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레이 터보는 거의 ‘풀 옵션’이다. 빠진 건 디지털 계기반과 자동 공조장치, 기아차 순정 내비게이션(후방카메라) 세트다. 그런데 내비게이션과 후방카메라 세트는 처음부터 애프터마켓 매립형을 생각하고 있었다. 옵션 가격이 무려 90만원이나 했기 때문. 그 돈이면 더 마음에 드는 내비게이션과 후방카메라는 물론 블랙박스까지 달고도 남았다. 즉 처음부터 없어도 된다 생각했던 건 디지털 계기반과 자동 공조장치뿐이었다.

디지털 계기반은 애초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속도가 숫자로 표시되는 것 말고는 별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나마 그게 예뻐 보이지도 않았다. 전자시계에서 볼 수 있는 마디마디 잘린 숫자가 개인적으로 좋아 보인 적 없었다. 그래서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자동 공조장치도 꼭 필요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전에 타던 현대 마르샤에 자동 공조장치가 있었지만 나도 아내도 자동모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날씨에 따른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세기로 틀어놓으면 굳이 또 만질 일이 없었다. 레이 터보에서 디지털 계기반과 자동 공조장치는 30만원으로 묶인 옵션이었다. 자동차 값에 비해 큰돈은 아니지만 결국 앞선 이유 때문에 제외했다.

처음 차를 샀을 때는 탁월한 선택이라 생각했다. 꼼꼼하고 알뜰한 소비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솔직히 조금 후회하고 있다. 한 가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바람 세기 조절 단계다.

자동 공조장치는 바람을 총 8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반면 수동 공조장치는 총 4단계까지만 조절할 수 있다. 1단에 놓고 있어도 바람이 좀 세다. 특히 아내가 좀 불편해한다. 조금만 더 약하면 좋겠지만 안 된다.

온도를 종종 올렸다 내렸다 하고 1단으로 틀었다 껐다 하며 적정 온도를 맞춰야 한다. 바람 세기 0.5가 이리 아쉬울 줄은 몰랐다. 그나마 지금은 창문을 열고 다니며 온기를 만끽할 수 있지만, 여름이나 겨울은 오롯이 공조장치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레이 터보를 1년 반 정도 탄 지금, 나와 아내는 보지 않고도 세 개의 공조장치 다이얼 중 원하는 걸 정확히 잡을 수 있게 됐다. 온도 조절도 수준급이다. 아니, 가끔은 우리 스스로 놀랄 정도로 정확하다. 그러니 ‘기계급’이라 표현하는 게 맞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