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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후에 오는 것들

제주로, 남도로, 그 어떤 꿈의 시골로? 시골로의 이주가 트렌드가 될 만큼 서울, 더 정확하게는 도시를 떠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은퇴와는 거리가 먼 젊은 도시 남녀의 이주. 사연과 목적지는 달라도 그들에겐 꿈이 있다. ‘지금과는 다른 삶!’ 과연 떠나면 행복해질까?

2015.04.15

 

어느 날 문득, 바로 그 순간,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마치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 속 주인공처럼. 그러나 하던 일을 멈추고 그대로 밖으로 나가 정처 없이 떠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여행도 그러한데 하물며 생업을 작파하고 완전한 이주를 꿈꾼다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보는 일탈과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
나 역시 무모하고 엉뚱하게 떠났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즉흥적인 이런 발상을 과연 실행에 옮겨도 괜찮을지 머릿속에서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거듭 반복했고, 지금의 내 삶이란 사실 수많은 우주의 시간 속에 극히 작은 일부분일 뿐이며, 경험해보지 못한 삶이 실제로는 그토록 꿈꾸며 찾아온 이상적인 삶의 완성일 가능성에 대해 거듭, 거듭 고민해본 결과, 왠지 딱 지금이 떠나야 할 타이밍이었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소설책을 집었더니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였고, 언제부터 책장에 있었는지 존재조차 잊고 있던 소로의 <월든>에 손이 가기 시작하면 더는 고민도 힘들어진다. 우주적인 존재가 나에게 떠나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떠나야만 하는 것은 어쩌면 나의 DNA에 저장되어 있는 운명이라고. 그렇게 힘들게 고민할 무렵 아내에게 말했더니 의외로 찬성한다. 그럼 가야지.

 

갑작스럽지만 충분히 주위에 널리 알리고, 서울을 떴다. 아마도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면서 이삿짐을 쌌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각자 십수 년간 일해온 출판업과 대학에서의 강의 생활을 던져버린, 결혼 2년 차 신혼부부의 선택에 주변은 아연실색했지만, 뭐 그렇다고 티 나게 말린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서울의 삶이 누구에게나 예측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랬을 것이다. 점점 더 책은 안 팔릴 게 분명하고, 물가는 더욱 오를 것이고 생활은 팍팍하고 힘들어질 것이라는 예언 같은 확신. 그렇게 서울을 떠나면서 함께 버렸다. 복잡함, 버스카드, 직장을. 그리고 제주로 오면서 얻으리라 기대했다. 단순함, 로맨틱, 성공적?
서울을 떠나 제주로 내려왔다. 해가 뜨면 눈이 떠지고, 해가 지면 하루를 마감하는 단순함. 출근을 하지 않으니 하루가 그렇게 길다는 데에 놀랐다. 차를 타고 가다가 코너를 도니 갑자기 바다가 보일 때는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만하면 성공적인가? 그럴 리가 없다. 버린 것은 주섬주섬 다시 찾아야 한다. 단순한 삶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을 때나 단순한 법. 적응을 하고 나면 어느새 복잡해진다. 직장을 버렸지만 새로운 장소에서 해야 할 익숙지 않은 일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심지어 버스카드조차도 다시 챙겨야 한다. 여행과 그곳에서의 생활은 종이 한 장 차이이며, 일상적이지 않은 것 또한 익숙해지면 일상으로 돌아간다. 동사무소 직원들이 하와이언 셔츠를 입고 일한다고 피서지의 관광객 느낌이 나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는 과감히 떠났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제주로의 이주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자고 나면 늘어 있는 이주민의 러시 속에 무언가 금세 바뀔 것처럼 언론은 시끄럽지만, 제주에서의 삶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호들갑스러운 뉴스 속에 가려진 진실, 즉 내려오는 이주민보다는 적겠지만 적응에 실패하고 떠나는 역이민자의 수 역시 만만치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아직까지는 제주에 적응할 수 있는 자만이 남는 것이다. 적자생존이라고나 할까. 문제는 제주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이 괴산이든 평창이든, 해남이든 울릉도든 마찬가지다. 문제는 우리가 서울을 떠난 순간부터 발생한다. 서울이라는 곳은 떠나기 전에는 미처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편리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택배라는 것은 사오 일 만에 오고, 가구나 깨지기 쉬운 상품은 알아서 주문 취소되며, 왕복 100km 떨어진 극장에서는 보고 싶은 영화가 어제 종료되었는데 주변에 다른 극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애써 상상해보라. 서울을 떠나는 순간 이것은 현실이 된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꿈을 찾아 떠난다고 모두가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떠났지만 그곳이 원하는 곳이 아닐 수도 있고, 떠났다고 했는데 실은 떠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사는 곳이 바뀐다고 삶이 저절로 달라지지는 않는 것이다. 삶이라는 것은 억척같이 변하기를 거부한다. 존재는 시골마을의 구성원으로 흙을 밟고 있지만 삶의 방식은 여전히 도시적 라이프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에게 농사는 고사하고 텃밭조차 우습게 봤다가는 골병들기 십상이다. 때때로 우리는 어리석게도 도시에서는 시골을 바라고, 시골에서는 도시를 꿈꾸는 우를 범한다. 주변에 없는 것이 더 커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어디에서도 행복할 순 없을 것이다.
이쯤에서 쐐기를 박자. 마루야마 겐지는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에서 구급차를 기다리다가 목숨이 끊어질지도 모르는 곳이 시골이라 했다. 과연 이 정도 각오는 하고 시골에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 새삼 감탄했다. 이런 불편함이 시골의 핵심이다. 오지 않는 AS 기사를 기다리기보다는 기꺼이 공구를 들어야 한다. ‘도시인’에서 ‘시골인’이라는 좀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바뀌어야 한다. 요즘 인기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캐릭터에 비유해보자. 그것은 최현석이 요리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신동엽처럼 주방 기구를 잡기 시작하고, 마침내는 차승원처럼 삼시세끼를 해먹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 정도로 스스로 해내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굳이 불편한 곳에서 살 의미가 없다.
자, 그럼 이 모든 시골 생활의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재도마저 멋져 보이면 어떡해야 할까. 그 순간이야말로 우주적인 존재가 귓가에 속삭이는 것이다. DNA 어쩌고 하면서. 그러면 당신의 아내 또는 남편에게 말해야지.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함께 맥주잔을 부딪치며 시골살이의 즐거움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쓴 강병한은 잡지 기자, 출판사 편집장을 하다가 돌연 제주로 귀촌, 오렌지다이어리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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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제주도,강병한,이주,트렌드,시골인

CREDIT Editor 설미현 Photo 일러스트레잍터/LA AENG 출처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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