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DES- AMG CIRCUIT DAYS

“AMG가 좋아? M이 좋아?” 직업이 자동차 기자라는 게 드러날 때면 거의 반사적으로 이 질문이 날아든다. 재밌는 건 이렇게 물어본 사람들 대부분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아니다. 자신의 믿음(Myth)에 대한 확인이다. 이들이 갖고 있는 신화는 ‘AMG는 힘이 세서 가속은 빠른데 밸런스가 별로라 서킷에서 약하고, M은 힘이 약한데 밸런스가 좋아 서킷에서 강하다’는 것이다. 여기엔 나름의 근거도 있다.

‘BMW M은 모터스포츠 전담팀으로 시작한 경우로 원래 BMW 산하였고, AMG는 독립 튜너로 활동하다 창립 33년 만에 메르세데스 벤츠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때문에 원래부터 자회사였던 M은 설계부터 관여할 수 있어 균형이 뛰어난 차를 빚어낼 수 있었고, 외부에서 들어온 AMG는 완성차를 튜닝해 성능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작업해와 여전히 파워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어쩌면 이게 차 좀 안다는 사람 대부분의 인식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지난 8월 19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AMG 서킷 데이’는 매우 기대되는 행사였다. AMG에 대한 신화를 체험으로 직접 판단해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서킷에는 달리는 것만 생각하고 만들었다는 AMG GT는 물론 이제 갓 출시된 C 63, 힘도 크기도 모두 여유로운 최고급 쿠페 S 63 쿠페 등 거의 모든 종류의 AMG 모델이 준비돼 있었다. 프로그램도 다양했다. 트랙 주행은 물론이고 가속 및 제동성능을 살피는 드래그 코스, 핸들링을 체험하는 짐카나 코스까지 마련됐다. 더불어 독일 본사에서 파견된 다섯 명의 인스트럭터도 함께했다. 이들은 주행 전엔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기 위한 운전 자세와 기본적인 주행 테크닉 등을 교육하고 트랙 주행 중엔 무전으로 코스별 대응 전략과 테크닉을 알려줄 예정이었다. 모든 건 정말 완벽했다.

그런데 딱 하나가 따라주지 않았다. 비가 왔다. 무자비하게. 이곳에 모일 때만 해도 하늘은 그리 궂지 않았다. 그런데 트랙에 들어서자마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운전 자세를 알려주던 인스트럭터는 서둘러 교육을 마치고 모두를 GT에 탑승시켰다. 가장 짜릿한 성능을 보여줄 차였다. “속도는 상황을 보면서 조절할 테니 잘 따라와달라”는 무전이 들렸다. 속으로 제발 더 악화되지만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이 좋은 기회를 정말 놓치기 싫었다.

트랙에 올라서자 기다린 듯 빗방울이 굵어졌다. 시원스레 속도를 낼 수 없었다. 그나마 GT라 악천후를 뚫고도 약간의 짜릿함을 느껴볼 수 있었다.

다만 단 한 바퀴에 만족해야 했다. 피트에 들어서자 폭우가 땅에 꽂힐 기세로 무섭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하늘은 무려 한 시간 가까이 비를, 아니 물을 그냥 부었다.

비가 조금씩 잦아들어 다시 서킷에 올랐다. 여전히 비가 오는 상황이었기에 천천히 달릴 수밖에 없었다. 비가 완전히 그친 뒤 AMG 45 모델들로 짐카나를 체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킷에 대한 미련은, GT에 대한 기대는, S 63 쿠페에 대한 궁금증은 무엇 하나 해소될 수 없었다. 다만 모든 AMG 모델의 설계에 AMG가 직접 나서고 있으며, C 63 같은 모델은 보다 나은 성능을 위해 길이와 폭까지 조정할 정도로 AMG의 손길이 깊게 들어갔단 걸 알게 된 게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그럼 트랙에서도 잘 달릴 거란 얘긴데…. 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