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술에는 양면성이 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자.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정보를 찾거나 업무를 보고, 오락거리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기술이 선물해준 혜택이자 장점이다. 그러나 손바닥만 한 화면에 집중하느라 주변을 신경 쓰지 못하거나, 액세서리 소비에 지갑이 얇아지는 걸 눈치채지 못하는 현상은 분명 단점이다.

눈에 보이는 기술의 양면성 뒤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파급효과도 있다.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쓰이는 유독 물질이나 제조업체의 열악한 근로 환경, 배터리에 들어가는 희귀 소재 채굴로 파괴되는 자연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환경보호나 근로여건 문제로 아무리 불매운동을 벌여도 좀처럼 소비자들의 눈과 귀에 이런 내용은 들어오지 않는다. 당장 내가 쓰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환경오염을 줄이자는 이야기는 누구나 수긍한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사면서 화면 크기, 배터리 용량은 따져도 환경친화 제품을 고른다는 사람은 없다. 스마트폰뿐 아니라 대부분의 공산품이 환경과 친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든 물건인 만큼 중요한 사항이 정해져 있다. 구매부터 유지비용, 실생활에 주는 편리함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자동차는 싸게 사서 돈 적게 들이고 편하게 탈 수 있으면 좋다. 최근 몇 년 사이 디젤 승용차의 수요가 대폭 늘어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든 디젤 승용차가 꼭 그 이유로 잘 팔린 것은 아니겠지만, 중요한 결정 요소라는 것은 틀림없다.
그런 관점에서 디젤 승용차는 소비자에게 좋은 차였다. 주유소에서 가솔린과 똑같이 주유하면 더 많이 연료를 넣을 수 있다. 게다가 비슷한 배기량의 휘발유 엔진보다 연료도 적게 먹는다. 값비싼 수입차를 살 때도 디젤이면 유지비 걱정은 덜 해도 되니까 부담감이 그만큼 줄어든다. 물론 하이브리드도 연비에 유리하다. 하지만 디젤만큼 편하고 시원하게 사용할 수는 없다. 게다가 초기 투자비용도 비싸다.

그러던 디젤이 디젤 게이트 사건이 터지면서 갑자기 ‘나쁜 것’이 돼버렸다. 디젤 게이트는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폭스바겐이 특정 디젤 엔진의 배출가스 제어를 조작한 사건이다. 폭스바겐이 나쁜 일을 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을 인정했고, 해결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충분한 해결책이 마련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테고, 그와 관련한 평가와 대응은 그때 가서 할 일이다. 문제는 폭스바겐이 조작한 것이 디젤 엔진이라고 해서 디젤 엔진 자체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디젤 게이트의 본질적 문제에 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말이다. 디젤 게이트는 본질적으로 제도와 소비자에 대한 기업의 기만행위다. 그리고 문제의 발단은 특정 엔진이 실제 주행 조건에서 법규에서 정한 기준 이상의 유해 배출가스를 내놓은 데 있다. 즉 디젤 게이트의 핵심은 대부분 사람이 별 관심 없었던 ‘환경문제’라는 것이다. 적지 않은 언론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생각하듯 연비를 속인 것이 아니다. 디젤 게이트나 디젤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디젤 게이트로 시작된 소비자 소송에서도 알 수 있다. 국내 한 법무법인이 폭스바겐 아우디를 상대로 진행하고 있는 소송 자료에 따르면 이렇다. 소송의 주 청구 원인은 ‘사기에 의한 법률행위의 취소’이고, 예비적 청구 원인은 자동차 가치 하락, 연비 하락에 따른 추가 유류비와 성능 저하에 대한 배상 등을 꼽는다.

디젤 게이트의 핵심은 그동안 대부분 소비자가 별 관심 없었던 ‘환경문제’라는 것이다.

사기의 성립 여부에 논란의 여지는 있고 그 부분은 재판에서 따질 문제다. 그러나 실제 구매 동기와는 관계없이 소비자가 예상하지 않은 문제가 있는 제품을 판매한 것은 사실이다. 이는 분명 소송감이다. 주목할 부분은 ‘예비적 청구 원인’이다. 여기에서는 리콜 후에 연비가 하락할 것을 가정하고 그에 따른 추가 연료비와 중고차 가치 하락, 성능 저하 등에 대한 손해배상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관한 손해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입증할지는 법무법인의 능력에 달려 있겠지만, 초점은 연료비를 포함한 운용비용과 차의 가격 가치에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디젤 게이트의 본질적 문제인 배출가스 조작에 따른 환경 관련 피해에 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다.

많은 사람이 배출가스와 연비를 연관 지어 생각하는 이유는 그동안 배출가스 문제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에만 집중됐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CO₂)는 지구온난화의 원인 중 하나인 온실가스를 대표하는 물질이다. 또 연비 측정을 위해 검출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연비는 배출가스 속 탄소 성분을 검출해 계산식으로 얻는다. 그런데 배출가스 속 탄소 성분의 대부분을 이산화탄소가 차지하기 때문에 이산화탄소가 많이 배출되면 연비도 나빠진다. 그래서 ‘연비가 나쁜 차’는 곧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차’이고 결국 ‘환경을 많이 오염시키는 차’라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번에 문제가 된 성분은 탄소 성분과는 별 관계가 없는 질소산화물(NOx)이다. 질소산화물이 많이 생긴다고 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그에 정비례해 많아지는 것은 아니다.

디젤 엔진은 일반적으로 휘발유 엔진보다 에너지 효율이 높고, 온실가스 관점에서도 환경을 덜 오염시킨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질소산화물과 입자상 물질이다. 질소산화물은 광화학 스모그와 호흡기 질환의 원인으로 손꼽힌다. 광화학 스모그는 흔히 LA형 스모그라고도 불리는데, 1940년대 이후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1970년 전후 일본 도쿄에서 인체에 피해를 줄 정도로 심각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 미국과 일본에서 자동차 관련 환경 규제가 크게 강화된 계기였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디젤 승용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소수였고, 휘발유차에 촉매를 강제로 쓰게 한 이후로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따라서 지금의 디젤차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규제 기준은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예방 차원의 조처이고, 실제 디젤차가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 결과라고 하기는 어렵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모든 차가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과정이 있어야 결과도 있는 법. 휘발유차가 그랬듯 디젤 엔진도 점점 더 깨끗해지고 있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는 무공해 동력원에 자리를 내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얘기했듯 모든 기술에는 양면성이 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희생이 따른다. 눈에 보이는 것을 희생한다면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기 쉽다. 당장 디젤 엔진을 탓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라. 과연 대체 기술에는 양면성이 존재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