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인면옥 : 난 이 집에 악감정이 없다는 걸 우선 밝힌다.
정인면옥을 찾은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집에서 가까우니까. 냉면집 앞에서 줄 서기 싫어서. 한마디로 꿩 대신 닭! 단지 해장을 하기 위해 찾아간 집이라 내 혀까지 술에 절어 그 맛을 구분 못 했던 것일까? 어찌 된 영문인지 이 집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다. 광명시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가 현재 여의도로 옮기면서 맛이 변했다는 설이 있지만, 내 경험으로는 그저 면에서 느껴지는 투박함과 동치미스러운 듯, 아닌 듯한 육수가 딱히 입에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단, 내 입맛이 정답은 아니다. 평양냉면의 맛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면 반드시 가보길 바란다. 선택은 각자 몫이니까. 
A 23, Yeonhui-ro 11ga-gil, Yeongdeungpo-gu, Seoul

 

 

 

2 필동면옥 : 필동면옥과 소주는 안 어울린다.
이유는 이렇다. 필동면옥의 아름다운 육수와 소주는 각기 오라가 대단한 나머지 함께 있으면 서로를 욕되게 하는 느낌이다. 육수와 함께 면발 위에 어우러진 편육, 달걀, 고춧가루, 파의 조합 역시 매우 절묘하다. 육수를 들이켰을 때 풍기는 향은 이 네 가지 고명이 깊이 밴 맛이다. 적당히 가는 면은 어떤 냉면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최고다. 만약 필동면옥의 면이 을밀대만큼 두껍다면? 난 아마 먹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모로 필동면옥 냉면은 그 자체로 순수하게 빛난다. 양념장에 찍어 먹는 제육과의 궁합이라면 또 모를까. 그러므로 술은 아니었던 걸로. 
A 26, Seoae-ro, Jung-gu, Seoul

 

 

 

3 유진식당 : 들어서자마자 주종을 가리지 말고 술부터 주문하라.
그리고 (당연한 수순이지만) 냉면으로 밑밥을 깐 뒤, 주둥이를 약 올릴 애피타이저님들을 사정없이 속사포처럼 내리 주문해서 맛을 봐야 한다. 유진식당은 다른 냉면집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가성비로 따지면 단연 으뜸이다. 최고의 강점이라면 면이 아닐까? 면 뽑는 장면을 직접 볼 수 있어서인지 면에서 풍기는 향이 일품이고, 대접의 뜨거운 면 위에 냉탕의 살얼음처럼 차가운 육수를 바로 부어 먹으면 면의 탱탱함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기분 탓이겠거니 해도, 냉면 한 그릇이면 소주 한 병 사라지는 건 광랜급 속도. 그리고 어느샌가 테이블 위에는 새롭게 세팅된 냉면 한 그릇이 데자뷔처럼 다시 나타난다. 
A 40, Jong-ro 17-gil, Jongno-gu, Seoul

 

 

 

4 평가옥 : 해장하러 갔다가 참지 못하고 소주를 외쳤다.
“그 유명한 집들을 제치고 평가옥이라니?”라고 불평하는 분 많겠다. 평가옥은 가격에 비해 양이 많은 편이다. 육수가 소주와 꽤 잘 어울려 “아, ×발 육수 한 모금에 소주 한 잔씩 들어가네, 젠장!” 하면서 순식간에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또 한 병을 주문한 기억이 있다. 쪽파와 절인 오이지, 달걀, 편육, 소량의 홍고추를 고명으로 얹은 평가옥 냉면은 면발의 향이 강하지 않은 편이고 차갑지 않은 편육은 씹을수록 고소하다. 그날 집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술이 술을 부르는 게 아니라 육수가 술을 부르더라. 평가옥 냉면이 서울에서 가장 캐주얼한 평양냉면이 아닐까 싶어 조심스럽게 권한다. 평양냉면의 첫 경험에 실패한 분이라면 부담 없이 들러보시길. 
A 7, Saemunan-ro 5ga-gil, Jongno-gu, Seoul

 

 

 

5 평래옥 : 길 잃은 아이가 엄마를 찾듯 “이모!”를 불러 소주를 찾게 된다.
평래옥 냉면은 육수에 배춧잎이 들어 있어 특히 개운하다. 언뜻 동치미국수 같은 비주얼인데, 그 맛을 기대하고 육수를 들이켰다가 “평양냉면이네!!!” 하면서 정신을 몇 번 차리고 나면 한 그릇 비워지는 건 순식간이다. 육수를 몇 번 더 리필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 살을 에듯 추운 어느 겨울날, 해장을 갈망하는 지친 육신을 이끌고 평래옥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다시는 술 먹나 봐라!’ 하는 심정이었는데, 주문한 냉면이 앞에 놓이고 면을 한 젓가락 입에 넣었다가 육수를 대접째 벌컥벌컥 마신 후 내려놓는 순간! 길 잃은 아이가 엄마를 찾듯 “이모!”를 급히 불러 소주를 주문하고야 말았다. 반찬으로 내는 닭무침도 소주를 부르는 별미. 단, 타이밍 잘못 맞춰 가면 한참 줄을 서야 하는데, 이 집은 줄 서서 먹을 만하다!
A 21-1, Mareunnae-ro, Jung-gu, Seoul

 

About 글쓴이 임환택은 록 밴드 ‘할로우 잰’의 보컬이다. 할로우 잰은 독창적이고 중독적인 사운드로 한국 하드코어 신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임환택에게 냉면은 포도당과 같다. 숙취에 시달릴 때 몸의 수분을 맑게 정화해 주는 기분이 든다고.

 

 

By Lim Hwantakk, Musician 
Assistant Editor Park Min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