아 유물에만 집중돼 있다는 걸 깨달았죠. 왜 국제적인 유물은 한국에 들어오지 않는 걸까? 더 좋은 걸 보여줄 수 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죠.” 그가 과감하게 한국행을 택한 결정적 이유는 사실 여기에 있다. 한국 미술 시장의 빈 부분을 메워줄 수 있겠다는 행복한 자신감. 그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1 12세기 셀주크 왕조의 테라코타 항아리와 그릇. 2 중국 한나라 시대의 녹유 테라코타 말 조각상(BC 206~AD 220)과 18세기 미얀마 샨 시대의 와불상(아래). 3 Fayez Barakat, Magnificent Marine Life, 2014, Acrylic on Canvas

 

130년, 그 시작은 예루살렘이었다
바라캇 갤러리의 시작은 예루살렘, 그것도 130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제 선조가 예루살렘에서 농장을 운영했는데, 원래 무덤이 있던 곳이라고 해요. 작물을 수확하다 보니 어느 날엔 그릇이, 다른 날엔 화병, 램프가 발견되기도 하고⋯. 처음엔 농작물을 팔다가 점점 유물에 집중하게 된 거죠.” 1, 2대가 예루살렘을 토대로 비블리컬 아트(Biblical Art)에 집중했다면 3세인 그의 아버지는 이집트, 이란, 아프리카 등 주변국으로 컬렉션 범위를 확장했다. 그는 7세 때부터 아버지 옆에서 자연스레 컬렉션을 배웠다. ‘왜 이런 걸 사세요?’ 어린 파에즈는 수시로 떠오르는 의문을 풀기 위해 혼자 공부했고, 예루살렘 대학의 교수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하물며 15세 무렵부터는 대학교수들과 직접 유물 발굴 현장에 참여하기도 했다.   
“어느 날 예루살렘 시장에 파블로 피카소가 들렀어요. 당시 저는 어린 마음에 유럽의 유물들 위주로 보여줬죠. 그런데 그가 왜 유럽만 보여주느냐고 아프리카 미술을 보여달라는 거예요.” 피카소는 아프리카의 순수 미술을 경험해보면 더욱 좋을 것이라는 조언과 함께 자리를 떴고, 그때부터 그는 아프리카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대학 진학도 마다한 채 오로지 독학으로 현장에서 살아 있는 미술을 배워갔다. 사업 수완 역시 타고났는지 18세의 그는 이미 백만장자 대열에 서 있었다. 그런 그에게 미국은 또 다른 기회의 땅이었다.
“당시 미국 베벌리힐스만 해도 유물 수집이 보편화되지 않았어요.” 그가 예루살렘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간 건 1983년. 그의 나이 30대 초반이었다. 당시의 미국은 컬렉팅 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은 때로, 한편에선 거대한 부를 일군 신흥 부자들이 태동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는 큐레이터, 관장 등의 빗발치는 레터로 명예시민권을 받았을 만큼, 미국의 컬렉션 문화와 아트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직도 그의 베벌리힐스 저택엔 자문을 구하러 온 미술 관계자와 VIP들이 줄을 잇는다. 그런 그는 여전한 탐구심을 바탕으로 2007년 아부다비행을 택했고, 갤러리 370개  중 최고의 갤러리로 선정, 세계에서 가장 큰 호텔인 에미레이트 팰레스 호텔에서 자신의 유물 5000점을 전시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어느 날 예루살렘 시장에 파블로 피카소가 들렀어요. 당시 저는 어린 마음에 유럽의 유물들 위주로 보여줬죠. 그런데 그가 왜 유럽만 보여주느냐고 아프리카 미술을 보여달라는 거예요.” 피카소는 아프리카의 순수 미술을 경험해보면 더욱 좋을 것이라는 조언과 함께 자리를 떴고, 그때부터 그는 아프리카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대학 진학도 마다한 채 오로지 독학으로 현장에서 살아 있는 미술을 배워갔다. 사업 수완 역시 타고났는지 18세의 그는 이미 백만장자 대열에 서 있었다. 그런 그에게 미국은 또 다른 기회의 땅이었다.
“당시 미국 베벌리힐스만 해도 유물 수집이 보편화되지 않았어요.” 그가 예루살렘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간 건 1983년. 그의 나이 30대 초반이었다. 당시의 미국은 컬렉팅 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은 때로, 한편에선 거대한 부를 일군 신흥 부자들이 태동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는 큐레이터, 관장 등의 빗발치는 레터로 명예시민권을 받았을 만큼, 미국의 컬렉션 문화와 아트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직도 그의 베벌리힐스 저택엔 자문을 구하러 온 미술 관계자와 VIP들이 줄을 잇는다. 그런 그는 여전한 탐구심을 바탕으로 2007년 아부다비행을 택했고, 갤러리 370개  중 최고의 갤러리로 선정, 세계에서 가장 큰 호텔인 에미레이트 팰레스 호텔에서 자신의 유물 5000점을 전시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1 나폴레옹 시대에 제작된 가구와 중국 청나라의 채색 자기, 페르시아풍 실크 카펫 등으로 꾸민 2층의 프라이빗 살롱. 2 자하 하디드의 바이올렛 가구가 프라이빗 살롱에 생기를 더한다. 3 조각 정원을 소요 중인 파에즈 바라캇.

 

“가질 수 없는데 갖고 싶어지면 두통이 시작되죠(웃음). 그 탓에 은행 잔고가 10달러가 안 될 때도 있었어요. 아버지를 설득해 큰 땅을 팔기도 했고⋯.” 그는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사고 싶은 유물이 생기면 꼭 구입해야 직성이 풀리는 과감한 투자자이자 컬렉터였다. 그렇게 수집된 바라캇 컬렉션은 아프리카, 아시아, 중국, 이집트, 비잔틴, 프리 콜롬비아, 비블리컬, 비잔틴 아트 등 그 범위도 광대하다. “특히 중국과 이집트, 그리스, 프리 콜롬비아 컬렉션은 여느 컬렉션과 견주어도 단연 최고일 거예요. 한국에는 4만여 점에 달하는 컬렉션 중 2000여 점이 들어올 예정입니다.” 재미있게도 그가 아직 컬렉션을 못한 유일한 곳이 있다면 바로 한국. 때문에 한국 고미술에 대한 그의 애정은 더욱 각별하며, 바라캇 컬렉션의 철학에 부합한다면 기꺼이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싶다고.   
“한국에서 유물은 보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죠. 바라캇에서는 세계적인 박물관에서나 보던 유물을 삶 속에서 즐길 수 있어요.” 보통은 이것이 몇 세기 유물인지, 얼마인지 등 숫자의 가치로 환산하기에 급급한데, 그에게 유물은 동시대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기분 좋은 친구와 같다. 이는 실제 바라캇 서울에서도 직접 확인된다. 미리 말하지만 조금은 충격적인 풍경이 기다릴 수도 있다. “이 여인의 얼굴 표정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 퍼포밍, 설치를 통해 색깔을 더하면 어떨까 싶었죠.” 고대 유물에 총천연색의 페인팅 작업이라니. 한데 그가 누군가. 영감을 받으면 벤틀리 따위에도 액션 페인팅을 펼치는 그가 아닌가. 그는 과감하게 19세기 여인상에 자신만의 색을 입혔고, 컨템퍼러리한 예술 작품으로 탈바꿈했다. 그가 유물을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영적인 교류. 그는 늘 자신의 컬렉션과 에너지를 교류하는데 이 여인 역시 좋은 옷을 입혀줘 행복해한다며 웃었다.


기원전 몇 세기를 거슬러 오르는 유물, 전 세계에 5개밖에 남지 않은 중국의 불상, 페르시안 카펫, 자하 하디드의 현대적인 가구와 1960년대 건축가가 만든 빨간 의자 등 현대의 그것과 전통의 유물이 우리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호흡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바라캇 서울은 눈앞에서 증명해준다(실제로 외국에서는 고미술이 인테리어 장식으로 많이 활용된다고). 바라캇 서울이 기존 갤러리와 차별화되는 지점 역시 바로 이것이다.  
“컬렉션이란 게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없어요. 어떤 것이든 물건은 다 지나가기 마련이죠.” 그 때문에 대대손손 이 컬렉션을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 따위도 없다. 실제로 유물을 보관해둔 예루살렘의 빌딩이 천재지변으로 무너진 적이 있는데, 그 일이 벌어진 뒤 그의 생각은 더욱 또렷해졌다. 그는 그저 유물을 칭송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들이 내뿜는 에너지를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를 위해 컬렉션과 가문의 업을 이어나갈 뿐. “코인, 스톤 등을 이용해서 주얼리를 만들기도 하고, 그림을 그린 지는 오래됐어요.” 그는 이제 사업가를 졸업하고 좋은 아티스트로 남고 싶다며 어느 때보다 맑게 웃었다. 15세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파에즈 바라캇. 당시 첫 여자친구가 마크 샤갈의 손녀였다는, 아티스트 파에즈 바라캇의 프라이빗 인터뷰는 9월호에 이어질 예정이다.

 

What do you think?
좋아요

TAGS neighbor,네이버,컬렉션,삼청동,갤러리,바라캇

CREDIT Editor 설미현 Photo 박우진 출처 THE NEIGHBOR

Film

film 더보기
SUBSCRIBE
  • 메인페이지
  • PlayBoy Korea
  • MOTOR TREND
  • neighbor
  • 東方流行 China

RSS KAYA SCHOOL OF MAGAZINE

Copyright Kayamedia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