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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한강’

소설가 한강에게 시간은 <채식주의자> 전과, 후로 나뉜다. 한강 하면 자동으로<채식주의자>를 떠올릴 만큼 맨부커상 수상의 힘은 강력했다. 하나 등단 20년을 넘긴 한 작가를 한 권의 책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2016.07.13

 

한동안 끝모를 침체에 빠져 있던 한국 문단이 최근 활기를 띠고 있다. 그 사이로 곳곳에서 ‘한강’의 이름이 들려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다소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노벨문학상과 어깨를 겨룬다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으니 말이다. 수상 소식은 서점가로도 이어져 <채식주의자>는 30만 부 이상이 독자의 선택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열기가 여름 문학 시장까지 이어지면 100만 부도 가능하다는 진단도 조심스레 나온다. 더불어 2014년 5월 출간된 <소년이 온다>와 신작 <흰>도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
수상 후 기자간담회에서 “최대한 빨리 제 자리로 돌아가 제 방에서 글을 쓰고 싶다”고 했지만, 작가 한강은 당분간 유명세를 치를 수밖에 없어 보인다.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 때문이겠지만, 이제 독자들은 ‘한강’ 하면 자동으로 <채식주의자>를 떠올린다. 그렇다고 한강에게 <채식주의자>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1993년 <문학과 사회>에 시가,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한강은, 다작은 아니어도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자신의 문학적 지평을 넓혀온 작가다.


등단 10년 즈음인 2005년 단편 <몽고반점>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며 “진중한 문장과 웅숭깊은 세계 인식”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문학평론가 이어령은 “기이한 소재와 특이한 인물 설정, 그리고 난(亂)한 이야기의 전개가 어색할 수도 있었지만, 차원 높은 상징성과 뛰어난 작법으로 또 다른 소설 읽기의 재미를 보여주고 있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렇게 또 10년이 지나 한강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지만, 그의 문학적 성취는 오히려 2014년 출간된 <소년이 온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작가 한강이 문학을 꿈꾸게 된 계기는 1980년의 광주다.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이 구해온 <5·18 사진집>을 몰래 펼쳐본 후 한강은 인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은 문학적 집념으로 이어졌고, <소년이 온다>는 그 치열한 고뇌 속에서 태어난 작품이다.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는 얼마 전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그에게 <소년이 온다>는 소설가로서 인간으로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던 것이다. 5·18을 온전히 폭력과 상처로 보는 시작점이자 정점이 <소년이 온다>라면, 한강 개인에게도 소설가로서 인간으로서 넘어야 할 산의 시작점이자 정점이 <소년이 온다>라고 할 수 있겠다.” <소년이 온다>는 폭력과 그것으로 인한 상처로 뒤범벅된 1980년 5월의 열흘을 이야기 6개로 풀어낸다. 그 이야기들은 외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면서 그때의 아픔을 고스란히 오늘에 재현한다. 친구를 버리고 도망친 자신이 가증스러워 도청에 남으려는 중학교 3학년 동호의 시선 뒤로 줄곧 죽음이 어른거린다.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갈 수 없는 동호의 선택은 당시 광주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살아남아 그때 광주를 기억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남은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살아남아 대학에 진학하고 이후 출판사 직원이 된 은숙은 피폐한 영혼을 부여잡고 평생 광주를 기억하며 살아간다. 남은 자도, 떠난 자도, 삶은 그때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5·18은 한강이 소설을 쓰는 이유다. 등단 후 20년이 지나서야 자신의 문학적 시원(始原)을 써내려간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채식주의자>도 널리 읽혀야겠지만 <소년이 온다>가 대중 독자의 더 많은 선택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2002년 출간된 한강의 두 번째 장편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은 인체를 직접 석고로 떠서 작품을 만드는 ‘라이프캐스팅’ 조각가가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이다. 조각가는 두 여주인공의 삶을 자신의 작품과 견줘가며 이야기하는데, 한강의 문체가 생소한 독자에게는 다소 낯선 경험이 될 만한 작품이다. 두 여주인공은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다. L은 비만 때문에 고민하고, E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인데 손이 지나치게 차갑다. 조각가 장운형은 두 여성을 대상으로 라이프캐스팅을 만들면서 그네들의 삶을 응시한다.


대개의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삶은 거의 대부분 일그러지는 어긋난 지점이 더 많다. 장운형의 독백 중 한 대목이다. “멋진 몸매는 흥미롭지 않다. 평범하고 불균형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벗겨놓고 보면 낯설게 보이리라 짐작되는 몸이 내 마음을 끌었다.” 장운형이 평범하고 불균형한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주변 인물들의 모습 때문이다. 이중적인 웃음이 서린 얼굴, 빗나간 인생을 사는 삼촌의 마디 잘린 손가락 등은 장운형의 섬세한 감수성을 자극한다. 비만이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붓아버지에게 강간당했던 L이나, 화려한 디자인 세계에 살지만 어려서 육손이였던 E의 라이프캐스팅은 어쩌면 우리네 삶 속에 남겨진 상처를 응시하는 작업일 것이다. 최근 출간된 <흰>은 경계가 모호한 작품이다. 시라고 생각하면 시며,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소설인 작품이다. 모두 65편의 짧은 글로 구성된 <흰>은 강보, 배내옷, 각설탕, 입김, 달, 쌀, 파도, 백지, 백발, 수의 등 모든 ‘흰’ 것에 담긴 사연을 기록한 작품이다. 흩뿌리는 진눈깨비를 통해 누구에게도 호의적이지 않은 삶을 성찰하는가 하면, 배냇저고리를 통해서는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운다. 모래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주 잊었다, 자신의 몸이(우리 모두의 몸이) 모래의 집이란 걸. 부스러져왔으며 부스러지고 있다는 걸.  끈질기게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고 있다는 걸.’ 한강의 <흰>은 유연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작품이자 삶을 끈기 있게 응시한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2011년 발표된 <희랍어시간>은 말을 잃어가는 한 여자와 눈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만남을 극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열일곱에 처음 말을 잃은 여자는 낯선 불어 단어 하나 때문에 말을 다시 찾는다. 하지만 이혼 후 양육권을 빼앗기면서 다시 말을 잃는데, 그때 다가온 것이 희랍어다. 희랍어 강사이면서 빛을 잃어가는 남자는 한 강좌에서 싸늘한 이미지의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 두 사람은 대화를 통해 삶의 근원을 찾아간다. 한강의 작품은 삶의 고통을 응시하는 남다른 시각을 담고 있다. <채식주의자>뿐 아니라 여타 작품도 읽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작하지 않았으니 마음만 먹으면 ‘또 다른 한강’을 모두 만날 수 있다.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로 독자의 마음을 두드릴지 기대하며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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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neighbor,네이버,한강,책,소설가,채식주의자

CREDIT Editor 설미현 Photo 김래영 출처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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