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의 환송 인사

 

남쪽으로 가는 첫 여정을 전북 진안에서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키다리 나무들의 환송 인사를 받고 싶어서였다.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부터 모래재까지 약 1킬로미터 길가에는 키 큰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빼곡히 도열해 있다. 진안 메타세쿼이아 가로숫길에는 차가 다닐 수 있다. 영화 <국가대표>에서 노란색 밴이 지나간 곳도 여기다. 이곳을 찾았을 때 나무에 아직 잎이 달리지 않았다. 봄기운이 여무는 중이라 마치 싸리나무 빗자루를 거꾸로 세워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여름이 되면 뾰족한 녹색 이파리가 무성히 달려 행인들의 그늘을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알록달록 단풍으로 이곳을 붉게 물들일 것이다.

 

메타세쿼이아는 30미터 넘게 자란다. 그리고 빨리 자라 최근 여기저기에서 가로수로 인기다. 사실 이 나무는 300만 년 전에 멸종된 식물로 여겨졌다. 포항에서도 화석이 발견됐다. 그러다 1946년 중국의 어느 오지 마을에서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이른 새벽, 길 위엔 나와 크로스컨트리밖에 없었다. 청설모 한 마리가 길 위를 가로질러 갔다. 나무 주위엔 참새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시동을 켜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다. 크로스컨트리가 천천히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나무들은 고요히 숨을 쉬며 산소를 내뿜었다. 크로스컨트리에 디젤 분진 필터가 있다곤 하지만 깨끗한 산소를 배기가스가 희석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주행 테마와 모드를 ‘에코’로 바꿨다. 천천히 달리며 차창을 내렸다. 피톤치드와 시골 아침 공기가 어우러져 차 안으로 들어왔다. 나무들의 잘 다녀오라는 상쾌한 인사를 받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지안재의 처음과 끝을 오가려면 연속 5번의 유턴을 거쳐야 한다.

 

지리산 가는 길

 

지리산은 우리나라 남부를 지탱한다. 백두대간의 종착지기도 하다. 행정구역은 남원, 구례, 산청, 함양, 하동을 아우른다. 그래서 지리산 계곡은 주요 교통로로 사용됐다. 지금은 그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도로가 놓였다. 오도재는 이 중 함양에서 지리산으로 넘어가는 지름길이다. 옛날엔 남해와 하동의 교역로였다. 남해의 싱싱한 해산물이 여기를 거쳐 내륙 곳곳으로 전해졌다. 이 중 뱀처럼 구불구불한 길이 지안재다. 풍경을 보기 위함이든 힘들어서든 행인들은 모두 이 길 정상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정상엔 이미 몇몇 행인이 길을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자전거, 모터사이클, 자동차 등 이동수단도 다양했다. 모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저 멀리 아래에서 검은색 폭스바겐 제타 한 대가 맹렬히 올라왔다. 급선회와 급제동의 반복 끝에 정상에 올랐다. 이어서 한 커플이 롤러코스터에서 내리듯 문을 열고 나왔다. 남자는 ‘봤지?’라는 표정으로, 여자는 ‘오빠 최고야!’라는 표정으로. 그들은 지안재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얼마 안 있다 자리를 떴다.

 

지안재의 처음과 끝을 오가려면 연속 5번의 유턴을 거쳐야 한다. 코너링 성능을 테스트하는 데 이만한 길은 없다. 급커브에서 약간 언더 스티어가 생겼다. 그러나 주행 안전 장치가 개입해 이를 거의 상쇄했다. 자이로스코프는 주행 방향을 감지하고 엔진 출력, 스티어링휠의 움직임, 휠의 회전까지 제어했다. 앞 맥퍼슨 스트럿, 뒤 멀티링크의 서스펜션과 부드러운 전동 파워 스티어링도 한몫 거들었다. 나는 한 번의 스침이 아쉬워 몇 번이나 오르내리며 몸을 좌우로 기울였다.

 

오도재를 오르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예부터 수많은 유학자와 승려들이 자주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전설은 전설일 뿐. 나는 깨달음을 뒤로한 채 고개를 넘었다. 그러자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워진다는 지리산의 산맥들이 펼쳐졌다. 노고단과 천왕봉까지의 능선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산을 지나 강으로 향했다.

 

크로스컨트리는 바다 위를 날고 있었다. 피톤치드와 시골 아침 공기가 어우러져 차 안으로 들어왔다.

 

강과 기찻길 사이

지리산을 둘러 전남 곡성 섬진강으로 향했다. 곡성에는 섬진강 하류가 지나간다. 이곳 사람들은 여기가 우리나라 강에서 가장 깨끗하다고 주장한다. 근거는 지리산에서 쏟아져 나오는 맑은 물이다. 실제로 투명한 강물 아래로 자잘한 자갈들이 비쳐 보였다. 재첩을 채취할 수 있을 정도로 수심도 얕은 편이다. 물이 맑아서인지 섬진강 재첩은 어떻게 먹어도 그 맛이 일품이다.

마을에 들어서자 양 길가의 벚꽃 나무들이 아치를 만들어 반겨주었다. 한쪽엔 섬진강이 흘렀다. 다른 한쪽엔 기차 한 대가 화물 컨테이너를 가득 싣고 힘차게 달렸다. 어디선가 증기기관차 소리가 들렸다. 옆을 보니 증기기관차가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달리고 있었다. 세상에!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증기기관차라니! 하지만 다시 들으니 경적은 녹음된 소리였다. 증기기관차 모습을 한 관광열차였다. 잠시 후 레일 바이크를 타는 사람들도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섬진강의 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옛 곡성역은 일제 강점기부터 60년 넘게 전라선 열차가 지나던 곳이었다. 전라선 복선화 사업으로 역과 철로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다 ‘섬진강 기차마을’로 다시 태어났다. 관광열차가 오가는 구간은 10킬로미터로 길진 않다. 하지만 섬진강을 바라보며 여유와 정취를 만끽하기엔 충분하다. 5월엔 이 기찻길을 따라 철쭉 레드카펫이 펼쳐진다. 이곳이야말로 드라이빙 코스의 메이퀸이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5월에 찾아오리라 다짐하고 남쪽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벚꽃이 만개한 사천대로를 지나 삼천포로 빠졌다. 그리고, 삼천포에 빠졌다. 

 

 

보물섬으로 가는 길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다’라는 말의 뉘앙스는 꽤 부정적이다. 뭔가를 잘하다가 엉뚱한 곳으로 빠져 일을 그르칠 때 쓰는 말이다. 옛날엔 진주로 가려다 잘못해서 삼천포로 빠져 낭패를 보는 경 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 생긴 말이다. 하지만 지 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남해로 가는 화려한 다리 가 놓였다. 싱싱한 횟감과 해산물이 즐비하다. 한 려수도의 빼어난 경관이 한눈에 보인다. 애꿎은 질타가 가득했던 한낮 포구에서 통영과 여수에 버 금가는 항구 마을로 거듭났다. 

삼천포에 이르면 일단 긴 다리가 시선을 압도 한다. 다리는 남해군으로 이어진다. 늑도와 초양 도, 남해 창선도가 서로 다른 종류의 다리로 이어 졌다. 그래서 구조와 모양새도 제각각이다. 삼천 포대교는 서해대교와 같은 사장교, 창선대교는 시드니 하버 브리지와 같은 아치교 형태다. 설레 는 마음으로 서서히 다리로 진입했다. 초입에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라는 팻말이 있었다. 다리 위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상상 이상이었다. 양옆으 로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졌다. 올망졸망한 섬들 이 옆으로 지나갔다. 크로스컨트리는 바다 위를 날고 있었다. 

남해는 봄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곳곳에 벚꽃 과 유채꽃이 만개해 땅을 화려하게 치장했다. 흥 에 취해 그대로 물미해안도로로 향했다. 이 길은 물건항과 미조항을 잇는 동쪽 해안도로다. 옆으 로 펼쳐진 드넓은 바다와 맞닿아 있다. 특히 길 전 체가 구불구불해 드라이빙 코스로 제격이다. 하지 만 동승객에겐 물미가 아닌 ‘멀미도로’가 될 수 있 으니 주의해야 한다. 물건항 입구에는 독일마을과 해오름예술촌 등 볼거리도 풍성하다. 미조항에 도 착하면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다양한 멸치 요 리가 기다리고 있다. ‘보물섬’이라는 별명이 무색 하지 않다. 

 

 

어디든 갈수 있을 것 같다 

크로스컨트리는 트랙이 아닌 숲과 들판을 달리는 장거리 육상 경주다. 차의 이름이 이렇게 원뜻과 잘 맞아떨어지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크로스컨트리로 총 900킬로미터 가까이 달렸다. 도중에 주유는 없었다. 크로스컨트리의 연료탱크 용량은 62리터, 복합연비는 리터당 16.4킬로미터 다. 트렁크 용량은 여행하기 충분하다. 여기에 루 프 박스까지 얹는다면 좀 더 여유를 부릴 수 있다. 단, 시속 120킬로미터를 넘긴다면 머리 위에서 피 리 소리를 들어야 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직 D4 엔진에 맞는 AWD가 없다는 것. 하지만 내년 에 국내에 출시할 XC90부터 적용된다니 이어서 네 바퀴로 가는 크로스컨트리도 기대해본다. 크로 스컨트리 AWD라면 눈이 소복이 내리는 한겨울 에 동쪽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