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드리프트 멋지지 않은가? 이곳에 가면 누구나 이런 파워드리프트를 할 수 있다.

 

1 깨끗한 공기
스웨덴 아르비스야우르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아주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침투했다. 공기가 워낙 차가워 가슴이 약간 따끔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상쾌함을 느낀다. 여기는 공기가 아주 깨끗하다. 이곳에서 있다가 서울로 돌아오면 공기가 비릿하게 느껴진다.

 

 

 

2 어마어마한 눈
허리춤까지 푹푹 빠지는 눈을 본 적 있는지. 이건 신기함을 넘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여기는 진짜 설국이다. 아직도 스웨덴의 아름다운 설경이 눈에 아른거린다.

 

 

 

3 폭스바겐 골프 R
골프 R의 292마력을 오로지 미끄러트리는 데 쓰는 건 정말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292마력이 폭주할수록 슬라이딩 거리는 길어지고 쾌감은 배가 된다. 엔진을 온전히 컨트롤하도록 모든 시승차는 수동변속기다. 그래서 더 짜릿하다. 엔진이 변속해달라고 애원할 때면 차를 온전히 컨트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혹여 시동을 꺼트려도 걱정 없다. 골프 R 수동변속기는 스스로 시동을 걸어준다. 안타깝게 골프 R 수동변속기는 국내에 판매되지 않는다.

 

 

 

4 스노모빌
추가 요금을 (약 27만원) 내면 스노모빌을 타고 스웨덴의 설경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다만 강한 체력이 필요하다. 체력만 받쳐준다면 2시간 동안의 스노모빌 스웨덴 여행이 즐거울 것이다. 하지만 체력이 안 되면 아주 힘들다.

 

 

 

5 드리프트
살면서 드리프트를 몇 번이나 해보겠나. 그런데 여기서는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것보다 옆으로 가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 어렵지도 않다. 그립력이 낮아서 뒤가 잘 흐르기 때문이다. 관건은 드리프트를 유지하기 위해 액셀링을 세심하게 해야 한다는 것. 눈보라를 일으키며 파워드리프트를 할 때의 쾌감과 성취감은 정말 끝내준다.

 

6 오로라
북극에서 130킬로미터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곳은 운이 좋으면 오로라를 볼 수 있다. 우리도 기대를 많이 했다. 매일 밤 오로라를 보기 위해 밤하늘을 살피고 스마트폰 앱을 돌려 오로라 지수를 확인했다. 하지만 컴퓨터 바탕화면과 같은 오로라는 볼 수 없었다. 밤 12시 즈음 내 방에서 컵라면과 소주를 홀짝이다가 문득 창밖을 봤는데 희끄무레하면서 어슴푸레한 것이 하늘에 있었고 카메라를 찾는 사이 사라져버렸다. 그게 오로라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 없으나 우린 오로라였다고 믿기로 했다.

 

 

 

7 스터드 타이어
국내에서 스터드 타이어를 경험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스터드 타이어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도로 파손 방지와 운전자 및 보행자 안전이 목적이다. 그런데 스웨덴에서는 모든 차가 스터드 타이어를 끼우고 다닌다. 우리가 타는 골프 R도 모두 스터드 타이어를 끼우고 있었다. 스터드 때문에 승차감이 엉망이 아닐까 싶었는데, 일반 타이어와 별 차이 없었다. 오히려 고무가 야들야들해 더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8 스칸디나비안 플릭
국내에는 <이니셜 D> 애니메이션 때문에 ‘관성 드리프트’라고 많이 알려졌는데 유럽에서는 ‘스칸디나비안 플릭(Scandinavian Flick)’이라고 부른다. 90도 이하의 급코너를 빨리 돌기 위한 고급 기술인데 폭스바겐 스웨덴 아이스 어드벤처에서 배우고 익힐 수 있다. 방식은 이렇다. 코너가 급하고 폭이 좁은 곳에서는 드리프트로 코너를 돌기 어렵다. 앞바퀴가 먼저 그립을 잃고 언더스티어가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너 전부터 드리프트를 유지한 상태로 코너에 진입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즈가 코너 반대쪽이 되도록 뒤를 흘린 뒤에 코너 앞에서 다시 반대로 뒤를 흘려 코너에 들어간다. 좌우로 한 번씩 뒤를 흘리기 위해서는 정교한 컨트롤과 빠른 스티어링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드리프트를 유지하는 감각이다. 이건 정말 글로 표현하기 힘들다. 직접 해봐야 한다.

 

 

 

9 쿼드
둘째 날은 얼음호수 위에서 쿼드를 탄다. 오프로드 타이어를 끼워서 접지 면적이 작아 아주 잘 미끄러진다. 그래서 언더스티어가 많이 나는데 이 언더스티어를 제어하기 위해 일부러 뒤를 흘린다. 그래야 더 빨리 달릴 수 있다.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건 아니다. 차체 모멘텀을 유지하는 데 좋은 훈련이다. 물론 재미도 있다.

 

 

 

10 택시 드라이브
마지막 날 밤 인스트럭터 로니가 운전하는 차에 동승한다. 그는 몇 년 전까지 리버스 턴 파킹 기네스북 보유자였고 현재는 랠리크로스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미끄러지는 차는 롤러코스터 따위의 놀이기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하다.

 

 

 

헤르만 틸케의 작품 F1 서킷 디자인의 대가가 설계한 코스다. 길고 넓고 흥미진진하다. 4박 5일 동안 초급부터 고급자 코스까지 주야장천 미끄러진다.

 

11 헤르만 틸케
헤르만 틸케는 서킷 디자이너다. 한국 영암 서킷을 비롯해 중국 상하이, 터키 이스탄불, 바레인, 말레이시아 세팡 등 1990년대 이후 건설된 F1 서킷은 모두 그가 디자인했다. 서킷 설계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가인데, 그가 폭스바겐 스웨덴 아이스 드라이빙 어드벤처의 얼음호수 트랙을 디자인했다. 호수 위에는 호수 전체를 사용하는(총 8.5킬로미터) 대형 서킷부터 채 1킬로미터가 되지 않는 작은 것까지 다양한 형태와 패턴을 지닌 서킷이 존재한다. 수준별 맞춤 훈련이 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서킷마다 독특한 특징을 지니는데, 어떤 것은 고속 드리프트가 가능하도록 완만한 각도를 이루는가 하면 어떤 것은 뒤를 좌우로 흔들면서 드리프트를 유지하도록 유도한다. 얼음호수의 특성과 다양한 변수까지 계산해 그린 서킷은 달리면 달릴수록 감탄할 수밖에 없다. 역시 대가는 다르다.

 

헤르만 틸케가 얼음호수의 특성과 다양한 변수까지 계산해 그린 서킷은

달리면 달릴수록 감탄할 수밖에 없다. 역시 대가는 다르다.

 

 

 

12 순록 스테이크
스웨덴에는 순록이 많고 사람들은 그 순록을 먹는다. 순록 스테이크는 소고기보다 약간 질기지만 누린내가 없고 달달한 육즙이 풍부해 꽤 맛있다. 연어 스테이크도 아주 훌륭하다.

 

 

 

그리울 거다. 그 겨울의 골프 R
<모터 트렌드>의 폭스바겐 스웨덴 아이스 드라이빙 어드벤처 독자 초청 이벤트를 보고 그저 ‘꼭 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가능성 따위는 생각지 않았다. 그리고 떠오르는 생각을 다이어리에 적어놓고 마감에 임박해 가까스로 응모했다. 당첨 전화를 받았을 때는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한 달 후 나는 진짜로 스웨덴 하늘을 날고 있었다.
비행기는 빙판에서도 우아하게 착륙했다. 도착하자마자 얼음호수 트랙을 돌았다. 운전대를 이리저리 돌리다 보니 내가 진짜 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하지만 이튿날 쿼드를 타면서 차의 눈길 움직임을 좀 더 직관적으로 체험했다. 이론과 더불어 브레이킹, 가속 등을 연습하고 점점 골프 R과 친숙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인스트럭터의 차에서 정답에 가까운 주행을 보았고 일대일 교육도 받았다. 동승자의 운전도 지켜봤다. 여긴 오직 운전에만 집중하는 시간이다.
코너링은 진입 전 충분히 감속하고 스티어링휠을 돌리고 차체가 방향을 찾고 바퀴를 정렬하면 그때 가속한다. 하지만 정교하게 설계된 트랙은 머리로만 알아서는 빠져나올 수 없다. 지식에 경험과 빠른 판단을 버무려 코너마다 집요하게 인사이드를 공략해야 한다. 드리프트는 한 방법일 뿐. 코너를 생각대로 클리어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그 미소가 다가올 코너에 대한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제동이 늦거나 적절한 라인으로 진입하지 못하면 여지없이 눈에 처박힌다. 그러면 세이프티카(투아렉)에 질질 끌려나올 수밖에 없다. 운전 실력이나 차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물리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다. 나중엔 거의 도를 닦는 심정으로 코너를 돌아나갈 때마다 초심을 유지하려고 했다.
참가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누구도 랩타임이나 코너링을 자랑하지 않았다. 오롯이 자신과의 싸움임을 알기 때문이다. 인스트럭터는 처음보다 마지막 날 실력이 10~20퍼센트 늘었다고 느끼면 된다고 했다. 전과 비교해 드리프트가 잘 되고 랩타임 1초 줄어들 때 기뻤다. 남과 비교해서는 결코 얻어지지 않는 희열이다. 그러다가도 땀에 젖은 몸으로 차에서 나오면 부족함만 느껴졌다. 모두가 매 순간 집중했고 진지했다.
한국에 돌아오니 많이들 궁금해 한다. “재밌어 보이는데 실제 얻는 게 뭐야?” 글쎄, 골프 고성능 버전을 수동기어로 경험한 것 자체가 값지다. 그리고 혹시 운전하면서 그립을 잃어버린 위급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경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대처에서 차이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스노모빌로 눈을 헤치며 본 경이로운 풍경, 함께 거닌 스웨덴의 밤거리, 바쁘게 인생길을 달리던 이들이 먼 이국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나눈 이야기 모두가 스웨덴 아이스 어드벤처의 일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초대해준 <모터 트렌드>와 폭스바겐 코리아에 감사한다. 영원히 잊지 못할 시간이 될 것 같다.
문영익(<모터 트렌드> 이벤트 당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