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보다 50퍼센트 크고 앞으로 더욱 성장할 중국이야말로 금세기 최후의 자동차 패자부활전이 펼쳐질 곳이다.

고급차 브랜드들이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울모터쇼 프레스데이가 열렸던 4월 2일, 지구 반대편에서 열린 뉴욕모터쇼에서는 캐딜락 CT6, 링컨 콘티넨탈 콘셉트카가 공개됐다. 캐딜락 CT6는 BMW 7시리즈와 비슷한 크기면서 5시리즈를 경쟁차로 삼았다. 대신 2020년 전에 출시할 CT7 혹은 CT8이 메르세데스 벤츠 S 클래스와 BMW 7시리즈의 경쟁차가 될 것이라고 했다. 포드는 과거 미국 대통령들이 즐겨 탔던 콘티넨탈을 다시 보였다. 이 외에도 뉴욕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들은 물론 일반 소비자들을 고려한 수많은 신차가 선보였다. 하지만 이번엔 또 다른 거대 손님이 있었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 시장의 거대함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2014년 미국의 연간 신차 시장 규모는 1650만대 수준이었다. 반면 중국은 2300만대의 신차가 팔렸다. 2020년까지 3000만대를 당연히 넘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약 2000만대의 자동차가 등록됐으며 매년 140만대의 신차가 팔리고 있다. 전 세계 모든 완성차 기업과 부품업체들이 중국에 목을 매는 것은 당연하다.

중국 자동차 시장이 이렇게 성장하면서 고급차 시장 역시 커지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1년 동안 팔리는 신차는 약 8000만대다. 이 중 10퍼센트가 고급차다. 이 작은 숫자가 전체 수익의 절반을 좌지우지하는 자동차 세그먼트도 있다. 예를 들어 메르세데스 벤츠 E 클래스나 S 클래스 같은 차다. 특히 중국처럼 약 10퍼센트라는 비율로 일정한 고급차 시장이 형성됐을 경우 이 시장은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된다.

중국 자동차 시장은 아직 본격적인 보급 단계에 진입하지 않은 미성숙 시장이다. 보통 1인당 GDP가 8000달러를 넘어야 자동차의 대중화 단계라고 한다. 중국은 2014년 기준으로 7500달러에 머물렀다. 이런 시장에서는 소비자들이 특정 브랜드에 대한 고정관념이 아직 확고하지 않다. 그래서 브랜드에 대한 편견이 적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현재 존재감이 거의 사라진 뷰익이 정작 중국에서는 톱3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 중국인은 뷰익의 우울했던 20세기 후반을 알지 못한다. GM이 뷰익을 중국에 다시 출시했을 때 중국 소비자들은 뷰익이 청나라 마지막 황제가 애용했던 차라는 것만 기억했을 뿐이다. 이러한 개방적인 자세는 옛 영광을 되찾으려 하거나 새롭게 중국을 노크하는 기업에게 단비와 같다. 한 가지 더 예를 들자면 아우디는 1980년대부터 중국에 진출해 소비자들의 마음을 선점했다. 아우디가 현재 글로벌 톱3 고급 브랜드가 된 것도 결국 중국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키워드를 잘 사용했기 때문이다.

벤츠, BMW, 캐딜락, 재규어, 랜드로버, 인피니티, 렉서스 등 고급차 브랜드들이 중국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국보다 50퍼센트 크고 앞으로 더욱 성장할 중국이야말로 금세기 최후의 자동차 패자부활전이 펼쳐질 곳이다. 이곳에서 브랜드 위치를 굳힐 경우 전 세계 자동차 판매에서 나오는 연간 수익의 50퍼센트 중 적지 않은 부분을 지속해서 확보할 수 있다. 고급차 시장은 브랜드 파워 싸움이다. 그래서 아무리 중국 로컬 완성차 업체들이 가격이나 품질 등으로 공격해도 고급차 시장은 여전히 난공불락이다.

완성차 기업들이 신차 개발을 할 때 중국을 염두하기 시작한 것은 15년 정도 된 것으로 보인다. 그전까지 중국은 폭스바겐 싼타나나 뷰익 밴이 인기였다. 대부분 구형 모델을 가져와 비싸게 받는 전략이 통하던 시장이었다. 하지만 이제 경쟁이 과열돼 각종 최신 모델들이 선보이고 있다. 신차 개발부터 중국은 최우선 고려 대상이 됐다. 베이징과 상해 모터쇼에서 해마다 선보이는 월드 프리미어 모델만 50종이 넘는다.2300만대 규모의 시장은 그만큼 다양한 차종으로 시장을 세분화할 수 있다. 이는 고급차 시장에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아우디는 중국에서 A1부터 A8까지, 곧 선보일 Q1부터 Q8까지 모든 차종을 골고루 팔 수 있다. BMW 역시 비전 퓨처 럭셔리 콘셉트를 소개하면서 초대형 럭셔리 세단 시장에 미리 선전포고를 했다. 메르세데스 벤츠도 마이바흐와 풀만을 다시 살렸다. 이 모든 것이 중국의 힘이다.

브랜드와 차종이 다양한 완성차 기업일수록 이러한 거대 시장에서 유리하다. 이는 현대·기아차나 토요타처럼 대중차 시장에 국한된 브랜드는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다. 결국 제2의 현대·기아차나 토요타는 중국 로컬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질리자동차가 볼보를 인수하듯 거대 자본이 기존 고급 브랜드를 인수하지 않는 한 새로운 브랜드가 중국 시장을 진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급 완성차 기업들은 다른 기업의 신규 진입을 막기 위해 새로운 차종을 무수히 만들어내고 있다. 덕분에 전 세계 소비자들의 선택권은 매우 넓어졌다. 고급차 기업에게는 새로운 과제이자 도전이지만 어떻게 보면 자사 브랜드를 더욱 강하게 만들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다. 결국 중국이라는 ‘기회’는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새로운 자동차 중화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