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EP RENEGADE

오프로드 타기 딱 좋은 계절이네
가을은 오프로드의 계절이다. 계절 자체가 건조해 습한 봄, 여름보다 미끄러질 가능성이 적다. 더불어 산과 들에 울긋불긋 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타이어가 마른 낙엽을 밟을 때마다 들리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가을의 정취를 더한다. 이미 풀들은 여름 한 철 그 뜨거운 태양빛에 숨이 다해 차체에 해를 가할 정도가 못 되고, 운이 좋으면 토실토실 살이 오른 밤을 줍거나 감을 따 먹는 재미도 생긴다. 만물이 생동하는 향기로운 봄도 오프로딩에 좋지만 계절이 주는 충족감은 가을이 더 크다. 때문에 오프로드꾼들은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엉덩이가 들썩인다. 나도 눈과 귀가 즐겁고 좀 더 안전하게 오프로드를 즐길 수 있는 계절을 맞아 지프 레니게이드를 끌고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로 향했다.

인제군은 ‘산의 땅’이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온통 산뿐이다. 내린천도 수많은 산골 사이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여 생긴 물길이다. 산이 많은 곳은 으레 임야 수목 관리를 위해 임도가 잘 발달해 있다. 인제군에도 수많은 임도가 있다. 지도를 보고 입맛에 맞는 곳을 찾으면 되는데, 내가 간 곳은 백두대간 트레일(산림청이 기획하고 있는 전국 숲길 네트워크) 중 인제에서 양구를 거쳐 홍천까지 가는 총 길이가 113킬로미터나 되는 곳의 인제 구간이다.

레니게이드는 작아도 지프다. 로 기어와 셀렉트-터레인 오프로딩 시스템을 갖췄다.

사실 처음에는 이곳이 이렇게 임도가 길 줄 몰랐다. 그저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며 레니게이드의 오프로드 성능을 시험해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산을 몇 개 넘었음에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보려 해도 전화가 터지질 않으니 그냥 길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 달렸을까, 연료 게이지가 바닥과 가까워지면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러다 산에서 비박하는 거 아냐?” 나와 함께 운전대를 잡은 칼럼니스트 나윤석이 내뱉은 말이다. 그런데 오프로드에서는 이런 말을 절대 해선 안 된다. 말이 씨가 돼 차가 빠지거나 미끄러지고 바리케이드 때문에 되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심마니가 산에서는 속세의 언어를 쓰지 않듯이 오프로드에서도 이런 부정적인 언행은 삼가야 한다.

다행히 연료 경고등이 들어오기 전에 콘크리트 바닥을 만났다. 이건 오프로드가 거의 끝나간다는 신호다.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프로드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바리케이드가 남았다. 그게 걸려 있으면 아주 난처한 상황을 맞는다. 불현듯 나윤석이 한 말이 뇌리를 스쳤다. 불안했다. 우리는 입을 굳게 다문 채 그게(바리케이드) 없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다행히도 그게 있었지만 걸려 있지는 않았다. 우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스팔트를 밟아 40킬로미터의 여정을 무사히 마쳤다.

방동리 트레일은 사진으로 보는 것처럼 경사가 심하지는 않고 노면도 잘 정돈됐다. 지프와 같은 오프로더가 아니더라도 네바퀴굴림 SUV면 능히 오를 수 있다. 레니게이드도 로 기어를 한 번도 넣지 않고 쉽게 넘었다. 편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좋은 곳이다. 다만 기름을 가득 채우고 펑크가 나지 않게 얌전히 가야 한다. 이곳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화가 터지지 않는다. 시간과 연료가 충분하다면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글/이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