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어려운 경제여건과 불황의 지속이 크로스오버 SUV의 소형화를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

르노삼성은 2년 전만 해도 주요 모델의 노화로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신모델 QM3를 투입하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해외에서 생산된 모델을 수입하는 형태였지만, QM3는 금세 르노삼성의 판매량을 높인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르노삼성이 예측했던 것보다 주문이 많았다. 그래서 한동안 출고 적체에 시달렸고, 이후 수입물량을 늘리기도 했다. 지금은 열기가 조금 누그러졌지만, QM3는 여전히 꽤 잘 팔린다.  

QM3는 르노 캅투(캡처)로 팔리는 유럽에서도 인기가 높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새롭게 시장을 형성하기 시작한 소형 크로스오버 SUV의 대표 주자 중 하나로 손꼽힌다. 동급 다른 차종들도 성과가 좋은 편이다. 푸조 2008은 유럽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유럽에서 팔리는 오펠 모카의 형제차인 쉐보레 트랙스도 분위기는 마찬가지. 아직까지 국내에서 휘발유 모델만 팔린 것을 감안하면 판매는 긍정적이다. 곧 디젤 엔진 모델이 팔리기 시작하면 인기가 더 많아질 듯하다. 기아 쏘울을 비롯해 국내에서 팔리는 동급 모델의 수도 이제는 적지 않다. 바야흐로 소형 크로스오버 SUV의 전성시대다.

흔히 도시형 SUV라고 이야기하는 크로스오버 SUV는 1990년대 초중반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시장의 주류 차종으로 자리를 잡았다. 구조 면에서는 승용차에 가깝고 외형은 SUV와 비슷하지만 용도나 수요 때문에 덩치가 큰 쪽보다는 작은 쪽을 주로 만든다. 작아야 팔기도 더 좋다.

크로스오버 SUV의 득세는 한 대의 차를 여러 목적으로 쓰려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런 주장을 대변하듯 미니밴 시장은 지난 몇 년 동안 규모가 크게 줄었다. 유럽과 북미가 비슷한 분위기다. 유럽에서는 르노 에스빠스와 그랑 에스빠스 판매가 줄자 디자인을 SUV 개념에 접목했고, 비용절감 차원에서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모델의 생산을 중단했다. 유럽에서 에스빠스로 대표되던 7인승 미니밴의 수요는 그보다 작은 콤팩트 SUV의 롱 휠베이스 버전으로 수렴하고 있다. 전통적인 미국식 미니밴도 전성기에 비하면 시장이 많이 축소되고,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모델 수도 차츰 줄고 있다.

미니밴의 인기가 전만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미니밴의 가장 큰 수요층이던 베이비붐 세대의 노령화와 가족 단위의 축소, 도시화 등을 꼽을 수 있다. 가족 중심의 다인승 자동차가 필요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상대적으로 SUV는 가족보다 개인적 성향이 강해서 북미를 중심으로 대형 모델이 꾸준한 명맥을 잇고 있다. 그러나 SUV가 한창 인기를 얻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판매량에는 미치지 못한다.

북미에서도 이전에 없던 소형 크로스오버 SUV의 종류와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 쉐보레 트랙스의 형제차인 오펠 모카가 뷰익 앙코르로 판매되고, 혼다는 인기 모델 CR-V의 아랫급으로 베젤/HR-V를 내놓았다. 그 밖에 지프 레니게이드, 피아트 500X 등 FCA 그룹의 최신 모델까지 합세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니 페이스맨과 닛산 주크 정도에 그쳤던 시장이 이제 다양한 모델로 북적거린다. 유럽도 비슷한 분위기다. 그러니 머지않아 이 차급이 세계 주류 자동차 시장에 자연스럽게 끼어들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다양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면도 분명 있다. 1인 가구를 비롯해 가족 단위가 줄어드는 현상처럼, 사회 변화를 반영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어려운 경제여건과 불황이 가속화되는 것이 크로스오버 SUV의 소형화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불황에 시달린 나라에서는 세단과 같은 전통적인 장르의 차들의 인기가 SUV 중심의 다목적 자동차로 옮겨가기 일쑤다. 시장 성장이 정체된 상태에서 유행과 판매의 중심이 작은 차로 옮겨가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이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에 아웃도어와 캠핑 붐이 일면서 90년대 초반까지 SUV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 내수 시장에서는 도시형 SUV의 인기가 이전만 못하다. 이른바 소형차 기반의 키 큰 왜건이 지배하고 있다. 전체 시장에서 경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면서 유행하는 장르가 경차로 고스란히 옮겨가는 분위기다. 박스형 다목적 경차가 대세가 됐고, 스즈키 허슬러처럼 SUV 분위기를 낸 경차도 나오고 있다. 실속 있는 차를 찾는 소비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 이후 경차 비율은 더 높아졌다. 이런 변화의 원인도 결과적으로는 장기불황과 경기침체에 있다. 작은 차가 인기인 것은 큰 차를 쓸 일이 없다기보다는 그럴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게 더 정확한 분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관심 밖이었던 탓에 잘 알려지지 않지만, 소형 크로스오버 SUV 유행은 저개발 국가에서 좀 더 일찍 시작됐다. 포드 에코스포트, 다치아 더스터, 피아트 우노 같은 차들은 일찌감치 저개발 국가를 위해 개발돼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이런 현상도 자동차의 다목적화와 소형화가 경제여건의 악화에 따른 현상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에서 소형 크로스오버 SUV 시장의 인기가 커지는 것이 마냥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에서 석유값이 내리자 한동안 주춤했던 대형 SUV 판매가 다시 늘어났다는 소식이 들린다. 역사적으로든 상식적으로든 호황일 때 크고 사치스러운 차가 잘 팔리기 마련이다. 친환경 고효율이라는 명제도 중요하지만, 요즘 같은 흐름은 장기적으로 자동차 회사들의 목줄을 조인다. 그들이 수익성에 치중하게 되면 다시 소비자가 다양한 차를 접할 기회도 줄 것 같아 걱정이다. 이런 식의 불안이 오래가지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