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기억나는 오래된 드라마가 있다. 지난 2007년 MBC에서 방영한 <고맙습니다>다. 사실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극 중에서 배우 장혁의 차로 나온 인피니티 FX 시리즈만 또렷이 기억난다. ‘SUV의 루프라인이 어쩌면 저렇게 유려하게 떨어질 수 있을까?’
이듬해 1월 한 단계 아래 등급인 EX 시리즈가 국내에 들어왔다.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출시였다. 몸집만 작아졌을 뿐 그릴과 숄더, 루프라인 등 FX의 쿠페 스타일은 여전했다. EX는 2009년 일본에서 닛산 스카이라인 크로스오버로 팔리기도 했다. ‘스카이라인’이라는 이름만 봐도 EX가 어떤 성격의 차인지 알 수 있다. EX를 비롯해 주행 성능을 강조하는 인피니티의 대부분 모델은 FM(Front Midship) 플랫폼에서 생산된다. 프런트 엔진 구조지만 엔진을 최대한 뒤로 배치해 무게 배분을 50:50에 가깝게 만들려는 의도다.
지난 2014년 인피니티는 대대적으로 모델명을 개편했다. EX는 QX50이란 새로운 이름을 얻고 인피니티 SUV 라인업의 선봉장을 맡았다. 그리고 2016년형은 길어졌다. 이전 모델보다 차체 길이는 110밀리미터, 휠베이스는 80밀리미터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실내 공간은 235리터가 증가했고, 2열 레그룸은 늘어난 차체 길이만큼 넓어졌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단순한 연식 변경인데 왜 굳이 실내 공간을 넓혀 새로운 라인업을 추가로 만들었을까?’ QX50이 작다면 FX의 다른 이름인 QX70도 있는데 말이다.

사실 라인업을 바꾸거나 추가한 게 아니다. 인피니티는 모델명을 바꾼 2014년부터 중국 시장을 겨냥한 롱휠베이스 모델을 팔고 있었다. 처음엔 모든 차를 일본에서 생산해 수출했지만 현재 중국 내수 물량은 현지 공장에서 만들어 충당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 QX50의 뒷자리가 좁다는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QX50은 EX일 때부터 애초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카이라인’은 그래도 됐었다. 하지만 이제 QX50의 타깃은 더 넓어졌고 고객의 요구도 많아졌다. 인피니티는 중국 시장만을 위한 특혜를 전 세계로 확대했다.
신형 QX50은 최고출력 329마력의 힘을 내는 3.7리터 V6 VQ 엔진을 얹었다. 최저 지상고가 165밀리미터로 낮아 실제 운전을 해보면 SUV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시원시원하게 출력을 뽑아내는 고성능 GT카에 가깝다. 휠베이스가 길어져 코너링이 조금 걱정이었지만 50:50에 가까운 무게 배분과 아테사 E-TS AWD 시스템이 차체를 꽉 잡아주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실내 공간이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그래픽은 요즘 나오는 차답지 않게 구식이다. 센터페시아의 아날로그 시계는 의도에 맞게 좀 더 고급스러워질 필요가 있다. 대시보드의 마감도 플라스틱이 아닌 고급 우레탄이나 가죽을 쓰면 더 좋았을 것이다. 뒷자리는 공간만 넓어졌을 뿐 실용성은 여전히 제로다. 도어에 커다란 스피커 대신 수납공간이 더 절실해 보인다.
인피니티 코리아는 지난 4월 열린 ‘디자인 나이트’에서 세단과 SUV의 균형 있는 성장 계획을 발표했다. 지금 가장 잘나가고 있는 Q50뿐만 아니라 QX50과 QX60도 챙기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올해 4월까지 인피니티는 총 1326대를 팔았는데 그중 905대가 Q50 2.2d로 전체 판매량 중 68퍼센트를 차지한다. 같은 기간 QX50은 총 48대에 그쳤다. 인피니티는 대중적인 수요를 위해 QX50의 허리를 늘리는 용단을 내렸다. 과연 연말에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게 될까?

SPECIFICATION

기본 가격 5090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AWD, 5인승, 5도어 왜건 엔진 V6 3.7ℓ DOHC, 329마력, 37.0kg·m 변속기 7단 자동 공차중량 1840kg 휠베이스 2880mm 길이×너비×높이 4750×1800×1615mm 복합연비 8.3km/ℓ CO₂ 배출량 215g/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