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코어(Normcore)를 외치며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시대상에 맞게 럭셔리의 개념을 재정의한 때가 바로 엊그제 아니었나. 간사한 패션 피플들은 이제 또 다른 톤으로 ‘하이패션의 역할은 신선한 자극을 선사해줄 (기이하지만) 창조적인 디자인과 애티튜드’라고 외치며 새로운 트렌드를 맞이할 준비에 나섰다.

먼저 요즘 가장 뜨거운 감자인, 베트멍(Vetements)의 디자이너 뎀나 즈바살리아(Demna Gvasalia)를 예로 들어보자. 알렉산더 왕이 떠나고 발렌시아가의 새로운 수장을 꿰찬 그의 이름을 들어본 이가 (패션업계의 사람을 제외하곤) 몇 명이나 될는지. 한 번 들어선 기억하기조차 어려운 이름의 뎀나 즈바살리아는 2014 F/W 시즌에 데뷔한 신예. 성별 구분이 모호하고 해체적이며, 형태가 불분명한 아방가르드한 옷을 선보이는 디자이너가 유행에 민감한 파워풀한 하우스의 디자이너가 되다니! ‘사람들이 원하지만 마켓에서 찾을 수 없는 옷’을 만드는 것을 콘셉트로 한 베트멍의 옷은 지금 파리에서 가장 뜨거운 라벨이다. 벨기에 왕립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마르지엘라와 루이 비통에서 일한 그를 중심으로 동료 8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베트멍은 비슷비슷한 옷이 넘쳐나는 시대에 더없이 참신한 발상으로 패션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얼마 전 선보인 베트멍의 2016 S/S 컬렉션에 대해 뎀나 즈바살리아는 이렇게 정의한다. 

“여러분이 가장 입고 싶어 하는, 약간 쇼킹한 옷입니다”라고 말이다. 베트멍을 비롯해 지금 가장 핫한 아크네, 자크뮈스, 조너선 앤더슨, 후드 바이 에어 등의 젊은 디자이너들 모두 현실주의에 목을 맨, 안전하게 재단한 옷과는 거리가 한참 먼 옷을 만든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5 F/W 시즌,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오버사이즈 실루엣을 선보인 베트멍, 조형적인 비대칭 룩을 내놓은 자크뮈스, 실타래처럼 몸을 휘감은 희한한 아크네의 스웨터가 그랬다. 존 갈리아노 역시 메종 마르지엘라를 위해 최초로 내놓은 레디투웨어 컬렉션에서 천재성이 번뜩이는, 아름답고도 기괴한 옷을 완성했다. 

피에로 같은 메이크업, 새우처럼 굽은 채 꼽추 연기를 한 모델, 주황색 고무장갑 등은 파리 패션위크 최대의 신 스틸러로 떠오르며 ‘놈코어 따위는 가라’고 외치는 듯하다. 한편 단정하고 클린한 룩의 대표 주자 셀린, 스텔라 매카트니를 비롯해 유행에 민감한 수많은 패션 브랜드에서는 소맷부리를 늘어뜨리는 데 합류하며 작은 반란을 꾀했다. 비정상적으로 길거나 나팔꽃처럼 활짝 퍼진 독특한 소매는 마치 손을 꿀꺽 삼켜버릴 듯한데, 과장된 길이와 너비는 움직임을 불편하게 하지만 대단히 특이하고 심지어 쿨(!)해 보인다. 비단 옷뿐만 아니다. 런웨이 위 모델 역시 요정이나 여신들이 지배하던 시대는 지났다. 조금은 이상하고 비대칭적인, 살짝 이상한 외모의 모델이 주목받고 있는 것. 키도 작고 평범한 외모지만 (하라주쿠에서 볼 법한) 핫 핑크 헤어 덕에 루이 비통 쇼에 선 페르난다 리(Fernanda Ly), 거친 반삭발의 헤어스타일로 주가 상승 중인 루스 벨(Ruth Bell), 둥근 만두처럼 생겼지만 칼 라거펠트가 사랑하는 깡마른 몰리 베어(Molly Bair), 수세미를 떠올리는 곱슬머리를 지닌 흑인 모델 리니지 몬테로(Lineisy Montero) 등 정형화되지 않은 외모의 모델들이 패션계를 점령한 것.

누구보다 모델의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는 릭 오웬스다. 2016 S/S 런웨이엔 2인 1조 퍼포먼스 팀이 거꾸로 등에 매달리고, 앞으로 껴앉은 채 관객들 사이를 거닐었다. 모델들은 체조 선수라는 후문. 후드 바이 에어의 디자이너 셰인 올리버 역시 그렇다. 트랜스젠더와 드래그 퀸, 보깅 댄서들을 등장시키며 다리를 들어 어깨 위로 올리기도 하고, 목줄에 매인 동물처럼 무대 위를 거닐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틀에 박힌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지닌 모델이 필요하진 않다. 키와 몸무게, 피부색, 성 정체성도 문제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옷과 어울리는지의 문제다. 올림피아 르탱의 룩북은 어떤가. 모델로 등장한 카미유 비도 와딩턴(프랑스 스타일리스트이자, 영국 록 그룹 펄프의 보컬 자비스 코커의 전 부인)은 귀족적인 옷을 입고 다리를 번쩍 들어 올리거나, 상의를 벗고 계단을 올라가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특한 포즈로 이슈를 모았고, 알렉산더 왕은 군무와 같은 괴기한 보깅 댄스로 SNS에서 큰 주목을 받은 아야 밤비(Aya Bambi)라 불리는 듀오를 광고 캠페인에 기용해 미친 존재감을 발휘했다.  

백스테이지 뷰티 역시 독특함으로 승부한다. 지방시는 FKA 트위그스를 연상시키는 빅토리언 촐라 걸을 위해 사파이어나 루비, 진주 같은 보석을 얼굴에 일일이 붙였다. 여기에 1800년대 유행한 얼굴 패치, 펑크 피어싱, 인도 신부의 장신구, 수염 등을 추가하기도 했다. 릭 오웬스는 모델의 얼굴을 금박지와 은박지로 덮어버렸고, 후드 바이 에어는 (흡사 감옥에 갇힌 수감자들의 모습처럼) 모델의 머리에 비둘기색이나 살색 스타킹을 씌웠다. 준야 와타나베는 수학 방정식 같은 낙서를 모델들의 몸에 그렸고, 아기&샘은 ‘패션을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얼굴에 레고 조각을 산더미처럼 붙였다. 소름이 돋는 한편 우스꽝스럽기도 한 이러한 파격적이고 독특한 메이크업은 길들여지지 않은 폭넓은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대변한다. 

어느 정도의 독특함과 광기가 유일하게 환영받을 수 있는 곳이 바로 패션계다. 성을 알 수 없는 중립 지대의 옷을 만들며 순식간에 LVMH의 왕자로 등극한 조너선 앤더슨이나 찐따에 불과하던 너드(Nerd)를 매력적인 호감 캐릭터로 창조한 알레산드로 미켈레처럼 우리는 ‘독특하고 기발하고 새롭게 느껴지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갈구한다. 단정하고 클린한 옷은 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우리는 이러한 옷을 항상 필요로 하지만 패션이 한 단계 진보하려면 각기 다른 개성과 현실감으로 무장한 혁신적인 흐름도 필요하다. 남들과 똑같지 않은 아이디어는 창의적인 활력소이자 패션계가 끊임없이 소환하는 새로움, 혁신은 사회와 문화에도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