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 그릴 89년 볼보 역사상 처음으로 세로 그릴을 적용했다. 더불어 로고도 바뀌었다. 미래를 위한 새로운 여정의 표식이다.

 

보는 지금 디자인 황금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그들은 과장된 요소나 치장을 배제하고 차분하고 단순한 선과 면으로 매력적인 디자인의 자동차를 만든다. 일본차처럼 복잡한 라인에 자극적인 디자인도 아니고, 중국 시장을 겨냥한 독일차처럼 크롬 사용량을 늘려 시각적 자극을 꾀하지도 않는다. 지극히 정직하고 심플하다. 그런데 심심하거나 단조롭지 않다. 참 오묘한 디자인이다. 

 

볼보는 이를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이라고 한다. 다분히 추상적이지만 개념은 간단하다. ‘차분하고 자연스러우면서 실용적인 것을 추구한다.’ 그 주된 이유는 바로 ‘인간을 위함’이다. 다시 추상적인 표현이 등장했지만 이 또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요즘 차들은 어떻게든 돋보이려 한다. 그래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과감하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채용한다. 눈을 찢어 요상한 모양을 만들고 입술에 피어싱한 것처럼 블링블링 치장을 한다. 예리하고 날카로운 선들이 차체 곳곳을 휘감는다. 이런 디자인은 분명 시선을 끈다. 이전에 보지 못한 자극이니 당연하다. 하지만 그 시선은 너무 많은 생각과 의견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그 차를 누가 타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인간보다 차가 더 돋보이기 때문이다. 

 

‘차는 그냥 서 있어도 인간을 배려해야 한다.’ 이게 볼보가 인간을 대하는 디자인 철학이다. 인간보다 차가 돋보이는 건 차가 인간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상황이다. 그래서 볼보는 복잡한 디자인 대신 간결하되 모나지 않고 단순하되 단조롭지 않은 디자인을 추구한다. 그렇게 차로 인해 인간이 돋보이도록 한다. 볼보의 배려다. 

 

볼보의 신형 XC90이 그렇다. 이 차는 뚜렷하고 명확한 존재감보다는 인간에 대한 고결하고 숭고한 존중을 담고 있다. 처음 보았음에도 친근하고 친화적이며 얼음 결정처럼 깨끗하고 깔끔하다. 이런 디자인은 실내에도 이어진다. 탑승자를 주눅 들게 하지 않고 차분하고 정갈하다. 신선한 세로 레이아웃의 9인치 스크린 덕분에 센터페시아가 깔끔해졌다. 수많은 버튼과 다이얼로 센터페시아를 가득 채운 여느 차들과는 사뭇 다르다. 스크린도 치장을 줄이고 한눈에 보기 쉽고 편한 구성과 색감이다. 

 

정갈한 센터페시아를 만들기 위해서만 큰 터치스크린을 단 것은 아니다. 탑승자의 편의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볼보 역사상 처음 등장한 이 시스템은 에어컨 및 엔터테인먼트, 자동차 설정 등 거의 모든 걸 컨트롤할 수 있다. 스크린을 세로로 세운 것은 내비게이션 지도를 볼 때 더 많은 경로를 확인하고 위아래 스크롤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360도 카메라 영상에서도 차체를 더 크고 명확하게 볼 수 있다. 구조적 설계 때문에 피치 못해서 한 게 아니라 뚜렷한 목적을 세로로 만든 것이다. 스마트폰과 사용 환경이 비슷해 사용도 쉽다. 버튼이 작으면 키울 수 있고 구성이 익숙지 않다면 레이아웃을 바꿔도 된다. 적외선 필름을 덧붙여 장갑을 낀 상태에서도 사용할 수 있고 지문 방지 처리를 해 아무리 많이 만져도 지문이 남지 않는다. 이런 건 스마트폰이 배웠으면 좋겠다. 

 

 

인체공학 시트는 1~3열이 모두 높이가 다르다. 덕분에 뒤에서도 개방감이 좋다. 2열 가운데에는 볼보가 최초로 개발한 어린이용 부스터 시트가 장착됐다. 3열에도 편의를 위해 모두 개별 시트를

적용해 착좌감을 높였다. 1열 시트에는 마사지 기능이 들어가고 2열에는 230볼트 전원장치가 있다.

 

대형 스크린 덕분에 버튼이 없어지면서 소재 질감을 살린 센터페시아가 됐다. 특히 스크린을 감싸고 있는 알루미늄 테두리 질감이 고급스럽다. XC90은 소재 질감으로 고급스럽고 편한 실내 분위기를 만든다. 대시보드와 도어패널, 센터스택에 자리한 우드 트림은 모두 스웨덴의 북극권에 가까운 숲에서 왔다. 가혹한 환경에서 강인하게 다듬어져 독특한 패턴을 지닌 나무다. 반면 가죽은 기후 좋고 평화로운 스코틀랜드에서 왔다. 부드럽고 내구성이 좋다. 모든 가죽은 스웨덴에서 손바느질로 마무리한다. 

 

디자인만이 볼보가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원동력은 아니다. 이 차의 실내에는 ‘인간을 얼마큼 윤택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진중한 고민과 사려 깊은 기술들이 곳곳에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클린존(Clean Zone) 기술이다. 

 

볼보는 공기의 질이 삶의 질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공기는 인간의 생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XC90에는 클린존이라는 외부공기 정화시스템을 달았다. 리모컨 키를 눌러 도어 잠금을 해제하면 실내에 오래 머물렀던 공기를 실외로 배출한다. 실내로 유입되는 공기의 질도 지속적으로 감지해 유해물질이 있을 경우 재순환 시스템이 유해물질을 제거한다. 시스템이 꺼져 있을 때도 공기 중 배기가스 미립자, 먼지, 꽃가루 등을 다중 필터로 제거한다. 냄새와 오존도 없앤다. 이 시스템은 터널을 지날 때도 공기 유입을 막아 고농도 배기가스로부터 탑승자를 보호한다. 깨끗한 공기는 건강에도 좋지만 신체에 활기를 불어넣고 집중력을 향상시킨다. 볼보는 이렇게 함으로써 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믿는다. 

 

 

 

오디오 시스템에서도 신중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볼보는 좋은 음질이 심신의 피로를 줄인다고 믿는다. 인간은 매일 차를 탄다. 길게는 하루에 3시간 이상 타는 이도 있다. 1주일에 5일을 운전한다고 치면 주당 15시간을 차에 있는 셈이다. 그 시간 동안 좋은 음질의 음악을 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심적인 피로와 스트레스에서 얼마큼은 자유로워졌다는 뜻이다. 볼보는 이런 생각으로 오디오 시스템을 설비했다. 그러다 보니 스피커의 개수가 늘었다. 공랭식 서브우퍼와 앰프까지 총 19개의 바우어스 앤 윌킨스 스피커가 들어갔다. 출력이 무려 1476와트다. 좋은 소리를 위해 차음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이중접합 유리로 외부음을 차단하고 엔진과 캐빈 사이에 두툼한 차음벽을 쳤다. 차체 밑에서는 노면상태를 체크할 수 있을 정도의 소리만 올라온다. 모든 소리를 다 차단하면 운전자의 인지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나도 XC90의 음질에 매료돼 차에 더 있고 싶을 정도였다. 

 

 

 

론 인간을 위한 첫 번째 중요 덕목은 안전이다. 볼보는 “2020년까지 볼보차를 타고 사망하거나 심각하게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많은 기술이 XC90에 들어갔다. 그 핵심은 충돌을 피하거나 최소화하는 ‘인텔리세이프.’ 이 시스템은 주행 중 사고 발생 요인이 감지되면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아 충돌을 막거나 충격을 줄인다. 인텔리세이프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인간, 자전거, 동물도 감지하며 교차로에서도 작동한다. 

완전하진 않지만 XC90에는 자율주행 기술도 들어갔다. 시속 130킬로미터 이하에서 차선과 앞차를 인식해 스스로 조향하며 속도를 조절한다. 직접 체험해보니 신기하면서도 편했다. 일찍이 이런 경험이 없어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시스템은 완벽하게 작동했고 불안한 마음은 조금씩 사그라졌다. 이제 내비게이션과 연동돼 좌회전이나 우회전을 하고 신호등이나 표지판 등을 인지하면 완벽한 자율주행차가 되는 것이다. 

 

 

89년의 볼보 역사는 안전을 위한 역사였다. 인간이기에 부주의할 수 있고 그 부주의한 부분에서 볼보는 수많은 생명을 지켰다. 그런 볼보가 XC90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아이언 로고를 발표했다. 볼보가 인간의 미래를 위한 진보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는 의미고 그 여정의 시작이 XC90인 셈이다. 그리고 새로운 여정의 목적지는 교통사고와 운전으로부터 인간을 완벽하게 해방시키는 것이다.  

볼보는 이제 인간의 부주의를 대신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고 운전대를 돌려 사고를 피하는 차를 만들고 있다. 이미 상당한 기술이 XC90에 들어갔다. 또 ‘불완전한 인간을 언제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연구 결과는 결국 자동차가 운전을 대신하는 것으로 굳어지고 있다. 인간을 운전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은 인간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의미도 있지만, 불완전한 인간이 사고를 발생시키는 걸 막기 위함이다. 이 또한 생명의 존엄을 위한 대처다. 이미 상당 부분 진척됐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스스로 운전하는 XC90에서 꿀처럼 달달한 음악을 들으며 마사지를 받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차가 날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