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리터짜리 V12 가솔린 엔진이라면 자연흡기 방식이어도 400마력 이상 어렵지 않게 뽑아낼 수 있다. 그런데 롤스로이스는 여기에 터보를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얹어 레이스의 보닛 아래 모셨다. 최고출력은 624마력에 달하고 최대토크도 81.7kg·m에 이른다. 최고속도는 안전을 위해 시속 250킬로미터에서 제한되지만 넘치는 힘까지 숨길 순 없다. 2.4톤에 가까운 거구를 불과 4.6초 만에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밀어붙인다.

고스트 시리즈 2라고 만만하지 않다. 같은 형식의 엔진으로 563마력, 79.6kg·m를 작렬시킨다. 그나마 쿠페형인 레이스보단 세단형인 고스트 시리즈 2가 점잔 뺀 걸로 보인다. 하지만 상대적일 뿐이다. 절대적인 숫자만 놓고 보면 560마력인 BMW M5보다도 강력하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가속하는 시간도 기본형 기준으로 4.9초밖에 안 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제원표의 주장이다. 숫자로 짐작하는 예상은 몸으로 느끼는 실감과는 다른 영역이다. BMW 드라이빙 센터의 트랙에서 롤스로이스 레이스와 고스트 시리즈 2를 몰아본 결과 롤스로이스는 롤스로이스처럼 움직였다. 롤스로이스는 이를 ‘Effortless Dynamism’이라고 표현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느껴지는 역동성이란 얘기다.

속도 번지르르하다 롤스로이스를 트랙에서 타보면 겉만 번지르르한 게 아니라 속도 꽉 찼단 걸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일상에서 가장 빛나는 차니까.

롤스로이스는 푸릇한 젊음의 주체 못할 패기와는 전혀 다르다. 오랜 시간 성숙하게 다듬어진 근육이 뿜어내는 풍성하고 능숙한 힘이다. 레이스든 고스트 시리즈 2든 가속부터 시종일관 여유롭다. 급가속을 해도 숨막히게 조여드는 느낌은 아니다. 마치 가속 자체를 즐기라는 듯 여지를 남긴다는 기분이 든다. 엔진음도 어딘가 신사적이다. 날카로운 구석이 없다. 레이스가 좀 더 거친 구석이 있으나 저돌적인 느낌은 모조리 걷어냈다. 코너를 돌아나가는 느낌도 여유롭다. 덩치가 있어 롤이 심한 편이긴 하나 무작정 기울어지지 않는다. 정확한 각도까지 가늠하긴 어렵지만 어느 정도 넘어가면 버티기 시작한다. 그러다 차가 복원하는 시점부터 재밌는 일이 벌어진다. 레이스와 고스트 시리즈 2 모두 무게중심을 반대로 확 놓아버리지 않는다. 조금씩 슬며시 넘겨준다. 놓는 게 아니라 ‘넘기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기울어진 차체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이 은근하기 때문이다. 코너 돌아나가는 것마저 롤스로이스답다.

이 무디고 안락한 움직임을 위해 얼마나 엄청난 기술력이 숨어들었을지는 사실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각각의 부품들이 얼마나 예민하고 치밀하며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을지,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움직임을 하나하나 어떻게 파악하고 제어하고 있을지는 그저 상상만 할 뿐이다. 사실 자동차의 움직임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건 오히려 쉽다. 거친 걸 담백하게 걸러내고, 그걸 또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게 어려운 법이다. 물도 거르고 걸러 깨끗하게 하는 건 쉬우나 입에 맞는 맛있는 물로 만드는 건 아무나 할 수 없지 않은가.

롤스로이스를 트랙에서 타보니 단순히 귀한 재료를 수제로 만든 공예품이 아니란 걸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롤스로이스의 본질은 역시 자동차였다. 그것도 매우 잘 만든.

1 ROLLS ROYCE WRAITH 기본 가격 4억원 레이아웃 앞 엔진, RWD, 5인승, 2도어 쿠페 엔진 V12 6.6ℓ DOHC 48밸브 트윈터보, 624마력, 81.7kg·m 변속기 8단 자동 공차중량 2360kg 휠베이스 3112mm 길이×너비×높이 5269×1947×1507mm 0→시속 100km 가속 시간 4.6초 복합연비 6.3km/ℓ CO₂ 배출량 287g/km

2 ROLLS ROYCE GHOST SERIES 2 SWB 기본 가격 4억1000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RWD, 5인승, 4도어 세단 엔진 V12 6.6ℓ DOHC 48밸브 트윈터보, 563마력, 79.6kg·m 변속기 8단 자동 공차중량 2470kg 휠베이스 3295mm 길이×너비×높이 5399×1948×1550mm 0→시속 100km 가속 시간 4.9초 복합연비 6.3km/ℓ CO₂ 배출량 327g/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