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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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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역에서 활동하는 자동차 저널리스트들은 어린 시절 이런 차 사진을 벽에 붙였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의 10~20대에게 핀업카 하나씩을 추천했다. 자! 지금 당장 포스터를 구하러 떠나라. 그대들은 뭘 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다

2015.03.04

이때의 숀 코너리는 정말 잘생겼다. 키도 훤칠하다. 폼 잡고 DB5에 기대고 있는 모습이 근사하다.
지금도 난 제임스 본드 역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는 숀 코너리라고 생각한다.

오래된 비밀요원 친구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아마도 1990년대 중반 어느 토요일 밤 <주말의 명화>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영화 <007 골드핑거>는 정말 재미있었다. 전혀 한국인처럼 생기지 않은 한국인 악당 ‘오드잡’이 나오는 것이 신기했고, 온몸을 금으로 도금해 여자를 살해하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제임스 본드의 위트와 유머에 피식 웃음을 짓기도 했고 본드의 최첨단 무기는 상상력 풍부했던 10대 소년을 자극했다. 그리고 애스턴마틴 DB5가 있었다. 


내가 10대였던 90년대, 내 친구 몇몇은 람보르기니 디아블로에 환장했었다. 그런데 난 애스턴마틴이 더 좋았다. 영화 <007 골드핑거>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영화 속의 DB5는 정말 아름다웠다. 숀 코너리가 분한 제임스 본드는 약간 덤벙대고 경박스러웠는데, 영롱하고 고결한 아름다움을 지닌 DB5가 등장하자 제임스 본드의 중량감이 갑자기 배가됐다. 엄청난 존재감이었다. 더불어 말도 안 되는 기능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탄은 기본이고 노즈에는 기관총을 숨기고 있었다. 유사시에는 실내가 안 보이도록 유리를 온통 검게 하거나 바닥에 오일을 뿌려 추격을 따돌렸다.


1964년 출시된 DB5는 그해 개봉한 <007 골드핑거>에서 본드카로 나오지 않았다면 DB4를 공기역학적으로 강화한 그저 그런 모델로만 여겨졌을지 모른다. 그런데 영화의 유명세와 더불어 애스턴마틴은 위트 있는 바람둥이 비밀공작원과 동의어가 됐다. 골드핑거 외에도 <썬더볼>(1965), <골든아이>(1995), <네버다이>(1997), <카지노 로얄>(2006), <스카이폴>(2014)에 DB5가 등장한다. 그렇게 DB5는 100년이 넘는 애스턴마틴 역사에 가장 유명한 모델이 됐다.


단지 영화 때문에 DB5를 좋아하게 된 건 아니다. 이 차가 생산된 1960년대는 유럽과 미국이 고성능 GT카 격동기였다. 각종 모터스포츠 기술이 양산차로 넘어오기 시작하면서 공기역학적 설계로 효율성이 월등히 높아졌고 엔진 제조 기술도 일취월장할 때였다. 재규어 E 타입(1961년), 페라리 275 GTB(1965년), 람보르기니 400GT 몬차(1965년), 람보르기니 미우라(1966년), 마세라티 기블리(1967년), 포드 머스탱 GT500(1967년) 등 지금까지 전설로 남아 있는 명차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때 애스턴마틴 DB5가 등장했다. 


다른 GT카들이 모두 V8이나 V12 엔진을 얹었는데 재규어 E 타입과 함께 DB5만 직렬 6기통이었다. 그래도 최고출력 314마력은 다른 V12와 V8 엔진들보다 높은 수치였고 최고속도 238킬로미터는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를 제외하면 가장 빨랐다. 그런데 다른 차보다 DB5가 월등했던 것은 범접하기 힘든 고급스러움이었다. 최고급 가죽과 나무로 치장한 실내는 화려함의 극치였다. 여기에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술이 가득했다. ZF제의 5단 수동 기어박스는 당대 최고의 변속기였고 파워윈도와 유럽차로는 드물게 에어컨을 갖추고 있었다. 시트 등받이도 각도 조절이 가능했다. 당시 가격이 4490파운드로 재규어 E 타입의 두 배에 달했으나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DB5는 2년 동안 1029대만 생산되고 DB6로 변경했다. 지난 2010년 DB5가 경매에 등장했는데 260만 파운드(약 45억원)에 낙찰됐다.

 
얼마 전, 애스턴마틴 DB9을 서울에서 만났다. DB 시리즈를 운전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두툼한 가죽시트에 몸을 끼워 넣으니 DB5를 사랑하고 동경했던 스쿨보이 시절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10대 시절 내 손때가 묻은 책상 한 귀퉁이에는 숀 코너리가 DB5에 거만하게 기댄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 사진을 보면서 난 제임스 본드가 돼 DB5를 타고 악당을 무찌르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당시 상상의 파편들이 내 머릿속 어딘가를 유영하다 어느 순간 재집결했고 그렇게 내가 자동차 전문지 기자가 됐을지 모른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처음 보는 DB9이 낯설지 않았다. 왠지 모를 친숙함도 느껴졌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같은 느낌도 받았다. 10대의 나를 만나서일 수도 있다. 


올해 11월에 선보일 <007 스펙터>에 DB10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단 10대만 생산되는 모델이다. 지금의 10대들은 영화 속 DB10을 어떻게 바라볼까? 25년 전 나처럼 DB10에게서 충격과 긴장, 감탄과 동경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될까? 굳이 애스턴마틴이 아니더라도 10대들의 책상에 멋진 자동차 사진 한 장쯤은 있었으면 한다. 먼 훗날 어떠한 매개로 인해 아련한 기억 속에서 그 사진을 떠올리면 뇌가 화학적 폭발을 일으키며 그 당시의 나로 돌아가게 된다. 그때의 감정과 생각들이 그 사진에 담겨 있을 것이다. 
글•이진우

 

이 차를 만나러 배낭여행을 떠났다

포르쉐에서 ‘그루페 B(Gruppe B)’라는 콘셉트 모델을 공개했을 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911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무언가 미래에서 온 듯한 모습이 이유 없이 매력적이었다. 당시엔 인터넷도 없었고 외국 잡지도 명동 대사관 골목에나 가야 구경할 수 있었다. 959, 아니 그룹 B 관련 사진이나 기사가 있는 책은 모두 읽었다. 책방 주인이 뭐라 해서 브로마이드가 있는 책 하나를 샀다. 한 달 용돈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당시에 959와 페라리 F40을 두고 누가 빠른지를 비교하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난 관심 없었다. 레이스 머신을 도로용으로 개조한 수준의 F40은 미래의 자동차 기술을 테스트하려면 레이서 이외의 선택이 없었던, 그러니까 미래의 도로 주행용 스포츠카인 959와는 생각의 깊이가 달랐다.  

다소곳한 외모의 959지만 알맹이는 완전 미래의 것이었다. 수랭식 실린더 헤드는 10여 년이 지나 수랭식 996으로 환생했고, 2.85리터 450마력의 트윈 시퀀셜 터보 전자제어 연료분사 시스템은 요즘 기준으로도 고출력 하이스펙이다. PSK라는 이름의 토크 분배식 전자제어 네바퀴굴림 시스템은 2010년대 997의 PTM이 겨우 흉내나 내는 높은 수준. 높이 조절이 가능한 액티브 서스펜션과 타이어 공기압 모니터링 시스템도 마찬가지로 30년은 앞섰다. 아, 참! 극한 성능을 이겨내기 위한 마그네슘 단조 휠과 959 전용 던롭 타이어 등은 부가티 베이론에서나 볼 수 있는 콘셉트다. 이 이외에도 복합 소재의 채용 등 여러 면에서 959는 미래의 차였다.


여행 자유화 직후인 1990년 독일로 배낭여행을 갔다. 모두 959 때문이었다. 일본 타미야의 제품번호 58059 ‘포르쉐 959 랠리카’ RC 모델을 두 대나 구입했고 포르쉐 박물관의 그루페 B 머신을 배낭여행의 첫 목적지로 만났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지나가던 959 앞에 뛰어들어 한 번만 태워달라고 간청했던 나와, 웃으며 나를 옆자리에 태워주었던 노신사가 떠오른다. 다시 가슴이 벅차오른다.

 

 

959는 다소곳하고 순박한 듯한 외모지만 엄청난 기술이 들어간 모델이다. 
지금에서야 그 당시 959를 흉내 내는 수준이니 말 다했다. 

천재 엔지니어의 열정

솔직히 파가니가 존다를 선보였을 때는 좋아하지 않았다. 도로를 달리는 차가 아니라, 경주용 머신에 가까운 모양새가 싫었다. 특히 커다란 리어 스포일러가 눈에 거슬렸다. 엔진도 AMG에서 만든 것을 사다 쓴다고 하니, 디자인만 거창한 모델을 몇 대 만들다가 단명하겠거니 하고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그런데 그게 내 교만이었다. 파가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우연히 마주친 와이라 사진에서 나는 아차 싶었다. 그리고 자료를 모아서 살펴보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만든 와이라 다큐멘터리를 봤다. 존다는 과정이었고 호라치오는 그 너머를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호라치오는 먼저 존다로 궁극의 성능을 구현하고 싶었다. 자신의 전공인 경량 복합 소재를 사용한 차체와 AMG의 고성능 엔진으로 매우 뛰어난 마력당 무게비를 만들었다. 하지만 가벼우니 접지력이 부족해 커다란 리어 스포일러 등으로 공기역학을 최대한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와이라는 존다에서 한발 더 나간다. 이제는 존다가 이룩한 성능뿐만 아니라 여유로운 주행까지도 가능하다. 초경량 복합 소재와 크로몰리 프레임으로 이루어지는 프레임은 존다가 스스로 개발했다. 배기 시스템은 독일의 마이스터에게, 엔진은 AMG가 특별히 파가니를 위해 제작한 제품이고 와이라 전용 ESP는 로버트 보쉬가 만들었다. 세계 최고의 부품만 고른 것이다.


와이라의 자세한 내용은 내가 30년 전에 그랬듯이 젊은이들이 직접 알아보고 감동을 느꼈으면 좋겠다. 다만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은 호라치오 파가니의 열정을 느껴보라는 것이다. 포르쉐 959를 만든 포르쉐의 외계인들이 그랬듯이, 호라치오 파가니의 와이라는 그 열정으로 하이퍼카의 미래를 열고 있기 때문이다. 글•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

 

자동차도 꿈의 대상이다

내가 10~20대일 때와 지금은 자동차를 둘러싼 환경이나 젊은 사람들의 차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요즘은 돈만 있으면 우리나라에서도 웬만한 차는 다 살 수 있다. 딴 세상 차 같던 페라리, 람보르기니, 애스턴마틴, 맥라렌 모두 공식 수입되니 굳이 사지 않더라도 매장에 가서 구경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과거에 꿈이라 생각했던 존재들이 지금은 현실의 존재이다. 그런데 정작 자동차를 꿈의 대상으로 여기는 젊은이들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사는 게 팍팍하다 보니 아예 차에 관심을 끊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게 느껴진다. 차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세상에 사는 젊은이들도 과연 ‘언젠가는 이 차를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벽에 사진을 붙여놓고 싶은 차가 있을까? 기왕이면 젊을수록 꿈은 크게 가지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요즘 젊은이들을 위한 핀업카로 벤틀리 컨티넨탈 GT를 추천한다. 벤틀리는 긍정적인 뜻의 한량에게 어울리는 차다. 돈 잘 쓰고 잘 노는 사람과 잘 어울리는 브랜드다. 그런 개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차가 컨티넨탈 GT다. 컨티넨탈 GT는 아쉬울 것 없이 잘 달리면서도 편안하고, 자신이 만족할 수 있으면서 남들에게 보여줄 때도 꿀리지 않는다. 슈퍼카가 주는 날카로움과 긴장감이 없으니, 차의 성능을 제대로 뽑아낼 수 있는 운전실력 같은 것도 필요 없다. 금전만능주의가 가득한 요즘 세상에 어울리는 쿨함으로 가득한 차다. 게다가 값도 비싸다. 값이라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이상, 눈으로 거리를 달리는 실물은 볼 수 있어도 웬만한 노력으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여전히 꿈꿀 수 있다. 삶이 팍팍해 차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오히려 벤틀리를 꿈꾸는 것이 더 열심히 살아갈  원동력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페라리가 흔하지만 그 당시 페라리는 전설에서나 만날 수 있는 브랜드였다. 그런 페라리를 TV로 볼 수 있어 좋았다. 그것도 이렇게 멋진 테스타로사를. 지금 봐도 숨이 멎을 듯 아름다운 자태다.

지금도 가슴이 뛴다

어린 시절 우리나라에는 자동차 수는 물론 종류도 많지 않았다. 거리를 다니는 차들이 워낙 그 차가 그 차다 보니 조금이라도 낯선 것에는 자동으로 시선이 갔다. 특히 외제 차는 크기와 종류를 떠나 신기함과 동경의 대상이 됐고,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곤 했다. 그러니 잡지나 영화를 통해 어쩌다 한 번 볼 수 있던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얼마나 대단해 보였겠나. 우리나라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그런 차들은 상상 속 외계인의 우주선처럼 느껴질 정도로 꿈같은 존재들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10대였을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의 대형 사진을 방에 붙여놓는 게 재밋거리 중 하나였다. 자동차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 시절에는 군용차나 군용기에 관심이 더 컸던 탓에, 내 방 벽은 전투기나 헬리콥터의 사진이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예외로 사진을 꼭 붙여놓고 싶은 자동차도 있기는 했다. 페라리 테스타로사였다.


이 차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미국 TV 시리즈인 <마이애미 바이스>다. 주한미군 방송인 AFKN을 통해 볼 수 있었던 그 프로그램에서 주인공인 서니 크로킷이 타는 차로 나왔다. 미국 승용차나 경찰차들이 모두 각지고 투박했던 때, 극중 경찰관인 서니가 모는 멋진 디자인의 고성능 스포츠카는 튀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전설적인 브랜드 페라리의 테스타로사라니! 크로킷 역할을 맡은 배우 돈 존슨의 신선한 패션 감각과 더불어 테스타로사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빛을 발했다. 지금이야 페라리는 물론 다른 브랜드의 슈퍼카라고 해도 최신 모델은 별다른 감흥이 없지만, 테스타로사는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사진을 봐도 숨을 죽일 정도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몇 번 실물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마이애미 바이스>를 보던 어린 시절 떠올라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테스타로사는 불멸의 아이돌 스타다.
 글•류청희(자동차 평론가)

 

진짜 꿈의 차

드림카에 대한 나의 개념은 뚜렷하다. 말 그대로 ‘꿈의 차’여야 한다. 손에 닿지 않아 더 아련한 존재. 나아가 보는 순간 선명히 각인되어야 한다. 내겐 플리머스 프라울러가 그런 차였다. 내가 운전 가능한 나이였던 1997년 나왔다. 잡지에서 처음 보는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국내에선 코빼기도 볼 수 없었으니 꿈의 차 조건을 제대로 갖춘 셈이다. 


프라울러(prowler)의 사전적 의미는 엉뚱하다. ‘밤에 사고 치려고 서성대는 놈’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위트 넘치는 이름은 이 차의 성격을 엿볼 단서 가운데 하나다. 플리머스 브랜드의 모기업인 크라이슬러는 당시 개발팀에 깜짝 제안을 했다. “핫 로드 스타일로 뭐든 만들어봐.”


전권을 위임받은 개발팀은 휘파람 불며 상상의 나래를 편다. 1993년 그 결실이 같은 이름의 콘셉트로 나왔다. 좌우로 반반 나뉜 범퍼, 모터사이클처럼 독립식 펜더를 씌운 앞바퀴 한 쌍, 뱃머리를 툭 끊어놓은 것 같은 삼각형 차체, 납작하다 못해 가느다란 윈드실드…. 핫 로드의 우아하고 세련된 해석이 돋보였다. 그러나 현실과 안드로메다만큼 멀어 보였다. 그런데 내가 틀렸다. 몇 년 뒤 프라울러는 양산차로 나왔다. 그것도 원래 모습을 거의 유지한 채. 프라울러는 크라이슬러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한 2인승 스포츠카다. 뾰족한 콧날, 펑퍼짐한 힙이 특징이다. 지붕엔 직물 톱을 씌웠다. 3.5리터 V6 엔진을 오징어 몸통 같은 보닛 안에 쑤셔 넣고 뒷바퀴를 굴렸다. 4단 자동변속기는 뒤 차축에 물렸다. 


프라울러 디자인엔 과거와 미래가 뒤섞였다. 닮은 차도 없고 더 이상 만들 괴짜도 없어 보인다. 이 차는 1997년 457대로 시작해 2002년 1436대를 끝으로 단종됐다. 그나마도 1998년엔 생산을 쉬었다. 누적생산은 1만1702대. 당시 가격은 4만 달러 안팎. 그런데 지금도 상태 좋은 건 3만 달러에 거래된단다. 나와 취향 비슷한 이가 꽤 있는 모양이다. 

 

이 차는 마치 종교와 같다 

난 신차가 나올 때마다 연비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깐깐히 따져 업체를 불편하게 하면서, 정작 마음속으론 이런 차를 선망한다. 핑계는 있다. 결코 손에 닿지 않을 드림카니까. 


이 괴물딱지 같은 차는 독일 어느 미치광이 튜너의 작품이 아니다. 벤츠가 직접 만드는 차다. 따라서 벤츠의 품질보증 혜택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다. 공식 이름은 G 63 AMG 6×6. 트럭에 관심 많은 이라면 맨 뒤의 숫자를 단박에 이해했을 거다. 바퀴가 6개 달렸고 6개 전부에 동력이 전달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차는 단지 G 63 AMG의 차체를 늘리고 바퀴만 두 개 더 끼운 게 아니다. 높이도 확연히 다르다. 비결은 포털 액슬(Portal axle). 메르세레스 벤츠의 다목적차 유니목에서 건너온 기술이다. 구동축과 바퀴 사이에 기어를 맞물렸다. 차체와 바퀴 사이를 최대한 껑충 띄우기 위해서다. 이 차의 최저지상고는 46센티미터로 G 클래스보다 25센티미터 더 높다. 


성장판을 활짝 연 결과 G 63 AMG 6×6은 깊이 1미터의 물길도 성큼성큼 헤친다. 반면 일반 G 클래스는 60센티미터까지만 가능하다. 37인치 타이어를 끼웠고 차동제한장치도 5개나 달았다. 앞뒤 차축, 뒤 차축 좌우 바퀴, 앞 차축 좌우 바퀴 순으로 하나씩 잠글 수 있다. 구동력은 앞 차축부터 차례로 30:40:30으로 나눠 전한다. 


바퀴가 몇 개건 63 AMG를 몰아본 사람은 안다. 흥에 취해 밟다 보면 연료가 금세 바닥난다. 하지만 이 차라면 걱정 없다. 기본과 보조 포함해 연료탱크 용량이 159리터나 된다. 그런데 이 차를 요즘 친구들의 드림카로 꼽은 핵심 이유는 말 안 했다. 딱히 그럴 필요가 없어서다. 유튜브에 이 차 이름 쳐서 나오는 영상을 보면 알게 된다. 왜 이 차를 ‘숭배’할 수밖에 없는지. 
글•김기범(<로드테스트> 편집장)

 

세상을 뒤바꾼 슈퍼카

생각해보면 1990년대는 모든 것이 느렸다. 지금은 손안의 스마트폰을 통해 세계 자동차 업계에 무슨 일이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지만, 자동차 업계가 가장 뜨거웠던 그 시절은 국내 자동차 전문지를 통해 월말이나 돼야 그 소식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1990년대는 모든 소식이 늘 반가웠고 귀했다. 역설적이게도 내 어린 시절 등장한 맥라렌 F1은 느린 시절에 등장한 가장 빠른 슈퍼카였다. 1992년 모나코GP 전야에서 이 차가 소개됐고 등장과 동시에 최고속도, 마력당 무게비, 가속 성능 등 고성능차의 기준을 모두 새롭게 세웠다. 이후에 개발된 슈퍼카들은 맥라렌 F1의 기록을 넘으려 상당한 시간과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자동차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엔지니어로 불리는 고든 머레이와 피터 스티븐슨의 조합은 람보르기니 미우라가 다져놓은 슈퍼카의 기준을 한 번에 바꾸었다. 공력 특성을 극대화한 디자인과 1톤이 조금 넘는 무게, 가운데 운전석이 있는 2도어 3인승 구조는 새로움을 넘어 충격이었다. 차체 중앙 뒤쪽에 자리 잡은 BMW의 6.1리터 V12 자연흡기 엔진은 최고출력이 627마력에 달했고,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은 3.2초, 최고속도는 시속 370킬로미터였다.  당시 월말에나 만나볼 수 있었던 자동차 전문지에 등장한 맥라렌 F1은 그야말로 남자들의 로망이 집약된 차였다. 맥라렌 F1을 처음 봤을 때 곧장 수입 서적 판매상이 몰려 있는 명동으로 뛰어갔던 기억도 아련하다. 

 

맥라렌은 여전히 최강 

2010년 맥라렌이 벤츠와 결별하고 P1을 구상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엔진이다. V12 자연흡기로 갈 것이냐 아니면 30년 만에 대세로 자리 잡은 터보로 갈 것이냐를 두고 고민했다. 맥라렌은 결국 V8 트윈터보 엔진을 독자적으로 개발한다. 과거 F1과 SLR의 엔진을 BMW와 벤츠로부터 공급받았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맥라렌은 여기에 F1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재생 시스템(HY-KERS)을 더해 21세기에 공개된 최초의 하이브리드 슈퍼카라는 타이틀까지 차지했다. 1990년대 슈퍼카가 ‘느린 아날로그 사회에서 가장 빠른 바퀴 달린 탈것’이라는 명제를 만족시켰다면, 개인 정보화 시대인 21세기는 여기에 효율을 덧붙여야 했다. 


맥라렌 P1에는 과거 슈퍼카의 상징과도 같았던 돌덩이 딱딱한 클러치도, 멋들어지게 솟아오른 시프트 바와 노브도 없다. 기계적인 변속은 출력 손실이 없는 듀얼 클러치가 담당하고 737마력을 내는 3.8리터 V8 트윈터보 엔진에 KERS 시스템에서 만들어지는 179마력을 추가해 최종출력은 916마력에 육박한다.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출력을 가지고 있지만 맥라렌이 P1을 통해 나타내고 싶은 것은 다년간 F1에서 활동하며 얻은 공력성능이다. 시속 300킬로미터를 넘나드는 극한의 상황에서는 엔진 출력보다 중요한 것이 공력성능이라는 것을 어느 메이커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속도에 따라 각도가 변하는 리어 스포일러는 시속 250킬로미터에서 600킬로그램의 다운포스를 만들어낸다. 이 수치는 MP4-12C의 5배에 이른다. 만약 차를 좀 안다는, 혹은 극한을 달리는 슈퍼카에 대해 아는 척을 하고 싶은 10대라면 21세기형 하이브리드 슈퍼카인 맥라렌 P1을 반드시 알아둬야 한다.  글•황욱익(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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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핀업카,람보르기니,포르쉐,파가니,존다,페라리,벤틀리,테스타로사,컨티넨탈GT,맥라렌

CREDIT Editor 이진우 Photo 장현우 출처 MOTOR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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