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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디자인 거장을 만나다_part1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자동차 디자인 거장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과의 만남은 매 순간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의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시간 여행이었다. 이것은 강렬하고 위대했던 그 여정의 기록 중 첫 번째 이야기다

2016.01.07

 

시작은 2015년 2월이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디자인 및 매거진 하우스 ‘에디토리알레 도무스(Editoriale Domus)’에서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카 디자이너들과 직접 만나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인데 함께하자는 내용이었다. 이름하여 ‘미트 더 마스터스 오브 이탤리언 카 디자인(Meet the Masters of Italian Car Design)’. 조르제토 주지아로, 발터 드 실바, 레오나르도 피오라반티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디자이너들이 상당수 포함됐다. 심지어 기조연설자는 크리스 뱅글이었다. 거장의 생각과 디자인 비결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빅 이벤트. 우린 기꺼이 함께하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이어서 동행할 젊은 자동차 디자이너를 수개월 동안 물색했다. 최종적으로 국내에서 현대자동차 소속 디자이너 4명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 1명을 선발했다. 취재에는 박규철 편집위원이 함께했다. 드디어 2015년 11월, 우리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이탈리아 밀라노로 향했다.

 

 

BMW 지나

 

 

22일 오전, 크리스 뱅글의 그랜드 오프닝
본격적으로 거장을 만나기 전 우리는 한 명의 특별 손님을 만났다. 바로 크리스 뱅글이다. 그는 2009년 BMW에서 나온 이후 공식적으로 자동차 디자인업계에서 떠났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전설이다. 은퇴 이후 와이너리로 유명한 이탈리아 북부 클라베자나에서 CBA(Chris Bangle Associates)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BMW에 오기 전 피아트에서 7년 동안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이때 이탈리아의 디자인 감성과 문화에 깊이 빠졌다. 크리스 뱅글이 BMW에 입사하면서 독일로 갔을 때 사람들에게 이렇게 소개했다고 한다. “안녕하세요. 나는 미국, 아내는 스위스에서 태어났지만 우린 이탈리아 출신입니다.” 그가 이번 이벤트의 오프닝을 흔쾌히 허락한 이유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강연장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갔다. 이미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크리스 뱅글의 모습이 먼발치에서 한눈에 들어왔다. 난 발걸음을 재촉해 맨 앞자리에 앉았다.

 

 

 

DAY 22. AM 디자인 비법을 설파 중인 크리스 뱅글.

 

 

그는 현재 이탈리아에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디자이너는 자동차의 퍼스낼리티를 이해해야 한다.”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사진이나 동영상, 녹음은 안 됩니다. 이것만 지켜준다면 나 역시 여러분께 진솔하게 다가가겠습니다.” 모든 청중이 손에서 카메라와 녹음기를 내려놓고 크리스 뱅글에 집중했다. 그는 직접 준비한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열고 특유의 빠른 억양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제는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의 위대함’이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는 한 번도 이탈리아 자동차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깊숙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기저기서 공감을 표하는 탄사가 터져 나왔고 사람들의 표정은 경이로움으로 차기 시작했다. 마지막에야 그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크리스 뱅글은 자신이 디자인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가지 원칙을 인용구로 예를 들었다. 먼저 산업디자인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레이먼드 로위가 말했던 ‘MAYA(Most Advanced Yet Acceptable)의 원칙’이다. 즉 디자인은 트렌드에 가장 앞서야 하고 현실적으로 소비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한계를 짓는 것에 불과하다’며 디자이너가 사고의 범위에 타협점을 찾는 것을 경고했다.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나오는 대목이다.


비유의 연속이 이어졌다. 먼저 ‘장벽의 비유’다. 디자이너들의 놀이터에는 무수히 많은 문제가 존재하고 그 놀이터는 무형의 장벽이 둘러싸고 있다. 그 장벽은 비용과 브랜드 아이덴티티, 효율, 안전 등 수많은 제약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요즘 나오는 자동차 디자인이 다 비슷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이 장벽을 튼튼하게 유지 보수하면서 동시에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영역을 넓히는 것이라고 했다. 한 가지 예로 그가 BMW에서 디자인한 콘셉트카 ‘지나(Gina)’를 들었다. 2008년 처음 선보인 콘셉트카 BMW 지나는 프레임을 알루미늄과 탄소섬유 소재로 만들고 차체를 고탄성 우레탄 섬유로 덮어씌웠다. 그래서 도어는 피부의 주름이 접히는 것처럼 열리고 헤드라이트가 켜질 땐 마치 맹수가 눈을 뜨는 인상을 준다. 차체에서 금속을 없애 친환경적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여우의 꼬리’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여우가 아름다운 것은 여우 전체가 아닌 꼬리 덕분이라며 차를 돋보이게 하는 디테일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동차 디자인을 연극에 비유하며 퍼스낼리티와 캐릭터의 구조를 설명하기도 했다. 연극은 작품마다 고유의 퍼스낼리티, 즉 고수해온 장르와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완성하는 것은 배우들의 캐릭터다. 디자이너는 자동차의 퍼스낼리티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를 우선 이해하고 그것을 어떠한 캐릭터로 표현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크리스 뱅글은 모든 디자인에는 지속가능성과 즐거움, 이 두 가지가 항상 공존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즐거움이란 길티 플레저, 즉 공개하기엔 쑥스럽지만 비밀스럽게 탐닉하는 희열까지 포함한다. 이 외에도 디자인에는 현실성, 비전, 오랜 역사, 자동차 이외의 것들에 대한 관심까지 모두 담겨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음했다. “지금까지 말한 모든 이야기가 바로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곧 만나게 될 거장들이 만들어놓은 것들이죠. 앞으로 사람들이 페라리를 엔진으로 이야기할 것인지 디자인으로 이야기 할 것인지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내 평생 겪어본 최고의 그랜드 오프닝이었다.

 

 

 

 

DAY 22. PM 밀라노의 거리는 어느 것 하나 평범하지 않다. 건축, 패션, 조형물 등 곳곳이 독특한 디자인으로 가득 차 있다.

 

22일 오후, 밀라노를 걷다
크리스 뱅글과의 짧고 강렬했던 만남을 뒤로하고 사람들과 거리로 나갔다. 밀라노는 이제 막 겨울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거리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간헐적으로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며 노천카페에 앉아 어김없이 에스프레소를 홀짝거렸다. 얼마 전 성황리에 마친 ‘밀라노 엑스포’의 홍보물도 이따금 눈에 띄었다. 장장 6개월 동안 140개국이 참가한 규모 때문이었는지 거리 곳곳에서는 이제 막 시동을 끈 차의 보닛처럼 그 여열을 느낄 수 있었다.


몇 달 전 드론 충돌 사고로 창피한 기억을 남긴, 그 유명한 두오모 성당과 마주했다. 웅장한 규모에 압도돼 사진 찍는 것도 잊고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가까이 가 벽에 장식된 조각들을 구경했는데 누가 조각했을지 궁금할 정도로 디테일과 완성도가 뛰어났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봐도 성당 자체가 거대한 조각 작품이었다. 소개 책자에 따르면 두오모 성당은 1386년에 시작해 1965년 마지막 출입구를 완성했는데 아직 조각되지 않은 돌덩이도 보였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파리 테러가 난 직후라 곳곳에서 군인과 경찰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카메라에 과거의 건축을 그득 담고 미래의 건축 디자인을 보러 포르타 누오바로 향했다. 이곳은 독특한 디자인으로 지어진 아파트와 고급스러운 비즈니스 센터, 광장, 쇼핑몰, 녹지, 자전거 트랙 등이 결합한 새로운 시가지다. 두오모 성당이 다양한 조각과 고딕 양식의 첨탑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었다면, 포르타 누오바는 각기 다르게 생긴 빌딩들이 어우러져 도심 한복판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있었다. 도무스의 카르멘 피지니가 설명을 덧붙였다. “얼핏 불규칙해 보여도 사람의 동선과 주거환경 등을 실용적이고 과학적으로 고려한 설계랍니다. 이 빌딩들이 지금의 밀라노 스카이라인을 확 바꿔놨어요.” 밀라노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디자인’으로 가득 찬 채 시작됐다.

 

 

 

DAY 23. AM 발터 드 실바가 디자인한 알파로메오 156. 독특한 디자인으로 1990년대 후반 큰 인기였다.

 

 

23일 오전, 발터 드 실바의 고별 무대
다음 날 드디어 거장과의 만남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폭스바겐 그룹 디자인을 이끌었던 발터 드 실바를 만났다. 그는 1972년 피아트에서 처음 디자인을 시작해 알파로메오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다 1988년 세아트 디자인 총괄을 거쳐 2007년부터 폭스바겐 그룹 전체의 디자인을 총괄했다. 발터 드 실바가 우리 앞에 섰을 땐 퇴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사실 그의 은퇴 소식이 너무 갑작스럽게 알려지는 바람에 세간에서는 폭스바겐의 이번 배기가스 스캔들과 연관 지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은 그런 가십에 별 관심이 없었다. 발터 드 실바가 들려주는 디자인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였다.


그가 오랫동안 이탈리아가 아닌 독일 기업에 몸담아서였을까? 과거 작품들을 보여주며 옛날이야기를 할 것으로 생각했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과거 그의 역작으로 손꼽히는 알파로메오 156조차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자동차 디자인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더 정확하게는 ‘디지털화가 자동차 디자인에 미치는 영향’이 주제였다. 자동차 디자인을 논하는 데 ‘디지털’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처음엔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우선 산업디자인 자체를 몇 발자국 떨어져서 볼 필요가 있다.


“상품에서 디자인은 어떻게 보이느냐, 어떻게 느껴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작동하느냐다.” 고(故) 스티브 잡스의 말이다. 바꿔 말해 산업디자인은 단순한 겉치장이 아니라 사용하기에 편리하게끔 고안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품 디자인에는 지속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비자는 계속 새로운 것을 원하고, 상품이 상호작용하는 요소들도 더욱 다양해진다. 일례로 과거의 스티어링휠과 요즘 나오는 차들의 버튼 가득한 스티어링휠만 봐도 알 수 있다.


발터 드 실바가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차창 밖으로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는데 실내에서 바라본 지붕에는 강렬한 태양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물론 미래의 자동차를 가상으로 표현한 것일 테지만 현실과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곧 자동차의 실내 천장을 컴퓨터 바탕화면 바꾸듯 설정하며 운전하게 될 날도 오지 않을까? 외관 역시 마찬가지다. OLED 패널과 레이저 라이트 등을 활용해 차체를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디지털화된 헤드라이트와 그릴 모양의 변화로 운전자의 기분을 표현하는 것이다. 차체 전체가 OLED 패널로 뒤덮인 차는 어떠한가? 차 자체가 디스플레이가 되어 어떠한 비주얼이든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기술이 디자인을 지배하는 시대도 가능하다. 발터 드 실바는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는 앞으로 오게 될 자율주행 시대에 더 격렬히 발생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자동차가 주는 가치가 ‘운전의 즐거움’에서 ‘이동의 즐거움’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안경을 고쳐 쓰며 진지하게 말했다. “디자이너는 앞으로 소재와 IT 분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동수단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언제나 직시하며 새로운 영감을 얻어야 합니다.” 멋진 고별 무대를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온 그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따로 마련된 인터뷰에서는 연신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은퇴를 앞둔 거장의 미소. 그 안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수많은 감정과 의미가 담겨 있었다.

 


“디자이너는 소재와 IT 분야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발터 드 실바를 보내며
갑작스러운 은퇴 소식에 많은 사람이 놀랐습니다. 원래 65세가 되면 은퇴하려고 했는데 조금 당겨진 것뿐입니다. 5개월 전부터 퇴임 시기를 논의했습니다. 사실 근래 폭스바겐의 큰 변화가 나에게 어렵게 작용한 것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은퇴 이후에는 무엇을 할 생각입니까? 그동안 못 해본 취미 활동을 즐기며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낼 것입니다. 그리고 대학 강의든 레슨이든 후학 양성에 힘써볼 계획입니다. 현재로선 업계에 몸담고 있는 것보다 그게 더 가치 있는 일이고 나에겐 또 다른 도전이 될 것입니다.

후임자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폭스바겐 그룹의 디자인 방향은 어떻게 되나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폭스바겐의 차들은 여전히 멋지고 뛰어납니다. 내가 없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전통을 잘 따르면 됩니다. 그리고 지금의 위기는 반드시 헤쳐나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스텔스 전투기에서 영감을 얻은 레벤톤(왼쪽)과 에디지오네 테크니카 디자인 패키지를 얹은 가야르도 LP 570-4 슈퍼레제라(오른쪽). 모두 필리포 페리니가 디자인했다.

 

 

 

DAY 23. PM

 

23일 오후, 필리포 페리니의 질주
“늦어서 미안합니다.” 람보르기니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는 필리포 페리니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헐레벌떡 들어왔다. 그는 이탈디자인의 이사회 회의가 예상보다 길어져 지각했다며 양해를 구했다. 1968년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설립한 이탈디자인은 경영 악화로 2010년 폭스바겐 그룹에 팔렸다.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갖고 있던 남은 지분마저도 최근엔 아우디로 넘어갔다. 필리포 페리니가 노트북을 주섬주섬 꺼내며 말했다. “요즘 새로운 디자이너들과 이탈디자인 팀도 관리하고 있는데 매우 도전적이고 재밌습니다. 자, 그럼 우리 람보르기니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그가 화면을 띄우자 청중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우라칸, 우르스, 콘셉트카 디자인에 사용됐던 비공개 스케치와 렌더링 이미지들이 휙휙 지나갔다. 실제 디자인에 쓰이는 ‘알리아스’ 프로그램을 실행해 과거에 작업했던 결과물을 보여주기도 했다. 현재 람보르기니 디자인 팀에는 13명의 팀원이 있는데 그중 두세 명은 학생 신분의 인턴사원이라고 한다. 우라칸 디자인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인턴사원의 렌더링을 보여주자 곳곳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학생이 디자인한 것치고는 꽤 완성도가 높았다. 별다른 설명 없이 실제 작업물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디자이너들 사이에 깊은 공감대가 형성됐다. 심지어 디자인 품평회 과정까지 거침없이 알려줬다. 그는 마치 같은 회사 선배가 오제이티(OJT)를 하듯 매우 실용적이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유일하게 강연 시간보다 질문 시간이 더 길었다.


“예전부터 항상 지켜온 철학이 있습니다. 디자인은 ‘왜’에서 출발해야 하고, 그 ‘왜’는 ‘문화’를 뜻합니다. 디자이너는 스케치가 아닌 ‘문화’를 그려내야 합니다. 동시에 브랜드의 DNA를 담아내야 하죠.” 그는 다면체로 이루어진 수정을 비유하며 람보르기니 디자인의 가장 큰 특징으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꼽았다. 또한 2014년에 단 9대만 판매된 베네노를 예로 들며 다운포스를 만들어주는 리어 스포일러의 구조 등 성능을 뒷받침하는 기능적인 요소도 강조했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람보르기니를 비롯한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만의 특징은 무엇인지 물었다. “디자인은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은 같은 과정을 따르지 않지요. 예전에 아우디 디자인도 맡은 적이 있었는데 그땐 사실 정해진 로직과 시스템에 따라 완벽한 디자인을 만들어야 해서 힘들었습니다. 이탈리아 차는 그렇게 접근하지 않아요. 흰 종이에 가득한 설렘으로 시작합니다. 이탈리아인은 매일 같은 옷을 입지 않지요.” 다른 질문을 던졌다. 누구나 꿈꾸는 드림카를 디자인하는 일이 쉬워 보이진 않는데 람보르기니 디자인의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그러자 그가 노트북의 폴더 하나를 열더니 다양한 람보르기니 모델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전혀 없습니다. 사실 토요타 캠리 같은 차의 디자인이 가장 어려워요. 싱글 프로젝트로 전 세계 모든 시장을 고려해야 하니까요. 우린 그저 ‘꿈’을 가져오는 것에만 신경 쓰면 됩니다.” 순간 아주 멋진 람보르기니 모델 하나가 화면에 나타났다가 없어졌다. 그가 실수로 아직 공개해선 안 되는 신차의 3D 이미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우리에게 부탁했다. “혹시 지금 이 차의 사진을 찍은 사람이 있다면 절대로 외부에 공개하지 말아주세요.” 그의 간곡한 부탁으로 그 차를 묘사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점은 ‘꿈’을 꾸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미 40명이 비밀리에 사전 계약을 마쳐 모두 팔렸다고 한다.

 


“디자인은 ‘왜’에서 출발하고 ‘문화’를 그려내야 한다.”

 

 

 

 

DAY 23. PM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팀을 이루어 실제 회사 디자인 팀에서 하듯 경합을 벌인다.

밀라노의 전통 있는 산업디자인 학교다.

 

 

23일 저녁, 디자인을 배운다는 것
밀라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피자집에서 저녁을 먹고 도무스 관계자와 함께 밀라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디자인 학교를 찾았다. 바로 밀라노 SPD(Scuola Politecnica di Design)다. 1954년에 세워진 전통 있는 디자인 학교로 산업디자인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그래픽디자인도 배울 수 있다. 총 1년 과정을 모두 마치면 석사 학위가 나온다.


운 좋게도 며칠 전 자동차 디자인 품평회를 마친 클래스가 있어 학생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사실 이들이 디자인한 차는 양산이 아닌 콘셉트를 이야기하는 것이 목적이라 모두 공상과학 영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했다. 폴란드에서 왔다는 학생 한 명이 본인이 디자인한 전기차 모형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상과 현실 속에서 엄청나게 싸운 뒤 나온 작품입니다. 디자인이란 게 그런 것 같아요. 멋지기만 하고 무용지물이면 그건 디자인이 아니라 그냥 그림입니다. 첫 수업 시간에 제가 받은 지적이었어요.” 학교를 모두 돌아보고 나니 밤 10시였다. 아직 시차 적응도 안 돼 파김치가 된 몸을 빨리 호텔 침대에 누이기 위해 부랴부랴 밖으로 나왔다. 차에 타고 SPD 건물을 다시 올려다봤을 때 거의 모든 창문에서 하얀 불빛이 새어 나왔다. ‘분명히 엊그제 품평회가 끝났다고 했는데…’ 그들의 손과 가슴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과거에는 이탈리아 자동차 자체가 스페셜 에디션이었다.”

 

 

 

 

에르콜레 스파다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생산 관리와 테스트 주행까지 직접 하면서 디자인을 꼼꼼하게 보완했다.

 

 

 

DAY 24. AM 알파로메오 줄리에타 SZ

 

 

24일 오전, 에르콜레 스파다의 ‘역사는 흐른다’
다음 날 아침 에르콜레 스파다의 강연에 앞서 도무스 관계자가 말했다. “어제 강연한 필리포 페리니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혹시 어제 비공개된 신차의 사진을 찍은 사람이 있다면 절대로 외부에 공개하지 말아달라고요.” 단상에 앉아 있던 에르콜레 스파다가 웃으며 말했다. “난 괜찮아요. 내 사진은 모두 외부에 공개해도 좋습니다.”
에르콜레 스파다는 16세부터 자동차 디자인에 뛰어들었다. 올해로 디자인 경력만 무려 50년째다. 그는 어릴 때 습작으로 그렸던 스케치부터 시작해 전성기에 디자인한 작품까지 수많은 차를 보여주었다. 그의 역작들은 주로 1960년대에 자가토 수석 디자이너로 있을 때 탄생한 것이다. 페라리, 마세라티, 알파로메오, 피아트, 아바스, 란치아 등 모든 이탈리아 차는 물론이고 애스턴마틴, BMW, 포드 GT 등 당시 그의 손을 안 거쳐간 차가 없었다.  그의 이야기 자체가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의 현대사였다.


그는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뒤를 수직으로 잘라낸 알파로메오의 테일 컷 디자인을 강조했다. 실제로 이 디자인을 상용화하기 위해 BMW 풍동실험실에서 여러 번의 테스트를 진행했고 이후 다른 다양한 모델에도 이 테일 컷 디자인을 적용했다. 이는 곧 다른 카로체리아에도 유행으로 퍼져나갔다. 유선형 모양의 디자인을 할 땐 디테일에 크게 신경 썼다. 실제 크기의 모형을 만들어 살펴보느라 앞뒤로 오간 거리만 수 킬로미터라고 한다. 1970년대엔 직접 테스트 주행에도 나섰다. 결과는 곧바로 디자인에 반영해 다듬었다.


오랜 자동차 디자인 경험을 바탕으로 그가 10년, 20년 뒤의 자동차 미래를 내다보았다. “과거의 차들을 보면 매우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슈퍼카도 차가 거의 모든 걸 알아서 합니다.” 에르콜레 스파다는 디자인의 핵심 가치인 아이덴티티는 변하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아울러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강화되는 안전 규정이 창의적인 디자인에 가장 많은 제한을 주었다며 다소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현재의 카로체리아 부재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1950년대에 토리노에만 15개의 카로체리아가 있었지만 지금은 비용과 효율 때문에 거의 모든 카로체리아가 없어졌죠. 그러면서 이탈리아만의 강한 예술적 정신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엔 이탈리아 차 자체가 스페셜 에디션이었는데 말이죠.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그것이 우리의 헤리티지인 걸요.” 문득 요즘 귓가에서 자주 맴도는 노랫말이 생각났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 (이 기사는 2016년 2월호에 계속됩니다)

 

카메라 협찬/캐논코리아컨슈머이미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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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모터 트렌드,MOTER TREND,CAR,자동차,자동차 디자인,거장,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에르콜레 스파다,필리포 페리니,발터 드 실바

CREDIT Editor 조두현 Photo 에디토리알레 도무스 제공 출처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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