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의 기함과 1.6리터짜리 디젤엔진의 조화가 어색한 건 한국인뿐만 아닐 거다. 큰 차를 선호하는 미국이든, 경차를 선호하는 일본이든, 갑자기 자동차가 많아진 중국이든 충분히 “말이 돼?”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이라면 다르다. 오밀조밀 모여 사는 유럽에서 큰 차는 불편하다. 그래서 굳이 큰 차를 만들지 않는 브랜드가 꽤 있다. 특히 프랑스가 그렇다. 푸조든 시트로엥이든 르노든 5미터 넘는 승용차가 없다. 그 말인즉 기함임에도 1.6리터 디젤엔진으로 내달리기 충분한 크기란 얘기다.

푸조 508도 마찬가지다. 4.8미터가 조금 넘는 길이의 기함이다. 2008이 선보이기 전인 2014년까지만 해도 국내에 꾸려진 푸조 라인업 중 가장 많이 판매되던 모델이었다. 508은 지난해 부분변경을 거치며 인상을 완전히 탈바꿈했다. 그리고 이번엔 유로6 기준을 충족시키는 엔진으로 바꿔 달며 심장까지 새로워졌다. 단순히 여기저기 손봐 기준치만 도달한 수준이 아니다. 용하게도 종전보다 출력은 8마력, 토크는 3.1kg·m 강력해졌다. 그러면서 변속기도 MCP에서 EAT6로 교체됐다. 이건 탁월한 선택이다. MCP는 사실 기함급 모델에 어울리는 변속기가 아니었다. 수동변속기를 자동으로 변속하는 구조라 변속을 위해 동력 전달을 끊을 때면 매번 상체가 앞으로 숙여졌기 때문이었다. VIP를 모시기엔 어딘지 쑥스러웠다. 기함이라면 MCP의 장점인 탁월한 직결감과 높은 효율보다는 EAT6의 장점인 민첩하고 유연한 변속과 안락한 승차감 유지가 더 잘 맞는 궁합이다.

궁합이 좋으니 1.6리터 엔진임에도 기함과 조화롭게 어울린다. 가속은 초반부터 힘차게 밀어붙인다. 물론 풍성한 느낌은 아니다. 1750rpm부터 터져 나오는 30.6kg·m의 최대토크 덕분에 갈증이 느껴지진 않을 정도란 얘기다. 변속기는 똑똑하다. 평소에는 rpm을 가능한 한 낮게 사용해 연비를 높인다. 그러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최고출력이 작렬하는 3500rpm 위아래로 회전수를 맞춰가며 가속 시간을 단축시킨다.

재밌는 건 급가속으로 차를 밀어붙인 이후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완전히 떼도 변속기가 운전자 눈치를 보며 한동안 높은 rpm을 유지한다. 언제 또 갑자기 속도를 낼지 몰라 더 높은 단으로 변속하지 않고 기다리는 거다. 물론 반응이 없으면 이내 엔진을 진정시킨다. 이쯤 되니 변속기가 제일 마음에 든다. 힘과 연료를 정말 알뜰하게 사용할 줄 안다. 그리고 운전자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 노력할 줄도 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공인연비는 복합기준 리터당 14.2킬로미터다. 거칠게 내몰지 않는다면 이 정도 연비를 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급가속과 급제동 등 급한 조작이 많아지면 연비가 생각보다 많이 떨어진다. 출력에 비해 차가 무거워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일상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급조작 시 연비 변화를 보면 무게가 가늠이 된다. 대충 몰아도 나쁘지 않은 효율을 보여주지만, 막 몰면 정말 막 먹는다.

승차감이나 실내외 구성 등은 종전과 같다. 7인치 터치스크린 아래서 튀어나오는 컵홀더도, 엔진오일 온도와 냉각수 온도가 모두 표시되는 스포티한 계기반도 그대로다. 하지만 엔진과 변속기가 달라진 것만으로도 신형이란 의미는 충분해 보인다. 낮아진 연비도 아쉽지 않을 만큼 흐뭇한 조화다.

SPECIFICATION PEUGEOT 508 1.6 LUX
기본 가격 4290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FWD, 5인승, 4도어 세단 엔진 4기통 2.0ℓ DOHC 터보 디젤, 120마력, 30.6kg·m 변속기 6단 자동 공차중량 1610kg 휠베이스 2815mm 길이×너비×높이 4830×1830×1455mm 0→시속 100km 가속시간 11초 복합연비 14.2km/ℓ CO₂ 배출량 138g/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