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메라는 4년 전, 중국 상하이 파이낸셜센터 94층에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최고의 차에 걸맞은 최고 높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세상의 주목을 끌었다. 전무후무하게 무지막지한 출시를 기획했던 것은 이 차에 대한 포르셰의 기대감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파나메라에 대한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을 부정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카이엔이라는 SUV가 굴러다니는 것도 마뜩잖게 생각하던 포르셰 골수 팬들이 엔진은 보닛 밑에 두고 문짝을 네 개나 단 대형 세단이 나온다는 데 땅을 치며 통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나메라는 2009년 6188대를 시작으로 2010년 2만3482대, 2011년 2만8218대 그리고 지난해에는 2만7731대를 팔았다. 게다가 “911보다 안정적으로 잘 달린다”는 시장의 반응까지 이끌어내며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을 말끔히 씻어냈다.

 

 

E파워와 E차지 버튼. E파워 모드에서는 배터리가 충전돼 있을 경우 모터로만 주행한다. E차지 모드는 운행 중 엔진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로 모터를 발전기 삼아 배터리를 충전한다.

 

 

지난 4월 상하이 모터쇼에서 포르셰는 4년 만에 파나메라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선보였다. 하지만 부분 변경 모델이라고 하기에는 개선된 부분이 너무 많다. 얼굴에 선 하나 새기거나 전구 몇 개 박아 넣고는 부분변경 모델이라고 이름 붙이는 차들이 점점 많아지는 요즘이라 더 크게 부각된다. 무엇보다 파나메라 롱 휠베이스 버전인 이그제규티브 모델과 포르셰 최초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인 파나메라 S E-하이브리드도 함께 선보여 더욱 돋보인다. 독일 현지에서 치른 포르셰 최초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방식 파나메라와 배기량을 줄인 신형 파나메라의 시승 기억을 전한다.

 

 

차체 곳곳에는 애시드 그린 컬러가 들어가 있다. 브레이크 캘리퍼, 계기반, 트렁크 해치의 모델 엠블럼까지. 하반기에 출시될 918 스파이더에도 적용되는, 하이브리드 포르셰의 상징 색이다.

 

 

파나메라 S E-하이브리드
 

파나메라 S 하이브리드의 국내 공인연비는 리터당 10.9킬로미터였다. 으레 하이브리드 차라고 하면 마지막 주유소 방문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못하게 해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이 통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파나메라 S 하이브리드의 경제성은 썩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었다. 물론 차의 제원 표를 보면 “연비 향상이 아닌 더욱 파워풀한 차를 만들기 위해 하이브리드를 택한 것”이란 포르셰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긴 한다. 380마력이라는 합산 최고출력도 높지만 합산토크 59.1kg·m가 1000rpm부터 나온다는 것은 터보 S라도 기대하기 어려운 성능이어서다.

 

하지만 모터를 돌릴 때의 이질적인 주행감각 탓에 ‘오리지널 포르셰’의 주행감각에 익숙한 마니아들에게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파나메라 S E-하이브리드는 기존 S 하이브리드에서 느꼈던 이질감을 크게 줄였다. 그리고 연비는 리터당 33킬로미터 이상으로 세 배 이상 향상됐다. 시승 기간에 파나메라 제품 개발 담당 부사장 게르노트 될너 박사는 1.4리터로 100킬로미터를 주행한 기록까지 세웠다. 기술적인 진보의 핵심은 전기모터와 배터리의 성능 향상이다. 

 

기존 S 하이브리드에 쓰였던 모터 (47마력) 대비 두 배 이상 출력이 향상된 신형 모터 (95마력)를 사용해 전기모터만으로 시속 135킬로 미터까지 달릴 수 있고 6.1초 만에 시속 50킬로미터까지 가속이 가능하다. 또 용량이 1.7킬로와트에 불과했던 니켈수소 배터리도 9.4킬로와트짜리 리튬이온 배터리로 바꿨다. 보쉬에서 공급받는 이 배터리는 삼성전자에서 배터리 셀을 납품한다.

 

 

파나메라 4S 이그제큐티브

 

상하이 모터쇼에서 만났던 이그제큐티브 모델은 길어도 너무 길어 눈살이 찌푸려졌다. 911 허리를 늘려 4인승을 만든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 허리를 더 잡아 늘렸다니 개탄할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이 싹 바뀌었다. 늘어난 15센티미터 휠베이스 중 13센티미터가 레그룸을 넓히는 데 쓰인 까닭에 뒷자리는 말 그대로 광활하다. 게다가 등받이 조절 각도까지 크게 늘어나 뒤로 눕다시피 앉을 수 있다. 또 한 가지 추가된 기능은 에어 서스펜션이다.

 

‘네 자리 중 어느 자리에 앉건 포르셰를 느낄 수 있는 차’라는 파나메라의 원래 콘셉트는 유지하면서도 엉덩이와 등에 느껴지는 잡스러운 노면의 질감은 걸러준다. 앉으면 눕고 싶다더니, 이렇게 넓고 편해진 파나메라 뒷좌석에 앉고 나니 찌푸렸던 인상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이 정도면 당연히 뒷자리에 앉아야 할 차라는 소리를 듣고도 남는다. 기존 파나메라 고객들의 원성이 높았던 소프트 클로징 기능도 적용해 도어를 닫을 때 끄트머리에서 스르륵 끌어당긴다. 품격의 완성이다. 국내 출시는 올 하반기다.

 

 

파나메라 S

 

포르셰의 다운사이징?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너만은 믿었는데’ 하는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더욱 씁쓸한 것은 배기량을 줄인 게 중국 때문이란 소문이 있어서다. 중국은 차 배기량이 3000cc이상 되면 세금이 엄청 비싸지는 까닭이다. 제원상으로 개선의 폭은 크다. 20마력 출력 상승에 연비는 18퍼센트 좋아졌다. 하지만 머리로는 좋아졌다는 게 이해되면서도 가슴이 더 뛸 것 같지가 않다. 실린더 8개에서 혼합기가 터지는 소리와 6개에서 터지는 소리는 차이가 클 거란 생각에서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건대 오히려 파괴력이 더 강해졌다. 연거푸 계속되는 산자락 꼬부랑길에서 운전대를 이리저리 꺾어도 좀처럼 뒤가 흐르질 않는다. 전에도 이랬나 싶을 정도로 잘 돌아나간다.

 

짧아진 엔진이 캐빈 쪽으로 더 바짝 달라붙어 무게배분에 유리해졌고, 새 엔진의 실린 더 뱅크 각도가 90도여서 기존 뱅크각 60도짜리 V6 엔진보다 무게중심도 현저하게 낮다. 5.1초라는 ‘제로백’을 느껴보고 싶지만 좀처럼 가속페달을 깊게 밟을 수가 없어 애만 탄다. 그런데 뒤에 앉은 동승자는 “911 타다가 파나메라 타니까 천국이 따로 없네”라며 꾸벅꾸벅 존다. 기가 막히다. 국내에는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