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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바람이 분다

오름에 미쳐, 바람에 홀려, 카메라 하나 메고 그곳의 초원을 헤매고 다녔다. 20년의 외로운 사투. 이제는 영원히 제주의 바람 곁으로 돌아간 김영갑. 그의 비밀 화원에 다시금 바람이 분다.

2015.08.20

 

그는 늘 사람들 속에서 튕겨져 나와 유별나게 살았다. 낮이면 정신없이 초원으로, 오름으로 싸돌아다니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밤이면 찍은 필름을 들여다보는 게 전부였다. 처자식도 없으니 잔소리가 있을 리 만무했고, 작품 팔 걱정은 자연스레 남의 일이 되었다. 사진작가 김영갑. 그는 1985년 뭍을 버렸다. 제주 섬을, 외로움을 택했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 “선이 부드럽고 볼륨이 풍만한 오름들은 늘 나를 유혹한다. 유혹에 빠진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다. 달 밝은 밤에도, 폭설이 내려도, 초원으로 오름으로 내달린다. 그럴 때면 나는 오르가슴을 느낀다.” 바닷가와 중산간, 한라산과 마라도 등 섬 곳곳에 그의 발길이, 그의 흔적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오름과 바다, 들판과 구름, 억새…. 그가 찍지 않은 제주는 없었다. 특히 그는 심술궂은 바람을 좋아했다. “바람은 멀리서 씨앗들을 한 움큼씩 가져와 내게 잘 보이려 아양을 떤다. 나는 그 바람을 품에 안고 사시사철 중산간 초원을 떠돈다.” 그렇게 제주의 바람에 홀려 20년간 바람을 쫓아다녔다. 제주의 바람은 그곳의 눈물이자 한숨의 역사. 그는 온몸으로 그 바람을 느끼고자 했다. 어느 순간 바람은 탐라인에게 들려주던 수많은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주었다. 그의 사진 속 ‘바람’은 제주의 소리 없는, 깊은 세월이다. 

 

 

“중산간 광활한 초원에는 눈을 흐리게 하는 색깔이 없다. 

귀를 멀게 하는 난잡한 소리도 없다. 

코를 막히게 하는 역겨운 냄새도 없다. 

입맛을 상하게 하는 잡다한 맛도 없다.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나는 

그런 중산간 초원과 

오름을 

사랑한다.” 

 

제주 섬사람들이 ‘중산간’이라 부르는 해발 200~600m 지대. 그곳에는 오름이 무려 360여 개나 있다. 그는 매일 놀이터를 가듯, 수행을 하듯, 드넓은 초원을 헤매고 다녔다.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나무에 기대어 구름과 놀았고, 

비바람 심한 날에는 웅크리고 앉아 돌 틈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키 작은 생명을 들여다보며 삶을 생각했다. 

 

 

 

그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훌륭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도 사라졌다.

 

 

지금은 사라진 제주의

평화와 고요가

내 사진 안에 있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던 그였다. 하나 불현듯 찾아온 루게릭병은 그에게 더 이상 사진을 허락하지 않았다. 투병 생활을 한 지 6년, 마흔여덟의 그는 영원히 제주의 바람이 되었다. 후텁지근한 올여름, 그의 푸른 바람이 서울에 당도했다.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오름에서 불어오는 영혼의 바람> 전. 그가 떠난 지 10년 만에 제주 섬 밖에서 열리는 첫 대규모 전시다. 그의 대표작인 파노라마 작품 70여 점, 그중에는 생전에 인화된 작품, 그가 액자 제작에 참여한 작품 등이 포함되어 있다. 9월 28일까지, 제주 오름 자락에 묻혀 지낸 김영갑의 세월과 그가 춤추고 노래하던 비밀 화원의 바람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사라진 평화와 고요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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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오름,김영갑,비밀 화원,제주의 바람,중간산,바람,초원,제주도

CREDIT Editor 설미현 Photo ARA ART CENTER 출처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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