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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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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판을 벌인 럭셔리 SUV, 벤테이가

벤테이가는 산길, 트랙, 모래언덕 등 어디서도 거침없다. 동시에 호화로움과 성능 어느 것도 양보하지 않았다. 인정해야 한다. 벤틀리가 럭셔리 SUV 시장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음을

2016.03.28

 

상징과 상징
벤틀리라면 플라잉 B 후드 엠블럼과 크롬 격자 그릴은 기본이다. 900유로를 추가하면 크롬 그릴을 범퍼 하단까지 확장할 수 있다.

 

 

 

 

# 벤테이가 시승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두 달 전, 벤틀리의 이벤트 대행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웹사이트에 들어가 몇몇 개인정보를 직접 기입해달라는 얘기였다. 웹사이트에선 여권에 기재된 각종 사항, 출발지와 도착지, 국제운전면허 발급번호 같은 기본적인 정보 외에 특별히 꺼리는 음식이나 특이 병력이 있는지 등도 물었다. 조금 유난스럽다는 생각과 함께 이래서 럭셔리 브랜드인가 싶었다.


지난 2월 초 미국 캘리포니아 팜 스프링스 일대에서 이뤄진 시승 행사는 한술 더 떴다. 험로주행 성능을 뽐내기 위해 간이 오프로드 코스를 마련하는가 하면 또 다른 시승 장소인 모래언덕까지 이동하기 위해 헬기를 동원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설 레이스트랙에서 스포츠카 못지않은 역동성을 경험하게 한 뒤에는 기자들을 10인승 소형 여객기에 태워 LA 국제공항까지 실어 날랐다. 그건 마치 벤테이가 고객의 일상을 체험해보라는 무언의 압박 같았다. 하지만 간이 오프로드 코스는 한 바퀴 휙 둘러보고 온 것에 그쳤고, 모래언덕에서는 1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달랑 20여 분을 달렸다. 규모가 작은 서킷 주행도 네 바퀴뿐이었다. 그마저 마지막 랩은 달아오른 차체를 진정시키기 위한 쿨다운 주행이라 실질적인 주행은 3랩이 전부였다. 호화로운 일상을 압축해 경험한 건 즐거웠지만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체험’ 수준에 그친 건 아쉬웠다.


행사가 왠지 모르게 설익은 느낌인 건 당연했다. 대부분 그들이 해본 적 없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벤틀리는 주중엔 유서 깊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주말엔 레이스트랙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당연했던 브랜드다. 차로 강을 건너거나 진창을 헤집고 바위산 정상에 오르는 등의 단내 나는 활동은 꿈도 꾸지 않던 그들이다. 난생처음 준비해본 아웃도어 이벤트를, 그것도 난생처음 만들어본 SUV로 진행하려 했으니 그 모습이 자연스러울 리 없었다.

 

 

 

 

# 차까지 그랬으면 큰일인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제한적인 험로주행 상황이지만 벤테이가는 많은 가능성을 보여줬고, 마치 수십 년간 SUV를 만들어온 회사의 제품 같았다. 별도의 저속 기어는 달지 않았다. 하지만 3톤에 가까운 거구를 살금살금 움직이기에 충분한 힘을 가진 6.0리터 W12 엔진이 있다. 이 엔진은 1000rpm 무렵에 이미 50kg·m에 가까운 큰 토크를 낸다. 1350rpm이면 벌써 91.8kg·m의 최대토크가 발휘된다. 어지간한 장애물은 스로틀 조작 없이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만 떼도 꾸물꾸물 넘어간다. 바퀴 자국이 깊게 팬 도로도, 35도로 가파르게 기운 경사로도 아무 문제 없었다. 차체 네 귀퉁이에는 모두 높이 조절이 가능한 에어스프링이 달려 있다. 지상고는 네 가지 높이로 조절된다. 끝까지 끌어올리면 최대 245밀리미터의 지상고가 확보되고 수심 50센티미터의 강도 무리 없이 건널 수 있다. 전자제어 방식 안티롤 바를 휠과 분리할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 랭글러의 스웨이 바 분리 기능과 같은 원리인데, 이렇게 되면 각 바퀴가 위아래로 움직일 수 있는 폭이 최대 23센티미터까지 늘어난다. 벤틀리가 제대로 된 고급 SUV를 만들려 고심한 흔적은 또 있다. 문이다. 벤테이가의 문은 네 짝 모두 사이드 스커트가 완전히 덮일 정도로 길게 내려온다. 덕분에 차가 진흙 바닥을 헤집거나 구정물을 뒤집어쓰더라도 승객은 바지 뒷부분에 오물 하나 묻히지 않고 깨끗하게 차에서 내릴 수 있다.


오프로드에서 넉넉한 휠 트레블을 확보해주는 안티롤 바에 관해서라면 얘깃거리가 조금 더 있다. 벤틀리가 ‘벤틀리 다이내믹 라이드(Bentley Dynamic Ride)’라고 부르는 이 장치는 실상 포장도로 주행 때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액추에이터가 코너링 반대 방향으로 안티롤 바를 비틀어 차체의 기울어짐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차체 거동이 줄어드는 만큼 주행역동성과 안정감이 향상되고 승객이 느끼는 불편은 줄어든다. 앞쪽과 뒤쪽이 독립적으로 작동하고 각 바퀴마다 개별적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원리는 BMW나 메르세데스 벤츠가 쓰는 액티브 롤 매니지먼트 시스템과 같다. 하지만 유압 장치가 안티롤 바를 비트는 이들과 달리 벤틀리는 전기모터를 썼다. 벤틀리에 따르면 전기모터 방식이 유압식 액추에이터보다 3배 더 빠르며 반응은 보다 점진적이다. 하지만 재래식 12볼트 전원공급 장치로는 부족했다. 더 크고 안정적인 전압을 공급하기 위해 벤틀리는 48볼트 전기 시스템까지 도입했다. 48볼트 전력의 공급원으로 소형 리튬이온 배터리도 더했다. 일종의 마일드 하이브리드 기술이다.


48볼트 전기공급 장치는 최근 국내에 출시된 2세대 아우디 Q7의 고성능 버전(SQ7)에도 쓰인다. 벤테이가를 통해 먼저 상용화됐지만 실상 이 기술은 수년 전부터 아우디가 연구해오던 것이다. 그들은 48볼트 전기공급 장치와 연결한 전동 터보차저로 TDI 디젤 엔진의 성능을 극적으로 향상시키려 했고, 2년 전 RS5 TDI 콘셉트를 통해 그 가능성을 엿봤다. 연구 성과는 최근 공개된 SQ7에 담겼다. RS5 TDI에서 발전한 3.0리터 V6 TDI 엔진은 1000rpm부터 무려 91.7kg·m에 이르는 최대토크를 낸다. 재래식 시퀀셜 트윈터보와 전동 터빈을 조합한 결과다. 강력한 48볼트 전기 시스템은 터보 엔진의 지긋지긋한 터보 지체현상을 말끔히 지우는 효과도 있다. V8 디젤 엔진을 능가하는 435마력의 최고출력은 덤이다. SQ7에도 액티브 안티롤 바가 있다. 벤테이가의 것과 같은 장치다. 당연히 48볼트 전기 장치로 구동된다.


벤테이가와 Q7은 모두 MLB 에보 플랫폼에 뿌리를 두지만 완전히 다른 차라 해도 좋다. 벤틀리는 슈퍼포밍 공법으로 찍어낸 알루미늄 외부 패널부터 서스펜션까지 부품의 80퍼센트를 새로 디자인했다. 파워트레인과 섀시 구성으로 지위도 명확히 구분했다. Q7은 3.0리터 디젤과 가솔린 엔진만으로 파워트레인을 채웠다. 반면 벤테이가는 6.0리터 W12 트윈터보 엔진 하나만으로 시장에 나섰다. V8 가솔린 엔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구동계 등이 추가될 거란 소문이 무성하지만 벤틀리는 이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SQ7처럼 48볼트 전기 시스템에 기반한 전동 터보 디젤 엔진도 유력한 후보일 수 있다. 벤테이가에 들어간 48볼트 전기 시스템과 액티브 안티롤 바는 Q7 라인업 중 고성능 SQ7에만 적용된다.

 

 

 

타협하지 않은 공간
벤테이가 실내에 가짜는 없다. 진짜 소가죽과 원목, 순수 크롬으로 공간을 호화롭게 꾸몄다. 운전대를 리넨 실로 꿰매는 비용은 160유로다.

 

 

# 두 차의 지위를 가름하는 결정적 요소는 경험이다. 벤틀리는 역사 내내 특별한 차만 만들어온 브랜드다. 어떻게 해야 특별해 보이는지, 특별한 고객을 만족시키려면 어떤 부분에 더 신경 써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벤테이가 실내엔 가짜가 없다. 나무처럼 보이는 건 진짜 나무고 가죽 같아 보이는 건 진짜 가죽, 금속처럼 보이는 것 역시 진짜 금속이다. 심지어 계기반을 덮고 있는 투명 판막도 천연 미네랄 글라스다. 인테리어는 최대 15가지 원목 소재와 소 네 마리분의 가죽으로 마감한다.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품질도 각별하다. 가죽과 원목과 크롬 소재가 어우러진 인테리어 트림의 오차 허용 범위는 0.1밀리미터에 불과하다. 단언하건대 지금 SUV 시장에 이보다 호화로운 인테리어는 없다. 말문이 막히는 건 그뿐만 아니다. 영국 크루 공장에선 58명의 장인이 벤테이가에 쓰일 원목 자재만 제작한다. 원목과 가죽뿐만 아니라 W12 엔진까지도 100퍼센트 수작업으로 조립된다.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하는 공정이 많은 만큼 제작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벤테이가는 평균 130시간에 한 대꼴로 만들어진다.


벤테이가는 그저 공들여 오래 만드는 수제 자동차이기만 한 게 아니다. 반 자율주행을 가능하게 하는 첨단 전자장비와 안전보조 장치, 에어 스프링과 액티브 안티롤 바 같은 고도의 전자식 섀시 기술도 듬뿍 담겨 있다. 이들이 쏟아내는 데이터 코드만 1억 개에 이른다. 이를 오류 없이 처리하기 위해 차내에는 무려 90개의 ECU가 있다. 독특한 설계의 12기통 엔진은 608마력과 91.8kg·m의 힘을 낸다. 어떤 가혹한 환경에서도 완벽한 성능을 내기 위해 엔진에는 3개의 워터펌프와 4개의 오일펌프가 더해졌다. 테스트 과정도 차 못지않게 유난스러웠다. 다섯 개 대륙을 종횡무진하며 160만 킬로미터를 달렸고, 뉘르부르크링 북쪽 코스도 400바퀴 이상 돌았다. 개발팀은 주변 온도 섭씨 40도인 환경에서 최고속도(시속 301킬로미터)로 달릴 때 냉각 성능이나 쾌적함이 저하되지 않는지도 꼼꼼하게 살펴야 했다.


최고시속 301킬로미터! 이 수치는 실생활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실제로 이 속도까지 달려볼 오너도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벤틀리라면 반드시 지참해야 할 수치였다. 현존하는 벤틀리 중 시속 300킬로미터 이상을 내지 못하는 차는 뮬산과 V8 엔진을 얹은 플라잉스퍼 세단 두 대뿐이다(하지만 이들조차 시속 296킬로미터와 시속 295킬로미터로 시속 300킬로미터 가까운 최고속도를 낸다). 덕분에 벤테이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SUV라는 훈장을 달았다. 수치는 큰 의미 없지만 3톤에 가까운 SUV가 시속 301킬로미터까지 내달릴 수 있게 해주는 힘은 얘기가 다르다. 벤테이가는 608마력의 힘을 후드 아래 담아둔 채 무심하고 태평하게 속도를 올린다. W12 엔진은 한없이 부드럽다. 심장을 자극하는 거친 소음도 없다. 여유로운 힘은 현실 감각조차 마비시킨다. 부드럽고 고요하게 도로 위를 날아다니다 보면 이 차의 무게나 크기 따위는 완벽하게 잊힌다. 승차감은 제법 단단하다. 그 단단함엔 여유도 담겨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벤틀리 감각이다.

 

 

 

더하고 또 더해도 5인승 실내 구조를 4인승으로 바꾸는 데는 8260유로가 든다. 10.2인치 태블릿 PC 2대가 포함된 뒷자리 전용 엔터테인먼트 옵션은 5365유로다. 나임 포 벤틀리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을 선택하면 20개 스피커와 1950와트 앰프가 딸려 오며 추가 장착비는 6300유로다.

 

 

주행 모드는 네 가지다(올 터레인 패키지를 주문하면 여기에 오프로드 주행 모드 네 개가 추가된다). 컴포트, 스포트, 커스텀, 그리고 벤틀리 모드다. 에코 모드는 없다. 기름 아까운 줄 모르는 벤틀리답다. 그래도 할 건 다 한다. 차가 멈추면 엔진 시동을 끄고, 운전자가 가속할 의사를 내비치지 않으면 엔진과 변속기의 연결을 끊거나 실린더 12개 중 절반을 아예 꺼버리기도 한다. 주행 모드 간 차이는 꽤 뚜렷하다. 컴포트 모드는 부드럽지만 큰 차체가 흔들리는 것까지 수수방관해 부담스럽다. 벤틀리 모드는 어떨까? 명칭만 봐선 벤테이가에 제일 잘 어울릴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엔진 코스팅과 가변 배기량 시스템이 수시로 개입하는 탓에 가속의 템포를 더하거나 추월하려 할 때마다 울컥거림을 만든다. 가장 벤틀리다운 건 스포츠 모드다. 파워트레인 반응이 살아나고, 서스펜션도 충분히 조여져 그립과 노면 정보가 한층 확실해진다. 승차감도 우려할 것 없다. 벤틀리는 안락함을 포기하지 않는 럭셔리 GT 브랜드다. 액티브 안티롤 바의 성능도 이때 유감없이 발휘된다. 급한 코너에서도 거대한 차체를 평평하게 유지시키고 쉽게 자세를 허물어뜨리지도 않는다. 전반적으로 간결하고 민첩해지는 움직임 덕에 서킷이나 굽이진 산길에서의 주행 템포도 한층 빨라진다. 포장도로 주행 성능은 분명 포르쉐 카이엔이 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수많은 보조 제어 시스템으로 스포츠카 못지않은 감각을 이끌어냈지만 타고난 무게와 덩치까지 감추지는 못한다. 코너 진입 전에 속도를 충분히 줄이지 않으면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앞 타이어가 한계를 드러내면서 순식간에 도로 밖으로 밀려나고 만다.


1시간이나 기다렸는데 겨우 20분 타고 끝났다며 투덜대긴 했지만 그래도 이번 출장 일정 중 가장 신바람 나는 경험은 모래언덕 주행이었다. 벤테이가는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언덕을 힘차게 지치며 달렸고, 나는 20분 내내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건 적어도 뮬산이나 플라잉스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SUV는 이미 자동차 시장에서 성공과 지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벤틀리가 왜 SUV까지 만드는지 모르겠다”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잃어갈 거라 자신하는 배경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벤테이가는 남다른 수준의 안락함부터 비범한 험로주파 성능, 스포츠세단 못지않은 역동성까지를 한데 아우르고 있다. 지금껏 만나본 어떤 SUV보다 스펙트럼이 넓다. 럭셔리 SUV 시장의 중요한 이정표다. 가격도 그렇다. 기본 가격은 유럽 기준으로 17만5200유로, 그러니까 어림잡아 2억3000만원이다. 선택 가능한 모든 옵션을 더하면 가격은 두 배 이상으로 껑충 뛴다. 지금으로선 분명 전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SUV다. 연간 생산량은 약 3500대다. 벤틀리는 지난해 말부터 사전 계약을 받기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소식이다. 상반기 공식 출시가 예상되는 국내에서도 이미 80명 가까운 고객이 구매 의사를 밝혔다.

 

 

BENTLEY BENTAYGA
기본 가격(유럽) 17만5200유로 시승차 가격(유럽) 23만1210유로 레이아웃 앞 엔진, 4WD, 4인승, 5도어 왜건 엔진 W12 6.0ℓ DOHC 트윈터보 변속기 8단 자동 최고출력 608마력/5000~6000rpm 최대토크 91.8kg·m/1350~4500rpm 공차중량 2440kg 휠베이스 2995mm 길이×너비×높이 5140×1998×1742mm 0→시속 100km 가속시간 4.1초 최고시속 301km 연비(유럽 복합) 7.6km/ℓ CO2 배출량(유럽) 296g/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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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모터 트렌드,MOTER TREND,BENTLEY,BENTAYGA,벤틀리,벤테이가,SUV,럭셔리 SUV

CREDIT Editor 김형준 Photo MOTER TREND 출처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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