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도 자동차 업계는 핵심 부품을 곧잘 공유했다. 나아가서는 자동차 자체를 공유하는 때도 종종 있었다. 다만 그 방식과 이유가 달랐을 뿐이다. 대부분은 수직적인 관계에서 이뤄진다. 다시 말해 한쪽으로만 제품이 흘러간다는 의미다. 특정 회사가 개발한 제품을 다른 회사가 사서 엠블럼만 바꾸는 리배징(Rebadging)이나 계약을 통해 직접 생산하는 라이선스 생산이 그랬다. 선진국 시장에서 수명이 다한 모델의 생산 설비를 개발도상국으로 옮겨서 저렴한 신모델로 부활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볼보와 미쓰비시가 같은 공장에서 S40과 카리스마(수출 전략형 중형차)를 쌍둥이 모델로 생산하고, 푸조-르노-볼보가 V6 2.8리터 PRV 엔진을 공동 개발한 것처럼 공평한 관계에서 진행되었던 사례도 많다. 현대자동차와 크라이슬러, 미쓰비시가 공동 출자해 설립했던 엔진 전문 회사 GEMA(Global Engine Manufacturing Alliance)도 같은 맥락이다. GEMA는 이후 크라이슬러와 현대차에 쓰이는 4기통 2.4리터 엔진을 만들었다. 이렇듯 이전에는 차 전체 또는 엔진처럼 값비싼 부품을 혼자 개발하고 생산하기 어려운 회사들이 협력에 의지했다. 하지만 지금의 자동차 산업 구조는 21세기 초반과는 상당히 많이 달라졌다. 자동차 설계와 생산 기술도 급변하고 자동차 회사 사이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커졌다. 미국과 일본 브랜드들이 주춤하는 사이 독일 브랜드가 중심을 잡으며 유럽세를 강하게 펼쳤다. 이런 변화가 결국 자동차 브랜드의 나눠 쓰기 전략과 형태도 바꾸었다.

 

 

 

1 # Case
모듈형 플랫폼 공유 모델의 폭발적 증가

자동차 브랜드의 나눠 쓰기 형태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모듈형 플랫폼이다. 플랫폼은 차의 기술적 바탕이 되는 기본 구조다. 이전에는 플랫폼의 제한이 많았다. 한 플랫폼 위에 세단이나 왜건 등 차체 형태만 달리하는 정도의 변신이 가능했다. 또는 크로스오버 SUV 정도의 변형 개조가 전부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플랫폼이 여러 개의 모듈로 이루어져 변화를 주기 쉽다. 모듈 사이의 거리나 형상을 바꾸거나 일부 모듈을 삭제할 수도 있다. 그래서 활용성이 좋다. 모듈형 플랫폼이 대세가 된 이유다. 유연하게 변경할 수 있는 모듈형 플랫폼을 추구한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의 플랫폼에서 더 많은 종류의 모델을 생산하겠다는 의미다. 같은 뿌리를 갖는 모델들이 그만큼 많아진다.

현재 모듈형 플랫폼은 과거 플랫폼 전략이 발달했던 서유럽에서 가장 활발하게 사용된다. 대표 주자는 폭스바겐 그룹이다. 원래 계획에서는 가로 엔진용 MQB, 세로 엔진용 MLB 플랫폼 두 가지를 통해 매해 1000만대에 달하는 차를 생산하려 했다. 폭스바겐, 아우디, 세아트, 스코다 등 주요 브랜드 모델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포르쉐가 폭스바겐 그룹의 일원이 된 지금은 MSB 플랫폼(고성능 후륜구동용)이 하나 추가된 대신 MSB와 MLB의 장점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서 서로의 호환성이 더욱 커졌다.

유럽과 일본 사이의 통합이었던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도 주도적 입장인 르노의 영향을 받아 모듈형 플랫폼으로 발전하고 있다. CMF(Common Module Family)라는 이름의 플랫폼은 C, D 세그먼트의 CMF-CD를 선두로 소형차를 위한 CMF-A와 CMF-B로 진화 중이다. CMF-CD 플랫폼에서 태어난 차들 가운데 닛산 캐시카이와 르노삼성 SM6는 이미 우리나라에 소개됐다. QM5 후속 모델도 CMF-CD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다.

BMW 그룹은 다임러 벤츠 그룹이나 폭스바겐 그룹과 비교하면 몸집이 작은 것이 언제나 문제였다. 그래서 몸집을 불리기 위해 노력했다. 로버를 인수했다가 실패했고 미니도 브랜드만 건져서 모든 모델을 새롭게 만드는 곤란한 지경이 됐다. 게다가 시장에는 아우디를 필두로 메르세데스 벤츠까지 A~C 세그먼트 소형차로 공략 중이다. 그러니 미니뿐만 아니라 BMW 브랜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비교적 생산량이 적은 BMW 그룹으로서는 새로운 소형 플랫폼으로 만드는 데 비용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프리미엄 브랜드에 걸맞은 기능과 품질도 보장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플랫폼 전략의 선택은 필연적이었다. 가장 먼저 등장한 플랫폼은 미니와 BMW의 소형 모델이 공유하는 UKL(Untere Klasse)였다. 미니의 새로운 세그먼트 진출작인 컨트리맨, BMW의 첫 앞바퀴굴림인 2시리즈 액티브 투어러, 그리고 콤팩트 크로스오버 X1이 함께 사용하는 UKL2 플랫폼이 대표적이다. BMW는 자율주행 시스템 같은 고가의 복잡한 시스템을 공유하기 위해 고급 모델들에도 모듈형 플랫폼 전략을 쓴다. 그 시작이 신형 7시리즈의 35up 플랫폼이었다.

한편 메르세데스 벤츠도 4개의 플랫폼으로 모든 모델을 생산한다. 앞바퀴굴림 콤팩트 모델은 모두 MFA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고, 뒷바퀴굴림은 MRA, SUV는 MHA, 고성능 모델은 MSA 플랫폼으로 정리된다.

 

 

 

2 # Case
그룹 내의 플랫폼 공유 강화

유럽의 피아트 그룹과 미국의 크라이슬러 그룹은 자신의 주 전공을 새로운 방향에서 찾지 않았다. 이들은 확연히 다른 성격의 기업과 기업을 연합시키며 완전히 새로운 결과를 창출했다. 소형차와 프리미엄 모델에 강한 FCA 소속 브랜드와 SUV, 픽업 같은 유틸리티 모델이 강한 크라이슬러 그룹 소속 브랜드를 이어주는 것이었다. 이들이 서로 잘 도울 수만 있다면 커다란 시너지를 거둘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전혀 다른 분위기의 브랜드가 기술적 공유점을 찾아갔다. 첫 작품은 크라이슬러 그룹의 부족한 세단 라인업과 크로스오버 SUV에 이탈리아의 플랫폼을 사용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알파로메오 줄리에타가 사용하는 피아트 콤팩트 플랫폼은 휠베이스를 늘려서 미국용 콤팩트 US 와이드 플랫폼으로 발전했다. 이 플랫폼에서 태어난 모델은 크라이슬러 200 세단과 닷지 다트, 그리고 콤팩트 크로스오버 SUV인 지프 체로키 등이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오리지널인 이탈리아 모델은 소개되지 않은 채 크라이슬러 200과 체로키만 선보였다.

 

 

 

3 # Case
성형수술한 쌍둥이

 

얼마 전 피아트는 전설적이었던 124 스파이더를 새롭게 부활시켰다. 이 차는 마쓰다의 MX-5를 기반으로 제작된다. 이런 리배징 사례는 과거에는 적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매우 드문 일이다. 하지만 리배징은 나름대로 성공 가능성이 높다. 스바루가 차의 대부분을 만들고 토요타가 직분사 엔진을 더해 내놓은 토요타 86·스바루 BR-Z 프로젝트가 다른 브랜드의 리배징 또는 성형수술 모델의 가능성을 되살려냈다.

124 스파이더와 MX-5는 기본 섀시부터 실내 분위기까지 거의 똑같다. 하지만 두 모델은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서로 다른 전략을 취한다. 124 스파이더가 약간 고급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래서 124 스파이더는 원형인 MX-5와 차체 외부 패널을 전혀 공유하지 않는다. 좀 더 커지고 화려해졌다. 하지만 덩달아 무게가 약 50킬로그램 무거워지며 경량 로드스터로서 적잖은 페널티를 갖게 됐다. 엔진도 달라져야 했다. 2리터 자연흡기를 사용하는 MX-5와 달리 124 스파이더는 피아트 500 아바스(Abarth)에 쓰이는 1.4리터 터보 엔진을 쓴다. 비록 최고출력은 160마력으로 MX-5보다 5마력밖에 높지 않지만, 토크와 토크밴드는 큰 차이를 보인다. 또 변속기의 기어비와 최종 감속비를 변경해서 두 차의 성격을 최대한 다르게 만들도록 노력했다.

 

 

 

 

 

4 # Case
전략적 제휴

다임러 그룹과 르노-닛산 연합의 기술제휴는 가장 광범위하고 강력한 전략적 제휴다. 좁게는 엔진 공유부터 넓게는 생산 공장의 합작 설립까지 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이다. 그들의 첫 작품은 르노 트윙고와 스마트의 공동 개발이다. 공동 개발 후 2인승 포투는 프랑스의 다임러 공장에서, 4인승 포포와 르노 트윙고는 슬로베니아의 르노 공장에서 생산된다. 향후 출시될 스마트 전기차는 르노의 구동부와 스마트의 배터리 시스템을 사용한다. 다임러 그룹과 르노-닛산의 전략적 제휴는 효과적인 선택이다. 수익성을 꾀하기 어려운 소형차 개발비를 분담하고 생산 비용과 친환경 모델에 부담을 서로 나누는 것이다.

엔진 공유 계획도 눈에 띈다. 르노가 공급하는 1.5리터 디젤은 A 클래스 등 소형차에 쓴다. 1.6리터 가솔린은 A 클래스를 시작으로 넓게는 C 클래스까지 사용된다. 이번에 한국에 출시한 A 200의 엔진이 바로 이것이다. 물론 반대로도 공유한다. 메르세데스가 공급하는 2리터 가솔린과 2.1리터 디젤은 인피니티에 사용된다. 메르세데스 벤츠 C 200d와 인피니티 Q50 2.2d가 같은 엔진을 쓰는 이유다. 또 다른 공동 프로젝트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MFA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인피니티의 콤팩트 모델 개발이다. Q30 해치백과 크로스오버 SUV QX30이 주인공이다. 이 경우는 거의 전적으로 메르세데스 벤츠에 개발을 의뢰하는 형태다. 그 외에도 닛산은 북미 시장을 위해 다임러의 2리터 터보 직분사 엔진을 공동 생산할 예정으로 공장을 설립했다. 더불어 다임러의 9단 자동변속기 사용권에 합의한 상태다. 에디터/김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