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골프 R
R을 얘기하기 전에 바탕이 된 7세대 골프를 잠시 짚고 넘어가자. 골프는 세대가 바뀔 때마다 조금씩 성숙해왔다. 그리고 이번 7세대에 이르러서는 커진 덩치에 걸맞은 무게로 달리기에 여유가 녹아 있다. 이제는 청년을 지나 중년에 다가선 느낌. 연륜이 쌓인 만큼 골프라는 그릇에 담길 여지가 커진 것이 사실이다. 211마력 엔진을 얹은 골프 GTI를 경험할 때, 그 안에 훨씬 더 높은 출력의 고성능을 담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골프의 고성능 버전은 전통적으로 과격하게 치장하는 데 힘써왔다. 이런 맥락은 신형에서도 마찬가지다. 공기흡입구를 한껏 키운 앞 범퍼, 엉덩이 아래로 두 개씩 빠져나온 배기구, 아우디 S 모델을 연상케 하는 알루미늄 색상 사이드미러 커버 등의 모습 변화가 대표적이다. 분명 크게 튀지 않으려고 했다. 반면 이번에는 화려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표현 방식이 달라진 것이 분명하다.

골프 R은 여기 모인 그 어떤 차보다 굽이치는 산길을 안정적으로 달렸다. 동시에 빨랐다. 코너로 뛰어들 때 네바퀴의 접지력은 꾸준했고, 핸들링은 유연했다.

강조할 부분만 확실하게 강조한 실내는 상대적으로 덤덤하다. 버킷시트 형태의 앞좌석과 D컷 스티어링휠 등 곳곳에 R 로고를 박았고 계기반 바늘을 파란색으로 강조했다. R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당연히 성능이다. 결과적으로 기대했던 수준에 딱 맞아떨어지는 움직임이다. 이미 GTI에서 보여줬던 섀시의 잠재력이 출력을 높인 엔진과 잘 어울린다. GTI에서 부족하게 느껴졌던 힘이 R에서는 충분하다. 물론 ‘힘이 넘친다’는 표현과는 거리가 있다. 인위적인 고출력으로 짜릿함을 안겨주기보다는 누구나 다루기 쉬운 선에서 재미를 맛보도록 조율됐다. 최대토크(38.8kg·m)도 출력에 비하면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다. 대신 힘을 쓸 수 있는 영역이 넓어서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다.

GTI에 없는 4모션 네바퀴굴림은 어지간히 몰아붙이지 않는 이상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만큼 자연스럽다. 듀얼클러치 6단 변속기와 더불어 제 할 일을 아주 매끄럽게 처리할 뿐이다. 세련되고 차분한 느낌, 즉 완성도가 있다. 2.0리터 터보 클래스에서 단연 최고라 할 만하다. 과장 조금 보태 비슷한 목표를 가진 메르세데스 A 45 AMG나 GLA 45 AMG가 보고 배워야 할 정도.

R은 코너를 향해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다. 움직임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는다. 치밀하게 노면의 굴곡을 따라가는 타이어는 운전자에게 속삭이듯 차의 움직임을 알린다. 편안하면서도 듬직한 승차감은 도심에서 출퇴근 때 사용해도 거북하지 않게 느껴진다.

필부필부(匹夫匹婦)를 위한 해치백이 300마력을 발휘한다고? 한편으로는 미쳤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R이라는 이름을 단 순간 평범하지 않기에 납득할 수 있다. 게다가 운전자가 차의 한계에 접근할 때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대중차의 영역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다. 고성능 모델의 특별한 성능이나 감각을 기대한다면 지금의 골프 R은 기대에는 미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기대를 접어두고 있는 힘껏 이 차를 몰아붙인다면 아주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답한다. 아무리 성능을 높인 골프 R이라도 ‘미친’ 사람을 위한 차는 아니다. 골프 GTI처럼 시원한 가속감과 탄력 있는 코너링이라는 추가 요소가 위트 있게 더해졌을 뿐이다. GTI와 차이가 있다면 ‘추가 요소’가 확실히 더 크게 느껴진다는 것. 물론 그만큼 값 부담도 크다. 류청희(자동차 평론가)

기본 가격 미정 레이아웃 앞 엔진, AWD, 5인승, 5도어 해치백 엔진 4기통 2.0ℓ DOHC 터보, 292마력, 38.8kg·m 변속기 듀얼클러치 6단 자동 공차중량 1540kg 길이×너비×높이 4255×1800×1450mm 휠베이스 2640mm 복합연비 9.9km/ℓ CO₂ 배출량 179g/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