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전기 포트에 물을 끓인다. 물 온도는 90℃로 뜨겁게 맞추고, 벨로크의 브렉퍼스트 티를 컵에 담아 진하게 우린다.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다가 얼마 전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가 지겹기도 했지만, 차 특유의 향과 맛이 좋았다. 그리고 커피를 마실 때와는 달리 차를 마신다는 행위에는 무언가 여유 부리는 느낌이 들었다. 커피가 나를 깨워주는 일종의 ‘각성’의 의미였다면, 차는 그보다 여유, 쉼, 건강이 떠오르는 이미지다. 미국의 <포브스>는 차를 마시는 젊은 층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칼럼을 실은 적이 있다. 건강에 대한 젊은 층의 인식이 커지고 있다는 요지였다.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잘 쉬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스타벅스는 2011년부터 로고에서 ‘커피’라는 글자를 지웠다. 그리고 몇 년 전, 스타벅스의 최고경영자 하워드 슐츠는 “티바나라는 차 회사를 6억2000만 달러(약 6543억원)에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티바나는 스타벅스의 손을 거쳐 재탄생되었고, 지난달 시애틀에 공식 론칭했다. 커피 시장에 붐을 일으킨 스타벅스가 차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차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더 대중화될 것임을 방증한다. 

중국은 5천년이 넘는 차 문화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작은 중국이었지만, 제대로 꽃을 피운 것은 유럽에서였다. 유럽의 나라들은 중국의 차와 비단을 주로 수입했고, 차는 왕족과 귀족 사이에서만 누릴 수 있는 고급 문화였다. 그러다 앤 여왕 시대에 영국이 중국과 직접 차 무역을 하면서 시민 사회에도 차 문화가 퍼졌다. 차를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도 생겼다. 지금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트와닝이 바로 그것이다. 트와닝은 1709년 ‘톰의 가게’라는 이름으로 영국 최초로 차 소매업을 시작했다.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좁고 기다란 매장은 당시 남성만 들어갈 수 있는 사교의 장과 같은 공간이었다. 차 문화가 본격적으로 시민들 사이에서 성행한 것은 빅토리아 왕조 시대부터였다. ‘대영제국의 번영기’라 불리던 이 시대에 시민들은 집을 마련하고, 만국 박람회에서 여러 공예품을 접했으며, 가구와 식기를 구입해 자택과 정원을 꾸미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그중 애프터눈 티는 비교적 손쉽게 접할 수 있어 사교계 입문 단계의 코스로 여겨졌다. <홍차 우리는 법> 등의 실용서도 출간되었을 만큼 차에 대한 관심이 컸고, 중산층에서는 간소화된 디자인의 찻잔을 사용하며 애프터눈 티 타임을 즐겼다. 이렇게 동양에 대한 동경으로 시작된 차 문화는 서양의 옷을 입어 가볍고 캐주얼하게 변했다. 그리고 동양에서는 그들의 담박한 차 문화를 동경한다. 카페 문화에 젖은 젊은 세대에게는 정교한 의식에 치중한 동양권의 차 문화보다 TWG에서 차 한잔하는 것이 더 편할 수 있다. 얼마 전, 상하이에 TWG가 열렸을 때,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중국의 차가 유럽으로 흘러 꽃을 피우고, 다시 중국에서 빛을 발하는 게. 

밖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우리나라 역시 다도 문화의 역사가 깊다. 우리나라 녹차 문화는 삼국 시대에 꽃피기 시작했고, 고려 시대 들어 불교와 함께 차 문화 역시 번성했다. 하나 조선 시대에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 문화는 산으로 가거나 도성에서 먼 남도 지방으로 내려갔다. 차 문화 역시 그 행로를 따랐다. 보성, 하동, 제주도에 오래된 차나무가 많은 것도 그 이유다. 이후 1960~70년대에 우리나라 옛 차 문화를 되살리자는 움직임과 함께 잠시 정체기를 겪었던 우리의 다도 문화는 조심스레 다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홍차의 비중이 높은 데 반해, 우리나라는 홍차보다 녹차를 즐기는 이가 훨씬 많다. 녹차가 다른 종류의 차보다 가격대가 합리적이고, 그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인데, 이는 우리나라의 세금 정책과 결부되어 있다. 녹차는 놀랍게도 관세가 500%가 넘는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녹차가 수입되기 어렵다. 다른 차 역시 관세가 비교적 높아 그 가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3배 정도 비싸다.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의 정승호 대표는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차를 만드는 사람들 대부분이 수입 차가 들어오면 국내 시장은 어려워질 거라 생각하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습니다. 질 좋은 차가 들어와야 우리도 개발하고 해외로 수출할 수 있는 판로를 개척할 수 있어요. 지금은 조선 시대에 문호를 닫은 것과 똑같아요. 커피를 예로 들어볼까요? 인스턴트 커피가 90%를 웃도는 수준에서 한국은 지금 6조원 규모의 원두 시장으로 성장했어요. 차 역시 이와 같이 성장해야 합니다.” 통계적으로 차는 커피보다 경제적 수준이 높고, 안정적인 때 빛을 발한다. 커피가 국민 소득 2만 달러에 유행한다면, 차는 3만 달러대 경제 상황일 때 사람들의 관심이 커진다. 그만큼 사람들의 의식과 문화의 수준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차 문화 수준은 이제 걸음마를 뗀 정도다. 스타벅스가 국내에 들어온 지 16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비싼 값에, 허영이라며 비판받았지만, 이제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차는 커피보다 느린 문화인 만큼 더 오랜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자리 잡을 것이다. 현재 국내에는 티 소믈리에가 늘어나고 있고, 자체적으로도 차의 종류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이에 확신을 갖게 한다. 차를 즐기는 행위는 이미 우리 문화 속에 자리매김했기에, 더 오래도록 깊이 남을 수 있을 것이다. 

Advice 정승호 대표(한국 티소믈리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