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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마세라티는

강한 개성과 희소성에 기대어 살던 마세라티가 기블리를 앞세워 더 넓은 세상으로의 출가를 선언했다. 신모델이 연이어 나왔고 판매가 크게 늘었다. 그러다 최근 다시 주춤하다. 나온다던 신차는 소식이 없고 판매량은 감소했다. 그들은 르반떼 출시에 다시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런데 그 SUV가 나오면 정말 형편이 나아질까? 오늘부터 당장 달려야 하는 거 아닐까?

2016.03.29

 


콰트로포르테가 보편적인 코드로 보다 넓은 고객층에 접근하면서 마세라티도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21세기는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눈부시게 약진했다. 포르쉐가 카이엔을 발판 삼아 놀라운 성장을 기록했고, 3대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어느덧 연간 판매 200만 대를 노리고 있다. 프리미엄 시장의 엄청난 성장은 전적으로 이들 독일 기업의 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부류도 있다. 마세라티다. 비록 판매량은 독일 브랜드들에 크게 떨어지지만 파장은 결코 작지 않다. 아주 적은 생산량과 희소성을 무기로 특정 계층을 상대하던 브랜드가 본격적인 자동차 시장에 진출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 시도는 한국에서도 똑같이 이뤄졌고, 일단 성공적이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출발
지난 2012년 마세라티는 연간 5만 대를 팔겠다고 공언했다.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가능 여부도 미지수였지만 그렇게 판매량을 늘리면서도 브랜드 가치를 지켜낼 수 있을까 미심쩍었다. 게다가 마세라티가 보유한 모델들이라곤 우렁찬 사운드와 진한 향기의 최고급 천연가죽으로 상징되는 고전적인 럭셔리 GT(그란투리스모 패밀리)와 세단형 콰트로포르테뿐이었다. 캐릭터가 뚜렷한 화려한 귀족 감성 때문이었을까? 마세라티의 연평균 판매량(6000대 수준)은 같은 집안의 형인 페라리보다 적었다. 2012년 전체 판매량도 6288대에 그쳤다. 이듬해 마세라티는 신형 콰트로포르테를 선보였다. 중국 시장을 겨냥해 S 클래스만큼 커진 콰트로포르테는 이전보다 보편적인 코드로 보다 넓은 고객층에 접근했다. 그 결과 2013년 마세라티는 1만5393대 판매로 1년 만에 두 배가 넘는 성장세를 보였다. 2014년은 더욱 극적이었다. 이번엔 마세라티 기블리를 통해 오랫동안 비워뒀던 유럽 E 세그먼트 시장에 진출했다. 독일 프리미엄 3사의 E 클래스와 5시리즈, A6가 장악하고 있던 시장. 쉽지 않은 승부였다. 하지만 마세라티 판매량은 또다시 기록을 경신했다. 그해 전체 판매량 3만6448대로 전년 대비 140퍼센트에 육박하는 성장세를 기록했다. 2년 전에 비하면 무려 480퍼센트나 성장한 것이었다. 2015년에 5만 대를 팔겠다는 계획도 당연한 얘기처럼 들렸다.


한국에선 성장세가 더 강했다. 신형 콰트로포르테를 선보인 2013년 마세라티 판매량은 115대였다. 그랬던 것이 이듬해 5배 이상 성장한 723대로 껑충 뛰었다. 그리고 지난해엔 1000대를 넘겼다. 2년 만에 거의 10배의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이에 발맞춰 한국에 마세라티코리아를 설립한다는 FCA의 발표가 이어졌다. 급격한 성장의 주역은 역시 기블리였다. 기블리는 한국과 세계 어디서든 마세라티 전체 판매의 6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주력 모델로 단번에 자리 잡았다. 더 큰 시장으로 진출한 효과를 본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조정기일까? 경험 미숙일까?
손쉽게 5만 대를 돌파할 것 같던 마세라티의 전 세계 판매량은 지난해 오히려 줄어들었다. 전년 대비 11퍼센트 감소한 3만2474대였다. SUV 모델인 르반떼가 당초 계획보다 1년 늦어진 2016년 출시되는 것과 중국 시장 경기 악화로 콰트로포르테 판매가 저조했던 것이 표면적인 이유로 발표됐다. 르반떼의 출시 연기는 분명 판매량에 악영향을 미쳤다. 또한 중국 시장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몸집을 키운 콰트로포르테에 중국의 경기 침체는 당연히 심각한 문제다.


르반떼 출시 지연과 같은 단기적 문제는 신모델이 출시되면 해결된다. 세계적인 경기 후퇴는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산업이 겪는 천재지변적 요소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전략상의 문제가 더 컸다고 봐야 한다. 바꿔 말해 흐름의 단절이다. 마세라티는 선망의 대상이지만 실제 구매를 고려하는 계층은 좁았던 브랜드다. 이런 브랜드가 공격적으로 시장을 개척하려면 먼저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는 신모델이 있어야 한다. 동시에 잠재 고객층을 넓히기 위한 지속적인 홍보도 수반돼야 한다. 콰트로포르테는 2013년 1월에, 기블리는 같은 해 4월에 선보였다. 르반떼는 2년 만에 출시되는 신제품이었다. 그런 차의 출시가 연기됐다. 홍보만으로 고객의 시선을 붙잡아두기엔 이미 한계에 다다른 셈이다. 르반떼는 2011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된 쿠뱅 콘셉트의 시판용 모델이다. 양산에 무려 5년이나 걸린 셈이다. 관심을 지나치게 오래 유지시키면 피로도가 가중된다. 설상가상 교체가 시급한 그란투리스모의 후속 모델(알피에리)은 출시가 2017년 이후로 연기됐다. 이 같은 연쇄적 출시 연기는 브랜드의 안정성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악영향이 된다.


한국은 다행스럽게도 지난해까지 성장세를 유지했지만 세계적으로는 2015년 판매량이 감소했다. 중국 시장과 콰트로포르테의 약세가 주요 요인이라는 마세라티 본사의 설명도 찜찜하다. 판매 데이터에서 다른 경향이 보이기 때문이다. 바로 기블리의 판매 둔화다. 기블리는 2014년 마세라티 전체 판매에서 70.8퍼센트를 차지했다. 이 비중은 지난해 68.5퍼센트까지 떨어졌다. 둔화됐다던 마세라티는 오히려 25.2퍼센트에서 28.2퍼센트로 비중이 커졌다. 전체 판매량이 약 11퍼센트 감소한 걸 감안하면 기블리의 실제 판매량은 거의 15퍼센트나 줄어든 셈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소식도 있었다. 2014년 하반기 교대조까지 추가 투입하면서 생산량을 늘렸던 토리노의 지오반니 아넬리 공장이 지난해 3월부터는 주당 교대를 12회에서 10회로 줄이면서 생산량을 줄이기로 한 것이다. 이유는 수요의 감소였다. 물론 신차 효과라는 것이 있다. 새 모델에 초기 수요가 정상 수준보다 많이 몰리는 현상이다. 기블리 생산량을 늘렸던 2014년 하반기는 신차 효과에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대기 수요가 밀렸기 때문에 서둘러 생산량을 늘려야 했고, 2015년 봄에는 신차 효과의 소멸과 더불어 예측보다 더욱 가파른 판매 감소가 있어 생산량 감축이 불가피했다는 얘기다.


중국 시장에 직접적 영향을 받은 콰트로포르테는 그나마 이유가 설명된다. 하지만 기블리의 급격한 판매 감소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시장 특성 때문일 거다. 기블리가 속한 프리미엄 E 세그먼트 시장은 그 위 시장보다 합리적인 구매 동기가 크게 작용한다. 제품의 기본기도 중요하지만 유지비나 A/S의 용이함, 금융 프로그램 등 구매와 관련한 실질적인 요소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기블리가 E 클래스·5시리즈·A6와 차별화된 상위 E 세그먼트 시장(CLS 클래스·6시리즈 그란쿠페·A7)을 지향한다 해도 이전 마세라티보다 훨씬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물론 마세라티도 온 힘을 다했다. 제품 수준을 높이기 위해 독일 엔지니어들을 대거 영입했고, 독일 스타일 생산공장을 새로 만들어 품질 관리에 엄격함을 더했다. A/S 향상을 위해 더 많은 딜러와 서비스센터도 열고 있다. 한국도 딜러 네트워크 확장에 열심이다. 마세라티로선 판매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블리만 잘해주면 당장은 만사형통이다.

 

 

 


기블리 S Q4는 마세라티 브랜드의 가치를 지키는 포석이 될 수 있다.

 

 

감성과 합리 사이에 낀 기블리
한국 수입차는 디젤이 대세다. 마세라티를 수입하는 FMK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디젤 모델이 마세라티의 국내 판매량을 좌우할 것임을 정확히 알고 있단 얘기다. 출시 초 기블리 디젤은 1억 원 미만에 구입할 수 있는 유일한 마세라티 모델이었다. 1억 원 이하라는 메시지는 매우 강력했다. 독일 브랜드와 거의 동등하게 경쟁하는 현실의 브랜드가 됐기 때문이다. 기블리 디젤은 독일차 시장을 겨냥하는 전략 모델이었다. 동시에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아는 모델이었다. 바로 감성이다. 우선 디자인에서 확연하게 차별된다. 세련됐지만 실용성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독일 3사 E 세그먼트 모델들과 달리 마세라티 특유의 동물적 곡선미가 도드라진다. 인테리어는 이전 마세라티만큼 흐드러지진 않지만 여전히 가죽과 나무, 알루미늄이 어우러진 잉여의 미학이 살아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사운드다. 마세라티의 전매특허인 배기음이 심지어 디젤 모델에도 그대로다. 오히려 가솔린 모델들보다 강렬하다.


275마력 V6 디젤 엔진과 ZF 8단 자동변속기는 독일 라이벌에도 손색없는 조합이다. 다만 노멀 모드에선 엔진 반응이 둔해 주로 스포츠 모드를 사용해야 마세라티다운 맛이 난다는 점이 아쉽다. 하지만 마세라티니까 괜찮다. 스포츠 모드로 두고 가속페달을 강하게 밟으면 뒷바퀴가 여지없이 옆으로 미끄러진다. 마세라티의 뜨거운 혈기니까 괜찮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크라이슬러에서 본 것이다. 하지만 골동품 같았던 이전 마세라티 오디오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이라 고맙다. 뒷좌석이 좁다는 친구의 불평은 “이 차가 패밀리 세단인 줄 알아?”라는 한마디로 간단히 눌러버릴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모든 걸 마세라티 브랜드의 캐릭터로 이해해줄 고객이 얼마나 있을까? 솔직히 기블리는 아직 독일차 수준의 정교함과 품질을 갖고 있지 못하다. 스포티한 모델인데도 헐거운 스티어링 감각은 분명 20세기 말의 그것에 가깝다. 노면에서 올라오는 소리는 사운드와 소음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고 자극과 피곤함의 경계를 넘나든다. 교외 국도에서의 실제 연비가 리터당 9킬로미터에 머무는 경제성은 디젤 모델의 당위성을 떨어뜨린다. 출시 초 거론되던 신형 디젤 엔진 소식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게다가 가격은 어느새 1억 원대로 올라갔다.


색다른 맛 하나로 모든 걸 감수하기에 E 세그먼트 고객은 지나치게 영리하다. 기블리는 감성적인 매력이 큰 스포츠세단이지만 현재로선 제품력만으로 그 인기를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미 이전 마세라티 모델들과 성격이 전혀 다른 디젤 모델이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감성적이어야 하는 마세라티가 이성적인 시장으로 깊숙이 들어와버린 것이다. 잘못했다간 아직 부족한 실력이 들통날 지경이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마세라티의 무기는 브랜드다
앞서 말했듯 마세라티의 공격적인 계획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중한 브랜드 가치가 소모될 것을 염려해서라는 점도 이미 언급했다. 하지만 최소한 한국에서 이는 이미 지나간 일이 돼버렸다. 이성적 판단 기준이 훨씬 중요한 디젤 모델이 주력이 됐기 때문이다. 솔직히 제품의 경쟁력은 아쉽다. 출시된 지 2년 이상 지났는데도 아직 기술적으로 뚜렷한 업데이트가 없다. 최근 자동차 시장을 관통하는 능동적 안전장치와 주행보조장치는 거의 전무하다. 제품력은 수입사가 할 수 있는 옵션 사양으로 이미 최대한 끌어올린 상황이라 더 이상 보탤 것도 없다.


결국 FMK가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은 세 가지다. 실제 판매는 디젤 모델이 주도하겠지만 커뮤니케이션은 가장 고성능인 기블리 S Q4가 담당해야 한다. 마세라티 브랜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포석이다. 콰트로포르테의 커뮤니케이션 역시 GTS와 같은 스포티한 모델에 주력하는 게 좋다. 다행히 메르세데스 AMG S 63이나 BMW M760Li, 재규어 XJR 등 콰트로포르테의 스토리보드를 떠받쳐줄 경쟁 모델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스포츠 성향의 플래그십 제품군에서라면 콰트로포르테가 오리지널의 지위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르반떼의 성공적인 출시는 필수다. 초기 물량 부족으로 곤욕을 치른 기블리 사례가 르반떼에서 다시 반복돼선 안 된다. 프리미엄 SUV 시장은 이미 르반떼 말고도 훌륭한 대안이 많다. 나아가 딜러들이 오랜만의 신차 효과를 만끽할 기회도 보장해야 한다. 공격적인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마지막은 마세라티 수입사에 대한 바람이다. 지난해 시작됐던 마세라티코리아 설립은 현재 중단된 상태다. 그런 이유로 지금은  FMK가 수입사와 딜러의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딜러 역할만 하고 있는 다른 신규 딜러들의 불만과 불신의 불씨가 사라지지 않는다. 또 마세라티는 아직도 한국수입차협회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00대가 넘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데이터도 공개되지 않는다. 아직은 드러낼 만큼의 성과가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세라티처럼 희소성이 컸던 브랜드가 판매 1000대를 넘었다는 건 이미 자랑할 만한 소식이다. 좀 더 명료한 시장 대응으로 잠재 고객들에게 믿음을 주면 마세라티의 성공에도 분명 도움이 될 거다. 3년 전 나는 ‘마세라티는 할 일이 참으로 많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에디터/김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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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모터 트렌드,MOTER TREND,마세라티,콰트로포르테,르반떼,기블리 S Q4

CREDIT Editor 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 Photo MOTER TREND 출처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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