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하고도 무왕리. 조각을 하는 그에게 굽이굽이 한적한 이곳은 강남땅 부럽지 않은 최적의 둥지다. 조각가 이재효. 그가 이곳 양평 무왕리에 터를 잡은 지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원래 저 아래쪽에 있었는데, 조각 작업의 특성상 넓은 공간이 필요했어요. 지금의 공간으로 새로 이사한 지는 이제 6년째예요.” 소장고를 겸한 전시장과 작업실, 그리고 그 옆으론 부부가 사는 아담한 집이 마을을 내려다본 채 자리한다. 뚝딱뚝딱 조각을 하듯, 이 공간도 그가 지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 무렵, 역시나 고개를 끄덕인다. “그냥 싸게 짓고 싶었어요(웃음).” 애초 건물에 기교를 부릴 생각은 없었다. 오직 싸게 짓자 싶었고, 그러다 보니 건물 모양이라야 심플하고 반듯한 형태다. 1층은 말이 작업실이지 공장에 가깝다. 음악 대신 전기톱 소리가 이곳의 배경음악이 된 지 오래. 이 기계음 가득한 공장 앞에 춘향이처럼 낭만적인 그네를 만들어놓은 그만의 발상이라니. 직원들 눈치 보며 만들었노라고 그가 처음으로 멋쩍게 웃었다.

 

2층 계단을 오르니 비로소 소음이 사라진 응접실이 나온다. 응접실은 그의 작업 과정을 담은 흑백사진과 소품으로 채워진 공간과 통창 너머 자연과 작은 테라스를 품은 공간, 두 개로 이루어져 있다. “1차는 여기 테라스에서 마시고, 안으로 들어가 2차를, 그리고 다시 테라스에서 3차를 마시죠(웃음).” 마땅한 커피숍, 술집 하나 없는 시골 마을에서 이곳은 최고의 전망 좋은 핫 플레이스다. 어제도 부부는 이곳에서 도란도란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재밌게 노는 사람이 성공해요~.” 정작 그는 잘 노는 사람일까? “저는 놀 분위기를 잘 마련해주는 사람이죠(웃음).” 사실 그는 낯선 이와 눈도 잘 마주치지 않을 만큼 낯을 가리고, 아내의 말마따나 삼시 세끼를 먹어야 하는 삼식이에, 조금은 무뚝뚝한, 전형적인 한국 남자다. 그런 그에게 나무와 돌은 가장 편안한 친구이자 재미난 놀잇감이었다. 돌과 나무와 함께 논 세월만 어느덧 25년이다.  
이재효 작가 하면 가장 먼저 나무가 떠오른다. “나무로 작업을 한 건 대학교 졸업 무렵부터니 벌써 25년째죠.” 대학생 시절부터 주변에 흔히 보이는 것을 모아 작업의 소재로 사용했다는 이재효. 나무 역시 그중 하나였다. 당시만 해도 조각의 재료하면 철이나 동, 돌 등이 대부분이었음을 감안하면 참으로 파격적인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제 고향이 경남 합천이에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기억 때문인지 자연에서 친숙함을 더 느끼는 것 같아요.” 나무, 돌멩이, 낙엽, 나뭇가지 등 그의 단골 소재는 대부분 자연에서 온 것들이다.  
“밤나무, 잣나무, 향나무 등 많은 나무가 작업의 소재가 되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밤나무예요. 구하기 쉽고, 적당히 휘고, 색도 좋고, 야외에서 오래 버티고.” 지금이야 시스템이 좋아져 전화만 하면 원하는 나무를 구할 수 있지만 옛날엔 직접 나무를 찾아다녀야 했다. “원하는 형태의 나무를 찾기 위해 이 산 저 산 안 가본 산이 없죠. 막상 마음에 드는 큰 나무를 구해도 가지고 내려올 수가 없으니, 자구책으로 썰매를 만들어 싣고 내려오곤 했죠.” 어렵사리 나무를 구했어도 바로 작업대에 올릴 수는 없다. “일단 껍질을 벗겨 비닐하우스에서 2년 정도 말린 다음 조각의 형태를 만들어요. 그걸 다시 열흘 동안 열로 찌는 방식이죠.” 변형을 막기 위해 열을 이용해 찌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벌어지기도 하고, 속이 새까맣게 변하기도 한다. 하나 이 모든 과정에서 그는 어떤 개입도 하지 않는다. 예쁜 나뭇조각을 만드는 게 그의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재료의 성질이 이끄는 그대로의 형태. 그의 조각은 바로 그 지점 어딘가에 있다.  

 

 

 

나무를 깎고, 철을 조련하고, 돌을 쪼개는 조각가에게 한적한 이곳 양평은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다. 전시실과 작업실, 부부가 사는 아담한 집이 양평의 푸른 자연 속에 겸허히 자리 잡았다. 이재효, 그가 이곳에 터를 잡은 지 어느덧 20년이 훌쩍 흘렀다.  

 

“재료를 보면 ‘이걸 가지고 뭘 할까’ 생각하게 돼요. 우선 재료의 성질을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예를 들어 같은 철이라도 성질은 제각각이거든요. 스테인리스는 가열하면 휘는 성질 때문에 작품에 쓰기 용이하지만 면도날은 달구면 그냥 구부러져버리죠.” 재료가 가진 본연의 성질을 파악하고, 그 재료 안에 담긴 에너지를 가장 극대화하는 작업. 그의 조각은 어쩌면 재료의 근원, 나아가 자연의 근원을 찾는 탐구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  
“아, 그건 중국산 대나무 빗자루를 이용한 거예요.” 옛날 시골에서 쓰던 싸리비를 기억하는 이라면 그의 이 작품이 더 반가울 것이다. 그는 싸릿가지를 일일이 꽂아 고슴도치 털처럼 붙여 반구형 조각을 만들었다. 그것은 마치 태양 같기도, 활짝 피어난 꽃봉오리 같기도 하다. 하찮은 싸릿가지, 더구나 가장 싼 중국산의 그것이 이재효의 손을 거쳐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빛으로 탄생했다. 더없이 순박한 얼굴을 한 그는 사람들을 놀래키는 뜻밖의 재주를 가졌다. 캔버스에 종이를 말아 꽃꽂이하듯 이어 붙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의 실체는 낙엽이고, 구운 도자기 수천 개를 붙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열을 가해 유약 처리한 화투를 캔버스에 붙인 것이다. 당신이 본 것은 진짜 재료가 아니었다는 듯, 관객의 눈을 보기 좋게 교란하고 만다. 그가 숨겨둔 재료 본래의 이야기를 들으려거든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7월 3일까지 <Walking with Nature: 이재효> 전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의 25년 작품 인생을 집대성한 전시로, 큐브미술관은 물론 갤러리808, 야외 공간 등에서 대대적으로 열린다. 작품 수도 풍성하다. 그의 조각이 탄생하기까지의 단서를 읽을 수 있는 드로잉 400여 점, 트레이드마크인 나무와 돌, 못 작업도 함께다. “네모난 형태는 단조롭고 재미가 없어요. 그런데 ‘구(球)’는 조금 찌그러져도 그대로의 멋이 있고,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죠.” 그의 작업에선 유독 ‘구’ 형태가 자주 등장한다. 반구형, 원통형, 도넛형 등 모양도 다양하다. 같은 형태의 것이라도 놓이는 장소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다가온다. 나무나 돌이 가진 에너지를 가장 단순화해서 보여줄 수 있는 장치. 이재효에게 ‘구’는 그런 존재였다. 그러고 보니 그의 집 앞마당을 지키는 호돌이의 집 역시 건물 벽을 동그랗게 뚫은 원형이었다. 개집마저 ‘구’라니.  

 

 

 

1 그의 개인전이 열리는 성남아트센터 전시장엔 작업의 모티프가 되는 여러 가지 오브제가 등장한다. 그중엔 나무도 있다. 2 그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나무토막을 물감 삼아 그림을 그린다. 화투, 낙엽, 못 등 재료 역시 무궁무진하다. 3 나뭇가지를 모티프로 작업 중인 이재효 작가.

 

 

 

성남아트센터 야외 공간에 설치된 이재효의 ‘Wood’ 시리즈. 

 

 

 

철사에 돌을 꿰어 마치 발처럼 천장에 매단 이재효 작가의 ‘Stone’ 시리즈. 이 돌들은 버려진 철길에서 주워온 것들로, 하찮은 돌멩이지만 여러 개가 모이자 묘한 오라를 풍긴다. 성남아트센터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요즘에는 스태프라는 말 대신 테크니션이라고 하죠. 전문 기술자.” 그에게는 함께하는 테크니션이 11명 있다. 거대한 조각 작업을 하는 그의 작업 특성상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구조. 물론 처음 몇 년은 재정적 이유로, 혼자 작업해야 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그의 초창기 작업은 매우 작은 것들뿐이다. 이쯤에서 그에게도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최근 미술계의 논란이 되고 있는, 조영남 얘기다. “그가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더 논란이 커졌죠. 한데 자기 작업을 자기가 다 하면 그게 장인이지….” 개념미술을 넘어 회화도 아이디어가 중요하지 누가 그리느냐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물론 여기에 있어선 작가들마저 의견이 분분하다). “만약 그렇게 했으면 저 같은 경우 힘들어서 벌써 죽었을 거예요. 뭘 할 것이냐가 중요한 거지, 누가 했느냐는 큰 의미 없어요. 줄 하나에 낙엽을 몇 장 끼우고 몇 줄씩 걸어 설치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게 작가의 역할이지. 낙엽은 동네 할머니가 꿰어도 다를 바 없어요.” 그의 작업엔 ‘나’의 이야기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얼마나 고통의 시간을 견뎌 나무를 깎았는지, 철사에 돌을 매달았는지는 그에게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니 그 작업 과정에 담긴 숨은 의도를, 철학을 찾기 위해 괜한 골머리를  썩이는 건 이쯤에서 그만두자. 그저 재료가 던지는 아름다운 에너지를 보고 느끼는 것, 이재효의 작업은 그걸로 족하다.
“이 돌들은 모두 폐쇄된 철길에서 주워온 것들이에요.” 그의 작업실엔 콘크리트 담벼락 대신 야트막한 돌담장이 자리한다. 성남아트센터의 전시장에 매달려 있던 그 돌들과 같은 태생이다. 이미 쓸모를 다한 폐쇄된 철길의 돌. 그는 작업실 옆의 전시장으로 잠시 우리를 이끈다. 긴 철사에 매달린 수많은 돌이 거대한 터널을 이룬 ‘Stone’ 시리즈의 장엄한 풍경. 한낱 돌멩이에 불과한 것들이 아름다움을 넘어 숭고한 오라를 풍긴다. 이 수천수만의 돌이 그려놓은 풍경 속에 ‘바람’이 가미되면 더욱 좋겠다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그는 힘껏 철사 줄 무더기를 위로 끌어 올렸다. 마치 종을 치듯, 철사 줄 무더기를 내려놓자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귀를 사로잡는다. 수많은 돌들이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평온한 속삭임. 그것은 분명 어느 오솔길의 상쾌한 바람이었다. 나무를 자르고, 쇠못을 달구고, 돌을 매달고…. 조각가 아니면 필시 목수나 대장장이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그의 작업실을 뒤로하고 나오는 길. 그가 유려한 달변가가 아닌 것이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그의 작품은 온갖 미사여구는 굳이 필요치 않은, 가장 본연의 자연. 그것이었으므로.  

 

 

 

대학 시절 때부터 모은 오브제들이 그의 공간을 꽉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