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안 위험해요. 롤케이지 없어도 나갈 수 있어요.” 슈퍼레이스 담당자는 일반인들도 쉽게 참가할 수 있는 자동차 경주가 있다고 했다. “김진표 감독 사고 났을 때 다행히 안 다쳤지만 헬멧이 깨

졌다면서요. 그런데 어떻게 안 위험해요. 에이 롤 케이지도 없는 건 좀 심했네.” 나는 그에게 따지듯 물었다. 솔직히 난 차도 좋아하고 운전하는 것도 즐기지만 레이싱은 좀 무서웠다. “그럼 한번 직접 참가해보시든가. 차하고 헬멧은 빌려는 드릴게. 라이선스 없으니까 1박 2일이면 되겠네. 처음인데 연습도 좀 하셔야지.”

 

시간 내에 각자 여러 번 트랙을 돌아 가장 빠른 한 바퀴 주파기록으로 실력을 가리는 타임트라이얼 방식은 헬멧만 의무다. 화상을 방지하는 방염복과 방염 신발, 방염 장갑, 롤케이지와 4점식 이

상의 안전벨트, 버킷시트, 척추골절을 방지하는 한스가 모두 권장사항일 뿐 의무는 아니다. 튜닝 폭도 많이 제한된 데다 순위 경쟁이 아니라 위험한 사고가 나진 않는다는 거다. 솔직히 구미가 당

겼다.

 

엑스타 슈퍼챌린지는 10개 부문이 치러지는데 그중 7개가 타임트라이얼 방식이다. 내가 출전 하기로 한 대회는 지난 5월 24일 열린 2전이었다. 대회를 준비하기 시작한 건 고작 사흘 전이었다. 준비라고 해봐야 별거 없었다. 출전을 위해 필요한 라이선스 C와 서킷 라이선스 발급을 신청했을 뿐이었다. 국내 드라이버 라이선스 C는 대한자동차경주협회가 발급한다. 서킷 라이선스는 경주가 열리는 서킷에서 내준다. 이번 대회는 인제스피디움에서 열렸다. 라이선스 신청은 둘 다 인터넷으로 받는다. 참가비는 부가세 포함해 10만원이다.

 

 

1 신체검사에 통과해야 시트에 앉을 수 있다. 2 현장에서 바로 심전도, 혈압 등이 체크된다. 3 이때만 해도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4 레이싱 슈트가 너무 꽉 낀다. 숨 쉬기가 약간 버겁다

 

 

규정집도 다운 받아서 읽었다. 프린트해서 미니북처럼 뽑으니 양도 그리 많지 않았다. 단어 정의와 돈 얘기는 물론 튜닝 지침과 순위 산정 등 온갖 얘기가 다 들어 있었다. 그중 눈길을 끈 건 튜닝

이었다. ECU와 터보, 기어비 등의 변경이 가능했다. 아울러 서스펜션과 안티롤 바, 스트럿 바도 바꿀 수 있었다. 슈퍼레이스가 내게 준 차는 쉐보레 크루즈 2.0 디젤 수동 순정이었다.

 

토요일 새벽에 인제로 떠났다. 대회는 일요일이지만 토요일 아침 8시 반부터 시작하는 서킷 라이선스 교육을 받기 위해서다. 라이선스를 받으면 오전에 트랙에서 연습할 수 있었다. 약 15만원 주

고 80분 타는 건데 도시락이 포함돼 있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나는 대회를 앞둔 선수였다. 연습만이 살길이다.

 

서울에서 새벽 6시 30분에 출발했다. 올림픽 대로에 들어서니 천호대교를 지나서부터 차가 막혔다. 가도 가도 정체가 풀리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25일 월요일이 석가탄신일이었다. 연휴에 차가

쏟아져 나온 거였다. 8시 30분까지 도착해야 했으나 그 시간 난 가평에 간신히 다다랐을 뿐이었다. 아침 교육을 못 받으면 오전 트랙 연습도 물 건너간다. 결국 트랙 한번 못 타보고 경기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됐다.

 

엑스타 슈퍼레이스는 타임트라이얼 방식이다. 차가 우르르 달리지 않아서 사고 위험이 낮다.

 

 

인제스피디움에 도착한 건 오전 11시. 도착 하자마 신체검사를 받았다. 서킷 라이선스 발급은 물론 대회 참가를 위해선 메디컬 체크가 필수였다. 혈압과 혈당, 심전도 등을 확인했다. 혹시 주행 중 쓰러지거나 의식을 잃을 가능성은 없는지 살피는 거다. 다행히 통과했다. 살찌고 나니 이런 거 검사받기 전에 늘 조마조마한다.

 

오후 12시 반엔 CJ 레이싱에서 여는 레이싱 아카데미를 수강했다. 무료다. 누구나 들을 수 있다. 황진우 선수의 강의는 재밌었다. 그리고 알찼다. 끝난 후에는 개별적으로도 질문을 받았다. 나 같은

문외한에게는 정말 쏠쏠한 시간이었다.오후엔 참가 드라이버들의 연습이 있었다. 난 서킷 라이선스 교육을 받지 못해 연습할 수 없었다. 한 시간만 더 일찍 출발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자꾸만 커진다. 오후 6시부터는 국내 드라이버 C 라이선스 교육이 열렸다. 이론교육만 이수하면 라이선스가 발급된다. 교육은 90퍼센트가 안전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일요일도 일찍부터 부산했다. 서킷 라이선스 교육이 8시부터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킷라이선스 교육도 거의 안전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서킷 곳곳의 코너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났는지 CCTV에 잡힌 장면들을 보여줬다. 결국 차의 상태와 자신의 실력을 파악하고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즐기라는 얘기다. 자동차와 관련한 것이다 보니 대부분 안전에 무게를 많이 두고 있었다. 바로 선수 교육이 이어졌다. 대회 규정에 대한 설명이었다. 꼭 숙지할 내용과 전파해야 할 규정, 바뀐 규정을 모두 일러줬다. 교육이 끝나고 선수 등록을 하며 차에 참가 번호와 스폰서 광고 스티커를 받았다. 꼼꼼히 붙이고 나니 벌써 내가 속한 슈퍼 D-1 클래스가 시작할 시간이 됐다. 얼른 가야지 하는데 검차를 받아야 한단다. 오피셜 5명이 오더니 안전장비 등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을 점검했다. 트랙을 돌 수 있는 시간은 20분밖에 없는데 검차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간신히 검차를 끝내고 트랙으로 들어서니 시간은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처음 트랙에 오른거나 마찬가지라 연습처럼 생각하고 돌려고 했다. 그런데 웬걸. 이제 막한 바퀴 돌았는데 적기가 발령됐다. 서킷에서 사고가 났다. 아! 나의 데뷔 무대가 결국 한 바퀴로 끝나버렸다!

 

 

6 레이서치고는 부피와 질랑이 너무 크다. 7 역시 레이싱은 남자들의 로망. 레이싱을 계속 하고 싶어졌다.

 

 

2차 주행은 오후 1시에 시작이었다. 잠시 숨을 돌리니 점심시간이었다. 이 시간엔 CJ 레이싱의 트랙 강습이 열렸다. 신청만 하면 누구나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나는 김의수 감독에게 교습을 받았

다. 내가 타는 걸 옆에서 한 번 보더니 바꿔 타자고 했다. “이 차는 3단 이하가 없다고 생각하면 돼요. 거의 모든 코너를 3단에서 ‘풀 스로틀’로 돈다고 생각하면 돼요.” 나는 “교육시간에 보여준 영상에서 차가 많이 돌더라고요. 그래서 속도를 줄였어요.” 그러자 김의수 감독은 “이 차는 스핀이 날 만큼 휠마력이 높지 않아요. 그러니 그냥 밟고 가세요. 저기 저 코너만 빼고요.” 김 감독의 조언에 갑

자기 자신감이 붙었다. 꼴찌는 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다시 트랙에 나섰다.

 

출발신호를 받고 바로 들어갔다. 20분 내내 달려볼 요량이었다. 코너에서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코너를 만날 때마다 돌고 또 돌렸다. 물론 3단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코너에서 잡히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직선구간만 가면 다른 차에게 잡혔다. 순정상태여서 출력이 낮기 때문이다. 어쩌면 실력의 열세를 이렇게 핑계 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최종 성적은 2분 17초 751로 꼴찌다. 1등과 18초나 차이 났다. 자동차 전문지 기자 자존심이 완전히 구겨졌다. 다시 도전해볼까 하는 의욕이 자꾸 불타오른다. 가끔 경주대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튜닝된 경주차 매물이 올라올 때가 있다. 순정차 가격을 생각하면 비싼 편도 아니다. 진입 장벽이 낮은 대회라서 그런지 자꾸 욕심이 난다. 튜닝 잘된 차만 타면 지금이라도 중위권은 가능할 것 같은데 말이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야! 매달 인제랑 영암으로 여행 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