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네바 모터쇼가 막을 내렸다. 국내 기업은 현대차와 기아차, 쌍용차가 참석했다. 한국지엠은 쉐보레 유럽 본부가 참여했으니 엄밀하게 불참이고, 르노삼성은 모기업 르노가 전시를 이끌었다. 생산과 수입을 동시에 하는 입장이니 참석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굳이 무게 추를 기울이자면 역시 불참에 가깝다. 참석과 불참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굳이 구분하는 이유는 그들의 자신감과 위기감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제네바 모터쇼에서 현대차는 늘 주목받는다. 유럽 시장을 거침없이 행보하는 도전 브랜드이자 내놓는 차종마다 히트를 치고 있어서다. 물론 여기에는 제품 외에 비밀이 하나 숨어 있다. 보증수리의 무제한 혜택이다. 기간은 3년이지만 거리는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욱 강력한 무기가 있다. 바로 자부심이다. 우연히 제네바 시내 한식당에서 현대차 해외법인장들과 마주쳤다. 그들이 주고받는 건배사에는 현대차 특유의 도전 정신과 해보자 하는 자신감이 가감 없이 묻어 있었다. 수출에 주력했던 만큼 유럽 각 나라별 점유율이 늘어나고 있음에 고무됐다.

그런데 이들이 음식점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현대차 국내파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경쟁사들이 내놓은 신차를 보면서 국내에서 제품 대응력을 키우자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감 넘치는 목청으로 건배를 외쳤지만 무언지 모를 위기감 같은 것도 분명히 있었다. 

30분 정도 차이를 두고 벌어진 일이지만 유럽파와 국내파의 모습은 매우 상반됐다. 유럽은 승승장구의 자신감을 느끼는 반면 국내는 위기를 인식한 것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같은 지붕 아래지만 희비는 극명했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자신을 현대차 체코 판매법인장으로 소개한 그는 “제아무리 유럽에서 잘해도 내수가 잘돼야 합니다”라는 말로 알은 체를 했다. “그러게 좀 잘하지 그러셨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같은 자리에는 쌍용차와 르노삼성차도 있었다. 먼저 티볼리를 전면에 내세운 쌍용차는 러시아 시장의 몰락을 서유럽에서 방어해야 한다. 그래야 생존한다는 위기감이 부회장 직함으로 뒤로 물러난 이유일 전 대표의 목소리에 묻어났다. 별도의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이유일 부회장은 “쌍용차가 할 수 있는 것은 전문화밖에 없다”며 “그나마 서유럽 내 4WD 소형 SUV 시장의 성장세가 고마울 따름”이라고 전했다. 더불어 “SUV 전문 제조사로 남기 위해 체어맨을 세단에서 SUV로 변형시키는 방법도 검토에 들어갔다”고 털어놨다.

르노삼성과 진솔한 얘기를 나눈 것은 개막 다음 날이다. 별도의 인터뷰보다 그냥 만나서 담백한 얘기를 나눴다. 이미 국내에서 시험 중인 미니밴 에스파스의 국내 도입 가능성과 새로 선보인 QM3의 형제 차종 카자르도 언급됐다.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뉘앙스를 해석하면 미니밴 에스파스의 국내 수입 판매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QM3의 수입 판매를 통해 얻은 자신감이 또 다른 차종으로 이어진 셈이다.

제네바를 뒤로하고 고개를 내수로 돌렸다. 제네바에서 본 자신감과 위기감이 내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2월까지 현대·기아차의 국내 승용점유율은 62.6퍼센트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66.4퍼센트에 비해 3.8퍼센트 포인트 하락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위기는 현대차다. 국내 승용 점유율이 33.2퍼센트로 지난해 37.1퍼센트에 비해 무려 3.9퍼센트 포인트 줄었다. 같은 기간 기아차 승용 점유율이 29.3퍼센트로 지난해와 변동이 없었던 만큼 현대차만 내수에서 휘청거린 형국이다. 반면 르노삼성차는 지난해 4.6퍼센트에서 올해는 SM5 LPG, 노바 등의 출시에 힘입어 5.1퍼센트로 늘었고, 쌍용차도 지난해 5.4퍼센트에서 티볼리의 선전으로 6.2퍼센트까지 점유율을 확대했다. 또한 수입차는 지난해 14.1퍼센트에서 올해는 17.2퍼센트까지 늘어나 현대차를 직접 위협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위기감을 느낀 현대차가 들고 나온 것은 제품력에 대한 자신감이다. 그중에서도 제네바 모터쇼에 공개한 신형 투싼ix는 기대주다. 한 차종의 다양한 엔진 트렌드에 맞춰 가솔린은 132마력의 1.6리터와 175마력의 1.6리터 터보를 마련했다. 더불어 디젤은 115마력의 1.7리터와 136마력 및 186마력의 2.0리터를 준비했다.

하지만 투싼ix가 예전만큼 막강한 지배력을 가지기 어렵다는 의견도 고개를 들고 있다. 쌍용차 티볼리와 르노삼성차 QM3가 아반떼와 투싼ix의 중간에 위치해 두 차종을 위아래로 견제하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차가 내수 영향력을 지속하기 위해선 다양한 엔진 탑재와 함께 제품 간 차별화가 절실하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물론 배경은 아슬란이다. ‘아슬아슬’하게 판매가 유지되는 이유로 그랜저와의 차별화 실패가 꼽히고 있어서다. 그래서 차라리 ‘차명을 다이너스티로 했으면…’ ‘전륜 8단 변속기로 그랜저와 확실한 선을 그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기업이든 사람이든 결과가 나오면 언제나 ‘잘했어!’와 ‘더 잘했으면…’이라는 희비가 엇갈리기 마련이다. 달리 표현하면 자신감과 위기감의 교차다. 그리고 결과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다. 시장은 기업의 속사정을 봐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2015년의 석 달이 흘렀을 뿐이고, 남은 건 9개월이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처럼 회사별 자신감과 위기감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지금은 위기여도 연말에 자신감 넘치는 곳이 있을 테고, 반대의 경우도 흔하다. 위기와 기회는 언제나 공존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