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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고양이에게 있었다

나는 서울이 싫었다. 나는 마산에서 나서 자란 뒤 사춘기 시절에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2016.06.23

 

나는 서울이 싫었다. 나는 마산에서 나서 자 란 뒤 사춘기 시절에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마산은 부산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인구 50만의 작은 항구도시다. 1980년대 초 우리는 바닷가 옆의 5층짜리 신식 아파트에서 살았다. 나는 바다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며 일어났고, 바다 위로 떨어지는 해를 보며 잠이 들었다. 동네 뒤로는 일본식 적산 가 옥이 가득했다. 마음이 울적해질 때면 나는 적산 가 옥이 줄을 이어 서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 마산만을 바라보며 몇 시간이고 앉아 있곤 했다. 

 

중학교에 올라간 해 우리 가족은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토박이가 많은 마산과 달리 부산은 뜨내기가 많은 메트로폴리스였다. 도시는 복잡하고 사람들은 불친절했다. 사투리도 달랐다. 사근사근하고 여성스 러운 마산 사투리와 달리 부산 사투리는 격하고 무 례하고 드셌다. 그래도 괜찮았다. 바다가 있었기 때 문이다. 아파트 담장 너머로 바다가 보이던 마산 집 과는 달랐지만, 마음이 답답할 땐 언제든 시내버스 를 타고 광안리나 해운대에 갈 수 있었다. 친구들과 남포동을 걸으면 고층 빌딩 사이로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배어들었다. 혀를 굴리면 입안에서 바다 맛 이 났다. 바다가 있는 도시라면 어디든 좋았다. 갑갑 한 산으로 둘러싸인 채 좁은 강 따위에 만족하며 사 는 서울 생활은 꿈도 꾸지 않았다. 

 

집에서 가까운 대학교를 들어갔을 때도 계획은 있 었다. 어차피 한국은 답답했다. 바다를 보며 자란 나 는 어떻게든 바다 끝으로 나가보고 싶었다. 어쩌면 아버지 때문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무역선 선장이었 다. 아버지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면 나는 그가 남기고 간 사진첩을 뒤지곤 했다. 굉장했다. 케이프 타운과 희망봉, 파나마 운하, 뉴질랜드. 거기에는 아 버지가 있었고, 또 이상향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유독 지리를 좋아했다. 동아출판사에서 나온 백과사 전의 ‘세계지리’ 편을 낱낱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읽 었다. 고3 때까지 나는 세계 모든 국가의 수도를 암 기하고 있었다. 누군가 ‘에티오피아!’를 외치면 ‘아디 스아바바!’라는 대답이 절로 튀어나왔다. 

 

나는 결국 바다를 건넜다. 캐나다에서 영어를 공부 했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영국으로 갔다. 영국에서 돌아와 잡지사에 취직했을 때도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무실에 앉아서 글을 쓰다가도 문득문득 속이 갑갑했다. 악질 같은 황사로 비염을 얻었을 땐 연신 누런 코를 풀어내며 서울을 저주했다. ‘반드시 떠나겠다.’ 이를 바득바득 갈며 오피스텔에 앉아서 악담을 퍼부었다. 오피스텔은 떠날 사람들을 위한 집이다. 모든 것이 옵션이고 붙박이다. 옷가지만 챙겨서 훌쩍 떠나면 그건 더 이상 내 집이 아니었다. 보험도 적금도 들지 않았다. 떠날 사람에게 미래를 보장하는 금융 상품은 필요하지 않다. 

 

30년 이상 치밀하게 구상한 나의 도피 계획은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산산조각이 났다. 지진과 해일로 사라진 무대륙처럼 가라앉았다. 사실 나는 고양이를 키울 생각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었다. 고양이란 동 물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반려동물로 키울 수 있 다는 상상도 해본 적 없었다. 하지만 2008년 가을 상수동 골목에서 만난 고양이는 그런 나의 사정 따 위는 봐주지 않겠다는 듯 대범하게 내 품으로 뛰어 와 내 다리에 제 몸을 휘감고 울었다. 나는 당황했다. 고양이가 얼른 제 갈 길로 가주기를 바랐다. 고양이 는 독심술이 없다. 나는 고양이를 안은 채 골목에 서 서 30분 넘도록 고민했다. 답은 나왔다. 나는 고양이 를 키울 수 없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한국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털 뭉치’ 따위가 미래의 걸림돌이 되 도록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도망치듯 집으로 갔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밤새도록 고양이가 떠올랐다. 그릉. 그릉. 그릉. 처음 들어본 고양이의 그릉거리는 소리가 달팽이관을 울렸다. 나는 다음 날 퇴근하자 마자 홍대 골목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도착한 순 간 고양이도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정말이다. 내 고 양이는 하얀 버선발을 하고 있다. 어쩔 도리 없었다. 운명이라 생각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배우는 이 런 말을 했다. “사랑을 어떻게 준비하니. 사랑은 교 통사고 같은 거야.” 그랬다. 그건 교통사고 같은 거 였다. 나는 안전벨트를 맬 시간도 없었다. 문제는 교통사고 같은 사랑이 그렇듯이, 그날이 내 인생을 완 전히 바꾸어버렸다는 사실일 것이다. 

 

고양이가 집에 들어온 지 이틀이 되던 날, 나는 이 대 담무쌍한 고양이가 복층 계단을 오르내리며 즐거워 하는 꼴을 쳐다보다가 생각했다. ‘복층이라서 얼마 나 다행이람. 고양이를 키우기엔 정말 딱이잖아.’ 믿 을 수가 없었다. 내가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모든 것 이 옵션이어서 언제든지 훌쩍 떠날 수 있기 때문이 었다. 그런데 고작 고양이 따위가 뛰어놀기 좋은 계 단이 있어서 기쁘다며 팔불출 같은 웃음을 짓다니. 게다가 고양이는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온 노매드적 삶의 가장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게 분명했다. 에어 컨과 벽걸이 TV는 팔아치우고 떠날 수 있지만 고양 이는 그럴 수 없다. 평생을 업고 가야 하는 존재다. 갑자기 숨이 막혔다. ‘아폴로 13’호에 갇혀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우주 비행사가 된 기분이었다. ‘휴스턴. 우리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휴스턴.’ 

 

2년 뒤 나는 방 3개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 고양이가 들어갈 수 없 는 거대한 옷 방이 있어야 했다. 둘째, 고양이 털 때 문에 심해지는 비염을 고치기 위해서는 앞 베란다 와 뒤 베란다 창을 열면 강바람이 집 안 구석구석 훑 고 지나가는 고층 아파트여야 했다. 셋째, 고양이가 마음껏 뛰놀 수 있을 만큼 넓어야 했다. 아파트로 이 사 간 해 나는 보험을 2개, 적금을 하나 가입했다. 그 러고는 석양과 강바람이 들어오는 베란다에 앉아 무 릎 위의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꽤 살만하 네.’ 서울이 마침내 내 도시가 되기 시작한 순간이었 다. 그리고 8년이 지났다. 나는 종종 고양이의 눈을 들여다본다. 크리스털처럼 빛나는 고양이의 눈은 끝 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닮았다. 결국, 내가 그토록 원 하던 바다는 바로 여기 있었다. 

 

about 김도훈은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이자 먹어주는 글발로 유명한 영화 칼럼니스트이며 <스타워즈>의 한솔로에서 이름을 빌려온 고양이 ‘솔로’와 함께 사는 애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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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반려동물,애묘인,고양이

CREDIT Editor 김도훈 Photo 이성범 출처 東方流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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