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 많고 맛도 좋은 햄버거 세트 를 패스트푸드점에서는 7900원에 판다. 반면 수제버거 전문점에서는 그다지 배부르지 않은 양의 버거가 1만2000원 한다. 게다가 감자나 음료는 따로 사야 한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거나, 숫자에 기반을 둔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라면 전자가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수제버거 전문점에도 꽤 많은 사람이 찾는다. 왜일까? 그들이 단지 주머니 사정이 좋다거나 저렴한 상품을 절대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가치를 추구한다. 위의 사례에서 본다면 수제버거를 찾는 소비자는 건강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매장의 분위기가 좋아서 일 수도 있다.

자동차 소비자도 비슷하다. 일정 가격 이상의 제품, 즉 프리미엄 자동차라는 카테고리의 소비자라면 가격적인 합리성에만 얽매이지 않는다. 그들은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가치’에 더 집중할 줄 안다. 쟁쟁한 프리미엄 럭셔리 대형 세단 가운데 재규어 XJ L 3.0D를 선택하는 소비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시승차인 XJ 3.0 롱휠베이스 프리미엄 럭셔리의 가격은 1억4600만원이다. 같은 값으로 메르세데스 벤츠 S 350D L(V6 3.0 디젤, 258마력, 1억4280만원)을 포함해 BMW 730LD X드라이브(직렬 6기통 3.0 디젤, 265마력,1억4160만원), A8 L 50 TDI 콰트로(V6 3.0 디젤, 258마력, 1억4190만원)까지 경쟁차종 모두가 범위에 들어온다.

재규어 이기 때문에 가능한 도발적인 제안이다. 그렇다면 자신감 넘치는 XJ 3.0D L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내 생각으로는 ‘적극적으로 운전할 수 있는 차’라는 것이다. 대형 롱 휠베이스 세단을 타면서 뒷좌석뿐 아니라 운전석까지 자연스럽게 소화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이 세그먼트에서는 드물다. 반면 XJ는 휠베이스가 긴 대형 세단이라고 고리타분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보닛 아래 3.0리터 V6 디젤 터보 엔진은 300마력을 발휘한다. 경쟁자보다 높은 출력이다. 엔진은 최대토크(71.4kg·m)를 2000rpm부터 토하며 무게가 2톤에 달하는 자동차를 가볍게 이끈다. 자료에 따르면 XJ 3.0D L의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기록은 6.2초다.

운전 감각은 독특하다. 독일 대형 세단의 절제된 감각이 아니라 오히려 스포츠 세단처럼 생생하다. 그렇다고 차를 완전히 조여놓은 것도 아니다. 스티어링 반응은 나긋나긋하고 하체는 적당히 흐느적댄다. ‘재규어 스타일’이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다. 차폭이 1900밀리 미터에 달하지만 운전이 거추장스럽지 않다.

보통 휠베이스가 긴 차일수록 민첩한 코너링이 어렵다. 반면 XJ는 이런 부분을 잘 해결했다. 급하게 말리는 코너에서도 앞바퀴가 접지력을 충분히 만들며 차체를 이끌고, 전자식 디퍼렌셜이 뒷바퀴 좌우로 토크를 나눠 안정적으로 궤적을 그린다. 연속된 코너에서도 차의 크기와 무게 때문에 휘청거리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이런 안정적인 주행 감각은 운전석뿐 아니라 앞뒤의 모든 시트에서도 느낄 수 있다.

뒷자리로 자리를 옮기면 운전석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선사한다. 좌우는 시트 모두 독립된 엔터테인먼트 기구와 테이블, 안마 의자를 갖춘다. 10.2인치 HD 스크린을 통해서 영화나 TV(HDMI, USB 단자 지원)를 시청할 수 있다. 운전석을 제외한 3자리 모두 무선 헤드폰을 지원하는 것도 특징이다. XJ는 트림에 따라 380, 825, 1300와트급 메리디안 디지털 사운드 시스템을 제공한다. 이 중 825와트 이상에서는 단순히 또렷한 소리를 넘어 대단히 입체적인 음향을 만들어낸다. 멀티 EQ 사운드 이퀄라이제이션으로 7.1채널 서라운드 기능을 지원하기 때문이다(스피커 20개와 2개의 서브우퍼 사용). 이처럼 XJ는 4개의 좌석(뒷좌석 가운데는 빼자)이 각자의 목적을 충실히 달성한다. 시장에는 특정 좌석을 강조한 차가 많다. 휠베이스가 긴 대형 세단이라면 보통 뒷좌석에 초점을 두기 마련이다. 반면 XJ처럼 앞뒤 전체에 신경 쓴 차는 많지 않다. XJ 3.0D L가 추구하는 가치도 그 부분에 있다.

SPECIFICATION

기본 가격 1억4600만원(프리미엄 럭셔리) 레이아웃 앞 엔진, RWD, 5인승, 4도어 세단 엔진 V6 3.0ℓ DOHC 디젤 터보, 300마력, 71.4kg·m 변속기 8단 자동 공차중량 2000kg 휠베이스 3157mm 길이×너비×높이 5225×1900×1460mm 복합연비 12.1km/ℓ CO₂ 배출량 159g/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