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체적인 느낌은 좋다. 간결한 형태에 과하지 않은 장식이 더해져 알차 보인다. 고전미에 현대 감각이 이렇게 잘 어울린 모습을 미워하는 건 죄악이다.

2 다른 부분의 크롬 장식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사이드미러 전체를 덮은 것은 전형적인 허세다. 애프터마켓용 크롬 커버처럼 값싸 보이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3 탱탱한 차체에서 뒷바퀴 부분만 양옆으로 잡아 뽑은 듯 툭 튀어나와 있다. 차체를 전체적으로 더 부풀렸으면 이상했으려나?

4 귀여운 느낌을 강조하려면 헤드램프를 더 키워도 좋았겠다. 앞부분이 평평한 탓에 좀 밋밋해 보이는 게 흠

 

피아트가 15년의 공백을 깨고 한국에 다시 발을 들여놓은 게 벌써 2년 전이다. 그 전의 피아트는 한동안 거리감이 느껴지는 브랜드였다. 공백기가 길었던 데다 국내 판매를 중단하기 전까지 팔았던 차들도 많은 사람의 마음을 확 끌어당기지 못했던 탓이다. 그나마 어린 시절에 동네에서 가끔 볼 수 있던 124, 아버지 친구분이 갖고 계셔서 몇 번 얻어 타보았던 132는 피아트를 좋은 의미의 유별난 차 만드는 회사로 기억하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한국을 다시 찾으면서도 피아트는 뭔가 좀 유별날 것 같은 차들을 내놓았다. 지금의 피아트 간판 차종은 누가 뭐래도 500인데, 얄궂게도 최근에서야 겨우 500을 처음 타볼 수 있었다.

500은 우리나라에서 팔리기 전부터 레트로 디자인 때문에 눈여겨보고 있던 차다. 폭스바겐 뉴비틀, BMW가 만든 미니처럼 피아트도 누오바 500의 디자인을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려 500을 만들었다. 레트로 디자인의 소형차들은 회사마다 뜻하는 바가 다르다 보니 개념도 각기 다르고 덩치도 훨씬 커졌다. 그나마 500은 다른 차들에 비하면 오리지널 모델 크기와 가장 가깝다. 작고 귀여우면서 고풍스러운 멋까지 지닌 지금의 500에 특히 관심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평소 내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내 차에 가장 가깝다는 생각 말이다.

가끔 거리를 달리는 500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시승차가 내 앞에 선 그 순간에도 한결같았다. 덩치가 작은 것 같은데 크고, 큰 것 같은데 작다. 길이는 짧은데 키는 크다. 차체는 부풀린 듯 커 보이는데 바퀴는 차체를 뚫고 나온 듯 그보다도 양쪽으로 한껏 벌어져 있다. 흔히 이 정도 크기의 차라면 바퀴가 도어 옆면보다 바깥쪽으로 많이 나가지 않는다. 실내 공간을 넓히기 위해서다. 그런데 500은 그렇지 않다. 적당히 굴곡진 차체 옆면에서 비롯되는 착시 효과인지 모르겠지만 이게 웬 허세인가 싶다. 이쯤에서 어느 정도 눈치를 챘어야 했다. 아니,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500을 이성이 아니라 온전히 감성적으로 보고 있었다. 보고 있으면 흐뭇해지는 디자인에 넋을 잃어 냉정하게 구석구석 재고 따질 생각을 하지 못했다. 피아트가 500을 이렇게 디자인한 의도는 보는 이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데 있었는지도 모른다. 도어를 열고 운전석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나서야 이성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치채지 못했던 이 차의 특징 하나를 깨달았다. 이 차가 지닌 의미의 80퍼센트는 디자인에 있다는 것 말이다.

그렇게 느낀 것은 실내 구조 때문이었다. 스티어링휠과의 거리에 맞춰 운전석 등받이를 조절하고 나니 정수리가 선루프를 뚫고 나갈 기세다. 지붕도 높은데 의자의 앉는 부분도 높아서다. 머리가 천장에 닿은 상태로 운전하는 것은 여간 불편하지 않다. 과속방지턱에서 속도를 조금만 덜 줄여도 엉덩이에 1차 충격이, 정수리에 2차 충격이 전해진다. 허리가 유난히 긴 신체 구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500은 구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차체도 짧은데 오리지널 누오바 500처럼 해치 부분을 기울이다 보니 실내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었다. 앞좌석을 높이지 않으면 뒷좌석에 사람을 앉힐 수 없다. 게다가 등받이를 수직에 가깝게 세워놓았어도 뒷좌석은 여전히 어른이 앉을 만한 공간이 아니다. 트렁크가 20킬로그램짜리 쌀부대를 과연 눕혀놓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짧고 얕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피아트 500, 어떻게 팔리고 있나?
피아트 500은 2007년에 데뷔해 큰 변화 없이 올해로 8년째 생산되고 있다. 생산대수 100만 대를 넘긴 것이 2012년 11월이었으니 데뷔 후 5년 남짓 시간이 걸린 셈이다. 2001년부터 생산된 미니가 100만 대 생산되기까지 6년 정도 걸렸으니 나름 괜찮은 실적이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미니는 지난해 누적 생산대수 300만 대를 넘겼다. 미니가 다양한 파생 차종으로 독립 브랜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과 달리, 500은 여전히 피아트라는 브랜드의 우산 아래에 놓여 있다. 미니와 비교하면 가지치기 모델도 많지 않고 가지를 치기까지도 시간이 제법 오래 걸렸다. 컨버터블 역할을 하는 500C가 2009년에, 차체를 키운 5도어 500L은 2012년에 추가됐다. 올해 지프 레니게이드의 형제차인 500X가 더해지면 라인업은 네 종류로 늘어난다. 유럽에서 판매되는 차는 피아트 폴란드 공장에서 생산되지만 한국에 들어오는 차는 멕시코에 있는 크라이슬러 공장에서 생산된다. 멕시코에서 만들어진 피아트 500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에서 먼저 판매되기 시작했고 이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로 판매지역을 넓혔다. 이전에는 폴란드 공장에서 생산된 버전이 이들 남미 지역 국가에 팔렸다. 국내 판매 모델은 남미 지역용 모델처럼 북미용 모델보다 뒤 서스펜션을 높였다.

 

1 옆면 뒷유리의 위쪽 곡선은 조금 어색해 보인다. 같은 뼈대로 만든 포드 카에서는 덜 어색한 걸 보면 플랫폼 공유의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

2 앞모습과 달리 펑퍼짐한 엉덩이는 차의 귀여운 이미지를 반감시킨다. 오리지널 누오바 500처럼 곡면에 조금 변화를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3 남미용 모델과 같은 뒤 서스펜션 세팅 때문에 차체가 붕 떠 보인다. 보기에는 불안정한데 막상 달려보면 그렇지도 않다.

 

드물기는 해도 디자인을 살리기 위해 패키징을 희생하는 차들이 있다. 어딘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즐기는 데 별 무리가 없거나 뭔가 희생하지 않아도 디자인을 잘 살릴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차나 돼야 그럴 수 있다. 목적의식이 뚜렷한 스포츠카라거나 부족함 없이 풍요로운 럭셔리카가 좋은 예다. 그런데 500은 스포츠카도, 럭셔리카도 아니다. 미니가 핵심 모델인 3도어 해치백에서조차 적당히 타협한 부분을 500은 서슴지 않고 저질러버렸다. 개념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500을 싸고(수입차치고) 작다고(국산 경차보다 짧다) 무조건 대중적인 개념의 차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예사롭지 않은 감각은 시트와 도어 트림에 쓰인 가죽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고급 모델인 컬러 플러스에만 해당되기는 하지만 소형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싸구려 인조가죽과는 격이 다른 질감과 탄력이 돋보인다. 작고 밋밋한 시트에 앉아 있으면서도 조금이나마 고급차에 타고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느끼는 것은 엉덩이와 등뿐이다. 시선이 앞으로 향하면 원과 타원으로 가득한 대시보드에서 이 차가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아기자기하게 꾸민 소형차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편의장비부터 전자장비에 이르기까지 장비란 장비를 탈탈 털어봐야 몇 개 되지 않고, 센터페시아에 모든 기능을 다 몰아놓아도 전혀 복잡하지 않다. 웬만한 차에는 도어트림에 달려 있을 파워윈도 스위치도 대시보드 가운데 아래쪽에 튀어나온 기어 레버 양옆에서 발견할 수 있다. 팔을 걸칠 수도 없을 정도로 살짝 돌출된 도어트림에 전동 사이드미러 조절 스위치가 있는 게 특이하다. 트립 컴퓨터가 포함된 풀 컬러 계기반이 스티어링휠에 살짝 가려지는 것은 표준 체형인 사람에게는 해당사항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본의 아니게 불편해지는 운전자세만 아니면 500의 운전석에 앉는 것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 좋아지는 경험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을 뒤집으면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도 하지 않는다’가 된다. 500의 달리기가 그랬다. 서 있다가 출발할 때 약간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는 엔진은 비교적 가벼운 느낌으로 차를 이끌고 나간다. 빠르고 힘차지도 않지만 가속이 부담스럽지도 않다. 언뜻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엔진 힘이 배기량에 비해 탁월한 수준은 아니어도 이만한 덩치를 감당하기에는 충분하다. 가속의 즐거움에 대한 기대를 접으니 그럭저럭 만족할 만하다. 대시보드에 있는 스포트 버튼을 눌러도 뭔가 달라진다는 느낌은 없지만, 속도를 높이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누르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좀 더 높은 회전수에서 변속이 이루어져 가속에 더 힘을 쏟을 수 있어서다. 수동 모드는 기어 레버로만 선택해 조절할 수 있는데, 레버가 비교적 높이 있어 조작하기는 편하다.

무난한 엔진이 장점을 묻어버리기는 해도 차 자체는 다루는 재미가 썩 나쁘지는 않다. 커브를 돌 때 차체가 어느 정도 기울기는 하지만 하체는 끈끈하게 노면을 따라 움직인다. 위아래가 따로 놀아 뒤뚱거리는 느낌이 아니라 기울어지려는 몸을 다리와 발로 적당히 부드럽게 버티는 느낌이다. 저속에서 약간 튀기던 승차감은 고속으로 가면서 편안해진다. 이런 서스펜션 세팅에 차체가 더 길다면 움직임이 불안해졌을 것이다. 세련되거나 정교하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안정적으로 달리는 게 신기하다. 스티어링휠은 건들거리지 않고 비교적 깔끔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기어 레버를 수동 모드에 놓고 적극적으로 변속하며 달리면 열심히 모는 만큼의 재미를 돌려준다.

솔직히 말해 500은 입맛을 다실 정도로 흡족한 차는 아니다. 개념도 조금 애매하다. 사람들이 이 차를 작은 고급차로 받아들여주길 바라는 피아트의 의도는 이해가 간다. 구석구석 깔끔하고 고급스럽게 꾸민 부분도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차의 면면은 달리기만큼이나 단출하고 담백하다. 달리기 질감에서 의도하지 않은 여유가 풍기기는 해도 어디까지나 기분에 그칠 뿐 고급차다운 풍요로움은 느낄 수 없다. 의도야 어떻든 이 차는 고급차가 아니라 개성 있는 작은 차라고 얘기하는 것이 설득력 있다.

이 차와 친해지려면 우선은 예쁜 디자인에 만족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부분은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하다. 나머지는 눈에 보이는 허세 뒤에 숨어 있는 작은 차다움을 즐기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작은 차는 간결한 게 매력이다. 그리고 500은 분명히 간결하다. 뒷좌석이 의미 없으니 뒷문을 만들지 않은 것부터 그렇다. 혼자 또는 두 사람이 일상생활을 위한 이동수단으로 쓰기에 좋은 환경인 셈이다. 이 차를 손에 넣는다면 운전재미가 차가 주는 재미의 전부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세뇌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런 세뇌에 많은 에너지를 쏟을 필요도 없다. 디자인 이외의 부분은 이 차가 지닌 의미의 20퍼센트에 불과하니까. 미니와는 다르다. 미니와는.