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데오는 20년 포드코리아 역사에서 10퍼센트대의 꾸준한 판매 비중으로 회사를 안정시켰던 모델이다. 그럼에도 항상 제품 전략의 희생양이 됐다.

 

야구에서 2번 타자의 통상적인 역할은 희생이다. 1번 타자가 출루하면 클린업트리오인 3~5번 타자가 타점을 올릴 수 있도록 주자를 2루나 3루로 보내려 애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1번 타자가 출루하지 못했을 때는 스스로 득점권까지 진출할 수 있는 타력과 주루 능력도 갖춰야 한다. 바꿔 말해 2번 타자는 충분한 능력이 있지만 팀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줄 아는 팀 플레이어다.

포드 몬데오는 포드코리아의 2번 타자였다. 20년 포드코리아 역사에서 1등을 해본 적은 딱 한 번, 그것도 동률 1위였을 뿐 항상 10퍼센트대의 꾸준한 판매 비중으로 회사를 안정시켰던 모델이다. 그럼에도 상황이 호의적이지 않거나 위기가 닥치면 우선순위에서 항상 뒤로 밀려났던 모델이기도 하다. 이런 몬데오가 이번엔 1번 타자가 되려 한다. ‘유럽산 디젤차’라는 한국 수입차 시장의 대세를 포드의 것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일단 몬데오가 1번 타자로 살아서 진루하면 세계에서 가장 성장세가 가파르고 규모도 비교적 큰 한국 수입차 시장에서 포드는 빅 플레이어로 자리 잡을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

 

 

몬데오의 수난의 역사
포드코리아가 한국에 진출한 건 1996년이었다. 그 전에는 포드와 특수 관계를 맺었던 기아차가 부동의 수입차 1위였던 머큐리 세이블을 중심으로 포드 모델들을 수입했다. 기아 세이블을 대체한 포드 토러스는 서로 충돌을 피하기 위해 부드럽게 시장에 진입한 반면, 새롭게 출시된 포드 몬데오는 당시 수입차로는 파격적인 1600만원의 기본 가격으로 시장에 나섰다. 그리고 폭스바겐 골프보다 저렴했던 2100만원의 몬데오 기아(Ghia) 세단은 단 6개월 만에 그해 수입차 5위를 차지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몬데오는 1996년 포드코리아의 45퍼센트를 차지했고 수입차 전체의 4퍼센트를 넘는 448대의 전체 판매량으로 수입 중형세단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하지만 토러스라는 주전 선수가 제자리를 잡자 몬데오는 2번 타자 역할로 돌아갔다. 이듬해인 1997년 몬데오의 전체 판매량은 469대로 증가했다. 하지만 포드 전체와 토러스의 약진에 빗대어보면 실제 비중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셈이었다. IMF 경제위기가 닥치자 포드코리아는 다른 수입 브랜드들처럼 긴축 운영에 돌입했다. 몬데오 역시 엔트리 수입차 시장의 급격한 몰락과 함께 1999년 초 2대 판매를 끝으로 2001년 7월까지 긴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2세대로 돌아온 몬데오는 하지만 3300만원에 육박하는 높은 가격과 독일 브랜드로 넘어가버린 수입차 시장 판세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포드는 가격을 점차 낮췄고 경쟁력을 회복한 몬데오는 2002~2005년 매해 200대 이상, 그리고 2006년엔 384대가 팔리며 포드 브랜드 내에서 꾸준히 2등 자리를 유지했다. 이채로운 점은 같은 기간 1위 모델이 토러스에서 파이브헌드레드로 바뀌었는데도 그대로 2위였다는 사실이다. 당시 몬데오의 판매 가격은 2660만원으로 수입차 최저 수준이었다. 하지만 미국 브랜드는 이미 독일 브랜드와 렉서스에 밀려난 뒤였고 몬데오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되찾지 못했다.

2007년부터는 모든 가솔린 승용차에 미국형 자가진단장치인 OBD2 장착이 의무화됐다. 유럽산이었던 몬데오는 이를 갖추지 못했고 2007년 3월까지의 유예기간을 끝으로 또다시 한국 시장에서 사라졌다. 당시 폭스바겐을 비롯한 유럽 브랜드들은 가솔린 OBD2 문제의 해결책으로 디젤 모델을 제시했다. 포드도 1년여의 공백 끝에 2008년 3세대 몬데오 2.0 TDCi를 출시했다. 하지만 이전 모델보다 1000만원 이상 인상된 3800만원의 가격은 경쟁력이 떨어졌다. 결국 겨우 103대만 판매되고 몇 개월 만에 퇴출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도록 되돌아오지 못했다.

지난 2011년, 몬데오는 질긴 생명력을 증명하듯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한 모양새로 나타났다. 유럽형 휘발유 모델에는 OBD2가 없고 유럽형 디젤 모델은 가격 때문에 실패한 걸 의식했는지 몬데오의 미국 사촌인 퓨전이 선보인 것이다. 처음엔 2.5리터 모델을 캠리나 어코드, 알티마와 동등한 가격대에 위치시켜 시장경쟁력을 노렸고, 나중에는 1.6리터부터 하이브리드까지 라인업을 확대했다. 2013년 4세대 모델부터는 1.6과 2.0 에코부스트 모델, 그리고 2.5 하이브리드로 라인업이 변경됐다. 가격은 일본 세단보다 폭스바겐 파사트를 겨냥하는 쪽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퓨전도 생이 짧았다. 가솔린과 하이브리드 모델로는 파사트와 경쟁이 어려웠다. 그래서 다시 몬데오의 이름을 살려 디젤 엔진 모델로 내놓았다. 2015년 퓨전이 단종됐고 몬데오 2.0 디젤이 출시됐다. 가격은 3990만~4330만원으로 다시 상승했다.

몬데오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몰려온다. 이처럼 기구한 차가 또 있었나? 진짜 궁금한 점은 이거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몬데오는 퓨전과 같은 차다. 그럼에도 몬데오의 제품 수준은 매우 인상적이다. 지금까지 어떤 포드 모델보다 디자인 완성도와 조립품질이 뛰어나며, 주행감각도 세심하게 잘 조율돼 있다. 안락한 승차감과 스포티한 조종성능을 겸비한 몬데오와 같은 패밀리 세단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중장기 전략이 없다
한국에서 몬데오가 고생했던 지난 20년은 포드 본사에 커다란 변화가 많았던 시기다. 1995년부터 시작된 포드 2000 프로젝트, 그리고 유명한 원 포드 전략은 지역별로 제각각이던 라인업을 통합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려고 한 것들이다. 하지만 통합은 다른 지역의 사정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제품으로 오히려 손해를 일으키기 일쑤였다.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에는 두 번의 경제 및 금융 위기까지 닥쳤다. 내우외환이 겹친 꼴이었다

이런 경우 한국 수입차 시장 같은 작은 무대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한국형 전략은 꿈도 꾸기 힘들다. 포드코리아는 당시 포드 제품들 중 우리 시장이나 법규에 맞는 걸 고르는 식으로 단기적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몬데오도 심한 부침을 겪었다. 하지만 몬데오가 2등 자리를 지키는 동안 포드의 베스트셀러는 토러스-파이브헌드레드-토러스-익스플로러로 계속 바뀌었다. 그렇게 보면 몬데오는 그나마 스테디셀러였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본사 제품 전략이 미국 중심으로 흘러가다 최근 유럽 제품 비중이 다시 커지다 보니 국내 라인업에도 변화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바꿔 말해 소비자가 언제 바뀔지 모르는 포드 제품을 구입할 때는 중고차 가격에서 큰 손해를 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단 얘기다. 그래서 포드코리아는 일단 싼 가격으로 소비자를 유혹했다. ‘Go Further’ 같은 본사 주도의 마케팅 기획도 있었지만 실제 시장에서의 판매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포드코리아는 살아남는 것이 전부였다고 할 정도로 생존에 집착했다. 그러다 보니 팔기 쉽고 잘 팔리는 제품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잊어버리는 게 체질화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런 터라 휘발유 모델에 OBD2를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한국 인증 법규는 포드코리아가 대응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당시 미국 모델 중심이던 렉서스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독일 프리미엄 3사는 본사의 적극 협조로 한국형 OBD2 가솔린 모델을 개발했다. 폭스바겐은 핑계 김에 디젤 모델 중심으로 라인업을 전면 개편했다. 하지만 미국형과 유럽형 모델이 혼재했던 포드는 모델별로 대응하느라 바빴고 그 와중에 중심을 잃는 모델이 생겨났다. 몬데오는 중장기 전략의 부재가 낳은 희생자였다.

 

 

트렁크는 입구가 낮고 가로막은 문턱도 없어 편리하다. 적재공간도 깊고 직육면체로 잘 정돈돼 있다. 다만 높이가 낮아 부피가 큰 물건을 담기에는 부족하다. 뒷자리는 경쟁모델만큼 넓지 않지만 성인 두 명이 앉기에 부족함 없다. 디젤 엔진은 숙성이 잘됐지만 터보 래그가 제법 큰 편이다.

 

 

또다시 돌아오다
얼마 전 출시한 몬데오는 이전에 있던 퓨전과 같은 차다. 4세대 몬데오 제품개발 프로젝트는 유럽 포드가 주도하고 플랫폼 개발은 미국 포드에서 담당해 원 포드 전략이 가장 잘 적용된 사례 중 하나다. 디자인은 퓨전과 같으니까 지나가자. 단, 한 가지만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몬데오는 지금까지의 어떤 포드 모델보다 디자인 완성도와 조립품질이 좋은 차다. 그걸 시각적으로도 느낄 수 있다. 디젤 모델인 만큼 N.V.H가 관심의 대상. 결론은 놀랍다. 공회전 때는 엔진 진동이 전달되기는 해도 날카롭지 않게 잘 걸러진다. 출발한 다음에는 진동이나 소음을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을 정도다. 동급은 물론 상위 프리미엄 모델과도 견줄 만큼 조용하고 진동도 적다. 승차감은 독일 포드가 주도한 모델답게 탄탄한 편이다. 하지만 영국 포드의 의견을 듣고 미국 포드가 플랫폼을 개발하다 보니 승차감에도 세심한 배려가 있다. 노면 요철을 밟았을 때의 충격 흡수와 진동 억제가 매우 뛰어나다. 말하자면 몬데오 2.0 TDCi는 아주 훌륭한 패밀리 세단의 승차감과 정숙성을 지녔고 동시에 꽤 스포티한 조종성능도 겸비한 몇 안 되는 모델이다. 한계 부근에서의 접지력과 자세유지 능력도 훌륭해 상당히 높은 페이스에서도 불안하지 않고 즐겁다.

계기반은 너무 많은 정보가 담겨 있어 여전히 복잡하고, 버튼이 세 줄로 늘어선 다기능 스티어링휠은 부산스럽다. 하지만 전반적인 인테리어 레이아웃, 특히 내장재의 마무리 수준은 이전 포드가 아니다. 잡소리가 나지 않는다. 뒷좌석은 쏘나타나 파사트만큼 넓지는 않다. 오히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제품과 분위기가 비슷한데 그들보다는 넓어서 격조가 느껴진다. 트렁크도 깊고 직육면체로 깔끔하게 공간이 마련돼 활용도가 높다. 연료효율은 리터당 15킬로미터를 어렵지 않게 경험할 수 있다. 아주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경쟁력 있다. 부드럽고 민첩한 변속기는 승차감이나 퍼포먼스 드라이빙을 모두 감당할 만큼 수준 높다.

시승차였던 티타늄 모델에는 비상제동, 차선이탈 방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사각지대 인식 등 주행 안전장비가 모두 적용된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스톱 앤 고까지 지원하는 3세대 제품이 아닌 건 아쉽지만 모든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조율도 잘 돼 있다. 단순히 카탈로그에 올리기에만 급급한 저렴한 제품이 아니다. 이 밖에도 대형 알로이 휠과 소니 사운드 시스템, LCD 계기반 등 상위 모델과 경쟁할 수 있는 모든 게 완비돼 있다. 이렇게 보면 몬데오는 절대 비싼 차가 아니다. 몬데오는 전면전을 대비한 제대로 된 제품이었다. 오랜만에 개인적으로도 사고 싶은 포드 제품을 만났다.
 

 

 포드코리아는 세계의 포드 라인업에서 한국에 맞는 것을 받아다 팔기 급급했던 지금까지의 방식을 버려야 한다. 본사와 협력을 통해 ‘한국형 전략’을 고민하고 중장기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몬데오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몬데오는 포드코리아의 미래다
새로운 몬데오는 제품 경쟁력이 충분하다. 가격은 이전 포드 기준으로는 높아졌지만 제품 자체 수준도 크게 올라갔고 포드 브랜드가 한국 수입차 시장 안에서 보이는 영향력도 이전보다 훨씬 중요해졌다. 그렇다면 이제는 중장기적 전략이 수립돼야 한다. 세계의 포드 라인업에서 한국에 맞는 것을 받아다 팔기 급급했던 지금까지의 방식은 버려야 한다. 본사와의 협력을 통해 ‘한국형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몬데오처럼 포드코리아 역사를 처음부터 함께했던 제품이 갑자기 단종됐다가 엉뚱한 이름(퓨전)으로 부활하고, 나중에 다시 제 이름으로 돌아오는 자충수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고객은 자신을 헷갈리게 하는 차를 기다리거나 이해해가면서 살 필요가 없다. 시장에는 몬데오 말고도 좋은 자동차가 많기 때문이다. 요즘 기업들이 자주 언급하는 표현 중에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이 있다. 이는 요즘 세계가 내일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멀리 보고 균형을 잡아야 한다.

지금까지 포드나 링컨 제품들엔 싸고 좋은 차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포드 베스트셀러인 익스플로러나 토러스, 링컨 MKZ는 동급에서 가격 대비 훨씬 큰 차체가 매력적이었다. 머스탱은 디자인이나 엔진 성능에 비해 무척 싼 값으로 호소한다. 하지만 세상엔 공짜가 없다. 이들은 절대적인 품질이나 마무리 등에서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 지방 시장에서는 경쟁력이 있지만 수입차에 대한 경험이 많고 차를 보는 눈이 까다로운 수도권이나 대도시 시장에서는 매력이 떨어진다. 그런데 시장의 3분의 2는 수도권이다.

좀 더 섬세한 마케팅도 필요하다. 언론보도용 시승차로 고급형인 티타늄 모델이 제공돼 시승기와 기사는 하나같이 티타늄을 대상으로 했는데, 초기 공급 물량은 모두 기본형 트렌드 모델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섬세하게 조율되지 못한 마케팅과 제품 공급 계획은 영업 현장에서 불필요한 소모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소중한 신차 초기 효과도 반감시킨다. 실제로 몬데오 판매는 출시 직후인 3~6월에는 월평균 130대 수준으로 부진하다가 할인 프로모션이 적용되고 티타늄 모델 물량이 풀리기 시작한 7월은 204대로 껑충 뛰었다. 몬데오는 포드가 질적으로 향상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만큼 정말 좋은 차다. 하지만 가격도 그만큼 높다. 포드가 그동안 써온 바겐세일 전술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전처럼 ‘크고 저렴한 차’라는 단순한 커뮤니케이션도 불가능하다. 몬데오의 강점을 보다 섬세하게 부각하고 포드가 이전과는 다르다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켜야 한다. 아울러 정확한 전략 아래 올바른 수급 계획을 세우고 마케팅과 세일즈의 조화를 이뤄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몬데오 2.0 TDCi는 단순한 신모델이 아니다. 포드 브랜드, 포드코리아, 그리고 포드 딜러들까지 모두 질적으로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다. 포드가 한국 수입차 시장의 메이저 플레이어로 복귀하는 날을 기대한다.  에디터•김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