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의 난, ‘상하이’라는 낯선 땅에 떨어진 조난자였다. <보그 코리아> 패션 에디터로 일하던 시절 화보 촬영을 위해 몇 차례 방문했던 상하이. 그 이후 언제가는 다시 여행 올 날이 있겠지 했을 뿐, 이곳에서 살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당시 미국 오리건 주의 포틀랜드에서 살고 있던 나는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다. 남편의 상하이 주재원 발령이 너무 갑작스러웠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것, 출장 가는 것, 사는 것은 극명하게 다른 체험이다. 미국에서의 5년 생활로 체득한 사실이다. 여행과 출장은 내가 선택한 도시의 일면만 보고 떠나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는 것은 나를 그 도시인의 일부로 변화시켜가야 하는, 일종의 성장통이 동반된다. 언어와 문화적 차이와 충돌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행자가 아닌 거주자로서 겪어야 할 상하이는 어떤 신세계일까?

상하이 푸동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중국인들의 성조 높은 억양과 메케한 공기가 가장 먼저 이방인을 맞았다. 당시의 난 중국에 대한 지독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가짜 계란, 멜라민 분유 사태, 납치와 장기 밀매…. 미국에서 접한 중국 관련 뉴스는 그 자체로 호러 무비였다. 난 스스로를 도닥여보았다. ‘여긴 상하이잖아. 상하이는 중국에서 가장 발전한 국제 도시이니,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거야.’ 그러나 예상은 어긋났다. 상하이에서의 첫 6개월은 혼돈의 카오스였다. 시야를 넓게 줌아웃하면, 수천 년 중국의 전통 건축, 20세기 아르데코 빌딩과 하늘로 치솟은 최첨단의 고층 빌딩이 밤마다 화려한 라이트 쇼를 펼치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도시다. 과거, 현재, 미래의 극단적 차이를 이토록 거대한 스케일로 동시에 보여주는 도시가 또 존재할까? 상하이는 지상 위의 신기루이며 엘도라도와도 같다. 그러나 가까이 줌인해 도시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신기루는 산산이 부서진다. 아직 어린 아들을 데리고 횡단보도 건너는 것조차 매일의 도전이었다. 녹색등이 켜져도 차들이 옷깃을 스칠 만큼 가까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지나갔다. 아시아 최대의 이케아 매장 안에선 전시용 침대 위에서 사람들이 코를 골며 자고, 전시용 식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싸온 간식을 먹고 있다. 잘 가꿔진 정원, 공중장소 곳곳의 휴지통, 심지어 고가도로의 안전지대까지 두 눈을 의심할 만큼 거리낌 없는 노상 방뇨가 연출됐다. 수시로 단체 카톡에 오르는 온갖 도시 괴담들로 사람 많은 지역에 아이를 데려갈 때나 늦은 시간에 택시를 탈 때마다 초긴장이었다. 그럼에도 상하이는 이방인의 온 정신을 끌어당기는 마력을 지녔다. 알 수 없는 끌림에 의해 상하이 곳곳을 접하고 상하이니즈들을 점차 알아가며 3년이 지난 지금, 상하이에 한없이 매혹되어 있는 나를 발견하고 놀란다. 

상하이라는 이 기묘한 도시의 정체는 무엇일까? 중국의 제1 상업 도시이지만 중국이 아닌 듯한, 아시아 최대 국제 도시이지만 아시아에 속하지 않은 듯한 상하이. 내가 보는 상하이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적인 세계다. 그 강렬한 존재감은 ‘상하이니즈’들로부터 시작된다. 상하이니즈들에게 “당신은 차이니즈인가요?”라고 물어보면, 그들은 때로는 강조하듯, 때로는 단호하게 “전 상하이니즈입니다”라고 대답한다. 또 상하이니즈들은 단 두 사람만 모여도 바로 상하이어로 말해서, 상하이어를 모르는 타지방 중국인을 다소 당황스럽게 한다. 상하이어는 부모와 가족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워야 하는 언어이기에, 자신이 오리지널 상하이니즈임을 드러내는 그들만의 아이덴티티라 할 수 있다. ‘상하이어 배우기’ 팟캐스트가 중국 팟캐스트 12위를 차지할 만큼 타지방 중국인들의 상하이어에 대한 관심도 높다. 상하이에서 경험하게 되는 일부 중국인의 비상식적인 행동에 대해서도 그들은 “상하이니즈들은 그러지 않는다. 지방 사람들이 상하이에 몰려들어와 상하이를 망가뜨린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한 상하이니즈 친구에게 ‘베이징 여자와 상하이 여자의 차이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상하이니즈들 사이에서도 돋보이는 세련된 멋쟁이인 그녀는 우아하면서도 힘 있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베이징 여자들은 대담하며 직선적으로 드러나는 미를 추구하지만, 상하이 여자들은 우아하며 절제의 미를 지닌다.” 그녀는 메이크업만으로도 베이징 여자인지 상하이 여자인지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베이징 여자들은 다소 진한 풀 메이크업을 하지만, 상하이 여자들은 편안하고 프레시한 내추럴 메이크업을 즐긴다. 그렇게 수세대를 거쳐 또는 적어도 부모 세대부터 상하이에서 태어나고 자란 ‘상하이니즈’들의 자존감은 ‘뉴요커’와 ‘파리지엔’을 뛰어넘는다. 역사적으로 ‘상하이니즈’들은 닝보, 쓰조우 같은 상하이 인근 도시에서 올라온 이들이 많다. 내륙인에 비해 일찍부터 서구 문명을 접한 그들은 북부 중국인들이나 베이징인에 비해 공산국가임에도 부르주아적 기질을 지니며, 그들만의 스타일을 창조해가며 스스로를 ‘상하이니즈’로 차별화시켜왔다. 

무지했던 나는 중국인으로 보이는 이들에게 “당신은 차이니즈인가요?”라고 묻곤 했다. 그러나 그것이 실례임을 알았다. 한 상하이니즈 친구는 그 질문은 내가 “당신은 북한인인가요?”라는 질문을 받는 것과 같은 강도라 했다. 이보다 더 명백한 비유가 있을까? 나의 무례를 깨달은 후 난 ‘당신은 어디 출신인가요?’를 물어본다. “타이와니즈예요”, “싱가폴리언이에요”, “홍콩인이에요”, “상하이니즈예요”…. 그들 사이에서도 ‘상하이니즈’의 자존감은 도드라진다. 같은 중화문화권이지만 타이완, 싱가포르는 별개의 국가이며, 홍콩 역시 중국에 반환되기 전까지 독립적인 국가였으니 당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하지만 상하이는 중화인민공화국에 속한 도시가 아닌가! 

이방인을 당혹케 하며, 동시에 혼돈스러운 사랑에 빠져들게 하는 상하이는 흡사 요부와도 같다. 좀처럼 입을 다물 수 없는 상하이의 화려한 외형, 상하이니즈들이 일군 거대한 부, 중국인들이 ‘천지개벽’이라 표현하는 상하이의 경이로운 발전이 이방인을 사로잡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에서 특집으로 방송되는 중국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 중국은 그저 일확천금의 땅, 상하이는 거대한 소비의 도시로만 비춰지는 듯하다. 하지만 상하이에서 살아가며 나는 수많은 편견을 깨왔고, 무지한 건 바로 나였음을 배웠다. 적어도 내가 만나고, 느낀 상하이는 섬세하고 감성적이다. 앞으로 내가 소개하고 싶은 상하이도 먼저 ‘요부’라 표현했듯 상하이의 여성적인 내면일 것이다. 아마도 상하이에 중독되는 이방인들은 거대한 스케일에 압도되었다기보다, 혼란스러운 듯 섬세한 상하이의 이면에 빠져드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