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덕에 한복은 내게 친숙한 옷이다. 마을 어른들은 한복을 입고 일상생활을 했다. 어른들이 동네 어귀에서 하얀 한복을 정갈히 차려입고 걸어오는 모습은 마치 흰 백로가 물가를 고고히 유영하는 모습 같았다. 어린 나는 종종 그 장면에 매료되곤 했다. 마을 남자들은 때로 양복을 입고 누군가의 잔칫집에 다녀오기도 했는데, 그 모습은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양복 입은 품새가 어색한 것이 아니라 동네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서양 복식은 내 고향의 야트막한 산과 길, 개울이 만드는 풍광과 동떨어진 그림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상업사진을 찍는 사진가가 됐다. 1990년대엔 결혼사진을 경복궁과 창덕궁 등지에서 촬영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나 역시 의뢰가 들어오면 종종 궁에서 촬영을 했는데,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은 신랑신부는 그때에도 여전히 내게 자연스러운 풍경이 아니었다. 몸을 꽉 조이는 드레스의 치렁치렁한 치맛자락은 궁 안의 한옥, 그 뒤에 펼쳐진 인왕산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사진을 의뢰한 이들에게 종종 ‘한복’의 아름다움, 풍경과의 조화를 이야기하며 한복을 입으라고 권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때에도 지금처럼 웨딩드레스를 고집했다.

한 나라의 복식이 그 나라의 자연환경, 생활양식에 맞춰 오랜 시간 진화하고 고착화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전통’이라고 부른다. 유럽의 복식은 두말할 것 없이 높고 날카로운 산과 광활한 대지, 대리석으로 지은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과 흡사한 형태와 구조를 갖고 있다.

우리의 옷, 한복 역시 한국의 자연과 건축을 복기한다. 저고리 소매 아래 배래선은 품 넓은 산의 완만한 능선, 추녀의 온화한 곡선을 꼭 닮았다. 옷감은 또 어떤가. 결 고운 갑사의 감촉은 평화롭게 일렁이는 파도 같다. 바람에 흔들리는 치맛자락과 부드럽게 넘실대는 신록 무렵의 산등성이, 새치름한 버선코와 수줍게 솟은 처마, 은은한 푸른 하늘을 닮은 쪽빛 옥색 도포, 툭 떨어지는 저고리와 투명한 물줄기가 떨어지는 폭포…. 사진가인 내게 한복을 찍는 일은 자연 속에 머물며 자연을 담는 것과 별 다름이 없다.

나는  한복을 통해 자연을 낯설게 보고, 작업의 영감을 얻는다. 언젠가는 바다의 바깥을 넘어 물속에서 한복을 담고 싶다. 심연의 바다에서 한복은 또 어떤 질감과 움직임을 가질까? 아시아와 유럽, 북아프리카를 잇는 6400km의 길, 실크로드를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생각도 있다. 그 사막에서 펼쳐지는 비단의 여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전통을 지키는 일에 대단한 사명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한복의 어울림이 좋다. 흐르지만 넘치지 않는 물처럼, 적당함을 아는 옷. 나의 ‘한복 시리즈’에는 파도, 소나무, 담 등 피사체에 의한 경계가 존재한다.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 탄생과 소멸, 유와 무를 가르는 경계선이지만 한편으론 그 경계로 인해 두 세계가 동시에 공존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한복을 입은 사람과 한국의 자연을 한 장면에 담을 때 나의 이런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깃든다.

5년 전 사별했다. 한국에선 이승을 떠난 이의 마지막 옷으로 삼베로 지은 수의를 입힌다. 수의 대신, 나는 그에게 한복을 입혀주었다. 내게 왔을 때 입었던, 눈부시고 아름다웠던 그 모습 그대로 가는 길을 배웅해주고 싶었다. 한복은 내게 그런 옷이고, 존재다.

about 김정대는 상업사진을 찍으며 대학에서 사진을 강의하고, 매체에 사진술과 관련된 칼럼을 기고하는 사진가다. ‘한복’에 대한 지극한 관심으로 꾸준히 개인 작업을 하고 있다.   

용보
가슴과 어깨에 붙이는 일종의 자수 ‘패치’다. 왕과 왕비, 세자와 세자빈 등 왕가의 옷에 달던 것으로 왕을 상징하는 용이 수놓여 있다. 과거 용보는 궁궐 안에서만 쓰이는 장신구였지만, 현대에는 당의 한복이 유행하면서 흔하게 쓰이고 있다. 현대 당의에는 용 대신 꽃과 나비를 수놓은 꽃보를 붙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