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젊은 날, 그러니까 내가 열아홉 살이던 1971년을 돌아본다. 45년 전이다. 그때 우리나라에는 자동차가 몇 종류 없었다. 신진 코로나와 현대 코티나, 피아트 124, 그리고 쉐보레 1700 정도? 참, 아주 비싼 신진 크라운과 현대 20M이라는 차도 있었다. 모두 4도어 세단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외국차를 들여와 조립하는 처지에선 모두 황송스러운 차였다.

해외여행도 자유롭지 않던 시절에 수입차는 상상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근사한 수입차가 달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고,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국가 경제에 해로운 일이었다. 우리는 가난했고, 한 푼이라도 외화를 모아 경제 발전을 이루는 게 꿈이었다.
그때 영화배우 신성일이 새빨간 머스탱을 타고 개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그건 의외였지만 모두들 신성일을 좋아했기에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그때 생각했다. 내 평생 문짝이 두 개 달린 차를 타볼 수 있을까?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자동차를 즐기고 싶다면 이민을 가야 했다.

헌책방에서 구한 일본 자동차 잡지에 닷선 240Z라는 차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난 언제 저런 차를 타볼 수 있을까?’ 한없이 먼 이야기 같았다. 국산 승용차도 좋지만 4도어 일색인 차는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의 욕구를 충족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로부터 45년이 흘렀다. 서울 거리가 이렇게 다양한 차로 가득하게 될지 몰랐다. 세상의 모든 차를 원하면 살 수 있게 될지 몰랐다. 우리나라가 자동차 생산 세계 5위의 나라가 될지도 몰랐다. 국산차가 이렇게 멋진 차가 될지 몰랐다. 짧은 순간에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차를 안 산다고 한다. 자동차에 관심이 줄어간다나. 자동차가 없을 땐 간절히 바랐는데, 자동차가 넘쳐나는 세상이 되니 흥미를 잃어간다. 이렇게 좋은 여건에서 자동차를 즐길 수 있는데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문득 ‘내가 지금 열아홉 살이라면 어떤 차를 고를까?’ 생각했다. 45년 전의 나를 생각하며 오늘 내가 타고 싶은 차를 고른다. 차에 흥미를 잃어가는 젊은 친구들에게 하나의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 젊은이는 경제적인 능력에 한계가 있겠지만 나름대로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고, 마음이 너그러운 부모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한다고 가정했다.
그런데 시승차를 모으다 보니 최고급 모델만 모아졌다. 사실은 아랫급 차가 바람직한데…. 값이 싼 것은 물론, 아직 운전이 몸에 익지 않은 상태에서 차의 모든 것을 알아가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변속기도 자동보다 수동을 권하고 싶다.

 

 

 

오른발을 부추기는 R 골프 R은 스티어링휠 아래와 엉덩이에 ‘R’ 배지를 붙였다. 눈에 확 들어오는 ‘R’ 배지가 짜릿한 달리기를 부추긴다. 

 

 

 

폭스바겐 골프 R
젊은이의 차로 경제적인 해치백은 당연하다. 그런 해치백에 강력한 엔진을 얹은 핫해치는 비교적 경제적인 방법으로 스포츠 드라이빙을 누릴 수 있다. 작고 경제적인 차에서 몰랐던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해치백도 이렇게 재미있는 차가 될 수 있다. 시승차로 골프 R을 불렀지만 핫해치는 어떤 브랜드의 차라도 좋다. 골프 GTI나 미니 JCW도 좋고, 아직 타보지 못했지만 기아 모닝 터보도 괜찮을 것 같다. 모두 4도어라 경제적이고 실용적이면서 재미난 운전을 할 수 있다.

핫해치의 시작은 1970년대 말 골프 GTI부터였다. 값싼 골프가 독일 아우토반에서 맹렬히 달리며 큰 인기를 누렸다. 이후로 모든 회사마다 해치백 라인에 핫해치 하나씩 더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현대·기아차도 i30의 고성능 모델인 N 버전을 내놓을 예정이다. 폭스바겐 골프 R은 내가 원하는 만큼 넉넉한 힘을 지니고, 내가 원하는 만큼 달리는 능력을 지녔다. 순간적으로 가속하고, 무서울 정도로 빨리 달리며, 예리한 각으로 돌아나간다. 완벽한 조화 속에 밸런스가 끝내준다. 혹자는 너무 완벽해서 재미가 덜하다고 하는데 그 말에 반박할 수 없다. 다만 ‘양의 탈을 쓴 늑대’라는 콘셉트를 좋아하지만 양의 모습이 너무 심심하다. GTI는 빨간 줄 하나를 그어 뛰는 심장을 달래는데 R은 그마저 크롬으로 끝냈다.

GTI 이래로 핫해치는 그냥 골프랑 운전대와 시트만 달리하는 게 공식처럼 됐다. 경제적인 차에 경제적인 튜닝으로 마무리하는 거다. 그런데도 골프 R은 너무 사치스럽다. 그리고 너무 완벽하다. 핫해치의 재미는 차가 완벽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골프 GTI의 조금 모자란 힘을 운전 테크닉으로 메워나가는 재미도 좋다. 모닝 터보의 부족한 부분을 튜닝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도 재미날 것 같다. 수동변속기로 작은 차의 성능을 최대로 끌어내고, 자동차의 구조를 알아가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나아가 드라이빙 스쿨에도 열심히 다녀 운전 실력을 업그레이드한다면 평생 안전한 운전에도 도움이 클 것이다. 핫해치를 모는 경험은 살아가는 데 지혜를 더하는 길이다.

 

 

 

 

거친 것이 매력 랭글러는 오디오 스피커도 거친 느낌이 물씬 난다(왼쪽). 저속기어가 없는 차는 진정한 오프로더라고 할 수 없다(가운데). 어떤 산길도 헤쳐나갈 것 같은 랭글러의 오프로드 타이어.

 

 

 

 

지프 랭글러 언리미티드 루비콘
오프로드를 달리는 재미는 핫해치로 트랙을 달리는 재미와 완전히 다르다. 전혀 다른 세상이다. 모래밭이나 산길을 달리려면 알아야 할 상식도 많다. 비탈길을 오르내리고, 강을 건너고, 진창에서 탈출할 때 방법을 알아야 한다. 윈치를 쓰는 데 주의할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지식은 위급한 순간 나의 생명을 지켜낼 수도 있다. 오프로드 주행의 목적은 목적지에 얼마나 빨리 도달하느냐가 아니라 ‘살아서 도착하느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프로드 주행 상식은 젊은이들이 꼭 알아두어야 한다.

오프로드를 달리기 위해 고를 차는 많지 않다. 요즘 SUV가 넘치지만 제대로 된 오프로더는 저속기어를 갖춘 차여야 한다. 언뜻 랜드로버가 떠오르고, 지프가 떠오른다. 그중 으뜸은 터프한 리지드 액슬로 무장한 랭글러다. 레인지로버는 좀 더 나이 들어 탈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랭글러는 상대적으로 값싸고, 젊은 시절 꼭 거쳐야 할 것만 같은 브랜드 이미지를 지녔다.

지프를 갖는다는 건 지프의 역사를 함께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군용차로 길거리에서 많이 보고, 지프 장난감을 갖고 놀아본 나에겐 거쳐야 할 의례 같기도 하다. 나온 지 75년 된 지프의 인기는 식을 줄 몰라 요즘도 피아트-크라이슬러 그룹을 먹여 살리다시피 하고 있다. 진정한 오프로더는 승차감이나 운전감각이 영 다르다. 거리에 흔한 승용차 바탕의 SUV와는 전혀 다르다. 리지드 액슬로 된 서스펜션은 트럭을 모는 것같이 투박하다.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젊음뿐이다. 그래도 진화를 거듭한 랭글러는 최고속도가 시속 160킬로미터까지 된다. 과거 바람을 잔뜩 안고 달린 지프는 시속 100킬로미터 정도가 고작이었다.

디젤 엔진은 비교적 둔한 반응이 오프로드에 어울린다. 또 경제적이다. 연비가 좋은 건 오지 탐험에 필요한 덕목이다. 랭글러 역시 무궁무진한 튜닝으로 무한한 변화를 줄 수 있고, 그에 따라 오를 수 있는 한계도 달라진다. 시승차는 ‘WARN’의 윈치를 달고, 큼직한 미키 톰슨 타이어를 신어 껑충하면서 터프하다. 랭글러는 4도어 모델이 인기를 이어간다. 공간 여유를 생각하면 4도어에 끌리지만 오프로드를 달릴 것을 생각하면 휠베이스가 짧은 숏보디가 유리하다. 시승차의 번호판에 쓰인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DON’T HOLD BACK.’ 물러서지 말라는 뜻이다. 멋지다.

 

 

 

 

가슴 뛰는 로드스터 새빨간 가죽으로 감싼 실내와 스포츠 시트가 청년의 가슴을 뛰게 한다. 5.0리터 슈퍼차저 엔진은 힘이 넘친다.

 

 

 

 

재규어 F 타입 컨버터블
1971년 헌책방에서 사보던 <모터 트렌드>나 <카앤드라이버> 같은 잡지에는 로드스터가 많이 실렸다. 미국 사람들은 모두 로드스터 한 대씩 집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서 귀국한 미군들이 영국의 MG-TC를 한 대씩 가져온 게 로드스터 붐의 시작이었다. MG, 오스틴 힐리, 트라이엄프, 로터스, 피아트 124 스파이더, 알파 스파이더 같은 로드스터는 부담스럽지 않은 값으로 살 수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엔진 오일이 줄줄 새는 바람에 주말마다 집 차고에서 차를 고치고, ‘앵앵’거리는 엔진 소리를 들으며 드라이브를 즐겼다. 바람을 맞으며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했다.

오늘날 이런 차로 이상적인 건 마쓰다 미아타나 피아트 124 스파이더 같은 차다. 두 대 모두 국내에 곧 들어올 것 같기도 해 기대가 크다. 포르쉐 박스터나 BMW Z4도 바람직하지만 값이 부담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시승차로 구한 2인승 컨버터블은 너무도 호화로운 재규어 F 타입 V8 AWD 모델이다. 내가 생각한 차보다 너무 고급스럽다. 그래, 재규어는 영국 로드스터의 혈통을 잇는다는 의미가 좋다.

로드스터를 제대로 느끼려면 지붕을 열고 달려야 한다. 그런데 오늘따라 영하 7도의 날씨다. 그런데 그거 아나? 오픈카는 겨울에 지붕을 열고 타는 게 제맛이라는. 여름에는 더워서 지붕을 못 연다. 지붕을 열고, 발아래 히터를 세게 틀고, 양털 내피가 달린 가죽점퍼를 입고 달리는 게 정석이다. 아이스크림도 겨울에 먹는 게 더 맛있으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난 영하 7도의 날씨에도 오픈 에어링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다만 옆 창을 올려 바람이 들이치는 것을 막았다.

지붕을 벗기면 벌거벗은 느낌이 든다. 완전한 자유에 가깝다. 차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벗은 몸으로 대중 앞에 나서기 어렵듯 지붕을 벗기니 다른 사람의 시선이 느껴진다. ‘이 추운 날 뭐 하는 거야?’ ‘혹시 돌+아이?’ 난 사명감에 이 추운 날 지붕을 벗겼지만 컨버터블 지붕은 남의 시선이 덜한 장소나 밤에 열면 좋았다. 우리나라는 공기가 좋지 않은데 어떻게 지붕을 열고 타느냐고들 하지만 1년에 한 번만 지붕을 연다 해도 컨버터블을 살 이유는 충분하다.

2인승 로드스터는 일상생활에 제약이 많이 따른다. 짐 공간도 크지 않아 공항에 누구를 데려다주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무시할 때 젊음이 아름답다. 로드스터를 퍼스트 카, 그리고 오직 한 대의 차만으로 쓸 때 젊음이 아름답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피부가 새카맣게 타면 어때? 그런 게 젊음인데.
젊은 청년의 마음으로 모는 F 타입은 고급스러움이 황송하다. 화려한 실내와 폭발적인 배기음 등 모든 것이 지나친 탓이다. 넘치는 힘은 가볍게 널뛰다 순간 이동을 하는 듯싶다. 내가 생각한 지점에 눈 깜짝할 사이에 이동한다. V8 슈퍼차저 엔진의 재규어 F 타입은 모두가 바라는 슈퍼카의 자격을 모조리 챙겼다. 젊은 내가 바라는 건 엔트리급 로드스터인데…. V6 엔진을 얹은 F 타입에 나는 더 끌린다.

 

 

 

 

에필로그
운전의 재미는 무궁무진하다. 운전에 관심을 갖는다는 건 남들이 모르는 재미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위에서 예로 든 세 가지 차종 말고도 봉고트럭 같은 차도 재미있을 것 같다. 값이 싼 데다 여러 가지 튜닝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현실적으로는 액티언 스포츠가 무난할지도 모르겠다.

미래의 자동차는 자율주행차로 바뀔 듯하다. 그러니 어쩌면 미래의 세대는 모를 ‘운전의 재미’를 지금 마음껏 즐기라 권하고 싶다. 차를 알고, 운전 실력을 쌓고, 운전의 재미를 누린다면 이보다 더 즐거운 인생은 없다. 하긴, 자율주행차 운전석에 앉아 SNS에 푹 빠질 수 있다면 그 또한 즐거운 ‘카 라이프’다.  
에디터/서인수

 

 

 

JAGUAR F-TYPE R CONVERTIBLE  
기본 가격 1억8970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AWD, 2인승, 2도어 컨버터블 엔진  V8 5.0ℓ DOHC 슈퍼차저, 550마력, 69.4kg·m 변속기 8단 자동 공차중량 TBA 휠베이스 2620mm 길이×너비×높이 4470×1925×1310mm 복합연비 TBA CO₂ 배출량 TBA
 

VOLKSWAGEN GOLF R
기본 가격 5190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AWD, 5인승, 5도어 해치백  엔진 직렬 4기통 2.0ℓ DOHC 터보, 292마력, 38.7kg·m 변속기 듀얼클러치 6단 자동 공차중량 1540kg 휠베이스 2640mm 길이×너비×높이 4255×1800×1450mm 복합연비 9.9km/ℓ CO₂ 배출량 179g/km  

 

JEEP WRANGLER UNLIMITED RUBICON
기본 가격 5140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4WD, 5인승, 5도어 SUV 엔진 직렬 4기통 2.8ℓ DOHC 터보 디젤, 200마력, 46.9kg·m 변속기 5단 자동 공차중량 2175kg 휠베이스 2950mm 길이×너비×높이 4750×1880×1840mm 복합연비 9.2km/ℓ CO₂ 배출량 221g/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