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고유의 문화적 공통성을 말할 때, 우리는 단어 앞에 ‘한(韓)’이라는 글자를 붙여서 사용한다. 한복, 한식, 한옥처럼 오랜 세월을 거쳐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틀을 의미한다. 패션과 건축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성(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을 정의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화두다.

한국적인 경계 공간과 사이 공간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은 작년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의 <이영희 展-바람, 바램>의 공간 디자인을 맡으면서 더욱 커졌다. 한복과 한국적인 공간이 가지는 접점을 찾고, 한복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경험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숙제였다. 기획 단계부터 약 10개월의 여정 동안 익숙하면서도 낯선 한복의 특징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찾아야 했다. 미국과 유럽 등 기존의 유명 패션 전시와 패션쇼의 연출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동시에 한국의 전통적인 박물관과 민속촌의 박제된 한복의 모습을 탈피하고 싶었다. 한복의 가치를 잘 전달하기 위해 옷이 지닌 조형적, 공간적, 재료적 특징을 전시 공간에 잘 풀어놓는 것도 필요했다. 재연(再演)이 아닌 재해석을 통해 건축가의 관점에서 본 한복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작업이었다.

공간의 큰 주제는 ‘자연 속의 옷과 한복의 유연함’이었다. 자연하면 ‘짜여진 것’과 반대로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겉에서 보이는 옷, 즉 맵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양 의복과 달리 한복은 자연을 닮아 있다. 내적인 풍부한 멋이 있는 옷이다. 특히 디자이너 이영희의 ‘바람의 옷’은 한복의 유연한 조형미와 구조적 특성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바람의 옷은 전통을 버리고 전통을 얻은 옷이다. 입었을 때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내고, 펼쳤을 때 한 장의 평면으로 돌아가는 옷이다.” _이영희

 ‘한국적인 것’을 정적이고 조용한 멋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변화무쌍하고 역동적이다. 특히 한복과 한옥은 바람이 통하고 이에 적응하는 유연함이 서로 닮았다. 이 둘은 산과 숲처럼 늘 곁에 있으면서도 계절마다 매번 다른 빛깔과 자태를 보여준다. 기능 위주로 이름이 명확히 구분되는 서양의 방(Room)과 대조적으로 한옥의 대청마루과 마당은 정해지지 않은 용도와 경계로 완충 공간의 역할도 한다. 또 바람과 햇볕이 잘 들어오는 열린 구조에서 우리는 계절의 변화를 십분 느낄 수 있다. 한복의 유연함은 옷의 겹과 겹 사이, 옷과 신체 사이에 틈을 만들고, 그 결과 가벼움과 투명성을 획득한다. 조형적인 미뿐 아닌 ‘여유(Flexibility)’라는 공간적인 의미를 만들어낸다. 다른 옷들이 피부를 감싸는 ‘핏(Fit)’에 중점을 둔다면, 한복은 피부와 옷 사이의 ‘품(Space)’을 중시한다. 이 품은 양복의 짜여진 구조에 비해서 신체에 대한 구속력을 적게 한다. 즉 입는 사람의 심리적, 신체적 여유를 우선시하는 옷이다. 한복의 치마는 입는 것이 아닌 몸을 감싸는 옷이다. 평면적인 보자기를 몸에 감싸는 방식으로 가슴, 허리, 배 사이의 정해진 위치 대신 높이와 조임을 조절하면서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또 한복은 기능적인 면과 미적인 부분이 균형을 이룬다. 피부와 옷 사이의 만들어진 공기층은 마치 한옥의 흙벽과 창호지처럼 주변 환경의 온도와 습도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옷의 구김이 잘 생기는 관절 부분에는 여유 있는 품이 마찰을 최소화하며, 직선과 구부러짐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처마와 같은 자연스러운 곡선미를 연출한다.         

 한복의 아름다움이 오롯이 담긴, 한복을 닮은 공간을 구현한 핵심은 ‘두 겹의 반투명한 오간자로 만든 담’이다. 오간자 담이 켜켜이 쌓인 공간은 안개와 구름 사이에 걸친 산세와 숲의 모습이 됐다. 그 안에서 관람객은 치마의 겹과 겹 사이를 유영(游泳)하듯 그 사잇길을 거닐었다. 반투명한 전시 벽은 다양한 한복과 소품이 놓이는 배경이 되었다. 한복의 치마가 몸에 딱 붙지 않고 자연스러운 여백이 생기듯 전시장 안에서 여유를 느끼며 자유로움 속에서 다양한 전시물을 마주하도록 유도했다. 주름(Folding)과 미로를 닮은 전시 동선 안에는 점점 낮아지는 반투명한 전시 벽을 통해 여러 시선이 공존할 수 있다. 그리고 미로 같은 동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켜와 켜 사이에 한복을 색, 테, 재료, 투명성을 기준으로 새롭게 분류하고 배치했다.

한복의 유연함과 더불어 회색, 먹색처럼 색의 ‘중간 영역’ 역시 공간의 중요한 요소였다. 빛의 종류와 방향에 따라 다양한 색감을 머금는 반투명한 전시 벽을 만든 건 자연의 빛깔로 물들인 천연 염색된 천과의 조화와 다양한 스펙트럼의 색을 담을 수 있는 중성적인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담 사이의 전시 공간을 모두 거치고 나면 넓게 비워진 마당 공간과 프레타 포르테와 오트 쿠튀르 컬렉션 마네킹 군집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곳에는 보자기처럼 다양한 쓰임이 생길수 있는 마당을 함께 두었다. 전시장 곳곳을 전시물로 가득 채우는 대신 한복의 정신이 중심이 되어 다양한 프로그램에 따라 퍼포먼스, 한복 강연과 워크숍이 일어날 수 있는 불확정적 공간을 제공했다. 프로그램이 없는 시간에는 전시장 전체의 풍경을 조망할 수도 있다.

    “옷을 벗으면 나는 자연이다. / 옷을 입으면 나는 문화다. / 자연과 문화를 함께 갖고 싶은 꿈, / 그래 바람의 옷을 입는다”-이어령(<이영희 展-바람, 바램>의 전시 서문 중)

옷은 제2의 피부라고 한다. 여유가 있는 옷, 움직임이 있는 옷, 숨을 쉬는 옷은 신체의 한 부분이며, 공간이 되고, 자연이 된다. 한복의 틈과 겹, 투명성은 자연을 닮기 위한 조상들의 오랜 지혜일 것이다. 지나온 전시장 사이사이 길에는 한복의 역사와 여정이 먼 풍경으로 비치고, 겹겹이 지층처럼 함축된 공간과 그 사이로 보이는 사람의 움직임이 어우러져 하나의 수묵화가 된다. 한복은 몸에 국한된 것이 아닌, 주변과 공간을 감싸는 ‘유연한 멋’, ‘여유의 멋’을 가지게 된다. 한복을 입으면, 우리는 하나의 공간이 된다.

 

about 최장원은 서울의 주목받는 건축가다. 2015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건축 부문, ‘김수근 건축상’ 프리뷰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의 <이영희 展-바람, 바램>에서 한복을 건축으로 치환해 선보였다.

 

 

 

노리개
노리개는 저고리 고름이나 치마허리에 차는 장신구다. 궁중 여인부터 평민 부녀자까지 신분에 구애되지 않고 두루 사용했다. 본래 장식용이지만 향갑, 바늘집, 장도를 달아 실용성을 더한 것도 있었다. 가보로 여겼기 때문에 친가와 시부모에게 예물로 받아 딸에게 물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