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장식미술관의 큐레이터가 내게 한 말이 있다. “왜 한국의 한복 디자이너는 매 시즌 새 컬렉션을 발표하지 않나? 패션 디자이너는 새로운 디자인을 만드는 사람 아닌가? 한국에서 ‘한복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이들 중 다수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연구가’에 더 가깝다. 내겐 극히 일부만이 ‘디자이너’로 보인다.”

같은 생각이다. 패션계엔 이미 알려져 있지만 나는 2006년부터 한복과 현대복을 믹스 매치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 무렵의 나는 해외 브랜드의 하이패션 화보를 수없이 진행하며 정체성을 고민하던 시기였다. 서양의 DNA에는 없는, 나만의 색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답으로 붙든 것이 ‘한복’이다. 내 어머니가 매일 입었던 그 옷. 허리춤을 질끈 동여매고 집안일을 하던 한복 입은 어머니의 모습. 내게 한복은 삶, 일상과 가깝고, 긍정적 의미를 지닌 옷이었다.

한복에 대해 대단히 잘 알았던 것은 아니다. 사실 아무것도 몰랐다. 다만 방향은 명확했다. ‘한복을 당대의 옷으로 해석하자. 이 시대의 버전으로 입을 수 있는 한복을 보여주자.’ 그때부터 한복과 서양복을 한 실에 함께 꿰는 일이 나의 지속적인 주제가 됐다.

파리의 큐레이터가 가진 의문은 내가 지난 10여 년간 느낀 아쉬움과 동일하다. 2006년에 봤던 한복과 2016년에 만난 한복은 거의 차이가 없다. 많은 한복 디자이너가 새 컬렉션을 선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한복은 너무 많이 찍어서 소재가 변질됐다.

디자이너는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하는 사람이다. 패션계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디자인으로 자생해야 한다. 한복을 ‘전통’이라는 영역 안에서 잇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면, 지금 ‘패션’으로 소비되는 옷이 되기를 바라는 한복 디자이너라면 부단히 디자인 하고, 컬렉션을 열고,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 근래에 한복진흥센터가 개관하고 한복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확장되면서 전시, 패션쇼 등이 활발히 열리고 있다. 그런데 한복업계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지원과 정책을 바라거나 불만을 표출하며 수동적인 자세를 취한다. 이러한 상황이 과연 한복이 패션으로서 힘을 갖는 데 득이 될까?

한복이 맞이해야 할 미래는 ‘온 국민이 한복을 다시 입는 그날’이 아니다. 세계인들이 드레스 대신 한복을 입는 것? 말도 안 된다. 답은 ‘디자인’이다. 당대의 한복 디자이너들이 전통복이라는 장르에 구애되지 않는, 디자인이 아름다운 옷을 만들면 된다. 세계적인 명품으로 인정받고 싶다면 에르메스보다 잘 만들고, 값비싸게 팔리는 옷으로 만들고 싶다면 샤넬보다 좋은 품질로 만들면 된다.

10년 동안의 한복 화보 작업, 한복진흥센터와 협업해 진행했던 ‘신 한복 프로젝트’, 그리고 최근 프랑스 장식미술관에서 열린 <Five Colors in Korean Mode>의 큐레이팅 작업 등은 내게 하이패션과 한복이라는 두 세계를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둘의 극명한 차이 속에서 치우치지 않은 판단, 시야를 갖는 것이 나의 할 일이다. 한복이 패션계와 조화하려면 그 한복을 필요로 하는 대상과 장소에 맞는 언어를 가져야 한다. 조선 시대의 언어가 필요한 곳에선 전통을, 2016년의 언어가 필요한 곳에선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일생에 몇 번 없는 예식이라면 한복의 원형, 본래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훨씬 아름답고 멋스럽다. 그러나 그때를 제외하면 요즘 사람들이 한복 입을 일이 또 있을까? 오늘날의 한복이 전통이 아니라 옷으로 기능하고자 한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줘야 한다. 입고 있던 블라우스에 쓱 걸칠 수 있는 철릭, 와이드 팬츠 위에 입어도 아름다운 저고리. 옷을 입은 이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보았을 때, 한복은 그 어떤 옷보다 드라마틱한 장치다. 이러한 한복이 한복의 전통과 고유함을 해친다는 염려는 불필요한 걱정이다. 그것은 그것대로, 이것은 이것대로 자기의 영역을 가질 수 있다. 넓은 한복이 필요한 때다.

 

about 한국에서 ‘한복’을 이야기할 때 스타일리스트 서영희를 빼놓을 수 없다. 2006년 <보그>에서 선보인 한복과 하이패션의 믹스 매치 화보는 지금도 패션계와 한복인들 사이에서 혁명과 같은 사건으로 회자된다. 최근 한복 패션쇼 예술감독, 파리 장식미술관 <Korea Now!>전 의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By Seo Younghee
Interview & Written by Ryu Jin, Feature Editor

 

 

 

떨잠
예복을 입고 큰머리를 할 때 머리에 꽂는 장식품이다. 계급이 높은 여인만 쓸 수 있었다. 한 번 머리를 올릴 때 위와 좌우에 하나씩 꽂아 총 3개의 떨잠을 쓴다. 떨잠은 ‘떨새’라고 불리는 꽃과 새 모양의 은 장식이 특징인데, 작은 용수철에 달려 있어 움직일 때마다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