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주명덕 해인사, 수다라장과 법보전의 지붕  

 

 

한국의 현대건축 신에서 한옥은 자주 일방적 예찬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 글은 ‘전통은 그 무엇이든 아름답고 선한 것, 과학기술이 따라잡을 수 없는 신비로운 것’이라는 논조의 전통 제일주의를 경계한다. 그럼에도 ‘한옥’은 건축의 미래다. 일본의 저명한 건축가 구마 겐고의 말을 빌려 화두를 던진다. 

“사람들은 21세기 건축에서 자연이 다시 주인공이 되기를 열망한다.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의 건축가도 건축의 주변이 아니라 건축 자체에서 자연을 되찾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때에 한국의 전통 건축은 세계인에게 많은 영감을 줄 것이다. 한국인은 대지와 건축을 별개로 생각하지 않고 대지와 같은 건축을 만들고자 노력해왔다. 오늘날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도 대지를 닮은 건축이다.”

한국의 대지는 약 70%가 산과 물로 이뤄져 있다. 조선 시대의 주요 건축물은 대부분 산의 맥과 물의 줄기가 만나는 지점에 터를 틀었다. 풍수지리학이 절대적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통로를 장악하면 인간이 자연의 생기를 흡수하고 감응할 수 있다고 믿었다. 

 

 

창덕궁, 배병우 창덕궁 영화당에서 바라본 부용지 설경  

 

 

 

통도사, 구본창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절로 알려진 경상남도 통도사  

 

 

대표적인 본은 사찰이다. 전라남도 순천의 선암사는 7겹 첩첩이 둘러싼 산속에 들어서 있다. 당시의 종교 시설에서 ‘좋은 부지’란 첩첩산중을 의미했다. 불교가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의 ‘산악 숭배 사상’은 ‘산악 신앙’으로까지 발전했다. 자연의 한가운데, 그러면서도 외부와 고립되지 않은 곳. 속세와 연결은 되어 있지만 무작정 개방되지 않은 곳. 선암사를 비롯해 불국사, 해인사와 같은 오래된 절들은 이 역설적인 조건을 완벽히 충족시킨다. 한국의 종교 건축물이 가진 또 다른 특징은 마천루다. 서구의 바로크 궁, 고딕 성당과 같은 거대 기념비와 달리 높이에 천착하지 않는다. 대신 평지에서 공간적 깊이를 구현한다.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찬탄한 서울의 종묘나 경주의 불국사는 그 물리적 깊이가 정신적 깊이로 어떻게 치환되는지 잘 보여주는 장소다. 답은 문과 담, 회랑으로 둘러싼 건축물을 하나의 단위로 두고, 그 단위들을 반복시킨 공간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문을 지나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는 구성은 마치 내적인 세계로 연결되는 듯하다. 담장과 건물, 돌바닥만이 존재하는 종묘의 안마당에서 정적과 고독, 영겁의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이유다. 

가장 원칙적이며 유교 사상에 입각한 엄격한 건축 규율이 적용되는 조선의 궁궐에서도 ‘자연’은 원칙 위에 존재한다. 창덕궁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 가장 오랜 기간 ‘정궁’의 역할을 한 궁궐임에도 파격적인 비정형 배치로 지어졌다. 땅의 원래 생김새를 존중하기 위해서다. 당시 절대군주였던 국왕은 일직선로만 걷는다는 규율을 지켜야 했다. 창덕궁의 정전(왕의 거처)으로 가려면 방향을 2번 꺾어서 들어가야 한다. 궁 내 건축물 역시 다른 궁과 달리 정방형의 규칙적 배치가 아니다. 그럼에도 왕실과 궁궐의 위엄이 보존되는 구조, 자연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구조다. 

 

 

양동마을, 주명덕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집성촌이자 유서 깊은 양반 마을, 양동마을의 설경  

 

 

일상의 터전, 민가 건축은 자연과 가장 강력히 감응한다. 조선 시대의 지성인, 유학자들이 주장한 ‘공간의 이상향’은 안에 있어도 밖에 있는 듯한 공간이다. 즉 방 안에 앉아 있어도 자연 속에 둘러싸인 느낌을 갖게 하는 것. 자연에 손을 가하여 인공적인 정원을 만들기보다는 자연 깊숙이에서 최소한의 터를 닦아 머물 곳을 짓는 것. 주변의 풍광과 하나가 되는 건축물을 추구했다. 전라북도 담양, 낙향한 사대부 양산보가 지은 소쇄원은 유학자의 이상향에 매우 가깝다. 특히 사랑방 역할을 한 광풍각은 안이면서 동시에 바깥인 공간의 표본이다. 동서남북의 문을 날개처럼 펼치면 집이었던 공간은 곧장 사방이 시원하게 뚫린 정자가 된다. 서너 채의 작은 건물, 최소한의 담장과 다리와 물길도 땅과 나무, 산과 물의 원형을 존중한다.  

<영원의 건축>의 저자,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시간을 초월하는 영원한 건축법이 있다’고 주장했다. 머물기에 편안하며 시간이 지나도 똑같은 가치를 지닌 과거의 훌륭한 건축물은 이 영원한 건축의 핵심을 꿰뚫는 이가 지은 것이다. 수백 년 전에 그 답을 아는 이가 조선에 있었다.

 

 

장엄한 고요, 박종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국가적인 제사를 지내는 사당, 종묘에서 재현되는 제례 의식  

 

도산서원, 김도균 조선의 유학자 퇴계 이황이 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도산서원

 

 

 

INFO 

삼성미술관 리움의 큐레이터 이준은 “우리 스스로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 대해서는 알아도 서울 한복판에 있는 종묘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베르사유 궁전의 바로크 양식은 예찬하면서도 아름답고 슬픈 창덕궁의 역사에 대해선 무심했다”고 말했다. 리움은 자국의 문화와 예술, 건축 등에 무지한 이를 위해 고미술과 현대미술, 전통과 현대의 융합을 꾸준히 모색한다. 그러한 의도에서 <한국 건축 예찬, 땅의 깨달음>이라는 전시와 사진집을 기획했다. 당신이 지방 곳곳에 포진한 한국 건축물의 미학과 진수를 직접 경험할 수 없다면 리움의 전시에서 사진가 주명덕, 배병우, 구본창이 담아온 풍경을 여행해보자. 2월 26일까지. 

A 60-16, Itaewon-ro 55-gil, Yongsan-gu, Seoul T 02-2014-6900 W www.le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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